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은 진짜 'Smart' 폰일까요?
우리를 어리석게 만드는 Stupid 폰일까요?
크레용 하우스의 도서 선물을 받고
순식간에 읽었습니다.
스마트 폰이 우리 삶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최재붕은 '포노 사피엔스'라는 책에서
스마트 폰 없는 세상으로
돌아가는 일은 불가능하며,
아이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빼앗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아이들이 스마트폰으로
창의적인 세상을 경험하게 하자고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합니다.
마치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각합니다.
이미 익숙해졌고, 편리함을 맛보았으며,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스마트폰으로 인한 논쟁은 뜨겁습니다.
책을 읽고 사고력을 깊고 넓게 해야 할 시기에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스마트폰 없이는
제대로 사고하지 못하는
어딘가 부족한 자녀를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
부모의 마음은 불안합니다.
'스마트폰 전쟁' 역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민감한 이 부분을 다룹니다.
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금할 것인지,
아니면 제한적 사용을 허락할 것인지,
교장 선생님과 세 명의 주인공이
한판 승부를 벌입니다.
그 한판 승부라는 것이 토론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마트폰 사용에 관해
오프라인 토론으로 결정한다는 점은
스마트폰에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암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제한적이라도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싶은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합니다.
결국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 내고
제한적으로 무엇보다 주도적으로
스마트폰을 절제하며 사용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냅니다.
이 부분 역시 창의적인 사고와
집중력을 통해 이루어낸 쾌거(?)지요.
스마트폰 없이 살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삶의 속도와 질을 개선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은 사고해야 하며
창의적인 사고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선 독서와 토론이 필수라
생각합니다.
스마트폰 전쟁을 읽으며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마웠습니다.
부모가 먼저 스마트폰을 절제해야 하는 것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스마트폰 뿐 아니라
자녀양육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아이들과 부모와의 의견 차이를 좁히기 위해
건강한 토론 문화를 만들어 보는 것도
고무적인 일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책을 함께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문화를
가정에서부터 만들어 갈 수 있다면
문명의 이기가 가져다 준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성북동 아버지는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가슴 아픈 이야기로 전해줍니다.
어쩌면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불편하신 분들도 있을 텐데요
성북동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꺼내듭니다.
처음엔 큰 기대감이 없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어쩌면 뻔해 보이는 이야기지만
뻔하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들려주는 소설 성북동 아버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버림 받는 것이 무엇인지
그 아픔이 얼마나 지독한지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느 정도까지로 망가뜨릴 수 있는지
성북동 아버지는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나의 조부모님이 살아가던 시대 이야기로
아니 나의 부모님의 시대 이야기로
어쩌면 지금 우리의 이야기로도
얼마든지 읽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여전히 누군가로부터 버림 받는 사람이 있기에
성북동 아버지는 모든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라 해도 지나치진 않을 듯 합니다.
주인공 수애(수혜)는
스스로를 버려진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항상 버림 받았기 때문입니다.
수혜는 버림 받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고
버림 받지 않기 위해 늘 고요하게만 살아가는
마음 아린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입니다.
그녀는 버림 받지 않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버리기로 선택합니다.
버림 받는 것이 얼마나 아픈지 아는 사람이라면
버림 받지 않기 위해 버리는 사람을
나무랄 수 없습니다.
기억을 피해 달아나고,
주변 사람들과 엮이지 않기 위해 달아나면
버림 받을 일이 없을 거란 생각으로
수혜는 벗어나고 달아나는 길을 선택합니다.
먼저 버리면,
먼저 떠나버리면,
먼저 벗어나면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삶은 파편화될 수 없습니다.
어제의 내가 있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고
오늘의 내가 있기 때문에 내일의 내가 있겠죠
과거를 잘라내고 도려내고 숨긴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부끄럽고 아프고 숨기고 싶고 괴로워도
그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는 거니까요.
때론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언제나 마음을 마비시키고 찢어놓습니다.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입니다.
기억이 있는 한 사랑하는 사람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외롭지 않으세요?
외롭긴, 기억이 있으면 외롭지 않아..
성북동 아버지 263p
수혜는 사랑 받지 못한 사람
늘 버림 받은 사람
다른 사람에게서 달아나
자신을 지키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그녀를 탓할 순 없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몰아부쳤고, 밀어부쳤습니다.
하지만
끝내 그녀는 깨닫습니다.
모든 사람이 사랑이었음을...
사람이 사랑이지,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니.
사람이야말로 사랑이고말고
성북동 아버지 268p
둘러보니 길섶에 핀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마저도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수혜는 버림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그녀를 버렸고
아버지가 그녀를 버렸으며
사랑하는 사람이 그녀를 버렸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수혜는 버림 받지 않았습니다.
수혜를 버린 어머니는
수혜를 버리지 못해 버림 받았고
수혜를 버린 아버지 역시
수혜를 버리지 못해 버림 받은 삶을 살았습니다.
수혜 주변 고마운 사람들은
일평생 그녀를 끌어안은 채 살았습니다.
수혜 주변의 여러 사람들은
모두 수혜에게 기적 같은 사랑이었습니다.
기적 같은 사랑을 알려주는 성북동 아버지
사람이 살아가는 일은 신비롭습니다.
아픔이 있고 슬픔이 있습니다.
버리고 버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상처를 주고 괴롭게 할 때가 있습니다.
삶의 어느 순간을 마주하게 되면
많은 것이 이해되고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제서야 내 시선이 비좁고
내 마음이 비좁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때늦은 후회로 마음을 채우기도 합니다.
더 많이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해할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밀어낼 것이 아니라 끌어 안으며
뿌리칠 것이 아니라 손을 맞잡고
세상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쉽지 않은 세상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살아낼만한 세상입니다.
성북동 아버지를 읽으며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사람이 사랑이라는 진리를 대면합니다.
오늘을 나와 함께 걸어가는
아내와 남편 자녀와 부모가 고마운 사람임을
사랑해야 할 사람임을 마음에 새깁니다.
내 옆에 있는 가족에게
마음을 가득 담아 고백합니다.
"사랑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물고기 도감
우해이어보
조금은 특별한, 조금은 특이한
이 책 제목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해'는 지금의 진해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고
'이어'는 특이한 물고기를 말합니다.
즉 우해이어보는
"진해에서 나는 특이한 물고기를 기록한 책"
이라는 뜻을 가진 책이랍니다.
(우해이어보 179 P 참고)
우해이어보는 조선 시대 학자 김려가
진해현(마산합포구 진전면)에 유배 살면서
바다에서 잡거나 본 물고기, 조개, 소라 등
72 종의 바다 생물을 기록한
우리나라 최초의 물고기 도감입니다.
이 물고기 이름은 무엇인고? 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책은 우해이어보의 탄생 과정을
소설 형식으로 쓴 책이랍니다.
김려 선생의 섬세한 기록과
작가 김문주님의 상상력
강영지님의 정겨운 그림이 만나
더욱 아름다운 책으로 탄생했습니다.
바닷가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 책에서 문절어, 창고기, 볼락 반가운 이름도 많이 만났습니다.
제가 자란 통영에서는
문절어는 문조리, 창고기는 쑤기미로 부릅니다.
볼락은 강세를 넣어서 뽈락 또는 뽈래기라고 부른답니다.
책 속 주인공 개똥이(계동이)처럼
나는 여러 물고기가 늘 익숙했기 때문에
관심 있게 보지 않았습니다.
김려 선생은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물고기들에게도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들의 생김새와 특징 요리법까지 친절하게
기록해 둔 덕분에 우해이어보가 탄생했지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주변에 살아 있는 생명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주목하지 않고 지나쳐버린 생명들에게
관심을 쏟고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말처럼 이름을 불러주면
나에게 다가와 의미가 될테니까요.
우해이어보를 말하면서
자산어보를 생략하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소설 우해이어보가 자산어보의 이야기와
많이 닮았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습니다.
순조 1년, 신유박해로
정약전 선생은 흑산도로 유배되지요.
그곳에서 정약전 선생은 운명처럼
바다 생물의 매력에 빠져듭니다.
정약전 선생은 청년 어부 창대의 도움으로
물고기에 관한 지식을 채워나갑니다.
정약전 선생은 창대에게 글을 가르치고
창대가 모르는 지식을 채워주고
일종의 지식거래가 탄생합니다.
이를 통해 자산어보가 탄생하지요.
소설 우해이어보의 형식도 이와 비슷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바다에 살아가는 생명,
오래도록 우리 바다의 주인으로 살아온
물고기와 조개와 소라에게 관심을 쏟아준
김려 선생과 정약전 성생이 고맙습니다.
생명을 존중한 그분들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을 존중하고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해가면 좋겠습니다.
이 고마운 책에서 길어올린 삶의 지혜를
짧은 서평으로 나누고 싶습니다.
[나는 집에 가기 싫어요] 라는 제목의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서평도 짧게 올렸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왜 집에 가기 싫어하는지
객관적인 사실을 구체적을 보여줄 뿐 아니라
많은 여백을 통해 충분히 상상하게 만듭니다.
이혼한 부모 아래서 홀로 방치된 아이
술만 마시면(물론 술을 마시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요)
폭력을 행사하시는 아버지...
아이들이 집에 가기 싫어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림책은 상징적인 그림으로
한쪽으로 내몰리는 아이들의 세상과 내면을
보여주었습니다.
소설 나쁜 아이들
소설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나쁜 행동을 일삼습니다.
책의 핵심을 담아낸 문장을 보면
책 내용과 흐름을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교활하고
꾀가 많은지 상상도 못해.
자기들도 어렸을 때가
있었으면서 말이야
나쁜 아이들 66p.
소설은 밑도 끝도 없는 상상을 바탕으로
글을 엮는 것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소설만큼 우리네 일상을 잘 보여주고,
사람 사는 세상의 이면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을 보면서 배꼽잡고 웃고
소설을 읽으면서 눈물을 훔치고
소설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소설을 읽으면서 공감하는 것은
소설이 우리의 내면을, 사람 사는 세상의 이야기를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바라는 일들을,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문제를 정확하고 깊게
다루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나쁜 아이들은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마음을 아프게 만들고,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주인공처럼 등장하는
아이들의 행동과 그 행동 이면의 마음을 보면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십대 중학생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과 행동이
어떻게 이렇게나 나쁠 수가 있지?
사람의 생명을 이렇게나 가볍게 여길 수 있지?
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괴물을 만들어 내는 것은
사회가 괴물을 만들어 내기에 적합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나쁜 아이들을 길러낸 것은
그 아이들이 심성이 나쁘다는 것에 큰 책임이 있습니다.
동시에 나쁜 아이들로 자라게 만든
사회에도 큰 책임이 있습니다.
소설 나쁜 아이들은
매우 빠른 전개로 진행합니다.
시간의 흐름도 뒤섞여 있습니다.
책을 펼치면 바로 만나게 되는 서막은
사람의 시선과 마음을 단번에 낚아 챕니다.
복선과 사건이 날줄과 씨줄처럼 촘촘하게 엮어
치밀도를 높여줍니다.
사회적 이슈로 전락한
청소년 범죄의 무거움도 생각하게 만들고,
말씀드린 것처럼
그런 아이들로 내몰아버린
어른들에게 책임을 묻기도 합니다.
책의 마지막에선
아이에게 새 인생을 살고 열심히 공부하며
나날이 발전할 기회를 줄 것인지
그래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갈 기회를 줄 것인지,
아니면 모든 사실을 까발려
아이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히고,
인생을 짓뭉개버릴지
심각하고 무거운 결정의 순간 통화와 취소 버튼 사이
세상에서 가장 긴 1cm의 거리를 두고
고민하는 모습으로 끝이 납니다.
소설이 오픈 엔딩으로 끝나는 데는
작가의 분명한 의도가 있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
아이를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
기회를 줄 것인지
아니면 진실을 밝히는 것에 무게를 둘 것인지 선택하게 합니다.
글쎄요.
일종의 연대 책임을 묻는 엔딩일 수도 있고,
아프지만 진실을 선택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일 수도 있습니다.
소설을 읽는 이가 내려야 할 결정이겠지요.
우리나라 이혼율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역기능 가정, 깨진 가정의 수도
굳이 조사해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사회뉴스란에 오르내리는 사건사고는
우리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듭니다.
우리나라 청소년 범죄율이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죄질도 갈수록 심각해 진다고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복잡하게 얽혀 있겠지요.
가장 큰 이유는 가정이 병들고 깨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 구조의 최소단위이자 핵심인
가정이 병들면 사회가 병들 수밖에 없고
사회가 병들면
다음 세대는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쁜 아이들을 읽으면서
이 나라의 가정과
청소년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소개합니다.
몇 해 전우리나라 갈등해소 비용이어마어마하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면갈등해소 비용이 훨씬 더 증가했으리라판단합니다.남과 북의 단절은 말할 것도 없고진보와 보수, 보수와 진보는극단을 달립니다.동과 서가 갈등합니다.갑과 을이 갈등합니다.갑과 을이라는 말 자체가갈등 그 자체라고 하겠지요.세대 간의 갈등도 깊어져만 갑니다.빈부간의 격차도 벌어지고갈등의 골 역시 벌어지고 있습니다.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 지과연 풀어갈 수는 있을지조차장담하기 어려운 시국입니다.이런 우리의 문제를 정확하게꼬집을 뿐 아니라해결책을 제시한 책이 나왔습니다.시의적절한 때에 시의적절한 책이우리의 곁으로 왔습니다.두리반 출판사에서 출간한[광장의 오염]이란 책입니다.방대한 연구와 치밀한 집필 과정을 거친 책답게내용이 깊고 묵직할 뿐 아니라 예리합니다.한 챕터씩 서평을 해도제가 가진 최대의 힘을 쏟아부어야 할 것 같은혜안이 담긴 책입니다.아무래도 저의 필력으로는이 공간에서 한 번에 다룰 수 없을 것 같습니다.이 책의 원제가우리나라에 이렇게나 만연한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에 만연한 갈등의 골을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한 가지 힌트를 제공합니다.책 제목을 반영해 본다면 오염된 광장을 어떻게 정화해 나갈 수 있는지해답을 제시한다고 해도 좋을 듯 합니다. I am right and You're an Idiot(나는 옳고 너는 틀렸어!!!)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말을 반면교사로 삼는 것입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입장에 선다면결코 광장은 정화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더 심각하게 오염되겠지요. 이 책이 말하는 광장이란대화의 장이요, 담론의 장입니다.광장이 이렇게나 오염된 원초적인 이유는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원제목을 역으로 생각해야합니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상대가 옳을 수 있다는 생각상대에게 귀 기울여야 할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런 유연한 생각을 가질 때 비로소광장 정화의 길은 열릴 것입니다. 지구환경 문제만 놓고보아도(메인 이슈는 아니지만이 책의 핵심 주제와 연결해서자주 등장하는 이슈입니다.)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식으로 접근합니다.이런 편협한 생각을 내려놓고나의 생각을 먼저 정확하게 이야기하고상대방의 입장에 서서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에 비로소오염된 광장은 정화될 것이며그때에 더 나은 세상을 열어갈 수 있는길이 시작된다고 말합니다.근래에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이란 책이 나왔습니다. [2050 거주 불능 지구]라는 책도 나왔습니다.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이란 책도 나왔습니다. 기후 문제를 다운 그림책도 나왔습니다. 저마다 의견이 엇갈립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견지로 접근하면대화는 불가능합니다.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설령 귀를 기울이는 일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광장의 담론을 위한 기울임이 아니라자신의 입장을 공고히 하면서 동시에 상대방에게 융단폭격을 가하기 위함일 겁니다.광장의 오염은 광장의 정화를 위한 길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촌을 위한 길갈등을 해소하고 화해로 나가는 길을 방대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제시합니다. 굉장히 심오하고 방대한 연구의 결과지만우리에겐 무척이나 익숙한 사자성어역지사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바로 황금률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마태복음 7:12, 새번역)[광장의 오염]이사자성어 '역지사지' 예수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게다가 이 책이 인류의 정신을 꿰뚫고 있으니이 책이 얼마나 묵직한 지를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