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소설가의 귓속말
이승우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렸을 때에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작가가 되고 싶었던 나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이 에세이에 눈길이 갔다. 이승우 작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소설은 소설가 자신을 파헤치는 일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사람에 대해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그래서 그럴까, 소설 속의 타자를 통해 나를 이해할 수 있었고, 타인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소설가들은 자기 자신을 소재로 삼아 글을 쓴다고 한다.


화상을 그리는 일이 소설을 쓰는 일과 닮아 있을까. 인물만으로 충분한 자화상은 그 사람 자신이면서 동시에 그의 내부를 반영한다. '그'의 내부에는 '그'가 너무 많기 때문에 자화상을 한 장만 그리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며, 여러 장의 자화상을 그려낼 필요가 있음을 말한다. 우리의 내부와 외부는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의 내부의 혼란은 외부의 혼란으로부터 비롯되어 있거나 (외부의 혼란을) 반영한다. 외부를 그리는 일은 결국 내부의 것들을 그려내는 것이며, 외부를 그리기 위해 외부를 살필 필요가 없음을 말한다. 한 장의 자화상을 그려내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외부의 것을 살피기보다 그의 내면을 찬찬히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내면을 그리는 일이 곧 외부를 그리는 일이며, 여기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구두 한 켤레' 작품이 나온다. 저자는 이 구두 한 켤레가 고흐의 또 다른 자화상이라고 말한다. 구두 한 켤레는 외부의 사물에 불과하나 그 사물에 그 자신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려질 필요가 있는 모든 사물들은 그 사람의 내면에 들어와 그 사람의 일부가 된, 그 사람의 삶에 관여하는, 주관적인 '그의' 사물들이라는 것이다. 그가 그린 구두 한 켤레는 고흐의 내부에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저자는 소설가에 대한 한 문장을 소개한다. 소설가란, 여러 편의 소설들을 통해 한 편의 자서전을 쓰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내면에 대해 정의하는 데, 외부와 같은 어떤 공간이기보다 세계에 대한 개인의 자의식이라는 것이다. 그리거나 쓰는 일은 내면을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표출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모든 그림, 모든 글이 자화상이고, 자서전일 수 있다라는 결론이다.


마도 저자에게 소설을 쓴다는 것이란, 자기 자신 또는 타인을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었을까. 자신 내면의 세계와 외부의 일들을 해석하는 일. 자기 자신을 파헤치고, 그것을 문장으로 표출해내는 일. 저자의 말이 저자의 뜻대로 받아들여질 것이란 확신이 없기에, 저자는 문장을 쓸 때에 이해받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고 한다. 독자의 주관적 관점과 저자의 의중의 차이를 좁히기 위함일까. 내면의 언어들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단어를 고르고, 그것을 표현해내기 위하여 문장을 썼다 지웠다 반복한다는 작가의 일이 고뇌스럽게 다가왔다.


군가의 손을 잡아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내게는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아준 기억들이 있다. 불안한 마음에 힘겨워하고 있을 때에,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주었고, 내가 진정되기까지 그 손을 놓치 않았다. 그것이 나는 큰 도움이 되었다. 여기에는 엔도 슈사쿠의 경험담이 나온다. 자신이 입원해 있었을 때에, 간호사에게 물어 보았다고 한다. 환자가 극심한 통증으로 괴로워 할 때에 어떻게 하느냐고. 간호사는 그저 곁에 앉아 환자의 손을 꼭 쥐고 있을 뿐이라 말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것만으로도 그 지독하던 통증이 조금씩 가시고, 웬만큼 견딜 만해진다고. 저자는 고통 가운데서 손을 뻗는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그는 왜 손을 뻗는가, 그것은 "도와달라"가 아니라 "아프다"이다. 저자는 글쓰기의 기원에 도사리고 있는 게 '아프다' 라고 말한다. 아픔은 표현될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은 손을 뻗는 동작이고, 그것이 저자에게는 소설을 쓰는 것이라고 한다.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가) 손을 내밀었을 때에, 누군가는 그런 문학으로부터 뜻밖의 치유를 경험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에게 절실한 것이 무엇일까. 또 우리 각자에게 절실한 마음이 있는가. 저자는 중요한 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절실한 것을 쓰며, 중요한가를 묻지 말고 절실한가를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절실한 것은 간절한 것이다. 간절한 것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한 상태'란 의미이다. 내가 관여된 것, 내가 관여된 어떤 것이 나 자신에게 절실한 것이다. 나 아닌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노라고 말하는 그는, 절실함으로 글을 쓰는 작가인 것 같다. 나를 말하는 것이 '너, 그, 그녀'를 말하는 것이며, 나를 잘 말하는 것이 '너, 그, 그녀'를 잘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완전하게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내 말과 글이 허우적거림인 것이라 말하는 그의 태도가 겸손하게 다가왔다. 아마 그 누구도 자기 자신에 대해 완벽히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제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절실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외부의 어떤 대상을 향하여 손을 뻗는다. 아픈 사람은 "아프다"라는 표현으로 손을 뻗을 수 밖에 없다. 나는 마음의 고통이 있을 때에 이를 해석하기 위하여, 그 고통에서 나아오기 위하여 책을 찾고, 글을 쓰고, 타인에게 손을 뻗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절실한 마음의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에 고통과 아픔이 없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 누구도 삶의 고통에서 자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생이라는 것이, 아픔을 동반한 채로 태어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절실한 자에게 손을 내밀고, 아픔을 가진 타인의 손을 잡는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문학의, 예술의 일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자신의 일일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쩌면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우리가 맺는 관계를 통해서 그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타인에게 손을 내밀며, 타인의 손을 잡아주는 것. 조심스레 나의 마음에 묻는다. 무엇이 절실한가. 우리는 손을 뻗는 동시에 손을 잡는다. 우리의 생의 본질이 어쩌면 이것에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에 온기가 돌았다. 끝으로, 가장 마음에 남았던 문장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진솔한 이야기를 찾고 있다면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아픔을 내장하지 않은 문학, 가지가지 욕망의 주문에 따라 기획되고 전시되는 문학이 시장을 휩쓸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 한쪽 구석에는 그러나 아직도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표현하기 위해 손을 내밀고, 내민 손의 간절함을 피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그 손을 잡는 문학이 쓰이고 읽히고 있다고 믿고 싶다. 가끔 뜻밖의 치유가 일어나는 곳이 그런 곳이라는 것도. - P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계를 넘어
커스티 애플바움 지음, 김아림 옮김 / 리듬문고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년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이 책은 우리 마음의 경계를 조명해 주는 것 같다. 잘 알지 못하는 대상을 향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판단과 편견을 바라볼 수 있게끔 해 주고, 그러한 판단과 편견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 책에서 나오는 매기와 우나는 서로 다른 경계에서 살고 있으며, 매기는 경계를 절대로 넘어선 안 된다고 배운다. 앤더슨 촌장이 아이들에게 방랑자들을 조심하라고 가르치며, 경계를 넘을 경우 위험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기와 우나는 페니스 윅 공동묘지에서 마주치게 되고, 도움이 필요했던 우나는 매기에게 항생제와 먹을 것을 부탁한다. 매기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나를 돕고, 이후에 우나를 따라 가선 안 된다고 하였던 경계를 넘어가게 된다. 앤더슨 촌장이 말했던 것과 다른 현실을 경계 밖에서 마주하게 되며, 위험에 처한 우나를 위하여 두려운 마음을 이겨내고 용기를 내게 된다. 끝내 이 책의 주인공인 매기는, 우나를 위기에서 구출해 내며, 전쟁을 보낸단 명목하에 팔려가게 된 첫째들을 구하게 된다. 그리고 마을에 진실을 말하며, 마을이 페니스 윅 마을 출신의 첫째들 모두를 구해올 수 있도록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는 '경계를 넘어'라는 책 제목이 흥미로웠다. 사람과 사람간의 경계, 내 삶 내부에 있는 것들과 외부에 있는 것들 사이의 경계, 그리고 내가 경험했던 것들과 경험하지 않은 것들. 나는 그러한 경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고, 내 삶에 어떤 것들은 불분명하게 느껴졌으며, 나는 이 책을 통하여 내 안에 있는 경계에 대해 알 수 있길 바라며 이 스토리를 읽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겪었던 것들에 대해선 쉽게 믿고, 겪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서는 불신한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해 있으며, 어떤 피드백들을 받으며 살아왔는지에 따라서 우리의 삶의 경계가 축소되기도 하고, 확대되기도 한다. 어떤 것들에 대해선 위험하다고 경고하며, 그것을 우리는 두려움이나 불안으로 자각하게 된다. 그것이 정말 두렵고 불안한 것인지 확인해 보지도 않고, 진실을 회피해 버리기도 하고, 겪지 않고서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할 때도 많다. 어떤 것들에 대해선 합리화할 것이고, 어떤 것들에 대해선 적당한 이유를 둘러대며 진실보다 거짓을 따라가기도 한다. 우리 삶에 있는 수많은 경계들, 우린 그 안에서 용기를 내야 할 때도 있을 것이고, 매기처럼 진실을 받아들이고 진실을 말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두려움을 직면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며, 매기와 같이 경계 밖으로 나가야 할 타이밍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내 안의 수많은 감정들과 생각들에 대해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국 타인과의 관계도 경계에 대한 것일 수 있다. 우리는 안전하다고 믿는 대상을 받아들이며, 그렇지 않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겐 경계를 더 날카롭게 세운다. 사람과 사람간의 심리적 거리는 멀어지기도 하고, 가까워지기도 하며, 닫혀 있기도 하고, 다시 열리기도 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흘려 보내기도 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손을 내밀기도 하며, 누군가의 필요를 모른 채 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미리 판단하여 오해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 오해 받기도 하며, 누군가를 신뢰하기도 하고, 다시 어떤 경험으로 인해 불신하기도 한다. 이런 수많은 경계들에 대해서, 또 우리 앞에 있는 수많은 선택들에 대해서 어떤 것이 지혜인지를 보도록 도와주는 것 같다. 내게는 이 책이, 나 자신의 내면에 대해 들여다볼 수 있는 역할을 해 주었다. 색안경을 벗게 해 주는, 두려움을 직면하게 해 주며,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브릿지처럼 다가왔다.

리 안에는 분명 많은 두려움의 문제가 있다. 그리고 때로는 선택의 문제가 두려움의 지배를 받기도 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내가 두려움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에 반응해야 하며, 나의 내면에 감춰진 진실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둘러싼 경계들을 어떻게 지각하는가? 우리는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나는 이 책을 통해 내 안의 경계에 대해 살펴 볼 수 있었고, 내 안의 감정과 생각들을 들여다 볼 용기가 생긴 것 같다. 청소년 뿐 아니라 어른들이 읽어도 참 좋을 소설이었다. 흡입력 있는 이 소설을 만나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의미 있는 스토리를 만나고 싶다면, 이 소설을 들어 보라고 말하고 싶다. 많은 여운이 남는 스토리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판타스틱한 세상의 개 같은 나의 일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노칼라 1
맥스 애플 외 지음, 리차드 포드 엮음, 강주헌.하윤숙 옮김 / 홍시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일이라는 공간과, 일이라는 것에 가장 많은 시간들을 투자한다. 우리의 삶이라고 불리는 것이 어쩌면 일의 연속이고, 또 다른 나자신을 알아가며 성장해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이런 일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기도 하고, 선택이라는 과정앞에서 머뭇거리기도 하다. 나는 이런 일에 대해 이 책이 어떠한 질문이나 답을 제시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일이 우리의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 얘기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이 책은 여러개의 단편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상황이나 배경은 약간의 생소함을 가져다준다. 이 책은 일을 기준으로 우리들의 일상을 그려냈다. 그래서 이 책이 일상에 대해, 일에 대해, 일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얘기해준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일이 마땅히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하는지를, 찾아가는 것은 독자의 몫이겠구나 싶었다.

한 단편이 끝날 때마다 문장이 하나씩 한 페이지에 단독출연을 한다. 나는 이 문장에 집중한다. 그리고 이 단편들을 바라본다. 나는 스토리가 아닌 문장에 집중하려 한다. "어디서 일하든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을 거에요."라는 문장이, 일하는 여자 단편 끝에 적혀 있다. 이 문장을 보았을 때, 내가 여기서 일하든 저기서 일하든 낯설음이 익숙함으로 변해가는 것은 마찬가지겠구나. 지금 일하는 것에 대해서 회의를 가질 필요성이 있을까. 어디든지 배우는게 있으니,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불안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걸까. 등등의 생각들. '사과의 세상'으로 넘어가보자. "시를 쓰는 것은 불완전하게 이해된 채 남아 있는 밑바닥 기억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모든 쓰는 행위가 그런 것, 아닐까. 완전한 이해로부터의 출발이 아니라, 불완전한 이해로부터 출발하는 것. 완전한 기억이 아니라, 밑바닥 기억으로부터 출발하는 것. 어쩌면 글이라는 것은, 우리 개개인의 거울이며, 때때로는 우리 자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 모든 글들이 삶과 죽음으로부터, 살아있음으로부터, 출발했다고 믿기에. 끝부분에 "마침내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 기분" 틀을 깨고, 자유를 자기자신에게 허용했기 때문일까. 자기자신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와 일은, 자아와 일은, 존재와 일은, 무슨 관계일까. 둘 다 실존과 실제에 속하는 거겠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존엄한 가치에 대해 글을 썼다고 한다. 그가 자기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됨으로써, 자기자신이 되었다는 얘기일까. 그리고 그러한 존엄한 가치가 인간에게 있을까,란 의문. 물음표로 가득찬 글. 내게는 그랬다. 그리고 10, 작가들이 하는 일.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겨야 한다는 문장에서, 스스로를 가치있게 여기란 말인가? 싶었다. 그것은 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가장 좋았던 부분은. 호박벌에 대한 얘기. 너무 느리고 뚱뚱해서 날지 못하지만, 이런 사실들을 모두 무시한채 호박벌은 바로 난다고. 윙윙 거리면서 그냥 곧장 날아가는 법을. 그리고 뒤에 이어진 이야기. 자아발견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중이라는 대화. 마치 호박벌이 나자신 같았다. 수많은 편견들과 사람들의 말을 뒤로하고, 나도 날고 싶다는 욕구가 갑자기 확 튀어올라왔고. 내가 보기에 나는 호박벌인데, 나도 날 수 있을까요? 나자신에게 되물었다. 그리고 11, "일이 잘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해도 때로는 그냥 한번 시도해 봐야 해요." 그렇구나. 날 믿지 못하고, 일에 대한 불확실함이 내 안에 있다하더라도, 그냥 한 번 시도해봐야 하는구나. 때론 두려움이 참 우리를, 후퇴하게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일에 대한 문장중 내가 멈춰섰던 곳이 두 군데 있다. "그냥 압박감일 뿐이야. 우리 모두 한두 차례씩 그런 걸 경험했어. 네가 이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걸 명심해야해." , "아버지는 자기 일인 것처럼 일을 했다.". 내가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는 것, 아무도 날 왕으로 지명하지 않았다는 것. 그러니 불필요한 자괴감과 죄책감을 가질 필욘 없다고, 날 다독이는 듯 했다.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여, 그 무게가 무척이나 무겁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도움이 될 만한 문장이라 생각이 들었다. 또 자기 일인 것처럼, 7일동안 일을 했다는 것. 내 일 처럼, 내 일 처럼, 내 것 처럼, 그렇게 일을 해야 하는구나. 며칠 전 커피숍 사장님이, 무슨 일을 하든 주인의식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 책은 일상속에서 일에 대한, 노동에 대한 얘기를 끌어온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끔 도와주는 것 같다. 마치 이 책은 "이게 너의 일상이고, 삶이고, 존재야." 라고 말해주는 듯 다가왔다.

일의 영향력 밖으로 벗어나지 않은 채 그 속에서 슬퍼하고, 기뻐하고, 나아가 존재의 의미까지도 확인하는 것, 옮긴이의 글 중.

그렇다. 일은 어쩌면 우리의 삶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이다. 그냥, 아무 뜻 없이, 돈을 위해, 일하기가 싫었다. 조금 더 열정을 가지고, 조금 더 이 일이 나자신이 되어가기를, 또 그런 방향으로 일을 해나갈 수 있는 나이기를 바래보며.

일은 참,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는구나. 일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더 깨달으며, 또한 일이 주어졌음에 감사하며, 리뷰를 마치려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비의 무게
에리 데 루카 지음, 윤병언 옮김 / 문예중앙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한 마리의 나비의 무게란 긴 세월이 흘러 쌓인 인생의 무게 위에 더해지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상징합니다, 작가의 말. 우리는 이 책을 열기 전에 한 마리의 나비와 마주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과 마주하고, 인생의 무게와 마주한다. 우리의 생이라는 것이 어떠한 형태이든지, 무게를 가지고 있구나. 가느다란 날개와 몸짓을 지닌 나비의 무게를 생각해보자니, 잘 와닿지 않았다. 삶의 무게, 죽음의 무게, 나비의 무게.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죽어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는 어떤 무게를 가지고 있나. 나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해본 적이 있나. 어떤 느낌일까, 되물어보며 이 소설을 펼쳤다.

이 책에 등장하는 두 인물, 나이 든 사냥꾼과 거칠 것 없는 산양 왕. 그리고 나비. 일찍부터 혼자가 된 산양 왕의 먼저 등장한다. 그에게서 고독과 무게가, 그리고 강인함이 느껴졌다. '지상에 내려앉은 배 부른 독수리는 허점투성이다.' 왜 이 문장이 눈에 띄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인간도 배 부른 독수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나의 삶이 배 부른 독수리가 되어서는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산양 왕과는 대비되는 독수리이다. 배 부르지 않다는 것, 그리고 갈망이 있고 결핍이 존재하는 나의 삶이 다행스레 비춰졌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산양 왕의 모습을 통해, 또한 준비하는 모습들을 통해, 생의 마지막 순간을 그려보았다. 우리는 마치 죽음이 없는 것처럼, 죽음을 망각하며 살아가기도 하다. 그러나 죽음은 분명하게 존재하기에, 그러한 죽음에 대해 사고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느꼈다. 계속해서 몇몇의 문장들이 눈에 띄는데, 다수라는 건 힘없는 자들에게나 중요한 가치라는 문장. 나에게 다수라는 것은 중요한가, 다수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며, 우리는 왜 다수가 되어야 하나. 라는 의문들을 던져보았다. 다수라는 것이 진정한 힘일까. 진정한 힘은 소수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닐까. 우리 개개인은 소수가 될, 창조적이고 독립적인 개개인이 될, 의무가 있는가?. 그리고 사냥꾼이 등장한다. 사냥꾼도 산양 왕과 비슷한 삶을 살아온 것 같다. 살면서 겪어온 일들을 혼자서만 간직했다는 문장에서, 과연 소통의 부재와 타인이라는 존재의 부재함에도 불구하고 생이라는 것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적어도 나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갈 수 없기에. 그리고 외톨이에 대한 언급. 새로운 경험을 꾀하고, 길을 여는 자. 외톨이에 대해서 저자는 긍정하는 듯 했다. 하지만 무리가 존재하기에, 외톨이도 존재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후회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일을 저지르고 나면 돌이킬 수 없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정도라고. 그래서 우린, 뒤돌아보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킬 수 없으니까, 후회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생각이 필요하고, 사고의 유연함이 필요하구나. 그리고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나온다. 발걸음을 서두르지 말아야 하며, 누군가의 어깨에도 몸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 너무나 냉소적이고, 두려운 일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우리의 삶은, 자기자신 혼자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기에.
이 책은 생에 대해, 죽음에 대해,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천천히 은유적으로 얘기해주는 듯 했다. 그리고 그 문장들 속에서, 우리의 삶과 죽음을, 의문을 발견하게끔 해주고, 생각해볼 수 있도록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 중간의 조물주, 전능자에 대한 얘기들과, 현재에 대한 앎의 중요성. 많은 것들을 포괄적으로 생각해보고, 길게 호흡하며 읽을 수 있도록 만든 책. 매력적이고, 매혹적인 문장들로, 작가만의 독특한 문장들로, 가득한 책.

길게 호흡하며 보자고, 의문을 던지며 책장을 넘겨보자고. 권유한다.

내게는 이 작가가 굉장히 독특하게 다가왔고, 창조적인 문장들로 다가왔다.

생각을 열어주고, 맘을 열어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eeee 사랑하고 싶다
타오 린 지음, 윤미연 옮김 / 푸른숲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사랑하고 싶다, 사랑하고 싶다- 제목이 이뻤다. 이쁜 디자인과 사랑이란 단어가 포함되어있는 제목. 그래서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넌 또 내게 무엇을 얘기해줄까, 호기심을 가지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가볍지 않았고, 또 조금 어렵게 다가오기도 했다.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실제인지 잘 구분하기가 어려웠기에. 그래서 맨 처음엔 당황스럽기도 했던 거 같다. 누가 주체이고, 이 책이 도대체 무엇을 얘기하는 것인지, 어떤 얘길 전하고 있는 것인지 햇갈리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 책을 덮고 났을 때, 이 책이 어떤 책인지를 조금 알게 되었던 거 같다. 마치 수많은 돌 가운데에서 무언가 아주 귀중한 것들을 찾아내야 하는 것같은, 수수께끼같은 책. 그러나 이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것, 나타내고자 하는 것... 그것이, 참 특별하게 다가왔던 거 같다. 저자와 함께 주제를 찾아나가는 느낌이랄까, 무쪼록 이 책을 만난 것이 반가웠다. 가볍지 않았기 때문에, 읽을 수록 호기심이 들기도 했었고.. 생각을 많이 하면서 봐야 하는 책처럼 다가왔다.

 

이 책에서 발견한 것은, 허구와 환상 혹은 상상을 넘나든다. 그리고 무기력과 권태로움이 보여졌다. 진취적인 그 어떤 것도, 나아감도, 목표도, 그 어떤 설렘과 두근거림도 없다. 가슴 뛰는 삶이라는 것, 그런 것은 이 곳에 없었다. 삶이라는 것, 그것은 이 책에 없었다. 그냥 그렇게 다가왔다. 이 안의 사람들은 분열되어있는 것 같이 보여진다. 또 이 책의 앤드류라는 인물은 끊임없이 새러라는 옛날여자친구를 회상하고, 또 새러라는 대상 안에 갇혀 있는 것같다. 새러를 너무나 사랑하고, 또 자신이 새러였으면 하며, 모든 사람들이 새러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언제나 상상은 허구라는 벽에 걸려 있을 뿐이다. 상상과 허구는 현실이라는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 벽을 뚫고 현실이란 시간 속으로 침투하지 않는다. 또 앤드류는 미래가 과거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이미 존재하는 것.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것. 굉장히 무기력하게 들려온다. 이미 정해져 있는 답이니, 두려워할 필요도- 새로이 무언가를 시도할 필요도-없노라고. 모든 것들에 대해 포기한 듯한, 어투. 시시하다, 지루하다, 라는 말들이 반복하여 나온다. 앤드류 자신은 존재하며, 또 시간 안에- 세상 속에- 속하여 있으며, 그것이 곧 실제이며 현재란 이야기인데.. 앤드류는 허구안에 있는 존재 같았다. 존재한다기보다, 존재함과 멀리 떨어져 별 상관없는 인물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즐거움이나 행복에 대해 얘기한다. 마치 그것은 우리가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는 것이라는 듯- 얘기하는 것 같다. 무언가 여러 벽으로 쳐져있는 방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모든 대상들을 우울하게끔 만들어버리는 앤드류. 앤드류의 안에 있는 것들이 우울의 형태를 띄며, ... 앤드류는 그것을 태양이 빛을 발사하는 것처럼, 우울한 앤드류가 대상들을 우울화시키는 것 같이 보여졌다. 또 눈에 띄었던 문장은 행복한 사람들은 이미 행복하기에, 굳이 내가 좋아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 그냥 눈에 띄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주는 걸까. (날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눈엔 내가 어떻게 비춰질까, 갑자기 생각이 든다. 어딘지 모르게 슬픈 문장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는 돌고래. 그 다음에 등장하는 엘렌. 과거의 내가 했던 일에 대해 책임질 수 없으며 다른 시간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자신에게 책임을 물어선 안된다고 얘기하는 엘렌. 모르겠다. 그 문장이, 내 안의 많은 책임들에 대해 내려놓게 만들었다. ..그리고 또 앤드류의 상상. 그리고 현실로 되돌아온다.

 

결론은, 사랑. 답도, 사랑. "끼이이이이 끼이이 끼이이이"라는 문구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건 '사랑하고 싶다, 사랑하고 싶다'는 신호라고 한다. 앤드류가 꿈꾸는 것은, 바로 사랑하는 삶이라고. 네트워크를 이루는 삶이라고. 그러나 그것을 할 수 없기에, 허구 속에서- 상상 속에서 이루어진다. 공허한 슬픔이다. 만져지지 않는 슬픔이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저자는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게끔 한다. 다소 허무하고, 슬프다.

 

많은 책들을 볼 때에, 사랑이란 단어를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 사랑은 관계 안에서 보여지기도 하고, 이 책처럼 허무와 허구속에서 보여지기도 하고, 대상을 통해 보여지기도 하다. 정말 다양한 형태로 사랑이란 단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형태 하나하나가, 그 단어를 통한 스토리 하나하나가 너무나 색다르고, 너무나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나의 삶에 들어와 부딪치기에 - 그것을 전달하는 책들이 귀하다. 참 아름답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이 책이 더 내 눈에 띄지 않았나 싶다. 결론은 이것이 실제적인 삶 안으로 들어와 부딪쳐야 한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자신의 삶 속에- 그리고 타인과의 교제속에, 소통속에, 관계속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사랑은 혁명이라고 한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 그것은 혁명이다. 지금 세상과 현실속의 사람들은 어쩌면 허구 안에 자신을 담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랑이란 단어가 빠진 현재로 자신을 밀어넣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위험해, 그것은 위험해, 라고 얘기하며. 물론 이 책은 조금 더 내가 보는 시각과 다른 것들에 대해 얘기하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을 덮고, 이 글을 쓰는 동안에 난 내가 고민하던 문제가 확 풀렸다. 타인은 아닐지라도- 때론 관계 안에서의 경계라는 것 때문에 밀어내고, 밀어내기를 서로 반복하고 있을지라도- 사랑은 혁명을 만들어내고, 사랑은 각자의 삶을 허구가 아닌 실제로 만들기에, 결국 사랑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라, 라는 것이다. 돌고래의 슬픔, "끼이이이이"라는 소리로- 사랑하고 싶단 신호를 보내는 그들. 사랑하면 되지, 그냥 사랑하고 포용하면 되지, 그러면 그 분홍색 숲으로 슬플 때마다 걸어들어가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사랑하자, 사랑하자..

 

그것이 어떤 대상이든, 삶이든, 죽음이든, 세상이든, 나이든, 사람이든. 사랑하지 않으면 그 어떤 혁명도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의 내부에서-. 사랑만이 참된 가치이고, 사랑만이 우리가 타인에게 전달해야 할 전부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앤드류의 이야기를 통해 내 안의 공허와 허구들을 본 것 같아서, 그래서 그런지 더욱 사랑이 실제이며- 삶 안에서 우리가 행해야 할 한 가지 가치처럼, 다이아몬드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어렵다, 사랑이란 것. 한 번 더 이 책을 읽었을 때에는, 이 책 안의 곳곳에 있을지도 모를, 사랑을 발견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