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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앤턴 - 살만 루슈디 자서전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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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822페이지에 달하는, 중지의 두 마디 길이의 두께를 자랑하는 책을 읽기 위해서는 뚜렷한 목적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이 책보다 훨씬 얇고 가벼운, 그러면서도 다채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는 책들이 수없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런 목적 없이 굳이 이런 책-흉기로 쓰기에도 충분한 책-을 읽으려 드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만약 어떠한 정보나 목적도 없는 상태에서 이 책을 만난다면 손도 뻗지 않고 그대로 지나쳐버릴 것이다.

 

처음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의 내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 책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목적도, 심지어 전의마저 잃어버린 상태. 그러니까, 이걸, 읽으라고? 정말이지 곤혹스러움을 감출 수 가 없었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신간평가단원들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며, 긴 고민에 빠졌다. 과연 내가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기는 할까. 읽을 시도조차 하긴 할까. 처음으로 리뷰를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시간만 보내다가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고 느꼈을 때 책을 펼쳐들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나는 어떤 책을 만나든 일단 읽어 보는 것, 그것이 바로 정답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조지프 앤턴이라는 이름도, 살만 루슈디라는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에게 이 책은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낯선 이의 생애에 대한, 예상컨대 길고 지루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이 둘 또는 하나의 이름을 들었더라면 제법 구미가 당길지도 모른다. 신성모독이라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은, 그로인해 살인의 위협에 시달리는 소재(그다지 적절한 단어선택은 아니지만)는 현실세계에서 일어난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평범함과 특별함을 동시에 갖춘 작가 살만 루슈디. <조지프 앤턴>에 따르면 그는 어린 시절 취침 시간에 동양의 신기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던, 무신론자이지만 종교에 많은 관심을 두었던 아버지의 밑에서 자랐고 그의 영향이 "한 명의 작가로 성장하도록 도와주(39p)"었다. 게다가 열 세 살이 된 그는 아버지를 포함한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영국 생활을 시작했고 학창시절과 그 이상의 시간을, 수많은 새로운 경험들과 함께 보냈다. 광고 카피라이터로 활동하던 중 작가로 데뷔했으며, 두 번째 작품을 거쳐 세 번째 작품까지 세상에 내보이는 '인정받는 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이 세 번째 책 <악마의 시>는 작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명성을 얻은 작가로서 탄탄한 미래를 보장받은 그에게 <악마의 시>가 가져다 준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악마의 시>가 이슬람교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이란 지도자가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 그의 작품을 악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출판사와 서점에 대한 협박과 실제로 일어난 폭탄테러, 작가를 향한 살해위협. 이 마녀사냥은 무려 13년 동안 이어졌으며, 작가는 끝임없이 싸워내며 그 시간을 견뎌냈다.

 

이 책 <조지프 앤턴>에는 그 13년 동안의, 그리고 작가의 어린 시절과 더불어 그 이상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도피생활동안 '조지프 앤턴'이라는 가명으로 살아야 했던 작가의 이야기가 '나'라는 지칭대신 '소년' '그' '루슈디'와 같은 3인칭을 사용해 보다 객관적이고 세세하게 기록된 것이다. 덕분에 책을 읽다보면 종종 이게 자서전인지 소설인지, 진실인지 상상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이는 이 이야기가 그만큼 흥미롭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822페이지에 달하는 긴 이야기는 '살해위협' 또는 '도피생활'이라는 소재만큼 자극적이지 않다. 논쟁, 갈등, 신뢰, 평화, 만남, 이별이 끝없이 이어지는 삶은 나나 다른 사람들과 별로 다를바 없는 평범함을 지니고 있다. 극적인 상황도 격렬한 감정도 없는 이야기는 평화롭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하지만 작가에게 주어진 위험과 그에 대한 대항은 감히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하다. 그는 위협에 대비하여 도피와 경호받는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고 책에 대한 변론도 포기한 채 무릎을 꿇고 벌벌 기어야만(194p)"하는지 고민하고, 계속해서 글을 쓰며 "작가 아닌 삶이 되겠다는 서글프고 패배주의적인 생각을 버리고 다시 문학 쪽으로 다가가(221p)"기 위해 노력한다. 확고한 의지와 용기가 없다면 하지 못했을 일들이다. '살만 루슈디'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이라고 할 수 있다.

 

평범함으로 인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라고 느껴지면서도, 특별함으로 인해 결국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던 책 <조지프 앤턴>. 이 책 덕분에 문학이 단순히 '문학'에만 머무르지 않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으며, 작가의 의도와 독자의 해석 차이를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스스로 쓰고 싶은 말을 쓸 권리가 있다고 믿(161p)"는 것, 그리고 "그렇게 쓴 글이 적어도 진지한 작품으로 취급되리라 믿(161p)"는 것,  그로인해 "이야기를 들려줄 권리는, 그리고 그 이야기의 방식을 결정할 권리는 과연 누구의 것이며 마땅히 누구의 것이어야 하는(469p)"지에 대한 질문에 "그 권리는 만인의 것이며 마땅히 만인의 것이어야 한다(469p)"며 "누구나 자유롭게 거대서사를 비판하고 논쟁하고 풍자할 수 있어야 한다(469p)"는 작가의 말을 그의 삶을 통해 보다 투명하고 선명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끝으로, 아무런 정보도 목적도 없었기에 긴 망설임의 시간을 거쳤던 책이지만 일단 읽고 봤기에 투박한(?) 외형에 숨겨진 매력을 알 수 있었음을 밝히는 바이다. 그러니 나처럼 망설이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펼쳐보기를, 아니면 이 글을 통해서 정보를 얻고 목적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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