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정말 저를 낳으셨수?”
이 어린애 같은 질문에 어머니는 그만 어처구니가 없어서 무어라고도 대답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인 까닭인지 이이가 어째 내 어머니일까? 그렇게 도일은 느껴지는 것이었다. 혈연 관계의 인연이 그에게는 어인 까닭인지 도무지 애정적으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직장에 있어서 자기 위의 과장이나, 부장이 갈려 새 사람이 오듯이, 부모나 형제라는 것도 그렇게 쉬 바뀔 수 있을 것처럼 도일에게는 생각되는 것이었다.
-손창섭, 「공휴일」, 손창섭 단편 전집1, 가람기획,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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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섭이 왠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삼부녀"의 해설을 실은 평론가 방민호도 손창섭과 보부아르의 연관성을 조심스레 추측한 적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 손창섭은 보부아르가 갔던 길(가부장제와 결혼제도 비판→계약결혼)을 일정 부분 따라갔기 때문이다. 또 하나 우스운 소리를 하자면, 프랑스의 미셸 우엘벡이 손창섭을 참조하지 않았나 하는 뚱딴지 같은 생각도 든다. 버림받은 수컷과 미쳐 돌아가는 당대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이 둘은 놀랄만치 비슷하다. 다른 점을 하나 말하면 미셸 우엘벡은 시대를 잘 만났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손창섭은 탐독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다른 책들도 더러 읽고 있기는 하지만 요 몇 주 손창섭만 계속 붙잡고 있는 이유는, 이 이가 한국인이 발견하지 못했거나 간과했던 부분들을 하나씩 짚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