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 문학동네 시인선 37
김충규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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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신 연둣빛 시집을 만났다. 시인 김충규의 유고시집,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

 

 시집과 제목과 같은 시로 처음 그의 언어를 만났다. 전혀 나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그 시인의 시집을 펼쳐 보았을 때, 정말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허공 중에 끌어올린, 그의 세계 속에 푸욱 빠져 버렸다. 이상하게도 툭, 하고 눈물이 났다. 내가 열망하던 세계가 그곳에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거기서 헤어나오고 싶지가 않았다. 그의 언어가, 그가 만들어 놓은 세계가 좋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일관성 있게, 생과 사를 오가면서 그는 허공 중에 바람을 그리고, 사람을 그리고, 고래와 구름을, 숲과 물새를 그려내고 있었다.

 

 

허공에게 바치는 시를 쓰고 싶은 밤이다. 비어 있느 듯하나 가득한 허공을 위하여.

허공의 공허와 허공의 아우성과 허공의 피흘림과 허공의 광기와 허공의 침묵을 위하여......

그리하여 언젠가 내가 들어가 쉴 최소한의 공간이나마 허락받기 위하여......

소멸에 대해 생각해보는 밤이다. 소멸 이후에 대해. 그 이후의 이후에 대해......

구름이란 것, 허공이 내지른 한숨...... 그 한숨에 내 한숨을 보태는 밤이다.

 

                                                              2012.1.16. 밤 10시 25분

                                                                                  김충규

               

 내 속에 잠재해 있던 끓어오르는 열망이 그의 언어로 다시 되살아났다. 내 속에 갇혀 있던 언어가, 타인의 언어 속에서 새파랗게 살아 숨쉬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바로소 나는 내 삶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으로 부풀어 올랐다.

 

 시인이 발견한 가치와 의미. 그가 그것을 발견하기까지 무수한 어둠을 통과했을 것이고, 막막한 터널 속에서 길을 잃었을 것이고, 치열한 자기 내면과의 싸움, 처절한 고독과 마주했을 것이다. 슬픔, 절망, 외로움, 무의미와 고독, 허무 속에서 자주 괴로워했을 것이다.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는 그 무언가 때문에 끝나지 않은 밤속을 헤맸을 것이고, 허공 중에 할퀴어진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며 자신의 울음소리로 외로움을 달랬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낸 그의 시가 나를 위로해주었다. 내 마음을 환하게 만들어 주었다. 무의미를 의미로 바꾸었고, 허공 중에 쏟아낸 음악이 나를 웃게 했다.

 

 

울지 마 곧 밤이 와 밤이 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여

저 허공에 성곽을 지으러 올라가야지 허공만이 유일한 안식처

둥둥 허공으로 떠오르는 영혼들을 봐 지상에서 고당했던 영혼일수록 더 가볍게 둥둥

나비같이 투명한 영혼은 제트기같이 빠르게 허공으로 올라가

.

.

빛이 수줍게 내려와 시신들을 수습하는 지극히 한가롭고 평화로운 이 세상에

만약 허공이 없었다면 어찌 생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아, 하공이 없다는 상상만 해도 질식해버릴 것 같아

텅 비어 있어도 허공은 늘 만찬이야 영혼이 맑아 날개를 얻은 생명들이

.

.

허공에 오르기 위하여 행복한 사후(死後)를 위하여

너도 뛰지 않을래? 우리 같이 뛰자

                                                                                      -p.16,17 [허공의 만찬] 중에서

 

 

 그가 만들어 놓은 따뜻한 안식처인 허공에서 나는 따뜻한 숨결을 느낀다. 생을 견뎌낼 수 있게 하는 힘을 믿게 되었다. 만찬같은 허공 속에 그려진 그의 언어에 내 영혼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그래, 함께 함께 뛰고 싶다. 그것이 생이든 죽음이든, 그 중간이든 상관없이!

 

 

시간이 정지해 있을 수도 있는 숲으로 가요

어제도 내일도 없는 숲이 우리를 매혹시킬까요

다만 낙오자가 아직 나오지 않았어요 만족합니다

.

.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게 유일한 길이거든요

말할 수 없이 지겨우니까요 이곳, 우우......

 

                                                   _p.18,19 [말할 수 없이 지겨우니까요]

 

 

 

내일이 오지 말기를, 중얼거리는 밤이다 살아온 날의 흔적을 싹 긁어내었으면 하는 밤이다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고 이런 생각을 하는 지금 이 순간만 약간 허락되었으면 하는 밤이다

 

  -p.59, [내일이 오지 말기를, 중얼거리는 밤이다]

 

                    

 그가 만들어 놓은 숲엔 낙오자가 없다. 어제도, 오늘도 없다. 그리고 내일도. 그저 존재하는 곳. 그곳엔 모든 것들이 우리를 매혹시킬 것이다. 가끔 시간의 흐름이 우리를 어떤 곳으로 몰아넣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시간이 멈추는 순간 아니 그렇게 느끼는 순간 우리는 어떤 몰입을 경험하는 것 같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란 그런 것. 시간 따위는 없는, 어떤 구획도 없는. 너와 내가 그저 만나는 시간. 그 시간 속에는 지루함이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는 것이다.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고 이런 생각을 하는 지금 이 순간만 약간 허락되었으면 하는 밤, 이라고.

 

 

 

우리 모두는 자궁 속에서 죽은 태아같이 웅크리고만 있습니다

 

숨결이 간결해지려면 맑은 어둠을 더 많이 들이켜야 합니다

 

                                                          -p.33 ,[우리는 누구인가요?]

 

 

왜 내 곁에 있나요? 정, 말, 당, 신, 누, 구, 예, 요?

 

                                                        -p.57, [당신, 참 이상한 사람]

 

 

나는 누굴까. 당신은 누구지?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일까?

그저 이 밤, 허공 중에 떠도는 당신의 한숨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다.

내 곁에 있는 당신은, 왜 내 곁에 머물까.

나는 도무지 내 자신이 멀쩡한 것 같지가 않은데....

그런 당신은 나와 같은데....

 

 나는 당신이 되고, 당신은 내가 되는, 그렇게 잘 버무려진 우리가 되려면 맑은 어둠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빛을 숨겨둔 맑은 어둠. 어둠을 그렇게 들이키고 나면 좀더 깨끗하게 빛이 나겠지.

 

 

 

한번 얻은 육체는 바람도 사람도 어쩌지를 못하는 법

하여 서럽기도 하고 생이 두렵기도 하고

유리창에 미끄러지기도 하는 것

.

.

.

그저 세상이라는 유리벽에 반복적으로 미끄러지다

일생을 훌쩍 허비한 것에 불과할 테지만

앞을 가로막은 유리창을 원망할 필요는 없는 것

                                                       -p.24, [유리창과 바람과 사람]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 있다 지금이 그런 때

.

.

질서 없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영토이므로 먹구름은

몽롱한 동경이다 불안하므로 더 애틋한 불륜이다

.

.

먹구름이 비를 내리지 않아도 나는 이미 흥건히 젖어 있다

 

                                                                 _p.60, [먹구름을 위한]

 

 어떤 밤이었다. 모두가 사라진 것 같은 그런 밤이었다. 어둠이 몰려왔다. 나는 홀로 집을 지키고 있었다. 불을 꺼둔 채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침대 옆 창문 사이로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 꺼져갔다. 내 속에 뿌리박힌 어둠이 빛을 몰아내고 있었다. 땅 속으로 꺼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어떤 것도 나를 구원할 수 없고, 깊은 수렁 속으로 빠질 것만 같았다. 허공 중에 가볍게 날리는 먼지는 내 육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는 듯 풀썩 주저 않고 말았다. 그 밤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어떤 것도 내 슬픔을 견뎌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아침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고, 슬픔이 완전히 나를 지배했다. 그것은 생을 간단히 포기할 수도 있는 무섭고, 거대한 물결처럼 내게 다가왔다.

 

한번 얻은 육체는 바람도 사람도 어쩌지를 못하는 법/ 하여 서럽기도 하고 생이 두렵기도 하고/ 유리창에 미끄러지기도 하는 것/ 이 구절에서 나는 아주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 아마 그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먹구름처럼 이미 젖어 언제든 무너져 내릴 수 있지만 질서없이 흐트려져도 좋을 그런 밤이다. 그런 그런 밤. 누군가를 느끼는 밤.

 

 

 

느닷없는, 꽃의 붉은 울음

창밖에 수북수북

언어로 무언가를 완성하느라 밤새 끙끙거렸다

가녀린 펜으로

붉은 울음을 듣고도 앉아 있다면 참 아득해지는 일이어서

슬그머니 일어나 창을 열었다

지붕에서 어둠의 유약을 제 몸에 바르던 고양이가 멈칫

내 쪽을 돌아본다 무심히...... 물끄러미......

허공의 유전에서 솟구치는 흐릿한 빛의 원유(原油)

사방으로 튀는 소리

끝없이...... 꽃 없이......

참으로 오랫동안

고갈을 모르고 언어를 주물렀지

아니, 정작 내가 원했던 건

꽃의 붉은 울음을 술잔에 모아

고양이와 나란히 지붕에 앉아 나눠 마시고 싶었지

서로 붉게 붉게 취하고 싶었지

내 속은 원유(原油)를 다 생산해버린 텅 빈 유전 같아, 후훗-

이봐, 내 등에도 어둠의 유약을 좀 발라주겠니?

 

                                                         -p.86, [참으로 오랫동안] 전문

 

 제일 마음에 들었던 시다. 이 시를 읽으니 왠지 시인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가 만들어 놓은 세계를 엿보는 기분이었다. 어느 새벽, 붉은 눈으로 창을 열어 바라본 세상. 어둠 속을 가로지르는 고양이 한 마리. 더 맑아지고 싶었던 영혼에 빛으로 가득찬 어둠의 유약을 바르고 싶었던 시인 김충규. 그는 빛으로 만든 어둠이었고, 생과 사를 오가는 허공을 떠도는 영혼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허공 중에 내지른 한숨, 그 한숨으로 만들어낸 구름, 풍성한 여인과 같은 안개, 바다 위를 날으는 물새이자 어둠 속을 유유히 걸어가는 고양이었다. 살아있는 동안 써내려간 그의 시는 생과 사가 다르지 않은 그 무엇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가 뿌려놓은 시들에 둘러싸여 그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낀다. 생은, 그렇게 누군가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빛이 나는 것이라는 걸 알기에.

 

 

  

라일락 향이 번지면, 바람이 불면 나는 또 그의 시집을 펼쳐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뚜벅뚜벅 세상 속으로 걸어갈 것이다. 벚꽃비가 내리던 어느 날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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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금이... 어떤 맛이라고 생각하나?”
“소금은, 모든 맛을 다 갖고 있다네.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단 것 신것에 소금을 치면 더 달고 더 시어져.”
“소금은 말이야, 소금은, 인생의 맛일세.”

                                            - 책 속에서

 

박범신의 신간이 나왔다. 모든 음식에서,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맛, 그 오묘한 맛, 소금. 제목만으로도 이끌린다. 요즘 늘 마시는 커피에 소금을 타서 먹는다. 소금은 홀로 존재하면 짠맛이지만 커피에 넣으면 더 달아진다. 참 신기하다.

 

박범신은 이 소설에서 가족과의 화해가 아닌 아버지의 가출을 보여준다고 한다. 정도에서 비껴나간 그의 가족 이야기가 궁금하다.

 

 

 

 

삶은 고통이라고 정의하는, 섣불리 희망을 말하지 않는 그녀의 작품이 궁금해진다. 8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최은미의 소설집.

 

봄날의 나른함과 닮은 표지.

그 속엔 어떤 아름다운 꿈들로 가득할지 궁금하다.

 

 

 

 

 

 

 

 

 

 

밀란 쿤데라의 책은 인생의 철학서 같다. 그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어떤 이야기든지 생각을 하며 자주 멈추게 된다. 그러면서 내 마음의키도 조금씩 자라나는 느낌이 든다.

 

또 나의 생각을 어디까지 자라나게 할지 궁금하다.

한줄의 이야기, 한줄의 생각. 그것들이 합쳐지면 그의 철학이 완성되는 듯하다.

 

 

 

 

 

 

 

 

모든 것들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잔인한 4월. 

더 화사하게, 더 행복하게 책 읽으며 모든 아픔과 슬픔을 이겨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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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묘지 1,2]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프라하의 묘지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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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트 에코, 라는 작가는 이름만 들어봤지 작품으로 만나본 적이 없다. 여기저기서 에코의 팬을 만난 적은 있다. 잠깐씩 좋은 문장들을 추려 놓은 것들을 봤을 때,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글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움베르토 에코가 내게로 왔다. 역사적 배경 지식이 전혀 없는 나에게 도전장을 건네듯이 내게 온 것이다.
 
처음에 몇 장을 읽고는 몇 번인가를 졸다 깨다를 반복했다. 주인공인 시모네 시모니니가 등장해서는 이 사람은 이래서 싫고, 저 사람은 이래서 싫고 하는데, 진짜 프랑스인이 이런가 싶고(내가 워낙 귀가 얇은 편이다. ) 유대인은 왜이렇게 싫어하는가 싶고, 모든 게 궁금증 투성이었다. 그의 증오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흘러나오는 걸까, 하는 점이 궁금했다. 아무리 가정사를 따지고 들더라도 그 궁금증은 끝내 풀리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자신의 현 상황을 재치있게 잘 파악하고,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니며 자신에게 유리하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죽음도 가볍게 여기는 파렴치한 인간으로 나온다. 비리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그럴 듯하게 보여야 하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궁지로 모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런 그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음식이다. 음식만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다면 그 어떤 고통도 참을 수 있다는 식이다. 과연 그가 먹는 것을 묘사하고, 늘어 놓을 때면 나도 모르게 군침을 삼키고 있다. 멋진 레스토랑에 앉아 그와 함께 고기를 썰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아무리 고약한 인간이라도 사랑스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에 있어서는 바라보는 이도 나쁘게만 볼 수는 없는 법이다.
 
시모네 시모니니는 1830년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난 그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과거를 하나하나 떠올리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하루하루 지나감에 따라 할아버지의 유산을 가로챘다고 의심되는 공증인을 함정에 빠뜨리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망설이지 않고 실행해 온 추악한 삶이 하나씩 재구성된다. 가리발디의 의용군인 척 시칠리아 원정에 가담하여 공작을 하고, 프랑스로 옮겨 가서는 드레퓌스 사건의 문서를 위조하고, 탁실이란 희대의 사기꾼을 뒤에서 조종하는 등 정세에 따라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입장을 바꾸며 거짓과 음모들을 날조해 내온 시모니니.그를 보면 날조와 위조의 탁월한 재주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만든다. 그게 아무리 좋지 못한 재주라하더라도 그의 재주에 감탄을 하게 된다.
 
 
19세기 유럽 역사의 굵은 획을 그은 여러 사건들,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에 시모네 시모니니가 항상 가담하고 있었다. 직, 간접적으로. 단지 이 사람이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 빼고는 모든 게 척척 놀랍도록 들어맞는다. 그것은 꼭 이 사람이 아니라도, 어느 시대에나 조작하는 인물이, 중간 인물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실을 캐내려는 사람 위에, 진실을 조작하는 사람, 진실을 조작하도록 시키는 사람,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보이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득시글거리면 뭐가 뭔지 사람은 알 수 없게 돼버리고, 결국엔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 도대체 진실이라는 게 있긴 있는 건지. 있다면 왜 결국 밝혀지지 않는 것인지. 이미 조작되어, 진실로 믿고 있는 사건들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리 모든 게 혼란스럽기만 하다.
 
 
어쨌든 내겐 꽤나 어려운 소설이었지만 큰 맥락을 잡는 데는 성공한 듯 싶다. 에코가 역사적 사실을 이렇게 공을 들여 조합을 하고 배치를 하며 사건들을 짚어나가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 분명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있어서 일거다. 그건 바로 역사적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내면을 꿰뚫어 보는 힘을 기르라는 것이 아닐까. 지금도 누군가는 뭔가를 위조하거나 조작하기 위해 우리를 다른 곳으로 관심 쏠리게 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모든 정치적 조작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큰 사건을 다른 큰 사건으로 막는 형식. 눈에 보이는 진실 안에 팔딱거리고 있는 진짜 현실이 무엇인지를 한 번쯤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그의 책을 통해. 어렵지만 도전의식이 불끈 솟는 그런 소설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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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연기하라]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끝까지 연기하라
로버트 고다드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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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에 책을 받았을 때, 표지에 있는 덥수룩한 수염에 강한 눈빛의 남자가 뭔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봤을 때 조금 섬뜩했고, 두꺼운 두께에 놀랐다. 하지만 한 번 잡으면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고, 흡인력 있는 소설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어지는 사건들은 마치 내 숨통을 조여오는 것처럼 긴박하고 처절하다. 주인공을 따라 허덕이며 마지막까지 왔을 때는, 정말 이젠 끝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몰입력이 대단한 소설이었다.  

 

 

토비라는 한물 간 연극배우가 등장한다. 그에겐 사랑하는 아내 제니가 있다. 아니 지금은 옆에 없지만 아직 이혼 수속이 끝나지 않은 제니가 다른 곳에 살고 있다. 그들에겐 피터라는 아이가 있었지만 세상의 빛을 본지 4년 6개월 만에 하늘 나라로 가버렸다. 그때부터 그들은 서로를 탓하며 결국엔 함께 살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가끔은 모든 일이 그렇게 꼬여 풀 수 없는 매듭이 되어 버리고 만다. 제니에겐 이미 로저라는 남자가 있고, 그들은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토비는 그저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워 하며 퇴물이 된 자신의 배우 인생을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

 

사건의 발생은 토비가 아내가 살고 있는 '브라이턴'에 순회 공연을 가면서 시작된다. 그저 아내가 사는 곳이라 반가웠을 뿐인데, 아내가 의논할 일이 있어 그를 불러내고, 아내의 주위를 맴도는 한 사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내도 돕고, 아내도 보고, 아내의 마음도 돌리고! 일석삼조라 생각한 그는 적극 아내를 돕기로 한다. 하지만 그 사내와 로저와 얽힌 사연들이 토니의 삶까지 파고 들어와 그를 위협하기 시작한다. 공연에 빠지게 되고, 살인 사건에 휘말리고, 빠져 나올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들게 되는 토비. 끊임없이 나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만든다.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 이별을 선택할 것인가. 죽음인가, 삶인가 하는 거창한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사소한 물건들까지도 무수히 많은 선택들을 하며 살아간다. 그 선택들이 쌓여가면서 우리들의 일부를 만들어 나간다. 그 선택들이 자신의 가치이고, 자신의 존재로 증명되는 것이다. 토비는 아내를 사랑한 순간부터 자신이 궁지에 몰린 막바지까지 단 한 순간도 하나의 가치를 놓지 않았다. 바로 '사랑'이라는 자신이 가진 가치였다. 그래서 모든 선택은 그 사랑이 중심이 되어 돌아갔다.

 

 

제목이 '끝까지 연기하라'라는 점도 있었고, 주인공이 토비가 연극배우라는 점에서 나는 몇 장 읽지 않았을 때, 이 책의 내용이 어떠한 순간에도 연극배우임을 잊지 않는, 연기에 대한 애착이 강한 한 남자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연극을 하여 성공을 거두는 이야기가 아닐까 예상했었다. 하지만 몇 장 지나지 않아, 그는 이상한 예감에 휩싸여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 약속 때문에 공연에 막무가내로 빠진다. 연극 공연에 대한 어떤 사명감은 없어보여서 조금 의아했다. 하지만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제목이 말하는 '연기'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것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연기가 아니라 자신의 삶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연기를 의미했다.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끝까지 연기하는 것. 비단 토비의 이야기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오가며, 비리와 배반이 오가면서도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다른 캐릭터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모두가 각자의 삶의 무대에서 자신이 가진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때론 긴박하게, 때론 전전긍긍하며 우리를 따라오라고 손짓했던 이 소설의 메시지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그 마지막은 어떤 긍정의 흔적을 남기고 끝이 나서 기분좋은 여운으로 기억될 것 같다. 나 또한 내게 주어진 삶의 무대에서 끝까지 연기하는 존재가 되리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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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은 설레는 달이다.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날.

따뜻해지지 않아도, 봄의 기운을 느끼는 달.

그래서 흩날리는 벚꽃처럼 주저없이 흔들리는 내 마음을 사랑하게 되는 달이다.

이런 봄날이면 으레 책을 멀리하게 되지만, 이럴 수록 더욱 책 속에 파묻혀

다른 모든 흔들리는 것들을 막아버리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기대되는 신간을 살펴 보아야겠다. ^^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집.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을 섬세하게 그려놓았다는데...

어떤 것들로 나를 섬뜩하게 할지 궁금하다.

 

작년에 만나본 '화차'의 여운은 오래갔다.

한 여자가 저지른 모든 행동이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를.

어떠한 사건 하나가 한 여자의 인생을 어떻게 송두리째 바꿨는지를.

자신의 존재를 벗어나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서글프면서도 섬뜩한, 섬세하면서도 날카로운 그녀의 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싶다.

 

 

 

 

 

 

추리소설은 거의 읽어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열광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랑과 범죄를 넘나드는 추리 소설.

환상과 현실을 아우리는 추리 소설.

이제는 만나 보고 싶다.

화형 법정이 그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다.

 

 

 

 

 

 

 

 

 

표지가 우선 내 마음을 이끄는 작품.

안보윤의 '모르는 척'

 

제목만 봐도 왠지 내용을 추측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눈 감아 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큰 폭력이 되어 왔는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듣고 알고 싶다.

알고 느끼고 싶다.

 

표지의 여성의 눈이 빨갛다.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은 것만 같다.

하지만 알아봐 달라고 호소하는 것만 같다. 단지 내 느낌일 뿐일까?

 

 

 

정찬의 '정결한 집'

담담하면서도 마음을 끄는 그의 문체를 사랑한다.

이번 작품집은 또 나에게 어떤 파문을 안겨줄지.

작년의 읽었던 '유랑자'처럼

어떤 방랑하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담은 것 같다.

단편들로 이루어진 그의 글을 만나보고 싶다.

 

 

 

 

 

 

 

 

 

온갖 상들을 다 휩쓴 정지아 작가의 소설집.

도대체 어떤 글이기에 궁금해져서 선택했다.

 

말끔한 표지도 산뜻한 봄빛과 닮았다.

3월과 무척 어울린다.

 

봄날엔 숲의 대화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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