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의 지평 컨템포러리 총서
조디 딘 지음, 염인수 옮김 / 현실문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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팸플릿으로는 뛰어나나 전략서로서는 아쉽다. 잃어버린 대의를 복원하려는 진심과 노력은 훌륭하나 오늘날 공산주의적인 당이 인민에게 제시해야 하는 구체적 청사진은 희미한 감이 있다. 그럼에도 ‘좌파 멜랑콜리‘와 ‘소통 자본주의‘와 같은 개념들로 현 시대의 실상을 고찰하려는 시도는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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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11-21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마음에 들었던 것은 공산주의의 전격적인 복원을 역설하는 대목보다도 ‘좌파 멜랑콜리‘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이 개념은 과거에 발터 벤야민이 좌파에서 (사실상) 전향한 이들을 비판하는 용도로 사용한 것이라고 하는데, 혁명적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과 대안을 포기/폐기하고 자기 절망과 허무에 탐닉하는 이들의 내면 심리를 절묘하게 포착하고 있다.

부언하면 이들은 겉으로는 ‘나는 위대한 대의와 혁명에의 열정을 가졌던 사람이나 이제 그것들이 망실되고 잊히는 형편없는 세상이 되었기에 더없이 절망하고 한탄하노라‘와 같은 자학적인 언사를 보인다. 그리고 좌파 멜랑콜리는 이러한 이들의 심리를 다음과 같은 세 개의 과정으로 나눈다.
1. 만민 해방은 절대로 실현될 수 없다(대의의 용도 폐기).
2. 정부 및 자본가의 탄압과 횡포를 막는다는 것도 불가능하다(적극적인 현실 인정과 순응).
3. 그럼에도 이 따위 세상에서 나는 이루어질 수 없는 대의의 귀함과 중요함을 기억하고 있기에 절망하고 슬퍼하는 인간이다(그래도 고고한 가오 잡기).

이 책을 읽던 도중에 갑자기 신형철의 평론집이 떠올랐다. ˝몰락의 에티카˝에 있던 평론으로 기억하는데 예전에 그 글을 읽다가 심한 혐오감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혐오감의 실체가 무엇인지 이제는 얼마만큼 이해가 된다. 그가 쓴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나는 몰락한 자들에게 매료되곤 했다. 생의 어느 고비에서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참혹하게 아름다웠다. 그들은 그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전부를 포기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텅빈 채로 가득 차 있었고 몰락 이후 그들의 표정은 숭고했다. 몰락은 패배이지만 몰락의 선택은 패배가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이 글에 나타나고 있는 심리는 좌파 멜랑콜리자들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내면 세계와 상당히 유사하다. 그는 몰락ㅡ이것을 혁명의 실패라고 부르건 대의의 실현 불가능이라고 부르건ㅡ을 사랑하고 예찬하나 그 자신이 몰락자가 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와 같은 것들을 애도하고 상찬하고 기억하면서, 그러한 자기 자신도 고고한 윤리적 존재로 철저하게 자리매김하려는 어떤 저의가 엿보일 뿐이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11-21 15:37   좋아요 1 | URL
신형철은 철저하기 특권층에 기대어 기득권을 획득한 문단 엘리트‘라는 점에서 매우 기회주의자적인 아첨꾼이죠. 그런 그가 몰락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기만입니다. 역겨운 거죠. 제 식대로 말하자면 ˝ 만찬 앞에서 굶주림의 비참 ˝ 을 이야기하며 과식하는 미식가의 태도라고나 할까 ? 한국 문학이 어렵기 때문에 비판보다는 칭찬만 하고 싶다는 평론가의 자질에서 신형철의 설레발을 엿봅니다. 수박 씨 발라 먹을 것들....

수다맨 2019-11-22 10:31   좋아요 0 | URL
아첨꾼이라고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그의 비평적 태도에 어떤 결여나 단점이 있다고 느껴져서 긴 댓글을 달게 되었습니다. 몰락 예찬을 쓴다는 것은 당사자가 타인(들)의 몰락과 구별되는 위치에 있기에 나올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그는 몰락(하는 이들)의 기억자이자 매료자임을 자처하면서 그 자신도 어떤 숭고함을 가진 윤리적인 존재임을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죠. 말씀하신대로 신형철의 비평에는 (그 자신의 문학적/사회적 위치와는 대조적인) 어떤 기만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