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엔 확실히 도둑놈 같은 것들이 들끓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나라와 동족에게 예사로 해를 끼치고, 사회를 좀먹는 해충이나 독충 같은 인간들 말이다. 정치적인 투철한 신념도 없고, 국가와 민족에게 봉사하려는 정신자세도 돼 있지 않으면서, 이권과 감투욕에 미쳐서 정치를 한답시고 휘젓고 돌아가는 놈들, 국민의 공복이라는 책임있는 자리를 이용해서 뇌물이나 받아먹고 공금이나 들어먹는 탐관오리배들, 국가의 동량인 인재 양성을 빙자하여 육영사업을 한다는 미명 아래 폭리도 이만저만이 아닌 지독한 학교 장사꾼들, 사업을 합네 하고 기상천외의 간계를 꾸며 어머어마한 나랏돈을 끌어내어다가는 뒷구멍으로 말아먹지 않으면 고작 독점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내 가지고는 시세의 몇 배인 엄청난 가격으로 소비자를 골탕먹이는 협잡 사업가들, 품질을 속이고 가격을 속이고 심지어는 가짜 물건을 진짜로 속여 팔아먹는 사기상인들, 이런 악질 도배들이 우글거리는 세상이니, 제 정신 가진 사람치고, 그 입에서 욕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있단 말이냐.
-손창섭, "길", 북갤럽, 3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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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부녀"를 읽고 손창섭의 매력에 푹 빠져서 그의 전 작품들을 사 모으는 중이다. 단편전집은 작년에 다 샀고 장편인 "삼부녀"와 "인간교실", "길"까지 구했지만 그의 최후의 대표작인 "유맹"은 시중에서 구할 수 없다. 이 책이 헌책방에도 없었기에 출판사(실천문학사)에까지 직접 전화를 걸었지만, 재고는 출판사 보관용으로만 한 권 남아 있다고 하며, 앞으로 재판을 찍을 일은 없을 거라고 한다. 이 책은 E북으로라도 사거나 아니면 도서관에서 빌려 제본이라도 뜨려고 한다.
특히 위와 같은 손창섭 특유의 독설은, 흠모하지 않을 수 없다. 신형철은 "김애란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도대체 가능"하냐며 감탄을 표했지만, 나는 달리 말하고 싶다. 대체 "손창섭을 존경하지 않는 것이 도대체 가능"하냐고 말이다. 나는 이 이야말로 한국의 진정한, 거의 유일한 리얼리스트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