시의 틈을 찾아서
황인찬의 시는 간결하다. 좋게 말하면 깔끔한 것이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시를 읽으면서 어렴풋하게 드는 생각은 좋은 시란 ‘틈’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읽기가 어렵거나 난해하다는 뜻이 아니라 좋은 시는 잠시 멈춰서 음미할 수 있는 구절이 있고 더 깊이 생각할 ‘틈’을 준다. 그런 면에서 황인찬의 시는 ‘틈’이 없다. 틈이 들어갈 새가 없다.
구관조 씻기가 표제작이기 때문에 주의 깊게 읽었지만 딱히 이렇다 할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다. 스스로 목욕하는 새는 씻길 필요가 없고, 스스로 말하는 시는 멈출 필요가 없다.
(“새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습니다. 새는 스스로 목욕하므로 일부러 씻길 필요가 없습니다.” -구관조 씻기기)
나는 질문을 하는데 백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주체인 나는 존재하지만 타인인 너는 존재하지 않는 그 공간. 우리는 마치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관람하는 존재로 너는 너, 나는 나로 밀실에 갇혀있다.
(나는 단 하나의 질문을 쥐고 / 서 있었다 / 백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
무성한 선인장이 반기는 침실, 나만의 공간에서야 비로소 비참함을 느끼지 않는다. 여기서 나는 면역이 되어 있고 완벽한 무균실이기 때문에.
(집에 돌아왔는데, 여기서는 아무도 비참하지 않았다 / 침실에 들어서자 잎이 무성한 선인장이 있었다 -면역)
그러나 밖은 여전히 얼음 들판이다. 끝이 없는 삭막하고 아름다운 넓은 공간.
(나는 깨달았지만 / 여전히 끝이 없는 얼음 평원이 있었다 -항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