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는 동시 짓기를 좋아한다. 인수의 글솜씨는 김용택 시인도 인정한다. "나보다 인수가 월등해 보인다"라고 그는 말했다. 인수의 일기장은 새, 꽃, 안개, 구름, 아침, 고추, 옥수수, 나무, 나비 같은 것들로 가득하다. 인수는 자라서 시인이 되려나 보다. 그런데 인수한테 물어 보니까 그게 아니었다. 인수는 자라서 형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왜 하필 형사냐?"라고 내가 묻자 "형사가 되어서 나쁜 놈들을 다 잡아 가두겠다"라고 인수는 대답했다. 이 세상에는 명백한 악이 존재한다는 운명적 사실을 어린 인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인수가 세상의 악을 알아가는 마음의 과정들을 생각하면서 속으로 울었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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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평일이건 주말이건 하루에 딱 세 번만 상영한다고 했다. 


시작하기 십 분 전에 들어가 보니 관객석은 절반쯤 들어차 있었다. 나는 비교적 전망 좋은 자리에 앉아서 영화가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내 옆에는 갓 중년이 되기 시작하는 깡마른 사내가 앉아 있었다. 딱 보기에도 어딘지 무감각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사내의 무심한 인상을 흘끗대다 갑자기 스크린에서 삼성의 광고가 나오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웃었다. 삼성을 비판하는 영화에 삼성 전자의 광고가 나오다니, 하지만 이것이 자본주의의 일면이라 생각했다. 


영화는 산업재해로 인한 후유증을 겪는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을 씨줄로, 대기업의 횡포와 협잡을 낱줄로 엮어서 삼성 반도체 사건의 과거의 현재를 착실히 보여준다. 서사는 행복한 과거-불행한 현재-되찾은 희망이라는 구도를 따라가며 인물들은 -그들의 내면에 갖가지 어혈과 분노가 맺혀 있음에도- 다소 평면적으로 그려진다. 때문에 나는 영화에서 나오는 지극한 슬픔에 몹시 공감하긴 했지만 이것이 다분히 일반적인 구석이 있다고, 주제넘게 생각했다. 오히려 영화에서 나오는 갖가지 비극적 상황들보다는, 이 실장이 한상국에게 조소 섞어 던졌던 말(정치는 표면이고 경제는 본질입니다)에 나는 더 이끌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불쾌하고 잔인하긴 해도 그 말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사실상의 진리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기 보다는 가벼운 금단 증상을 느끼면서 담배 한 대를 태우고 싶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날 즈음 나는 이상한 기척을 느껴 옆쪽을 살펴봤다. 내 삼촌뻘인 사내는 좀 전까지 무심했던 표정을 어느샌가 지우고 이제는 손수건을 든 채 울고 있었다. 나는 사내가 흐느끼는 모습을 보다가 스크린에 시선을 돌려 한상구가 법정에서 말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가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강원도 사투리의 독특한 억양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에코처럼 울리고 있을 뿐이다. 본디 사투리란 지방의 언어이며 그것은 변방의 정감과, 중심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의 절실한 애환을 담아낸다. 어쩌면 판사가 한상구에게 원고 발언을 유도하게 한 대목은 -이것이 설사 팩트일지라도- 다분히 감독의 의중이 반영된 포인트라 할 만하다. 한상구는 사투리라는 구부러진 언어로, 경직된 표준어가 오갔던 법정이라는 공간을 겨눈다. 감정에 북받친 조리 없는 언어가, 차가운 논리로 무장된 텅 빈 언어들을 질타하는 모습에서 나는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인민'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것은 한국에선 사실상 버려진 말이었고, 한 줌으로 남은 재처럼 지금의 나에게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인민'이란 말을 떠올리며 스크린에 빨려들 듯 감응했고, 옆에서 흐느끼는 소리를 주의깊게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영화는 미완의 희망적인 엔딩으로 끝난다. 한윤미의 죽음은 산업재해로 인정 받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소송은 기각되었기 때문이다(이들의 싸움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영화의 끝에는 실제 모델인 황상기-황유미 부녀의 사진이 나오고, 개인 기부와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명단이 차례로 나열된다. 사실 이 영화의 진정한 백미는 바로 이 엔딩 크레딧에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의 앞머리로 삼성의 화려한 광고가 나왔다면, 영화의 끝에는 장삼이사들의 소박한 이름이 나온다. 거창하게 보자면, 이것은 자본의 금력과 사람들의 연대 사이에서 이 영화가 아슬아슬하게 위치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한 편의 영화가 이 아슬아슬한 위치에 서서 박해받는 자들의 아픔과 슬픔을 억척스럽게 말한다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위의와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이 글을 쓰기에 앞서서 김훈의 에세이 한 대목을 인용했다. 사실 나는 절대선과 절대악의 구도를 따르는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한 영화는 인간 내면의 복잡성을 낮추보고 시스템의 본질을 단순화하기에 좋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세상에 절대악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친일파를, 군사 깡패들을, 이명박과 이건희를 제대로 단죄했는가. 단언컨대, 처벌받지 않는 행위와 행위자는 반드시 절대악으로 진화해 사람들의 숨통을 누른다. 정치 권력의 폭압과 경제 권력의 횡포는 그 외관만 달라졌을 뿐 오늘날에도 강력하게 현존한다. 불의는 이기는가? 나는 이 질문 명제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모른다(그만큼 나는 옹졸하고 비관적인 인간이다). 그럼에도 대답을 해야 한다면 승패를 논하기 전에 먼저 불의와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가족"에 나오는 작은 승리는 불의와의 싸움에서 획득한 귀중한 희망이자 별표이다. 이 희망과 별표가 -설사 파토가 될 지라도- 끝내 마음속에 간직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느낀 솔직한 감상이다.


이 영화를 누구는 좋아할 수도, 누구는 싫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지금, 이 영화를 무시할 수는 없다.


사족: 윤유선 씨 참 아름답다. 나는 아름답게 늙은 여배우에게 언제나 애틋한 순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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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2-16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셨군요. 글이 좋습니다. 제 글에 덧붙여 링크를 걸어두었습니다. 아무래도 다음 주까지가 한계일 것 같습니다. 좀 아쉽군요.... 주말에 포텐 터지기를 바랐는데 말입니다.


+

윤유선 씨 참 예쁘죠 ? 그런 주름이 필요해요 ! 주름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요즘 중년배우들 전부 보톡스 맞아서 얼굴 탱탱하게 나오면 그거 엄청 짜증납니다

수다맨 2014-02-16 03:17   좋아요 0 | URL
막 쓴 글을 링크 걸어 주시니 부끄럽습니다^^;;;
알라딘 인기 블로거이신 곰곰발님께서 홍보를 했는데도 일이 어렵게 되었네요ㅜㅜ 별 같잖은 영화들이 위세를 누리고 있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약속"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은 비극이자, 희극이라 봅니다.

아, 윤유선 배우의 주름에 저도 푹 빠졌습니다. 보톡스를 넣어 일부러 팽팽하게 만든 얼굴보다 관록과 연륜이 녹아든 주름이 더 아름답다는 것! 곰곰발님 평소 지론이 기막히게 들어맞더군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6 03:37   좋아요 0 | URL
사람들은 늘 매끈한 봉합을 좋아하죠. 이음새 없는 봉합 말입니다.
< 수상한 그녀 > 같은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눈물을 펑펑 흘리죠.
판타지에 울죠. 판타지는 결국 가짜 아닙니까. 가짜를 두고 운다는 것은 결국
가짜를 진짜인 것처럼 생각하기에 그렇습니다. 일종의 판타지와의 합일'이죠.
하지만 < 또 하나의 약속 > 같은 영화에는 별 관심이 없어요.
그것은 진짜가 주는 눈물인데 이 눈물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 ? 불편하니까...

이 영화를 보고 울면 이마트 가서 장 보면 안 될 거 같으니까...

수다맨 2014-02-16 03:51   좋아요 0 | URL
곰곰발님 말씀해 주시니 생각난 게 제가 간 영화관에는 "수상한 그녀"를 틀어주는 상영관이 세 곳이나 있더군요. 세 상영관이 조조부터 야간까지 세 시간 간격으로 계속 틀어주니, 하루에 열댓 번도 더 상영하는 셈입니다.
반면에 "또 하나의 약속"은 상영관 하나에 하루에 딱 세 번만 틀어주더군요. 야간도 없었구요 ㅜㅜ 이 영화가 이렇게 박정한 대접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하니 짜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