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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줘서 고마워요 - 사랑PD가 만난 뜨거운 가슴으로 삶을 껴안은 사람들
유해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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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건네는 말, "살아줘서 고마워요"

 

 12월 이맘 때즈음이면 늘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분명 그때도 겨울이었을텐데 왜이리도 따뜻하게만 느껴지는지. 사람의 온기라는 것이 겨울이라는 시린 계절을 거슬러 따뜻한 봄으로도, 뜨거운 여름으로도 만들 수 있는 것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정신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마지막 날, 폐쇄병동 안 조그만한 책방에 열 사람이서 동그랗게 앉아 있었다. 처음으로 서로를 마주 보며 눈을 맞주치던 그때. 우리는 6개월 간의 시간을 정리하며 마지막 날을 기념하려고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양손 가득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로 서로에게 느꼈던 이야기들을 했다. 늘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던 사람이, 다른 세상 속으로 시선을 던지며 격렬히 기도 드리던 사람이, 필기를 하다가 노트를 죽죽 찢어버리며 화를 내던 사람이, 도저히 그 어떤 것도 하기 싫다며 뛰쳐나갔던 사람이 그토록 슬픈 눈으로 나의 마지막을 아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의 전율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날 난 이제까지 단 한 번도 그들과 교감한 적 없다고 여겼던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고, 비록 나와 다르게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에게도 나처럼 위안을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구든 그랬다. 살아있다는 건 뭔가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고, 그건 누구에게나 고마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날, 처음으로 그곳에서 함께 했던 6개월이란 시간이 고마웠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값지고 아름답게 여겨졌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속에서 아무것도 일궈낸 것이 없다고 여겼지만 나는 그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것을, 그것이 가장 큰 선물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그때 그 어떤 순간보다도 큰 위로와 위안을 받았고, 더 열심히, 더 가치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 나는 그 모든 것들은 금세 잊었고, 사람에 치이고, 세상에 치이며 누군가를 원망하고 불평하며 감사도 모른 채 그럭저럭 살아갔다.

 

 내 20대를 돌이켜보면 습관처럼 '죽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왜 그랬는지 무언가 늘 우울했고, 불안했고, 힘겨웠다. 무기력함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열등감이 날개처럼 내 등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나보다 힘든 사람들을 보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내 감정에 파묻혀 나보다 잘난 사람들을 보며 자주 나락으로 떨어졌다. 대단한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기도 했지만 내가 뭘 할 수 있겠냐며 금세 포기해버렸고, 이 시대를 사는 슬픈 자화상이 된것 마냥 우울한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기 일쑤였다.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느덧 나는 삼십대로 들어서 있었고, 결혼을 했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달에 이 책, 『살아줘서 고마워요』를 만났다.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내 마음을 뜨겁게 달구어줄 이야기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닫게 해줄 이야기들이 가득 담긴 바로 이 책, 『살아줘서 고마워요』.

 

 다큐 피디가 만난 뜨거운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띠지에는 여기저기서 주워 들은 적이 있는 방송 제목들이 눈이 띄었다. '안녕, 아빠', '풀빵 엄마', '너는 내 운명'.... 나는 사실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휴먼다큐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극한 상황에서 끝끝내 무언가를 해내는 모습, 가난하고 힘들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 아픈 사람 옆에서 평생을 병간호를 하면서도 여전히 사랑한다는 사람들. 나는 보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운명을 믿고, 위대한 사랑을 믿고, 사람의 진심을 믿는다고 자부해왔지만 깊은 내면에서는 그런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다 가식일 뿐이라고 치부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애써 외면해온 것들을 나는 한 자 한 자 더듬어 가듯 그들의 절절한 사연들을 읽어내려갔다. 나는 그 사연들을 결코 외면하지 못했고, 어쩌면 나에게도 일어날 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 툭, 하고 눈물이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수돗물처럼 콸콸 쏟아졌다. 살아있다는 것이 이토록 대단한 일이었던가. 그저 숨이 붙어 있어서, 목숨줄이 끊어지지 않아서 질질 끌려 오듯 살아왔던 내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 세상의 빛을 1초라도 더 보기 위해 아픔을 견뎌내는 사람들, 그것을 지켜보는 가족들, 몇 년간 병수발을 하면서도 그저 살아있어서 고맙다는 남편, 그것을 지켜보는 아내. 시리면서도 따뜻했고, 아프면서도 아름다웠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는 얼마간 마음을 쓸어내리고 나에게 수많은 질문을 했다. 죽을 병에 걸려 아픈 몸을 이끌고 나는 아이를 위해 마지막까지 풀빵을 구워낼 수 있을까. 서글픈 울음 대신 가슴으로 웃을 수 있을까.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는데, 그 사람이 아프다. 몇 년이 지나도 차도가 없다. 처음 가진 그 마음으로 지속되는 그 병고를 모질게 싸워낼 수 있을까. 계속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 사람 옆에 남을 수 있을까. 정의를 위해 내 모든 것들을 내려 놓고 한 가지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무시하고 내가 믿는 것들을 위해 끝까지 달려갈 수 있을까.

 

 때론 내 마음의 위안이 타인의 불행이나 슬픔으로부터 나온다는 걸 알게 될 때가 있다. 나는 그 사연들을 읽으며 한편으론 내 일이 아니라서 안도를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 일일수도 있다는 마음에 가슴이 아파왔다. 하지만 그 아픔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온기로 다가설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의 온도를 1도라도 높일 수 있는 거라면... 그것이 때론 살고 싶지 않는 내 삶에 커다란 희망이 될 수 있다면...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내 존재가 반짝이는 이유가 된다면.... 내 조그만한 손길이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지만 꾸준하고 질기게 노력하면 조금씩은 움직인다는 것을. p.223

 

그 아픔과 힘듦과 슬픔을 짊어지고 또다시 한걸음 나아가는 존재. 그것이 사람이다.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고, 어떤 상처에도 아파하지 않아 강한 것이 아니라

맥없이 흔들리고 끝없이 아파하면서도 살아냄을 멈추지 않기에 결국 강한 것이다. p.173

 

 다큐 피디로 살아가는 유해진 PD는 방송과 현실 사이, PD와 인간 사이에서 갈등하는 진솔한 모습에서 더욱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나 또한 경제학과를 다니면서 세상에 대한 변화를 꿈꿨던 시절이 있었다. 어쭙잖은 운동이랍시고 피켓을 들고 번화가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도로를 향해 '신자유주의 반대'를 외치곤 했었다. 무엇이 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그들의 대열에 끼어 그렇게 뭔가를 외치고 칼바람을 가로지르고 나면 스스로가 대단한 사람이 된냥 유쾌해지곤 했던 그 시절이 생각나 괜시리 부끄러워졌다. 스스로가 만들어난 잣대로 가치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분하면서 내가 생각한 영역에서 벗어난 것들은 무시하고 하찮게 여겼던 시간들. 가슴으로 느껴보지 못한 허위로 가득찬 지식들을 두 손에 움켜쥐고 나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포기했던 수많은 일들이 생각이 났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어떻게든 그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얼마간 무력해져 자본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면 죽음을 택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같은 시기를 지나오면서 유해진 PD와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유해진 PD는 치열한 고민의 결실로 다큐 피디가 되어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고,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애써왔다는 점이다. 그에 반해 나는 이리저리 흔들리며 고민의 결실을 맺지 못하고 휘청거리고 기웃거리다 길을 잃은 듯 여기 멈춰 서 있다는 것. 그런데 그가 퍼뜨린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 마음에 내려앉아 나를 뒤흔들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내가 지닌 가슴에게 자꾸만 묻게 된다. 너의 아름다움의 순도는 몇 퍼센트냐고. 누군가를 위해 뜨거운 가슴을 내어준 일이 있느냐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내게 진짜 모성애가 무엇인지 알게 해준 책, '아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내게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 책, 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미래와 희망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책임이 나에게도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책, 현실 속에서 가장 현실적인 고민을 껴안고 살면서도 아름다움을, 따뜻한 온기를 전해줘야할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 『살아줘서 고마워요』. 이 책은 내 마음의 빈 공간에 다가와 깊은 울림으로 퍼져나갔다.

 

 한 해를 마무리 하는 마지막 달, 12월이다. 오랜만에 코끝이 찡하도록 울었더니 개운해졌다. 늘 울보였던 나의 새해 소망은 한결같이 '울지 않기'였지만 이번 새해에는 더 많이 감동하고,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느껴보자고 다짐해본다. 그리고 나의 가족에게, 나의 친구에게, 나의 소중한 사람에게, 그리고 아직도 가끔은 헤매고 방황하는 나의 내면에게 뜨겁게 전하고 싶다.

           

                   "살아줘서 고마워요."

                                                              "당신이라서, 그저 당신이라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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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한해는 내게 선물 같은 한해였다. 유난히 책을 많이 읽기도 했고,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누리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책과 관련된 기분 좋은 소식들이 많이 들려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알라딘 신간평가단에 당첨된 일이다. 12월부터 새로 나온 책들 중에 관심이 가는 책들을 훑어보며 이야기하는 시간. 새로 나온 책을 설레는 마음으로 훑어보는 일 또한 축복이리라.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취향이라는 것만 알아 두시라!

 

 

 

장은진 작가의 두번째 소설집이 나왔다. '빈집을 두드리다'.

 

제목은 허전하고 외로운 느낌이 가득한데, 표지 그림은 왠지 모르게

그 텅빔이 따뜻하고 아늑하다. 장은진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었던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는 쉽게 읽히지만 여운이 길게 가는 소설이었다. 아마 이 소설집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여전히 고독 속에서 자신과의 사투를 벌이며 글을 쓰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떠오르는 듯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독과의 사투 속에서 발견된 생각이나 느낌들이 함께 하는 우리들에게 묘하게 힘이 되고, 용기를 준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누군가 나를 생각하고 궁금해한다는 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그게 증오든 미움이든.
나는 나를 찾는 사람에게 언제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이 내 페이지를 궁금해하듯 나 또한 그들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난 나와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 179쪽

 


 

 

 

2012년.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모옌의 작품 '열세 걸음'

그 이름만으로도 온 세상을 들썩이게 했던 그의 작품을 나는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번에 한 번 만나보려고 한다.

 

한 걸음부터 열세 걸음까지 차근차근 준비되어 있는 그 걸음을 따라 가면 어떤 이야기들을 내게 들려줄지 궁금해진다.

 

환상적인 느낌으로 민담, 역사, 현실을 잘 버무려 비극적인 모습을 잘 표출해낸다는 평을 받고 있는 그의 작품. 무척 기대된다!

 

 

 

 

 

“아주 오래된 아름다운 전설이 하나 있어요. 참새가 한 걸음씩 내딛는 것을 본 사람이 있었대요. 참새가 병아리처럼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걸 보면 하늘에서 행운이 뚝 떨어진대요. 참새가 한 걸음 내디디면 횡재수를 안겨주고, 두 걸음을 내디디면 관운을 안겨주고, 세 걸음을 내디디면 여복을 안겨주고, 네 걸음을 내디디면 건강운을 안겨주고, 다섯 걸음을 내디디면 기분이 늘 유쾌한 상태를 누리게 되고, 여섯 걸음을 내디디면 사업이 순조로워진대요. 일곱 걸음을 내디디면 지혜가 곱절로 늘어나고, 여덟 걸음을 내디디면 아내가 잘하고, 아홉 걸음을 내디디면 이름을 온 세상에 떨치게 되며, 열 걸음을 내디디면 생김새가 멋지게 바뀌고, 열한 걸음을 내디디면 아내가 아름다워지며, 열두 걸음을 내디디면 아내와 애인이 화목하게 어울려 자매처럼 친한 사이가 된다는 거죠. 하지만 절대로 열세번째 걸음을 보아선 안 된대요. 만일 참새가 열세번째 걸음을 내딛는 걸 보았다가는 앞서의 모든 행운이 죄다 곱절의 악운으로 바뀌어 당신 머리 위에 뚝 떨어져내린다지 뭐예요!” _ 552쪽

 

 

 

 

 

 

김형경 작가의 자전소설이었던 이 소설, 20년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출간이 되었다. 소설로도 명성을 얻었지만 심리에세이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김형경은 소설을 쓸 때조차도 어쩌면 자신의 '성장'을 위한 '치유', '고통'에 의한 '승화'를 위한 글쓰기를 했던 걸까. 열두살부터 서른 세살까지의 성장과정을 그린 이 소설. 여성인 나에게는 읽어내려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이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김형경 작가의 솔직함이, 담담하면서도 날카로운 그 글이 나는 좋다.

 

 

 

 

“언젠가, 지금 여기서 잃어버린 열쇠를 회한으로 떠올리는 날이 올지도 몰라. 그 열쇠로 열고 들어갈 수 있었던 방들에 대해 두고두고 미련을 갖게 될지도 몰라. 안타까운 상상 속에서 그 방은 점점 더 거대하고 화려하게 변하고, 그러면 일상은 늘 상대적으로 작고 초라하게 여겨질지도 몰라.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돼. 내가 꿈꾸어온 것이 이렇게 버려져 녹슨 열쇠가 되게 할 수는 없어.”

 

 

 

 

지난 책과 이번 책 사이의 긴 시간, 나는 약풀 되기를 감히 꿈꾸기는커녕 약풀이 절실히 필요한 영혼이었다. (……) 느릿느릿 몸을 일으키는 동안, 세상을 보는 내 눈에 덮였던 비늘 한 점이 또 떨어져나갔다. 언젠가는 이 시기에 스친 것들에 대해 쓸 수 있으려니, 그건 무엇보다도 큰 위로가 되었다._‘작가의 말’

 

작가의 말을 보고 이끌린 이 책. 너 없는 그 자리. 제목만으로도 아린 기분이다. 겨울과 딱 어울리는. 뭔가를 비워내기에 좋은, 아파하기에 적당한, 없는 무언가를 그리워하기에 알맞은 이 계절에 딱 어울리는 그런 소설집이 아닐까 싶다. 빠르게 빠르게 나아가는 이 세상 앞에 느리고 느리게, 그리고 사이 사이 틈새를 아는 이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고 싶은 12월이다.

 

 

당신, 잘 지내요?

사건사고가 차고 넘치는 요즘, 뉴스거리와는 (다행히) 상관없는 우리의 일상은 일견 무탈해 보인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이 지나가고, 또 내일도 다르지 않을 것임을 짐작하면서 우리는 잠이 든다. 하지만 바로 같은 순간에, 늘 같아 보이는, 평온해 보이는 그 일상과 함께 자라나는 불안과 상처의 자리 역시,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고개만 돌리면 환한 햇살인데, 그 한 발짝을 내딛지 못해 그늘에 갇혀 있어야 하는 날들이 있다.
_「그리고, 축제」中에서

 

 

 

11월의 마지막 날. 책들을 살펴보면서 미리 12월을 준비하는 느낌, 나쁘지 않다.

좋은 예감이 뒤따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첫 테이프를 끊었으니, 이제는 축제처럼 즐길 차례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이지만 나에겐 또다른 시작 같다.

 

2013년을 월요일부터가 아닌 일요일부터 시작하는 기분으로,

1월이 아닌12월부터 시작하고 싶다.

 

11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을 단단히 새겨 두며.

 

주목 신간을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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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 정진홍의 900킬로미터
정진홍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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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전, 나는 대단한 결심 하나를 가지고 무작정 짐을 꾸려 떠났다. 회사엔 사표를 내고, 살고 있는 집으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고는 부산토박이였던 나는 서울로 갔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더 특별한 내가 되겠다고 그렇게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왔다. 그 결심을 하는 데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지만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없이 떠나온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한 평짜리 고시원에 갇혀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 봤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창문도 없는 방 안에서 오로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가만히 누워 이제까지 살아온 내 인생에 대해, 내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결국 장이 꼬여 탈이 났고,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다가 얼마 간 나 자신을 놓아버린 듯 내내 잠만 잤다. 움직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먹는 것도 멈춘 채 그렇게 딱 일주일을 더 있다가 나는 다시 떠나온 자리로 돌아갔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웠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그렇게 제자리로, 원점으로 돌아갔다.

 

 문득 그 시절에 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 책을 만났다면 내 삶은 조금 달라졌을까, 하고 자문하게 된다.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한다' 제목만으로도 강하게 이끌렸던 책이 내 손으로 들어왔을 때 마치 운명 같았다. 그건 아직 가보지 않은 산티아고 길을 언젠가 나도 걷게 되리라는 예감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만난 책 속에서 나는 정진홍 작가와 함께 짐을 꾸렸다. 마치 그 분의 영을 따라가는 분신처럼 짐을 꾸리고 단단한 결심 한 토막을 가슴이 가득 담아 함께 길을 떠났다. 눈이 휘몰아치는 상황에서 잘못된 표지판을 보고 길을 헤맬 때에도, 홀로 있는 공간에서 바들바들 추위에 떨면서 자신과의 사투를 벌일 때에도, 나는 숨이 가빠졌고, 무언가가 벅차오르듯 숨을 몰아 쉬었다. 길 위에서 만난 동료가 사라진 곳에 덩그러니 동료의 수레만 놓여져 있을 때엔 고삐가 풀린 망아지마냥 멍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정진홍 작가가 걸어간 900킬로미터의 길속에서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치열한 삶의 의미를 발견했다.

 

 때로 우리가 가는 길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어쨌든 길을 정해 걸을 때에도 긴가민가 헷갈릴 때가 있고, 다시 돌아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며 갈등하게 될 때도 있다. 그런 순간에 정진홍 작가는 그 길이 맞든 틀리든 자신의 페이스 대로, 자신이 믿고 따르는 대로 일단 한 번 가보라고 말한다. 느리게 가든, 빠르게 가든 그것은 이미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생을 자신이 믿는대로 선택하며 사는 것이 진짜 삶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 페이스를 알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다. 느리면 어떠냐. 그것이 자기 걸음이라면 느린 것이 아니라 적당한 거다. 남들이 한 달에 걷는다는 길을 나는 두 달 걸려 걷는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서 나는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행복했다. p. 193

 

 진짜 삶- 그가 걷는 길 - 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공존한다. 별것 아닌 일로 분노하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하고, 터져나오듯이 울음이 쏟아지고, 누군가가 미워지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하며,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순간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변화라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달라지는 하루하루의 경험에서 솟아오르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진홍 작가는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토하듯이 눈물을 쏟아내고, 자신의 속에 있는 감정들을 표출하고 비워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게 낯선 공간에서 홀로 있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철저하게 외로워진 후에야 우리는 어쩌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모습을 알고 나면 그때서야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 할 수 있게 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나는 비로소 내 속에서 꿈틀거리는 뭔가를 발견했다. 험하고 거친 터널을 빠져 나온 것처럼 뭔가 명료해지고 선명해진 기분도 들었다. 그리고 내 귓속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한 문장이 있었다. 그건 바로 '인간은 결코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바로 이 문장이 내 속으로 들어와 내 가슴을 쿵쿵 쳐댔다. 그건 마치 소설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노인이 끝끝내 상어떼와의 사투에서 승리한 것처럼 그것은 패배를 패배시키는 힘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노인의 이름은 '산티아고'였고, 그 힘을 가르쳐 준 곳이 산티아고 길이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나 되기 위해 걷는 길이다. 느리게 홀로 고독하게 걷는 길이다. 걸을수록 비워지고 걸을수록 채워지는 묘한 길이다. p.143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경험한 모든 것들 중에서 결과가 좋지 못한 것이나 어떠한 길을 가다가 돌아가거나 포기하거나 멈춰섰던 모든 행위들을 내 인생에서 도려내고 싶었다. 지금의 나를 만드는 순간순간들이 모두 값진 것들인데, 좋지 못한 것들은 내것이 아닌냥 버려두고 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작정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왔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내 앞을 지나간다. 지금은 너무도 까마득해서 희미해지고 조금은 사라진 기억들이 조금씩 되살아난다. 만약 그 경험들이 없었다면 결코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멈춰섰다고 생각한 그때의 꿈들, 생각들. 어쩌면 지금도 현재진행중일지도 모른다. 잘못된 길이라고, 포기하며 아까운 시간을 낭비했다며 땅을 치고 후회했던 시절들조차도 어쩌면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의 중요한 시작이 아닐까 싶다.  3년 전보다 내가 얼마나 더 성장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3년 후의 나, 그러니까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나는 내 마지막 한 걸음을 스스로 걸어가기 위해, 스스로 선택해서 나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다할 것이라는 것. 그래서 결국엔 내 삶을 값지고 멋지게 살아내어 이겼노라고 그래서 행복했노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더 멀리, 더 높이 날기 위한 거대한 정지였던 산티아고 가는 길. 언젠가 걷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며, 더없이 성장해 있을 내 모습을 기대하며.

 

삶에서 최고의 매력은 끝까지 하는 것이다. 이기고 지는 것이 따로 없다. 끝까지 하면 모두 이기는 거다.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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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 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 문학동네 청소년 13
방미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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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 라는 부제를 지닌『괴담』책의 첫 표지는 욕망을 집어 삼켜버릴 태세를 갖춘 한 우울한 눈의 여자 아이가 왕관을 쓰고 있다. 그걸 올려다 보는 두려움에 가득한 한 소녀. 마치 그녀의 내면 같다. 그리고 뒷표지에는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 중 한 명의 입으로 사람이 빨려들어간다. 어지러운 빨간색으로 휘갈겨진 그림 속에는 뒤틀린 욕망의 색채와 혼돈이 담겨져 있는 듯 하다.

 

 학교 가는 길. 하나의 거대한 언덕이 나온다. 그 언덕을 올라 정점을 찍은 뒤, 내려오면 바로 학교가 나온다. 어느 날, 언덕배기 뒷산 연못에서 갑자기 자살한 한 아이. 그 주변에 돌고 도는 괴담.

 

ㅡ연못 위에서 형제가 사진을 찍으면 둘째가 사라진다.

ㅡ연못 위에서 일 등과 이 등이 사진을 찍으면 이 등이 사라진다.

ㅡ연못 위에서 첫 번째 아이와 두 번째 아이가 사진이 찍히면 두 번째 아이가 사라진다.(p.40)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것은 과연 행복한 일일까. 사람은 가치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기 때문에 가치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과연 적용될 수 있는 말인가를 이 책을 통해 곰곰 생각해 보게 되었다.

 

 경쟁사회. 누군가가 1등을 하면 반드시 누군가는 꼴등을 하게 되는 서열화된 사회다. 그렇게 우리는 명확하고 선명한 숫자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협동도 좋지만 좋은 말로 '선의의 경쟁'이 중요하다며 우리의 행동을 부추긴다. 서로가 자극제가 되어 더 높이 더 멀리 날아오를 수 있도록 끊임없이 몰아붙이는 것이다. 가만히 서 있거나 잠시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이, 사색이라도 할라치면 어느샌가 뒤처진 자기 자신을 한탄하게 만드는. 여유없는 사회. 그곳이 바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자신의 일그러진 욕망, 뒤틀린 집착이 다른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라지길 바랄 때, 그때 고개를 내미는 이 괴담. 실로 그것이 책밖의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아 나는 무섭고 두려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들의 차가운 시선과 냉정한 행동들이 오히려 아프게 다가오는 건 왜일까.

 

 같은 반 친구, 서인주의 자살. 기술적이진 않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혼의 목소리를 지닌 인주. 성악을 전공하는 친구들을 자극시키고 살아남으려고 기를 쓰는 경쟁자들의 마음에 화를 불러일으킨 인주. 남겨진 연두와 지연은 친구가 죽었다는 슬픔보다는 경쟁자 한 명이 사라졌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함께 했던 공간에서 아무렇지 않게 연습을 하며 또다른 경쟁을 벌여야만 하는 서글픔 속에서 각자의 뒤틀린 욕망만 커져갔다.

 

 많은 사람들의 박수갈채 속에서 화려하게 남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마지막의 남겨질 주인공인 자신만 중요한 지연과 연두.  타인의 시선없는, 홀로 남겨진 화려함은 과연 그들에게 행복이라는 걸 안겨주게 될까. 속이 비어버린 강정처럼, 태엽을 돌리면 춤을 추는 인형처럼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기계와 무엇이 다를까.

 

 마지막 장을 덮자 감수성이 최고조로 달했던, 예민하고 섬세했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위로받고 싶었고, 이해받고 싶었고, 공부보다는 더 소중한 것들을 나누고 싶었던 시간들. 입시라는 목표 아래, 같은 학급에 모여 있는 우리들은 친한 듯 웃고 있었지만 사실은 서로를 공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진짜 마음 속 얘기를 꺼내기 보다는 등수화된 친구들과 내 자신을 비교하기에 바빴다. 그래서 솔직하지 못했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시험 답안의 정답을 맞춰보며 틀린 개수만큼 상처 받고 있었던 거다.

 

 나도 그 속에서 아마 한 번쯤은 누군가 사라지길 간절히 바랐던 적이 있었을까. 공부를 썩 잘 하지 못했던 나도 질투와 시기는 대단했었다. 그런데 1등을 지켜야 했던, 학교라는 무대에서 꼭 주인공이 되어야 했던 이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학교를 졸업하고도 여전히 공부가 아닌 다른 것들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비교하며 누군가를 짓밟아야만 자신이 살아남는 형태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 푹푹찌는 여름밤, 이 아찔한 『괴담』

을 함께 읽으며 한 번도 꺼내어 보지 않았던 자신의 속내를 누군가와 나누어 보는 건 어떨까.또 모르지. 뒤쫓아가기에도 바쁜 이 세상에 뒷걸음 치고 있는 내 외롭고 지친 마음에 한 줄기 시원한 소나기가 되어 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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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눈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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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고해다. 이것은 삶의 진리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진리다. 그러나 이러한 평범한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 들일 때 삶은 더 이상 고해가 아니다.'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첫 문장에 나오는 글이다. 그렇다. 삶은 결코 달콤하고 행복한 것들로만 가득한 신세계가 아니다. 고통으로 가득차 있다. 그 고통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대처하는가에 따라 개개인은 각기 독특한 삶이 만들어진다.

 

 열 세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킬리만자로의 눈』을 다 읽었을 때, 내 머릿 속에 떠오른 단어는 고통, 죽음 그리고 빛. 이 세가지였다. 전쟁과 부상을 겪은 헤밍웨이가 느꼈을 죽음에 대한 의미는 남달랐을 것이다. 그 누구라도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전쟁'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평생 따라다니는 불쾌한 흔적이라고 여겨진다.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목격해야만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적이 되어 상처를 낼 수밖에 없는 환경. 몸에 남아 있는 상흔은 사라진다해도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평생을 가는 법이다. 어쩌면 그것을 견뎌내기 위해, 자신이 마주한 죽음과 싸우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헤밍웨이는 끊임없이 쓰고 또 썼는지도 모르겠다. 

 

 '닉' 이야기는 헤밍웨이의 자전적 느낌이 강해 그의 인생관을 느낄 수 있었다. 닉은 꽤나 심한 불면증이 있었는데, 불면증이 짙어지는 밤에는 온갖 소리들이 자신의 귀에 머물렀다. 빛이 없으면 잠을 못 자는 닉은 전쟁을 통해 이 세계는 통치하거나 아니면 통치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가지 못할 길') 때론 연인과 새로운 삶을 꿈꾸기도 했으나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갑작스레 이별이 들이닥치고,('어떤 일의 끝') 자신이 헤어짐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완전한 끝, 되돌릴 수 없는 끝이란 감정 앞에서 좌절하게 되지만 또다른 '가능성'을 마련해 두는 것! 닉의 삶에는 늘 그 가능성의 공간이 필요한 듯 보였다. ('사흘간의 바람') 어린 시절, 처음으로 생명이 잉태하는 것과 그 생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순간을 목격한 닉은 이른 아침 호수에서 결단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그렇게 보내버리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인디언 마을')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누워만 있는 올레를 바라보며 닉은 당장 마을을 떠나 자신이 원하는 걸 행동으로 실천하는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살인자들')

 

 『킬리만자로의 눈』은 조금씩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오고 있음을 느끼는 작가 '해리'가 아프리카에서 자신의 삶을 후회하며 되돌아본다. 그에겐 써야할 글들이, 쓰려고 모아둔 메모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쓰지 못할 터였고,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 연인과 잦은 말다툼을 한다. 무엇을 위해 그는 살아왔던가. 궁극적으로 자신이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뭔가를 원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그는 꿈 속에서 구조되어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진짜 자신이 원했던 그 곳, 눈 덮인 킬리만자로를 향해 간다. 뭔가를 찾아헤맸던 한 마리의 표범처럼 그도 그곳에서 환한 빛의 무언가를 발견한 듯 보였다. 그가 삶의 지향점이라고 믿었던 그것!

 

그는 뭘 두려워하는 걸까? 두려움이나 걱정은 아니었다. 그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허무였다. 모든 게 허무였고, 사람 또한 허무였다. 다만 그것뿐이었기에. 필요한 것은 오직 빛, 그리고 약간의 깨끗함과 질서뿐이었다. ('깨끗하고 불이 환한 곳' p.132 )

 

 머콤버도 어쩌면 죽음의 순간 그 환한 빛을 발견했을까. 사자가 두려워 도망쳤던 그 순간 자신의 삶은 다 망가져 버렸다고 여긴 머콤버. 아내가 자신을 바라본 그 경멸의 시선,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자괴감, 괜찮다고 다 끝난 일이라고 달래 보아도 쓰라리게 자리 잡고 있는 수치심. 그 모든 것들이 그를 짓눌렀다. 악몽에 시달리고, 동물들의 울음 소리에 시달리던 어느 날 아침. 머콤버는 자신의 모든 것들을 깨부수고 소를 향해 돌진하여 총을 쏜다. 그 순간 비이성적인 행복감을 느꼈고, 자신이 무척 용감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젠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는 머콤버는 물소를 향해 가고, 그의 뒷통수를 노린 아내에게 살해를 당한다. 아내의 배신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한 머콤버의 생은 과연 행복했을까. ('프랜시스 머콤버의 짧고 행복한 삶')

 

 

 약하고 소외된 자가 있는 곳, 고통을 호소하는 곳, 결과가 아닌 과정을 이야기 하는 곳. 바로 그 곳이 문학이 설 자리다. 그리고 내가 읽어 내려간 헤밍웨이의 글에서 유난히 그것이 잘 드러난다. 모든 문학적 성취가 이루어지고 난 뒤에 따라오는 찬사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헤밍웨이는 결국 실패하더라도 뭔가를 찾아 헤매는 과정을 치열하게 그려낸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이 고통과 마주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겪어내고, 새로운 환경을 해쳐나가며 자신이 필요한 곳에 손을 내밀고, 섬세한 감정을 어루만져 주는 헤밍웨이. 전쟁 상황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남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승리든 패배든 의미가 없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네 인생의 마지막은 끝까지 달려 봐야 알 수 있는 지점이다. 때론 거듭되는 실패 때문에 허무하고 우울하다고 해서 이 삶을 그 누가 실패라고 단정지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배워나갈 뿐인데 말이다. 한 때 죽지 않으리라 확신했던 꼬마는 살아가는 동안 그 확신의 뿌리가 자신의 삶의 욕구처럼 뒤틀리고 변해버려 자살로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지만 헤밍웨이의 문학적 감수성은 우리들의 힘겹고 지친 삶의 여정 속에 찬란하게 뿌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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