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
배리 로페즈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내게는 이제 나의 길이 있지만, 그가 그 길을 찾도록 도와 주었다. 우리가 글에서 기대하는 것이 늘 그런 역할이니, 어쩌면 나는 그가 그걸 해 주었다는 말을 하려고 이 글을 쓰는가 보다.

이 에세이들은 여러 방향으로 난 발자국들이고, 하나하나에 발자국보다 더 오래된 물질이 깊이 파묻혀 있다. 이 발자국이 닿는 데까지만 따라가기를 원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이 발자국 을 길잡이 삼아 스스로 땅과 언어의 관계를 더듬고 의미를 탐색해가는, 그렇게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 리베카 솔닛, 서문 중에서 -


배리 로페즈,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궁금해할 이들을 위해서는 어설피 제 말을 섞어 시작하기보다 명성 있는 작가가 전하는 서문을 그대로 옮기는 편이 이로울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깊고 커다란 느낌. 그럴 것만 같은 책이네요.

출간 즉시 아마존 1위, 뉴욕 타임스 선정 2022년 올해의 책 그리고 묵직한 추천사들까지. 흥미 이상의 글을 만나게 될 테니 이 글을 읽고 저자가 보여주는 길까지만 가던지, 더 나아가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던지는 우리의 몫인 듯 합니다. 자, 준비되었다면 지체 말고 출발해 보실까요.

/

자연과 장소, 인간과 풍경에 대한 탁월한 글쓰기로, “우리 시대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 “우리 시대 최고의 자연 작가” 등의 찬사를 받은 배리 로페즈의 마지막 에세이 모음집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이 책은 로페즈가 자기 죽음을 예감하며 편집했던 문학적 유산으로, 그가 세상을 떠난 뒤인 2022년에 미국에서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책에는 여행 중 마주한 다양한 풍광에 대한 경이로운 기록을 비롯해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에 대한 담담한 회고록과 부서져 가는 세상에 보내는 간곡한 전언 등 에세이라는 장르로 아우를 수 있는 스물여섯 편의 글이 유려하게 편집되어 실려 있는데요.

특히 성적 학대를 겪은 어린 시절 회고록 부분은 읽는 내내 참담한 심정을 느끼게 했습니다.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펼친 이유는 아마도 그것은 개인의 문제라는 범주에서 끝낼 것이 아니기에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로 여기도록 함이 아니었을까요. 도움받을 곳이 없었고 피할 곳이 없었지만, 저자는 그 시간 역시 자연에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치유보다 숲과 평원, 사막을 걸으며 자연의 치유로 향한 그의 걸음입니다. 그러니 더 따라가 보기로 합니다.

‘힘의 열네 가지 양상’(226~242)을 읽을 땐 다른 페이지에 비해 크게 재미를 느꼈습니다. 이런 비유라면 이해하기가 쉬우려나요. 옴니버스 구성으로 연출된 열네 가지 단막극을 연이어 보는 겁니다. 조명이 켜지며 시작된 이야기는 진중하게 전달되다가 예상치 못한 장면을 보여 주며 페이드 아웃. 관객은 이게 무슨 상황(뜻)인지 따져 보아야 합니다. 나만 모르거나 찝찝하게 넘어가는 건 싫을 테니까 말이죠. 때론 웃음이 나기도 하고 때론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이 이 연극 괜찮다 하려는 순간 다시 페이드 인. 연관성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어.. 음.. 오.. 하게 만드는 열네 가지 짧은 글. 인상 깊게 남았습니다.

‘남반구 항해’(256~282)에서는 때론 웅장하고 때론 난폭한 자연 앞에 서 있는 인간이 전하는 여정의 서사와 보고 느낀 바가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여행 기록문 같은 느낌인 거죠. 후반부로 갈수록 대자연에 머물던 시선은 시대와 사회를 논하는가 싶더니 ‘어쩌면 저 아이가 있어서 그동안 줄곧 나는 두렵지 않았나 보다.’라는 식으로 마지막엔 인간에게 멈춥니다. 아주 높은 곳에서 훤히 내려다보는 듯한 저자의 시야가 부럽습니다. 그 후에 나오는 문장들은 어찌 부럽지 않겠습니까.

뉴욕과 캘리포니아에서 보낸 감동적이고 때때로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 이야기, 육지 동물과 해양 생물을 연구하기 위해 떠났던 탐험의 후기, 남극을 비롯해 지구상의 여러 특별한 장소를 찾아갔던 여행에 대한 추억, 광활하고 극적인 풍경 속에서 자신을 돌이켜보았던 명상의 시간 등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는 읽을 거리가 참 풍부한 글입니다. 직접 걷고 오르고 건너고 부딪쳐 만나 자연과 나눈 교감은 그의 고민으로 남겨지거나 혹은 여행의 묘사와 문학적인 문장으로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전하는 메시지는 느리게 가는 이 겨울, 읽어 내기에 참 좋은 책인 듯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