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지면서 온몸의 피가 심장을 향해 역류하는 것이 느껴졌다ㅡ 천운영, '행복고물상', "바늘", 창비, 160쪽.

이 소설의 첫 대목에 나오는 문장이다. 하지만 이것은 엄밀히 말해 오문이다. 오문이란, 문법적으로 정확해도 뜻이 통하지 않는 문장을 말한다.
왜 뜻이 이상한가. 피가 심장으로 역류하면 사람은 그 순간 죽는다. 피는 언제나 순류 [順流]해야지 한 순간이라도 역류해서는 안 된다. 굳이 위 문장을 고쳐 보자면 '온몸의 피가 심장을 향해 역류하는 듯했다' 정도가 알맞다.
물론 이 한 문장을 가지고 작가의 역량을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문장을 미려하게 가꾸려는 마음이 강한 나머지, 정확한 문장을 쓰려는 작가의 의지가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인다. "바늘"에 나오는 몇몇 단위 문장들을 보다가 이런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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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1-16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전 위 문장을 읽는 순간, 왜 이게 오문이지 ?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그런데 말씀 돌어보니 정말 피가 역류하면 , 정말 무시무시한 순간이 되겠네요. 공포 영화 속 한 장면이 연상됩니다. 비평가들은 < 바늘 > 이란 작품지베 대해 극찬을 하던데 ( 뭐, 단편의 교과서다.. 이런 식..) 전 잘 모르겠더라고요. 기교는 좋은 데 진심을 담지 않는다고 박진영이 뭐라 할 타입의 참가자라고나 할까요 ?

수다맨 2014-01-16 20:22   좋아요 0 | URL
'바늘'이라는 단편집은 첫 신인의 창작집이라 보기에는 굉장히 준수하죠. 꼼꼼한 묘사력과 더불어 현장감도 나름 충실하다고 봅니다. 오늘날 문창과에서 중요한 교재로도 쓰이죠.
하지만 곰곰발님 말씀대로 기교가 압도적으로 드러나니 저자의 진심이 흐리게, 더 심하게 말하면 안개처럼 보이더군요. 오로지 묘사에만 온 역량을 집중시키니 정작 왜 이런 캐릭터를 선보이고, 왜 이런 서사를 보여주여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빈약해 보이더군요. 그래서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