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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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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매운 음식을 먹으면 통증을 줄이기 위해 뇌에서 자연 진통제인 베타-엔도르핀(β-endorphin)이 분비되므로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사실 ‘왜’가 아니라 ‘어떻게’에 답하는 설명이다. (113쪽)
진통제인 베타-엔도르핀이 분비되도록 하는 메커니즘이 부상 등과 같은 상황을 위해 진화한 적응이며 이것이 매운 음식을 먹을 때에도 작동한다고 보는 부산물 가설을 옹호하는 사람에게는 위에서 소개한 설명이 ‘왜’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향신료가 음식물의 부패를 막아 주기 때문에 요리에 쓰인다는 가설이 맞다면 다음 예측이 도출된다. 인도나 브라질처럼 무더워서 음식물이 상하기 쉬운 지역의 전통 요리법이 핀란드처럼 추운 지역의 요리법보다 더 많은 종류의, 더 독한 향신료를 요구할 것이다. ……
셔먼과 빌링이 예측한 대로, 더운 나라에서는 요리 하나에 대해 더 많은 가짓수의 향신료가 사용되었다. (114쪽)
가설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두 가지 상당히 다른 가설이 있을 수 있다. 첫째, 향신료가 부패를 막는다는 의식적 지식 때문에 더운 지방에서 향신료를 많이 쓴다는 가설. 둘째, 기온 등에 따라 매운 맛을 내는 향신료에 대한 선호를 조절하는 메커니즘이 진화했다는 가설.
사냥-채집 사회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곳에서도 향신료를 부패 정도에 따라 다르게 쓰나? 그렇지 않다면 매운 맛 선호 조절 메커니즘이 진화했다는 가설은 설득력을 상당히 잃는다.
문제는 “별로 효율적이지 않은” 종교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모든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느 사회에서든지 신, 마귀, 천사, 귀신, 혼령, 도깨비, 조상신, 마녀, 요정 같은 초자연적 행위자(supernatural agent)에 의해 지배되는 반사실적 세계(counterfactual world)에 대한 믿음과 열정적인 헌신이 나타난다. (216쪽)
종교를 매우 넓게 정의하여 온갖 미신이 조금만 있어도 종교라고 본다면 모든 사회에 종교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종교 개념은 별로 쓸모가 없어 보인다.
한국인의 절반은 비종교인으로 분류된다. 이렇게 분류되는 사람들 중에 미신을 사실상 전혀 믿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종교가 행위가 탐지, 민간 심리, 동맹 심리 등의 여러 진화적 적응들에 딸린 부산물이라고 보는 관점은, 마찬가지로, 인간이 종교에 쉽게 빠져드는 동물임을 암시한다. 무신론을 지키기는 어렵고 종교에 귀의하기는 쉽다.
…… 인터넷 쇼핑몰의 배송비가 사라지지 않듯, 인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종교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220쪽)
한국 같은 나라에서 절반 정도가 비종교인이라는 점은 종교가 사라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필연적 부산물과 우발적 부산물을 나눌 필요가 있다. 뼈의 흰색은 필연적 부산물이며 양자 역학은 우발적 부산물이다. 인간의 뼈의 색이 다른 식으로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양자 역학은 소수만 이해한다. 피아노 연주나 자동자 운전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런 것이 있는 문화권에서만 배울 수 있으며 모든 사람이 배우는 것도 아니다.
요컨대, 어떤 현상이 부산물이라는 명제로부터 그 현상이 필연적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 없다. 따라서 종교가 여러 심리적 메커니즘의 부산물이라는 가설이 옳다 하더라도 종교가 필연적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 없다. 그런 결론을 이끌어내려면 종교가 필연적 부산물이라는 것을 우선 보여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