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정말 저를 낳으셨수?”

이 어린애 같은 질문에 어머니는 그만 어처구니가 없어서 무어라고도 대답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인 까닭인지 이이가 어째 내 어머니일까? 그렇게 도일은 느껴지는 것이었다. 혈연 관계의 인연이 그에게는 어인 까닭인지 도무지 애정적으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직장에 있어서 자기 위의 과장이나, 부장이 갈려 새 사람이 오듯이, 부모나 형제라는 것도 그렇게 쉬 바뀔 수 있을 것처럼 도일에게는 생각되는 것이었다.

-손창섭, 공휴일, 󰡔손창섭 단편 전집1󰡕, 가람기획,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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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섭이 왠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삼부녀"의 해설을 실은 평론가 방민호도 손창섭과 보부아르의 연관성을 조심스레 추측한 적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 손창섭은 보부아르가 갔던 길(가부장제와 결혼제도 비판→계약결혼)을 일정 부분 따라갔기 때문이다. 또 하나 우스운 소리를 하자면, 프랑스의 미셸 우엘벡이 손창섭을 참조하지 않았나 하는 뚱딴지 같은 생각도 든다. 버림받은 수컷과 미쳐 돌아가는 당대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이 둘은 놀랄만치 비슷하다. 다른 점을 하나 말하면 미셸 우엘벡은 시대를 잘 만났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손창섭은 탐독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다른 책들도 더러 읽고 있기는 하지만 요 몇 주 손창섭만 계속 붙잡고 있는 이유는, 이 이가 한국인이 발견하지 못했거나 간과했던 부분들을 하나씩 짚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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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4-12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습니다. 우엘벡이 아무래도 손창섭을 따라한 것 같습니다. 인정 ~~~~

제가 늘 주장하지만 손창섭은 정말 시대를 잘못 타고 났습니다.
하여튼 저에게는 손창섭이 넘버1입니다.

수다맨 2014-04-12 20:03   좋아요 0 | URL
ㅎㅎ 진짜 손창섭과 우엘벡이 은근히 비슷합니다. 굳이 비교하면 우엘벡 소설에는 조금 더 거드름과 기름기가 있다면, 손창섭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처절함이 더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단편 전집을 쭉 읽다가 느낀 게 손창섭은 흔히 대표작으로 알려진 작품들(예컨대 혈서나 비오는 날)보다 오히려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예컨대 예비부부의 결혼 과정을 다룬 '서어'라는 단편에는 이런 문장이 나오더라구요.
"언제나 한 인간의 운명은 주위 환경에 지배당하지만 그 책임은 어쩔 수 없이 본인이 지게 된다는 냉엄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위의 책 207쪽)"
개인적으로는 가부녀, 공휴일, 피해자, 서어, 인간동물원초, 신의 희작과 같은 소설들이 정말 압권이라 생각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4-12 21:39   좋아요 0 | URL
같은 생각입니다. 교과서에 오르는 손창섭 단편은 말 그대로 안전빵이고요.
진짜 글은... 뭐, 서어, 인간동원, 신의 희작 같은 경우죠. 그냥 다 좋습니다.

수다맨 2014-04-12 22:54   좋아요 0 | URL
안전빵'만' 교과서에 실린다는 사실이 좀 한심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네요 ㅎㅎㅎ 사실 손창섭이 교과서에서조차 그렇게 각광 받는 작가는 아니죠. 황순원 "소나기"나 이청준 "눈길"의 감성이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좀 더 먹히는 분위기라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