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과거를 숭상하는 것은 반동적이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우익은 죽은 사람들, 즉 평온의 세계, 고요한 시간을 좋아해 과거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자기들의 특권을 유전(遺傳)에 의해 정당화하려는 권력자들은 향수(鄕愁)를 배양한다. 역사는 마치 우리가 박물관을 방문하듯이 학습된다. 그러나 이 미라의 컬렉션은 일종의 모조품이다. 현재가 우리를 속이듯이 과거는 우리를 기만한다. 과거와 현재는 진실을 가면으로 가린다. 피억압자는 억압자에 의해 날조된, 자기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진부한 불모(아무런 발전이나 결실이 없는 상태)의 추억에 동화하도록 무리하게 강요받고 있다. 그 때문에 그들은 그것이 유일하게 가능한 일생인 것처럼 자기의 것도 아닌 인생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1940~2015)

 

 

영화 "국제시장"을 상찬하는 사람들,

과거를 아픈 기억이되 그래도 영광의 시대로 여기는 사람들은,

모두 반동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많이 늦었지만, 이 위대한 지성이자, 탁월한 저널리스트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1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100자가 넘는데 하다가 리뷰 코너에 쓰셨군요 ? ㅋㅋㅋㅋㅋㅋ.

과거에 갇히니 보수적이기는 한데 그 과거가 편집되어서
좋은 것은 과장하고 나쁜 것을 감추려고 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부끄러운 과거일수록 드러내고 그래야 좋은 사회가 될 터인데 말입니다.

수다맨 2015-05-01 14:30   좋아요 0 | URL
지극히 옳으신 말씀입니다.
저는 사실, 한국은 그래도 이만큼 번영과 영광을 획득했다(˝국제시장˝)는 주장이나, 한국은 과거에 크나큰 피해와 아픔을 겪었다(징용, 위안부 등)는 주장은 사실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말해, 여기에는 `나`나 `민족`만을 생각하려는 편향적인 고집만 있을 뿐이죠.
사실, 과거에 갇히지 않고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아주 강력한 방법은, ˝나˝가 아니라 ˝타자(한반도 밖의 사람들)`를 돌아보는 데서 찾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곰곰발님께서 서재에 올리신 글처럼) 한국 군인에게 피해를 입은 베트남 여성들의 참혹한 사연을 확인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바로 과거를 반성하고 지양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기는 것이겠죠. 윤리란 나를, 우리를 손쉽게 비판하는 데서 생기는 게 아니라 우리 밖의 (상처 입은) 타자를 끌어오는 용기가 있을 때만 비로소 발생할 수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