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기분전환
임효경 지음 / 전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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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하는 최갑수작가님의 북토크에 갔었지.
행사가 끝난 뒤에 알았지만
마주 보는 각도에 앉아 소녀같은 활짝 웃음으로
인상적이었던 여자분이 또 한 분의 작가님이셨다.
빈칸놀이터 책방에 준비되어 있던
하얗고 작은 그녀의 책.
앳돼 보이는 작가의 인상과 잘 어울린다.
흐뭇한 마음으로 내 책장에 자리 내어 주기!

[살기 위해 기분전환]
제목의 선두를 지키는 단어가 조금 무겁지만
후방을 지키는 단어가 괜찮다 말해 주고 있으니
마냥 우울한 글은 아닐 거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어쩌면 나와 당신의 이야기.. 라 하니
읽을 이유는 충분하잖아.


📖 175
항상 내 옆에 있어줄 무수히 많은 것들.
나는 지금 여기에서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할 일만 남았다.


순간/ 나/ 사랑/ 기분 전환
네 개의 주제로 적은 작가의 단상집은
조그만 책이지만 쉽게 읽어버리기엔 미안한 책.

그녀의 고민에 함께 공감해 주거나..
그녀의 희망적 발언에 응원을 보내거나..
직접 찍은 사진에 담긴 숨긴 메시지를 찾거나..

글이란 건
독자의 느낌대로 읽어 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니까.
이 마음 담은 작은 책을 보았다면
그냥 돌아서지 않기로..

글과 어우러진 사진은 작가의 솜씨.
내 지인 H의 분위기와 비슷하단 생각이 든다.
(본인도 인정ㅎㅎㅎㅎ)
그러고 보니 문장의 흐름도 어딘가 닮은 듯해.

‘어쩌면 나와 당신의 이야기’
이런 문장을 괜히 적은 게 아니구나! 역시 작가ㅎㅎㅎㅎ


<살기 위해 기분 전환>
다 읽고 나니 초록 사과가 떠오른다.
겉으로 보기엔 덜 익은 줄 알았는데
새콤달콤한 맛은 이미 사과인.

분명히 말하지만
고유의 사고 방식과 깊이는 따질 일이 아니다.

단지 임효경 작가의 지금의 글은,
지금의 그녀에게 맞는단 생각이 든다.
시간이 더해지면 그녀의 색은 조금씩 짙어질 테고
그런 후라면 임효경 작가의 책은
찾아 읽을 독자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조용히 응원해 본다~ : )

+

길지 않은 생애지만 나에게도 살고 싶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우연치 않게 시작한 것이 ‘산책’이었다. 산책을 하면서 내 핸드폰 속에는 당연한 절차를 밟듯 ‘기분 전환’ 이라는 제목의 메모장이 생겨났다. 처음엔 콩알만 한 크기였는데 지금은 숨을 쉬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될 만큼 커다란 숲이 되었다. (p.4)

당신의 ’기분 전환‘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쉼’은요?
아직 모르겠다 하시는 분들은
이곳에서 조금 쉬었다 가며 고민해 보시면 어떨까요.
산책으로 기분 전환 그리고 메모라는 임효경 작가의 숲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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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
배리 로페즈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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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이제 나의 길이 있지만, 그가 그 길을 찾도록 도와 주었다. 우리가 글에서 기대하는 것이 늘 그런 역할이니, 어쩌면 나는 그가 그걸 해 주었다는 말을 하려고 이 글을 쓰는가 보다.

이 에세이들은 여러 방향으로 난 발자국들이고, 하나하나에 발자국보다 더 오래된 물질이 깊이 파묻혀 있다. 이 발자국이 닿는 데까지만 따라가기를 원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이 발자국 을 길잡이 삼아 스스로 땅과 언어의 관계를 더듬고 의미를 탐색해가는, 그렇게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 리베카 솔닛, 서문 중에서 -


배리 로페즈,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궁금해할 이들을 위해서는 어설피 제 말을 섞어 시작하기보다 명성 있는 작가가 전하는 서문을 그대로 옮기는 편이 이로울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깊고 커다란 느낌. 그럴 것만 같은 책이네요.

출간 즉시 아마존 1위, 뉴욕 타임스 선정 2022년 올해의 책 그리고 묵직한 추천사들까지. 흥미 이상의 글을 만나게 될 테니 이 글을 읽고 저자가 보여주는 길까지만 가던지, 더 나아가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던지는 우리의 몫인 듯 합니다. 자, 준비되었다면 지체 말고 출발해 보실까요.

/

자연과 장소, 인간과 풍경에 대한 탁월한 글쓰기로, “우리 시대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 “우리 시대 최고의 자연 작가” 등의 찬사를 받은 배리 로페즈의 마지막 에세이 모음집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이 책은 로페즈가 자기 죽음을 예감하며 편집했던 문학적 유산으로, 그가 세상을 떠난 뒤인 2022년에 미국에서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책에는 여행 중 마주한 다양한 풍광에 대한 경이로운 기록을 비롯해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에 대한 담담한 회고록과 부서져 가는 세상에 보내는 간곡한 전언 등 에세이라는 장르로 아우를 수 있는 스물여섯 편의 글이 유려하게 편집되어 실려 있는데요.

특히 성적 학대를 겪은 어린 시절 회고록 부분은 읽는 내내 참담한 심정을 느끼게 했습니다.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펼친 이유는 아마도 그것은 개인의 문제라는 범주에서 끝낼 것이 아니기에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로 여기도록 함이 아니었을까요. 도움받을 곳이 없었고 피할 곳이 없었지만, 저자는 그 시간 역시 자연에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치유보다 숲과 평원, 사막을 걸으며 자연의 치유로 향한 그의 걸음입니다. 그러니 더 따라가 보기로 합니다.

‘힘의 열네 가지 양상’(226~242)을 읽을 땐 다른 페이지에 비해 크게 재미를 느꼈습니다. 이런 비유라면 이해하기가 쉬우려나요. 옴니버스 구성으로 연출된 열네 가지 단막극을 연이어 보는 겁니다. 조명이 켜지며 시작된 이야기는 진중하게 전달되다가 예상치 못한 장면을 보여 주며 페이드 아웃. 관객은 이게 무슨 상황(뜻)인지 따져 보아야 합니다. 나만 모르거나 찝찝하게 넘어가는 건 싫을 테니까 말이죠. 때론 웃음이 나기도 하고 때론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이 이 연극 괜찮다 하려는 순간 다시 페이드 인. 연관성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어.. 음.. 오.. 하게 만드는 열네 가지 짧은 글. 인상 깊게 남았습니다.

‘남반구 항해’(256~282)에서는 때론 웅장하고 때론 난폭한 자연 앞에 서 있는 인간이 전하는 여정의 서사와 보고 느낀 바가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여행 기록문 같은 느낌인 거죠. 후반부로 갈수록 대자연에 머물던 시선은 시대와 사회를 논하는가 싶더니 ‘어쩌면 저 아이가 있어서 그동안 줄곧 나는 두렵지 않았나 보다.’라는 식으로 마지막엔 인간에게 멈춥니다. 아주 높은 곳에서 훤히 내려다보는 듯한 저자의 시야가 부럽습니다. 그 후에 나오는 문장들은 어찌 부럽지 않겠습니까.

뉴욕과 캘리포니아에서 보낸 감동적이고 때때로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 이야기, 육지 동물과 해양 생물을 연구하기 위해 떠났던 탐험의 후기, 남극을 비롯해 지구상의 여러 특별한 장소를 찾아갔던 여행에 대한 추억, 광활하고 극적인 풍경 속에서 자신을 돌이켜보았던 명상의 시간 등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는 읽을 거리가 참 풍부한 글입니다. 직접 걷고 오르고 건너고 부딪쳐 만나 자연과 나눈 교감은 그의 고민으로 남겨지거나 혹은 여행의 묘사와 문학적인 문장으로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전하는 메시지는 느리게 가는 이 겨울, 읽어 내기에 참 좋은 책인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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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 도시소설가, 농부과학자를 만나다
김탁환 지음 / 해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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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더라도 샘이 날만큼의 하늘빛이다. 더군다나 혼자 여행이라니. 이 좋은 날 맘에 둔 곳을 가는 이가 몇이나 될까. 고속도로를 달리며 굳이 한눈을 팔지 않아도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은 풍부한 신록이다. 때마침 큰 덩어리로 몰려드는 흰 구름은 여행길을 더 풍요롭게 하고.

국도로 빠지면서 속도를 줄인다. 급한 것 없는 길을 달리는 데 방해하는 이도 없다. 예상은 했지만, 그 이상으로 한적하다. 4차선 도로는 내 작은 애마를 위해 닦아 놓은 듯 잘 뻗어 있고 양 길가에 이름 모를 꽃나무는 저 스스로 빛을 내는 듯하다. 낯선 방문객의 눈길에 더 흐드러진 모습으로.

남부럽지 않은 운전 실력으로 먼 길도 혼자 나서는 나지만 내게도 약점은 있었다. 길을 잘 못 찾는다는 거. 그런 이유로 친절한 내비녀는 내 여행에 뺄 수 없는 동행자다. 한 번씩 날 골탕 먹일 때는 땀을 좀 흘려야 하지만 대부분은 정확한 안내를 하니 오늘도 믿고 출발했다. 목적지를 불과 몇백 미터 앞둔 상황에서 우회전하란다. 다 온 길이니 거스를 이유가 없다. 잘 뻗은 도로를 놔두고 좁은 길이 나온다. 혹시나 했지만, 목적지까지 거리가 줄어들고 있으니 믿었다. 더군다나 시골 마을 책방이니 좁은 길이 당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작은 논길이다. 다행히 작은 차를 탔으니 통과할 만한 길이다. 웃음이 터졌다. 그럼 그렇지! 이 내비녀 오늘도 내 여행이 부러웠나 보군! 다 와서 엉뚱한 길을 알려 주다니. 결국엔 내 실수지만 탓을 할 그녀가 있어 웃어넘긴다. 논과 논 사이 좁은 길에 차를 멈췄다. 오! 멋지다! 그림엽서나 서정적인 영화의 한 장면에서 나올 법한 풍경이다. 쭉 뻗은 논길. (내가 달리던 길보다 훨씬 넓다) 양옆으로 벼 이삭이 가벼운 바람에 흔들린다. 하늘은 여전히 파랗고 아까 본 구름과 다른 덩어리의 구름이 유유히 지나고 있다. 보통은 사진으로 남기는 게 버릇이지만 이번엔 눈으로 먼저 충분히 담는다. 잘못 들어선 길이지만 충분히 아름다움을 보여준 여행길이다. 마음이 꽉 차게 부풀어 오른다. 사진 한 장을 남겼다.

그러고 보니 오른편에 건물이 있다. 내 목적지가 여기겠구나 싶다. 코 앞에 두고 헤매는 모습이라니 역시 나답다. 핸들을 돌리려는데 그 건물 앞에서 작은 손수레를 끌고 막 이동하려는 남자분이 보인다. 아마도 낯선 차가 헤매는 모양이 걱정스러우셨겠지. 낯선 이가 좁은 논길에서 뭐 하나 싶으셨겠지. 또다시 웃음이 터졌다. 남자분과 나만 아는 에피소드가 생긴 셈이다. 어디 가서 소문내진 않으시겠지. 앞으로 조금 이동하니 큰 길이 보인다. 다시 우회전만 하면 책방이다.

가끔은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고민스러운데 이렇게 넓은 마당(?) 주차장이라니 이것 또한 고민스럽다. 책방 주차장인지 다른 용도의 주차장인지 결국 전화를 걸어 고민스럽게 만든 주차장의 위치와 책방의 입구를 물었다. 미실란이란 식당과 같은 건물에서 운영하고 있어 주차장을 공용으로 사용한단다. 아무 곳에 주차해도 무방하며 마당을 지나 쭉 들어 오면 건물 중앙에 책방 입구가 있다고. 안내해 주신 대로 너른 터 한쪽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두 시간 반을 달려 온 길이니 굳은 몸엔 스트레칭이 필요했지만 눈은 이미 웃고 있다. 여행지의 첫발, 첫 시선, 첫 냄새 그리고 나머지 감각을 동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딱 이 시간이야말로 매번 혼자 여행을 종용하게 만드는 이유지. 핸드폰을 들어 파노라마를 찍는 대신 천천히 몸을 돌려 눈에 담기는 것을 모두 내 것으로 삼았다. 여행. 참 좋은 것.

책방으로 다시 태어난 폐교. 교무실 자리의 짙은 고동색의 나무 바닥을 보니 아직 쓸만한 것 같다. 초를 문질러 열심히도 걸레질했을 어린 손길들이 떠오른다. 더불어 내 어린 시절 기억까지. 허허허.. 기억은 잠시 뒤로 무르고 책방을 살핀다. 탐구한다. 구조와 구성을 눈에 담고 분위기와 온도를 느낀다. 적당한 때에 입에 맞는 책을 찾으면 더없이 행복할 테니까. 여행자로서 임무를 수행 중인데 책방지기님께서 먼저 말을 건다. 공간과 사람에 대한 깊은 (셀프) 탐구 대신 그녀와 나누는 대화 중에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익혔다. 정확도는 말할 것도 없지. 아..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이 몹시 탐이 난다. 여행지로, 책방으로, 무엇보다 이곳을 지키는 사람들이. 그러니 집어 들어야 할 책은 하나로 결정 났다. 김탁환,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

📖 65
살아가며 많은 것을 잃고 잊는다.
그렇지만 되살펴 기억할 능력이 우리에겐 있다.

: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농부 과학자 이동현(내가 책방을 코앞에 두고 논길을 헤맬 때 손수레를 밀고 가다 멈춘 이다)이다. <들녘의 마음> 책방 입장 전 복도에서 본 사진으로 생각하자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냥 인상 좋은 곡성 동네 농부 아저씨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는 곡성에서 발아현미를 연구하고 가공하는 농업회사법인 미실란을 15년째 이끌고 있는 기업가이자 미생물학 박사이며, 2019년 유엔식량기구 모범농민상을 받은 농부이다. 또한 동생물과 공존하는 생태계의 법칙과 인간다운 삶의 철학, 공동체에 흐르는 연대의 힘을 지키며 살아가며 (화려한 이력 뿐만 아니라) 순수한 고집으로 지킬 건 마땅히 지켜나가는 자기 모습을 충분히 어필하고 있다. 이렇게 삶의 겉과 속이 참된 농부 과학자 이동현을 통해 작가는 ‘아름다움은 화려한 겉모습이 아니라 지키는 태도’라는 걸 알아차림과 동시에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거기에 소설가 김탁환 작가의 폭넓은 이야기 소재들이 글을 풍성하게 만들어 읽는 재미를 더하고 곡성 지역의 색을 간간이 보여주는 문장들은 자못 여행 에세이같은 느낌마저 드니 이 책은 한 권으로 여러 분야를 만나게 하는 장점이 있다. 더불어 ‘치유 사진 작가’ 임종진 작가가 곡성과 미실란에서 찍은 사진은 깊어진 사고를 잠시 쉬었다 가게 만드는 편안함을 만들어 준다.

씨앗이 열매를 맺고 다시 씨앗으로 돌아오는 과정에 빗대어 두 사람이 지나온 삶의 궤적을 교차하며 담아낸 도시 소설가와 농부 과학자의 이야기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이 글을 마주한 이들은 우리가 지켜 나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공통적으로 자문하게 되겠지. 김탁환 작가의 통찰력으로 빚어낸 결이 다른 에세이. 참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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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기쁨의 이름들 - 매일을 채우는 52가지 행복
소피 블랙올 지음, 정회성 옮김 / 웅진주니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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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데콧상, 에즈라 잭 키츠 상,

『뉴욕 타임스』 최고의 그림책상 수상 작가 소피 블랙올

그녀가 발견한 삶을 기대하고 사랑하는 법



이 책의 그림과 글은 특별하지 않아요.아주 평범합니다. 흔히 보는 것들과

이미 누리고 있을 법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뿐이예요.

그런데 신기한 일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상하게 미소가 지어지면서

무언가 생각하게 만든다는 거예요.바로..

나의 매일을 채우고 있는 기쁨의 이름들이죠!


:


아직 딸의 방은 자고 있다. 알람 지정곡만 우렁차게 울리는데 듣고 있자니 익숙하다. 얼마 전 가족이 함께 본 방송에서 나온 신곡. 음원 수입은 전액 기부된다는 곡이다. 댄스곡이 저렇게 울려대는 데도 끄질 못하는 걸 보니 딸은 어제 밤에도 늦게 잔 모양이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 커튼을 걷고 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나즈막히 애칭을 부른다. 아직 꿈결일 테니 놀라지 않게, 좋은 꿈을 꾸고 있다면 방해 되지 않게. 눈은 뜨지 못하는데 알았다는 신호를 보낸다. 입꼬리에 걸린 작은 미소. 사춘기 딸과 하루의 시작이 좋다. 오른손을 머리에 얹고 아침 기도를 해 준다. 내 입가에 조금 더 커다란 미소를 담아서.

아들은 초등 고학년이 되고 딸은 중학생이 된 남매가 요청을 했다. 국, 밥, 반찬 몇 개 뿐인 아침 식탁이 부담스럽다고. 아.. 요즘 아이들에겐 그런가 보다. 엄마는 생각 끝에 밥심이라는 고집을 내려 놓기로 했다. 간단한 요기들을 찾아 아침 식탁에 올렸고 과일의 종류를 늘렸다. 식탁에 앉으며 “잘 먹겠습니다.”, 다 먹은 그릇을 들고 일어날 땐 “잘 먹었습니다.”를 전한다. 엄마의 애정을 알아 주는 아이들의 답가는 이걸로 충분하다. 아침 식사 시간이 줄어든만큼 등교를 준비하는 시간에 살짝 여유가 생겼다며 좋아하는 남매. 아침을 거르는 아이들이 많다는데 무엇이든 먹고 가니 엄마에겐 이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서로를 이해하고 위하는 모습. 우린 이렇게 또 배워 간다.

아이들을 보내고 흐트러진 침대를 정리한다. 설거지를 마치면 베란다 창문을 열고 청소기를 돌려야지. 그렇게 분주한 아침 루틴을 끝내고 나서야 주어지는 쉬는 시간. 커피를 내린다. 어제 아침엔 예가 체프였으니 오늘 아침엔 만델링으로 하자. 내가 준비하고 내가 누리는 오롯한 시간. 선물 받은 쿠키를 접시에 덜어 소파에 앉는다. 퍼지는 커피향만큼 깊어지는 고요함. 이 커피를 마시고 나면 책읽기에 참 좋은 시간이지.


병원 가는 여러 날 중,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만큼은 혼자 다녀 와도 충분한 길이다. 그런데도 함께 가야한다는 남편. 고집 부리지 말고 출근하라고 설득해 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너 혼자는 안 돼.”였다. 왜? 모르는 길도 아니고 운전을 못한는 것도 아닌데. 하루 전 날 다시 설득해 본다. 안 넘어간다. 장난끼 담긴 웃음 뒤로 남긴 말은, “너 좋아하는 떡볶이 같이 먹으러 가야지.” 별 것 아닌 말에도 감동받을 나이인가 보다. 잊지 않고 써주는 마음. 얼굴을 돌리고 소리없이 웃었다.


:


저자는 전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빠인 닉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삶이 송두리채 먹구름 속에 같은 기분이었어다고 해요. 하지만 늘 되새긴 의지를 기억했어요! 바로 짙은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더라도 지평선 어딘가에에는 밝은 곳이 있게 마련이라는 거요.

그녀는 어느 날 아침 샤워를 하다가 문득 하루 하루 살면서 기대할만한 것들을 목록으로 정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목록을 하나씩 기록하면서 그 가운데 꽤 많은 걸 곧바로 실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요. 기대한 일을 실행에 옮길 때 얻는 만족감은 기대하는 즐거움 못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중 몇 가지를 그림과 함께 SNS 올렸는데 예상보다 반응이 뜨거웠어요. 수많은 사람에게서 답장이 날아온 거예요.

작가의 물음에 저역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떠올려 보았어요. 생각보다 술술 나오더라고요. 적자 하면 글이 넘칠 것 같아 가족 관련 이야기로만 추려 끄적여 봤지만 이 외에도 때마다 잊지 않고 안부를 물어주는 지인의 문자나, 라디오에서 애정하는 곡이 나올 때 역시 별스럽지 않은 일이지만 꽤 미소 짓게 되더라고요.

이웃님들께는 어떤 기쁨의 이름들이 있을까요? 어쩌면 한참을 생각해야 떠오를 수도 있어요. 아직 모르겠다면 까짓것 하나 만들면 되지요! ㅎㅎㅎㅎ 어차피 살아내야 하는 일상, 커다란 한 방이 아니더라도 작은 기쁨으로 채워 사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혼자 보기 아까워 선물하고 싶은 책 <내가 아는 기쁨의 이름들>. 곧 올 2024년 우리의 매일에 우리만의 기쁨의 이름들을 새롭게 채워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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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나를 멈추게 한다면
장성남 지음 / 클래식북스(클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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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올 곳이 못 되는 곳들은 목적지를 신중히 예정하고 와야 할 일이다. 가려고 마음먹었던 곳을 지나치자니 어딘지 아쉽..이지만 맘이 동한 건 이유가 있을 거라며 토닥토닥. 더 좋든지 혹은 더 나쁘든지..

책방, <기억의 숲>. 낯선 배경에서 새로운 인물을 만났으니 이제 사건만 일어나면 된다. 내 여행의 이유. 걸음의 방향이 달라진 까닭.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 같아. 나를 멈추게 하는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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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솥에서 하얀 김이 오른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성이 잔뜩 난 할아버지의 귀밑머리를 닮은 것도 같다. 소녀는 혼자 생각에 웃음이 터졌다. 잠시 후면 할머니가 행주를 손에 들고 걸어가 한 다리를 부뚜막에 올려 세우고 거칠게 솥뚜껑을 열겠지. 뜨거운 김을 피하느라 잔뜩 찌푸린 미간이지만 쇠주걱으로 밥을 골고루 터는 모습은 매번 인상적이다. 그림책에서 본 여전사 같다는 생각에 또 웃음이 난다. 짧은 상상이 끝나기도 전에 할머니는 큰 솥에 가득하던 밥을 다 덜어내셨다.

지금이다! 제일 먼저 할머니 곁으로 가야 해. 밥을 털 때보다 더 힘을 들여 누룽지를 긁어내는 타이밍. 얼마나 잘 눌었는지,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고 일단 달려가는 소녀에게 할머니는 당신의 주먹만 한 크기로 만든 누룽지를 건네주셨다. 밥 한 그릇 안 나와도 좋으니 어린 것들을 위해 누룽지를 만드셨겠지. 아마도 할머니는 손자와 손녀들에게 같은 크기로 만들어 주셨을 테지만 먼저 달려가 “많이 주세요”를 외치면 더 크게 만들어 주실 것 같아 밥때가 되면 소녀는 부엌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세상 맛있는 간식을 기대하며.

남은 밥을 프라이팬에 올렸다. 주걱으로 얇게 펴 누르고 정성스럽게 가스레인지의 불 세기를 조절해 가며 눌려 만든 누룽지는 어째 그 맛을 낼 수가 없다. 알면서도 매번 같은 기억을 꺼내며 만드는 누룽지다. 할머니의 부엌에 관한 기억이 생생하다. 북적대는 시장에서 살던 소녀는 ‘놀이’를 찾아서 놀아야 했던 할머니 집에 가는 날이 마냥 즐거웠다. 할머니 부엌에서 꺼낼 이야기는 누룽지 말고도 많았으니까.

중학교 2학년이 되고 얼마나 지났을까. 할머니 댁으로 이사를 갈 거라고 한다. 어떻게 그런 시골집에 사냐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가마솥 누룽지를 즐기던 소녀는 사춘기가 시작될 만큼 자랐다. 다행히 이사 전에 할머니 집은 큰 성형을 거쳤다. 대문부터 어색해진 공간. 그중에서 제일 낯선 건 커다란 까만 솥이 있던 '부뚜막 부엌' 대신 싱크대가 놓이고 가스레인지가 자리잡은 '키친'이었다. 일찍 장사하러 나가는 엄마를 대신해 매일 같이 손맛을 보여주시는 할머니는 사춘기 소녀에게 귀인이었다. 어디 아침뿐이랴. 할머니는 때때로 손녀들이 원하는 간식을 당신의 솜씨대로 뚝딱 만들어 내셨다. 어느 주말 점심, 떡볶이를 먹고 싶다는 막내 손녀딸의 요청에 할머니는 프라이팬을 꺼내고 냉장고를 여닫으며 바삐 움직이시더니 깔깔거리며 보던 재방송 개그 프로가 반도 안 지났는데 그새 부르신다. 이게 뭐예요? 내가 알던 떡볶이가 아니다. 고추장소스를 묻혀 먹는 국물 떡복이가 아니다. 그러잖아도 까만 프라이팬 바닥인데 검붉은 소스로 끈적하게 눌어 붙은 떡들은 낯설기만 했다. 떡 위로 깨가 성글게 묻어 있는 걸 보니 나름 맛있게 보여 주고 싶었던 할머니의 마음이 읽혔다. 비주얼은 손대고 싶지 않았지만 매콤달콤하게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는 눈을 이기지 못했다. 역시..!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건 기름떡볶이란 걸.

가끔 들릴 때는 몰랐던 할머니와 엄마의 관계가 함께 살면서 조금 불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 준비를 할 때쯤 일을 마치고 들어오는 엄마. 할머니와 마주치는 시간은 그게 다였다. 하루에 얼마 안 되는 시간이지만 엄마와 할머니 사이에 대화가 썩 부드럽지 않다는 건 사춘기를 지나 성숙의 단계에 들어선 소녀도 알 만한 장면이다. 왜 다정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건지 엄마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었고, 왜 눈을 마주치지 않고 짧게 말하는 건지 할머니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물론 다른 이들에게 불똥 튈 일은 없었으니 이해되지 않은 두 여자 어른의 모습을 보는 채로 사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타지에 살면서 더 뜸하게 시골집을 찾았다. 가끔 안부 전화를 드리는 정도였지만 할머니는 언제나 다정했다. 특히나 매해 정월대보름을 앞두고는 잊지 않고 전화를 하셨다. 막내 손녀딸의 생일인데 오곡밥에 나물을 못 해줘 속상하시다고. 그런 기억이 많다. 할머니는 늘 손녀딸들을 사랑해 주셨다.

여느 날처럼 언니와 저녁을 먹고 믹스 커피 한 잔을 타 TV를 보고 있었다. 엄마에게 걸려 온 전화라며 언니는 방으로 들어간다. 한참을 통화하고 난 뒤 나오는 언니는 한숨부터 내쉰다. 엄마의 래퍼토리가 또 시작이라는 말과 함께. 나보다 세 살 많은 언니는 일찍부터 철이 든 이유로 엄마와 얘기를 자주 나눴다. 성인이 된 지금은 그 이야기의 양도 스토리도 다양해졌겠지. 그 중 매번 반복적인 이야기가 있단다. 내가 들은 엄마의 첫 시집살이. 애정 많던 할머니가 다른 사람으로 보인다. 기억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부모님을 보려면 시장으로 가면 되는 일이다. 굳이 할머니 집으로 갈 이유가 없다. 어느새 엄마의 시집살이 스토리는 내 기억에 레벨별로 쌓이며 할머니와의 거리를 점점 멀어지게 했고 어느새 나도 그 시월드를 이해할 나이가 되었다. 시댁과 작은 마찰이 있어 속상하던 터라 엄마를 찾은 김에 밀린 애기를 나눴다. 잘 들어주는 시늉을 하던 엄마는 그건 일도 아니라며 엄마의 이야기를 토해 내기 시작했다. 늘 들었던 얘기 같은 다른 이야기. 대체 엄마가 속에 쌓아 둔 얘기를 다 풀면 높이가 어디까지 될까.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 대신 우린 여자니까. 시댁이라는 공통의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새 엄마의 감정에 나도 동화가 돼버렸다. 내가 결혼한 나이보다 열 한 살이나 더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간 엄마에게 정없이 굴었던 할머니가 미웠다. 입밖으로 감정을 말해버렸다. 엄마는 여전히 아파하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나쁜 감정이 든 딸에게, 말이 거칠어지는 딸에게 엄마는 얘기하신다. “너희는 그럴 것 없다. 할머니는 너희한테 잘 하시니. 이건 엄마 일이다.”

감정 위에 이성을 얹는 엄마. 지독한 시집살이를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엄마의 성품이었다. 할머니의 사랑도 감사하고 자랑할 만한 일이지만 그런 엄마를 바라보고 자란 덕일까. 며느리로 살아갈 날이 창창한 딸에게는 이날의 기억은 모범 답안지가 되어 지금껏 적잖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본받고 싶은 엄마의 성정. 딸은 이 나이가 되어서야 조금씩 이해하고 닮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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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
어린 시절 기억쓰기는 세상 밖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자기 자신을 만나러 가는 내면 여행이다.

너무나 힘들었을 유년 시절부터 감당하기 버거웠을 두 번의 결혼, 평탄치 않은 가정생활까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리얼리티 자전적 에세이를 누가 용기만으로 감히 써낼 수 있을까. 장성남 작가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녀의 글을 읽고 남은 건 동정하는 마음이거나, 글의 결말에 대한 의심의 여지였겠지 싶다.

내가 만난 작가의 미소는 평온했다. 작은 체구에서 전해지는 온기. 낯선 이에게 보내는 미소는 꾸미지 않아도 자연스레 흐르는 어린아이의 순수를 닮은 듯했고.


📖 173
어린 시절 기억쓰기는 오랜 세월. 누구에게 말하지도 못하고 눈물조차 참아 왔던 내가 나에게 처음으로 건네는 위로였다. 어린 시절 엄마 품에서 마음껏 쏟지 못했던 눈물을 모두 쏟았다. 어린 내가 흘린 눈물을 어른이 된 내가 닦아주었다. 흐느끼며 들썩이는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햇살보다 더 포근한 손길은 마법 같았다. 무거운 어깨가 홀가분해지고, 텅 빈 마음이 조금씩 채워졌다. 마음의 성장이 멈춰버린 나에게 내가 건네는 최초의 악수였다.

<기억이 나를 멈추게 한다면>
그녀가 이렇게도 긴 이야기를 통해 보여 주고 싶었던 건 어린 시절 기억 쓰기로 마음의 풍경을 바꾼 자신이 아니었을까. 모양새가 조금씩 다르더라도 어딘가에 남은 쓰라린 생채기들을 가진 당신이라면 공감하고 나눌 준비가 되었을 거라며 기대하며.


📖 253
우리는 저마다의 어린 시절을 간직하고 있다. 기억 속에 어린 시절이 숨바꼭질하고 있다. 기억의 숲에서 술래잡기하고 있을 그 아이의 손을 꼭 잡아주고 싶다. 이제 당신이 어린 시절 기억쓰기를 시작할 차례다.

마음을 위한 셀프 테라피.
작은 시도가 필요한 당신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줄 책 여기.
<기억이 나를 멈추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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