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는 굉장한 힘이 있다.

첫째, 우리의 ‘생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닌 것이 없다. 비록 의식하지 못한 질문일지라도 말이다.

점심시간에 정한 메뉴는 "무얼 먹어야 맛있을까?"라는 질문의 답이다. 만일 의식적으로 다른 질문을 했다면("무얼 먹어야 건강에 좋을까?") 생각은 또 다르게 작동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둘째, 질문은 의식의 초점을 붙들어 맨다.

몰입이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쉬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의식적으로 질문을 던지면("이 글의 핵심 메시지는 뭐지?") 흩어지는 집중력을 긁어모을 수 있다.

셋째, 질문은 기분을 순간적으로 바꿔준다. 의식의 초점을 옮길 수 있는 것도 질문의 기능이므로 현명한 질문을 하면 기분이 바뀐다.

예를 들어 분노가 번질 때 "만약 이 상황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면 무엇일까?" 하고 의식적으로 질문을 던져보자. 순간 분노가 줄어들 것이다.


질문은 마음의 시선을 통제할 수 있는 도구다. 당신은 의식적으로 질문을 던짐으로써 질문의 강력한 힘을 활용할 수 있다. 습관적으로 던지는 질문이 삶을 만드는 질문이며 질문의 수준이 곧 삶의 수준이다.

핵심은 공부 환경이 자신에게 효율적이냐, 그리고 얼마나 많이 공부를 해내느냐다. 책상 정리에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 그저 더 열심히 공부하자. 그러면 책상은 생태계처럼 자연스럽게 당신의 공부 스타일에 맞춰질 것이다.

책상 위가 지저분한 편이었던 아인슈타인Einstein은 책상 정리를 이야기하는 이에게 이렇게 핀잔을 준 일이 있다.
"어지러운 책상이 어지러운 머리를 뜻한다면 빈 책상은 빈 머리를 뜻하는 것인가."

첫째는 구체적인 목록을 작성해 무조건 지키는 것이다. 이를테면 ‘공부할 때 책상에 엎드리지 않기’와 같은 식이다. 하근기下根機를 위한 방법이다. 여기서 근기란 사람이 가진 기본적인 내공이나 자질을 말한다.

둘째는 인과 관계를 곰곰이 따져보는 것이다. ‘책상에 엎드리면 연필로 끄적거리는 자세가 된다. 집중력이 떨어진다. 공부를 잘할 수 없다.’ 중근기中根機를 위한 방법이다.

셋째는 밝은 하나의 생각으로 마음을 꽉 채우는 것이다. 긍정적인 마음이 충만하면 어깨가 쫙 펴지고 좋은 의욕으로 가득 찬다. 이것이 상근기上根機를 위한 방법이다.

부정적인 생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그것들을 일일이 금지할 수도 있고 불이익을 논리적으로 따져볼 수도 있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긍정적인 마음으로 우리를 가득 채우는 것이다.

미국의 목사 로버트 슐러Robert Schuller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의 긍정적인 생각이 수천 개의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낸다."

당신이 치명적인 실수를 했더라도 절대 좌절하지 말라. 실수라는 비용을 치르면 경험이라는 대가를 얻는다.

미국의 목사 윌리엄 채닝William Channing은 "실수는 그것을 통해 우리가 발전해가는 훈련이다"라고 했다. 경험을 가슴속에 새기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면 남는 장사다.

‘사랑한다’보다 더 예쁜 사랑 고백이 있을까. 일본 메이지 시대에는 ‘사랑한다’는 말을 잘 쓰지 않았다.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는 고심 끝에 "I love you"를 "달이 참 예쁘네요"라고 번역했다. 가만히 귀 기울여보는 것도 좋겠다. 누군가는 당신에게 그 말을 "공부하느라 많이 힘들지?"라고 옮길 수도 있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자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못한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참된 겸손, 용기, 신념, 훈련이 없는 한, 개인적인 사랑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쳐주려고 한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사람들이 내가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안다면, 나의 기술이 조금도 대단해 보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던 미켈란젤로Michelangelo가 떠올랐다.

메타 인지란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즉, 메타 인지가 높다는 것은 ‘내가 지금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첫째, 공부 계획을 세우고 결과를 피드백할 것. 자꾸 계획을 세우고 시도해봐야 자신의 능력치를 가늠하는 눈이 생긴다.

둘째, ‘준비를 끝냈다’면 그것을 말로 설명해볼 것. 사람은 자기가 완전히 이해한 것만 설명할 수 있다.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일은 자동차 운전과 같다. ‘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생각은 가속 페달이고, ‘너무 어렵다’는 소극적인 생각은 브레이크다. 어차피 해야 할 공부고, 무조건 넘어야 할 산이니 장애물은 보지 말자. 당연한 것들이다.

마사이족은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자와 마주쳐도 놀라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틀림없이 사자와 만나게 되리라는 사실과 자신이 사자를 물리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처럼 당신도 장애가 아닌 목표에 집중하자. 당신의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아야 한다.

영국의 시인 한나 모어Hannah More는 이렇게 말했다.
"목표를 보는 자는 장애물을 겁내지 않는다."

사람들은 환경에 의해 인생이 좌우된다고 생각하지만,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환경을 해석하는 태도다.

나이가 많아 공부하기에 늦었다는 사람이 많지만, 살날이 많지 않으므로 시간을 아껴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당신이 공부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성취가 달라진다. 만약 당신이 공부에 흥미가 없다면 공부가 원래 재미없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 까닭이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이렇게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이라도 견딜 수 있다."

그때 깨달았다. 하나는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하나를 지켜내면 세상을 지켜낸 것이고, 하나에서 물러서면 세상에서 물러선 것임을.

공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공부도 하나의 세상이다. 공부를 피해 달아나면 세상을 피해 달아나는 셈이다. 지금 당신 앞에 놓인 세상이 공부이기에 공부를 이기면 당신은 세상을 이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원하는 대로 모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사람은 그렇게 되지 않았을 때 쉽게 좌절한다. 그런데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는 없으므로 반드시 좌절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원하는 대로 모두 이루어지기를 계속 기도한다. 그러다 좌절감이 쌓이면 자신감이 약해지는데,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자신감을 상실한 채로 계속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 그러나 언제라도 같은 자세로 노력할 수는 있다. 그것이 우리에게 가능한 일이며,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책이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어떤 책은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어쩌면 당신이 집을 다음 책이 당신의 인생을 바꿀지도 모른다.

당신이 대단히 성공한 누군가의 이름을 댄다면 나는 그가 얼마나 많은 실패를 겪었는지 보여줄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리 실력 있는 사람이라도 반드시 초보자였던 때가 있었으며, 아예 입문조차 하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기 때문이다.

김연아가 처음 피겨 스케이팅 슈즈를 신던 날, 그녀는 전 세계의 모든 피겨 선수들보다 아래에 있었다.

그러므로 당신이 지금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 당신은 단지 맨 아래 계단에 있는 것뿐이다.

당신이 할 일은 오직 2가지다. 계속하는 것, 그리고 조금씩 나아지는 것. 이것들을 해내다 보면 반드시 당신은 만족할 만한 높이에 닿을 것이다.

금메달을 딴 선수처럼 팔을 벌려 포효하는 우울증 환자는 아무도 없다. 우리의 상태가 특정한 자세에 프로그래밍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바꾸는 일이 마음대로 안 된다면 몸을 통해 마음에게 지시하는 법을 배우자. 당신의 몸은 지휘관이 흔드는 깃발이다. 당신의 마음은 깃발의 지시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성공의 비결을 생각해보면 정말로 단순하다. 살을 빼고 싶으면 적게 먹고 많이 운동하면 된다. 인간관계를 넓히고 싶으면 두루 만나고 더 주면 된다. 시험을 잘 보고 싶으면 덜 놀고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 문제는 단지 그 비결을 실천하지 않는 것이다.

간단한 약속(윗몸 일으키기 하루 30개)은 너무 간단해서 잊어버리고, 어려운 결심(매일 새벽 5km 달리기)은 너무 어려워서 지키지 못한다. 이래저래 실천하지 않으니 성공은 항상 요원한 일이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적어보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당신이 할 일을 가장 단순한 말로 적어보자. 딱 한 가지만 말이다. 그것만 실천해도 당신의 삶은 확실히 달라진다. 성공의 비결은 정말로 단순하다. 그렇지 않은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는 대통령이 되기 전 미국 최고의 부동산 개발업자였다. 그는 시골 변두리에 2층 주택 한 채를 짓는 일보다 뉴욕 맨해튼 중심부에 초고층 빌딩을 세우는 일이 더 쉽다고 말했다. 작은 집 한 채에는 아무도 투자하지 않지만, 초고층 빌딩을 세운다고 하면 이슈가 되어 투자 받기 쉽기 때문이다.

당신이 가진 목표가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할수록 실현 가능성은 커진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은 일개미처럼 꼼꼼하게 짤지언정, 도달하고 싶은 곳은 환상적이고 아름다워야 한다.

미국의 건축가 다니엘 번햄Daniel Burnham은 이렇게 말했다.
"계획을 작게 세우지 말라. 작은 계획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마력이 없기에 오히려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

단순한 기술을 가장 잘 구사하는 자가 고수다. 최고의 공부법도 단순하다. 집중할 것, 많이 할 것, 많이 연습할 것, 그리고 다 알고 넘어갈 것. 당신의 공부가 깨끗한 머리치기처럼 단순하기를. 그래서 당신도 언젠가 당신의 분야에서 고수가 되기를 바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도 이렇게 말했다.
"단순함은 궁극의 정교함이다."

성공은 실력에서 나오고, 실력은 배움에서 나온다. 배움은 경험에서 나오는데, 경험은 도전으로 얻는다. 물론 도전하다 보면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공에 빨리 닿으려면 빨리 실패하고 빨리 배워야 한다.

프랑스의 작가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는 말했다.
"또 실패했는가? 괜찮다. 다시 실행하라. 그리고 더 나은 실패를 해라."

같은 스마트폰을 가지고도 어떤 사람은 비즈니스 툴과 어학기로 사용하지만, 어떤 사람은 겨우 ‘점프하고 풍선을 터뜨리는 게임기’로 쓴다. 같은 기계인데도 누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천차만별이다. 고작 스마트폰도 이런데, 우리의 두뇌는 어떨 것인가. 엄청난 잠재력의 두뇌로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NLPNeuro-Linguistic Programming(신경-언어 프로그래밍)에서는 성공에 이르는 핵심적인 기술로 ‘본받기Modeling’를 제안한다. 우리가 원하는 성공을 이미 이뤄낸 사람이 있고, 우리 역시 그 사람과 동일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본받기’를 한다면, 그 사람이 얻은 것과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NLP의 핵심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본받기의 달인, 최고를 따라 해서 최고가 된 사람들이다. 모르는 길을 갈 때는 일단 먼저 간 사람을 따라가면 된다.

이에 대해 캐나다의 컨설턴트 브라이언 트레이시Brian Tracy는 이렇게 요약했다. "성공은 실마리를 남긴다."

공부도 결국 본받기다. 원어민을 잘 따라 하는 사람이 영어를 잘하고, 수학자들의 사고 체계를 잘 모방하는 사람이 수학을 잘한다. 잘 만든 PPT를 따라 해서 비슷하게 만들면 얼추 훌륭해 보이지 않는가. 공부를 잘하고 싶다면 본받기를 하자. 당구장에 가면 당구를 잘 치는 친구의 자세를 따라 하고, 스키장에 가면 보드를 잘 타는 친구의 자세를 흉내 낸다. 공부도 똑같다. 바로 그렇게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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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이거 보통이 아니네 - 오늘도 탈탈 털린 당신을 위한 충전책
김보통.강선임 지음 / 생각정거장 / 2019년 4월
평점 :
판매중지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
보통보다 더 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레드퀸효과와 같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바람에
나의 삶을 빼앗기고 있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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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일 때문에 일찍(?) 퇴근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왜 그렇게 어려울까? 일이 우선이라는 회사의 방침을 강요받고 있거나, 나도 모르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회사 일보다 개인의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일은 자아실현의 중요한 수단이면서, 실질적으로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돈을 벌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막상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돈을 벌게 해주는 대가로 개인의 삶과 행복을 내놓길 요구받는다.

지금 내 마음이 20대와 같더라도 지금의 20대와는 다르다. 상황도 다르고 사람도 다르다.

그렇다. 우리는 서로 조금씩 조금씩 비슷한 사람들. 다들 그렇게 견디고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특별히 잘났다는 생각은 말리지 않겠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특별히 못나거나 불행하다는 생각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혐오 발언 자체가 폭력의 시작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놀이처럼 사용하는 것이라고 해도, ‘혐오’, ‘극혐’이라는 말을 문제의식 없이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러니 ‘오지랖이 넓다’는 말은 결코 좋은 뜻이 아니다.

"오지랖이 넓다"는 것을 그리 나쁘지 않게 받아들여 왔던 이유는 보통 ‘우리는 이렇게 스스럼없이 친하다’는 걸 확인하는 용도로 쓰여 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의 오지랖이 좀 불편해도 화를 내기 어려웠던 이유도 마찬가지. 정말 심각하게 선을 넘은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는 화를 낸 사람이 쪼잔하게 된다.

설사 좋은 평가라고 해도, 원치 않는 관심은 싫을 수 있다. 하물며 지적을 받는 것은 어떨까.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과 무신경함에 대응하기 위해 자기비하까지 해야 하다니 슬프다.

"다 너를 아끼고 위해서"라는 말로 합리화하면서 말이다. 그 사람의 고통을 나누어 짐을 함께 지고 싶은 정도의 관심이 아니라면, 외면하는 것이 배려일 수 있다. 얄팍한 호기심을 관심이라고 스스로도 포장하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하는 것은 인격의 문제일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면 스트레스가 된다.

쓸데없이 무리하지 않는 것, 멋지다.

"사람들은 사랑과 관심과 미명이라는 충고하에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가만히 두려하지 않는다."

권가야의 만화 《해와 달》에 나오는 문장이다.

무엇이든 그렇다. 지키는 것은 어렵고 어기는 것은 그보다 쉽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좀 더 유연해진다고들 하는데, 어쩌면 그게 규칙을 어기면서 느끼는 죄책감은 줄고, 뻔뻔함은 는다는 소리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소신을 지키지 못한 게 모두 개인의 탓이라고 하면 좀 억울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융통성’이라는 이름으로 ‘규칙’을 어기도록 강요받는 일이 얼마나 흔한가.

"화 좀 그만 내."

언젠가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분명 화가 나는 상황이 있긴 했다. 그럼에도 매번 "화내지마", "화내서 뭐하겠어" 같은 이야기가 돌아왔다. 그럴 때면 내가 좀 유별나게 예민한 사람처럼 느껴지곤 했다.

홧김에 하는 일은 대부분 후회하게 된다. 다행히도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6개월 동안 함께 나눴던 이야기들은 사실 대단히 특별한 게 아니었다. 내가 느낀 불편함과 부당함을 함께 이야기하며 공감했고, 때로는 서로 대신 화를 내주기도 했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처음엔 상대방에게 화가 난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면 스스로에게 화를 내게 되기도 한다.

왜 나는 더 잘나지 못해서 이런 대우를 받을까, 왜 당당하게 저항하지 못할까 자책하게 되는 것이다. 잘못하지도 않은 자신에게 화를 내고 상처를 줄 필요가 있을까. "꾹꾹 참았다가 나에게 터뜨리지 말고, 세상에 화를 내라", "예민하다는 말은 무시해라. 그래도 괜찮다" 이런 말들이 참 좋았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상처가 한참 후에 후끈거릴 때가 있다.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더 건강한 반응이라고 한다. 화가 나는 것 역시 그렇지 않을까? 겉으로는 괜찮은 척 해도 마음은 상처받았다고, 그러니 나를 잘 보살펴주어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말하니 자기 합리화처럼 느껴지긴 한다. 하지만 삶이 너무 힘들고 지칠 때,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일만은 피했으면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픈 사람이 너무 많다. 아프지 말고 나랑 같이 화를 냈으면 좋겠다.

역사는 언제나 불편한 사람들에 의해 나아간다. 불을 만들고, 농사를 짓고, 전기를 발전하고, 노예제를 없애고, 참정권을 보장하게 된 것은 모두가 "지금의 이 상태는 보통이 아니다"라고 느껴온 사람들이 싸워온 결과다.

평범해 ‘보이는’ 하루, 하지만 그 하루를 ‘살아내는’ 것은 결코 보통 일이 아니다. 만약 정말로 ‘보통의 삶’이라는 게 있다면, 그리고 딱 그 보통을 원한다면, 노력도 보통만큼만 요구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서는 보통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야 한다.

패배를 대해는 선수들의 모습은 전혀 포기로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당당해 보였다.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항상 좋은 결과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계속 더 최선을 다하라고만 요구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그런 요구를 뿌리칠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좀 더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이즈미야 간지의 책 《뿔을 가지고 살 권리》에 있는 구절이다. "‘보통’이라는 말에는 모두와 같은 게 좋다거나 평범하게 사는 것이 틀림없이 행복할 것이라는 편중된 가치관이 들러붙어 있다. 사람들은 ‘보통’이 되면 ‘보통’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것에 ‘보통’은 없다. 왜냐하면 ‘보통’이 아닌 것이 행복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정한 보통이 되기 위해 쉴 새 없이 달리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나 행복은 보통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릴 게 아니라, 중간 중간 멈춰 서서 확인해보자.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가 가고 싶은 곳이 맞는지. 아예 트랙을 벗어나도 좋다. 어쩌면 거기서 행복의 지름길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모든 일이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힘들다는 것이다. 혼자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게 과연 정상인가? 우리는 계속 함께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동력 중에 하나는 ‘스스로 삶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자존감이 확립되기 때문이다. 그런 것 없이 일만 하다 보면 ‘왜 사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미처 생각할 겨를 없이 하루하루를 돈이랑 바꾸는 경주마가 된 기분으로 살다가 어느 날 한꺼번에 찾아온 허탈감에 쓰러져 버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시발비용’이라는 신조어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시.발.비.용.

비속어인 ‘시발’과 ‘비용’을 합친 이 신조어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을 뜻한다.

자, 아래에 있는 문항에 해당이 되는지 안 되는지 솔직하게 답해보자.


1 사람을 만나면 나이부터 확인하고 나보다 어리면 반말한다.

2 요즘 젊은이들은 노력은 하지 않고 세상 탓만 하는 것 같다.

3 "내가 너만 했을 때"라는 말을 자주 한다.

4 고위 공직자나 유명 연예인과의 개인적인 인연을 자주 이야기한다.

5 후배가 커피를 알아서 대령하지 않으면 불쾌하다.

6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라고 했는데 나중에 보면 내가 먼저 답을 제시했다.

7 후배나 부하직원의 옷차림과 인사예절도 지적할 수 있다.

8 내가 한때 잘나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9 연애나 자녀 계획 등의 사생활도 인생 선배로 답을 제시해 줄 수 있다.

10 회식이나 야유회에 개인 약속을 이유로 빠지는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

11 내 의견에 반대한 후배는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

12 나보다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13 나보다 늦게 출근하는 후배가 거슬린다.

14 후배의 장점이나 성과를 보면 반사적으로 단점을 찾게 된다.


15 "○○란 ○○인거야"와 같은 진리명제를 자주 사용한다.


가구나 그릇, 지갑, 신발 같은 생활용품들은 아무리 조심스레 다루어도 흠집이 날 수밖에 없듯이, 우리도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흠집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감추거나 외면해서 병을 키우지 말자. 정확하게 아는 것만으로 견디는 게 훨씬 수월해지니까.

모두에게 조금씩은 그런 모습이나 증상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우리는 서로 조금씩 조금씩 비슷한 사람들. 다들 그렇게 견디고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특별히 잘났다는 생각은 말리지 않겠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특별히 못나거나 불행하다는 생각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게 입을 다물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 차별을 없애고 소수자 배제를 없애려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그때까지 재밌어 보이고 많이들 쓴다는 이유로 아무 말이나 함부로 주워서 쓰지 않는 것이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 아닐까?

"인간은 오락이나 휴식과 마찬가지로 일에도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을 좋아한다. 상이나 벌 때문이 아니어도 인간은 스스로의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하지만 ‘무민세대’는 이 무민과 관련이 없다. 없을 무 ‘無’에 의미를 뜻하는 영어 단어 ‘mean’을 더해, ‘의미 없음’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를 가리킨다고 한다. "아이고, 의미 없다"는 유행어와도 연결된다.

요즘 청년들을 ‘살코기 세대’라고 불린다는 사실에 멈칫하게 된다. 귀찮고 영양가 없는 관계는 피하고 꼭 필요한 관계만 맺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지독한 현실을 생각하면 합리적인 것 같으면서, 여전히 팍팍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는 내가 지킨다

"무례한 상황을 그냥 넘기지 말아야 한다", "무례한 사람에게 분명하게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라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막상 그런 일이 생겼을 때, 마음먹은 대로 대처하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착하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을 제 입맛에 맞게 조종할 수 있는 간편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착하다’는 말을 계속 듣다보면, ‘난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할 말을 참는다든지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의 요구는 더 많아지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더욱 힘들어진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나는 너무 괴롭고 힘든데도 다른 사람들이 바라는 모습을 연기한다는 것. 속으로는 울면서 겉으로는 웃게 된다. 내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너무 끔찍한 일이다.

지금도 자신의 경기장에서 외롭지만 당당하게 페어플레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박수받는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슬럼프에 빠졌다면 책을 읽어라. 책을 읽는 것은 무조건 남는 장사다."

하루 5분 공부 각오 : 365일 절대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 힘 | 한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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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언제나 불편한 사람들에 의해 나아간다. 불을 만들고, 농사를 짓고, 전기를 발전하고, 노예제를 없애고, 참정권을 보장하게 된 것은 모두가 "지금의 이 상태는 보통이 아니다"라고 느껴온 사람들이 싸워온 결과다.

평범해 ‘보이는’ 하루, 하지만 그 하루를 ‘살아내는’ 것은 결코 보통 일이 아니다. 만약 정말로 ‘보통의 삶’이라는 게 있다면, 그리고 딱 그 보통을 원한다면, 노력도 보통만큼만 요구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서는 보통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야 한다.

패배를 대해는 선수들의 모습은 전혀 포기로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당당해 보였다.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항상 좋은 결과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계속 더 최선을 다하라고만 요구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그런 요구를 뿌리칠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좀 더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인 일 때문에 일찍(?) 퇴근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왜 그렇게 어려울까? 일이 우선이라는 회사의 방침을 강요받고 있거나, 나도 모르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회사 일보다 개인의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일은 자아실현의 중요한 수단이면서, 실질적으로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돈을 벌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막상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돈을 벌게 해주는 대가로 개인의 삶과 행복을 내놓길 요구받는다.

지금 내 마음이 20대와 같더라도 지금의 20대와는 다르다. 상황도 다르고 사람도 다르다.

그렇다. 우리는 서로 조금씩 조금씩 비슷한 사람들. 다들 그렇게 견디고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특별히 잘났다는 생각은 말리지 않겠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특별히 못나거나 불행하다는 생각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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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없어도 정말 괜찮나요?"에 실제 살아가는 모습으로 대답하고자 이 책을 썼다. 정말로 괜찮다고. 둘이서 담담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고.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를 쓰며 하고 싶은 말들이 참 많았습니다.
‘아이 없이 살아요.’
이 한마디에 쏟아지는 많은 질문에 하나하나 답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만난 분들은 ‘아이 없이 사는 사람들은 그저 편하게 살려는 사람들’이라는 편견을 전부 깨주었습니다(그리고, 편안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마음을 정하기까지 남편과 아주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고통스러운 순간도 있었지만, 저희 둘이 훨씬 단단해진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힘껏 넘어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 그토록 소중했던 우정을 지키느라 했던 삽질, 땡땡이의 대가로 ‘빵꾸’ 났던 학점,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선배가 내 친구랑

있는 힘껏 뛰었는데, 그 힘 그대로 넘어졌다. 정말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일어나고자 하는 의지조차 생기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넘어져 있었다. 고통이 사라질 때까지, 스스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사람이 살다 보면 동굴에 들어가는 순간이 올 수도 있죠. 그러나 소중한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는 방식까지는 받아들일 수 없군요. 적어도 동굴에 들어가니 찾지 말라고 하는 편이 가까운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아니라면 제가 그 정도의 존재는 아니란 뜻이겠지요. 다음 연애는 동굴로 들어가는 걸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과 하길 바라요. 저는 아니에요. 아프다 해서 감기약을 사 왔는데, 얼굴 보니 괜찮은 것 같군요. 이건 먹든지 버리든지 알아서 하세요."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이 목표했던 그곳 앞에서 넘어지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당신도 나처럼 옆이나 뒤를 돌아볼 여유 없이 달려왔다면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한다.

나는 딩크보다 ‘무자녀’라는 표현을 더 선호하지만, 타인에게 내 상황을 빨리 이해시키기엔 딩크만한 단어가 없다. 여기에 ‘자발적 딩크’, ‘비자발적 딩크’, ‘싱크’, ‘딩펫’ 등 다양한 단어들이 출현했지만, 그들만의 리그에서 사용될 뿐 일반적으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무자녀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의 글에는 늘 ‘그러다 후회한다’라는 댓글들이 수도 없이 달렸다. 딩크족이거나 딩크이길 희망하는 이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도 후회라는 단어는 자주 등장한다.

후회 없는 선택이 있을까? 어떤 선택이든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 누군가 내게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냐고 물으면, 다행히 만족하며 살고 있다고 말한다. 때로 혼자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외로워지긴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혼자가 될 수 있으니 이것이 나에게만 국한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남아 있는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잘 채워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편이 훨씬 생산적이라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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