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일 때문에 일찍(?) 퇴근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왜 그렇게 어려울까? 일이 우선이라는 회사의 방침을 강요받고 있거나, 나도 모르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회사 일보다 개인의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일은 자아실현의 중요한 수단이면서, 실질적으로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돈을 벌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막상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돈을 벌게 해주는 대가로 개인의 삶과 행복을 내놓길 요구받는다.
지금 내 마음이 20대와 같더라도 지금의 20대와는 다르다. 상황도 다르고 사람도 다르다.
그렇다. 우리는 서로 조금씩 조금씩 비슷한 사람들. 다들 그렇게 견디고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특별히 잘났다는 생각은 말리지 않겠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특별히 못나거나 불행하다는 생각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혐오 발언 자체가 폭력의 시작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놀이처럼 사용하는 것이라고 해도, ‘혐오’, ‘극혐’이라는 말을 문제의식 없이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러니 ‘오지랖이 넓다’는 말은 결코 좋은 뜻이 아니다.
"오지랖이 넓다"는 것을 그리 나쁘지 않게 받아들여 왔던 이유는 보통 ‘우리는 이렇게 스스럼없이 친하다’는 걸 확인하는 용도로 쓰여 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의 오지랖이 좀 불편해도 화를 내기 어려웠던 이유도 마찬가지. 정말 심각하게 선을 넘은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는 화를 낸 사람이 쪼잔하게 된다.
설사 좋은 평가라고 해도, 원치 않는 관심은 싫을 수 있다. 하물며 지적을 받는 것은 어떨까.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과 무신경함에 대응하기 위해 자기비하까지 해야 하다니 슬프다.
"다 너를 아끼고 위해서"라는 말로 합리화하면서 말이다. 그 사람의 고통을 나누어 짐을 함께 지고 싶은 정도의 관심이 아니라면, 외면하는 것이 배려일 수 있다. 얄팍한 호기심을 관심이라고 스스로도 포장하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하는 것은 인격의 문제일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면 스트레스가 된다.
쓸데없이 무리하지 않는 것, 멋지다.
"사람들은 사랑과 관심과 미명이라는 충고하에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가만히 두려하지 않는다."
권가야의 만화 《해와 달》에 나오는 문장이다.
무엇이든 그렇다. 지키는 것은 어렵고 어기는 것은 그보다 쉽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좀 더 유연해진다고들 하는데, 어쩌면 그게 규칙을 어기면서 느끼는 죄책감은 줄고, 뻔뻔함은 는다는 소리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소신을 지키지 못한 게 모두 개인의 탓이라고 하면 좀 억울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융통성’이라는 이름으로 ‘규칙’을 어기도록 강요받는 일이 얼마나 흔한가.
"화 좀 그만 내."
언젠가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분명 화가 나는 상황이 있긴 했다. 그럼에도 매번 "화내지마", "화내서 뭐하겠어" 같은 이야기가 돌아왔다. 그럴 때면 내가 좀 유별나게 예민한 사람처럼 느껴지곤 했다.
홧김에 하는 일은 대부분 후회하게 된다. 다행히도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6개월 동안 함께 나눴던 이야기들은 사실 대단히 특별한 게 아니었다. 내가 느낀 불편함과 부당함을 함께 이야기하며 공감했고, 때로는 서로 대신 화를 내주기도 했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처음엔 상대방에게 화가 난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면 스스로에게 화를 내게 되기도 한다.
왜 나는 더 잘나지 못해서 이런 대우를 받을까, 왜 당당하게 저항하지 못할까 자책하게 되는 것이다. 잘못하지도 않은 자신에게 화를 내고 상처를 줄 필요가 있을까. "꾹꾹 참았다가 나에게 터뜨리지 말고, 세상에 화를 내라", "예민하다는 말은 무시해라. 그래도 괜찮다" 이런 말들이 참 좋았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상처가 한참 후에 후끈거릴 때가 있다.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더 건강한 반응이라고 한다. 화가 나는 것 역시 그렇지 않을까? 겉으로는 괜찮은 척 해도 마음은 상처받았다고, 그러니 나를 잘 보살펴주어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말하니 자기 합리화처럼 느껴지긴 한다. 하지만 삶이 너무 힘들고 지칠 때,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일만은 피했으면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픈 사람이 너무 많다. 아프지 말고 나랑 같이 화를 냈으면 좋겠다.
역사는 언제나 불편한 사람들에 의해 나아간다. 불을 만들고, 농사를 짓고, 전기를 발전하고, 노예제를 없애고, 참정권을 보장하게 된 것은 모두가 "지금의 이 상태는 보통이 아니다"라고 느껴온 사람들이 싸워온 결과다.
평범해 ‘보이는’ 하루, 하지만 그 하루를 ‘살아내는’ 것은 결코 보통 일이 아니다. 만약 정말로 ‘보통의 삶’이라는 게 있다면, 그리고 딱 그 보통을 원한다면, 노력도 보통만큼만 요구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서는 보통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야 한다.
패배를 대해는 선수들의 모습은 전혀 포기로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당당해 보였다.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항상 좋은 결과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계속 더 최선을 다하라고만 요구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그런 요구를 뿌리칠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좀 더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이즈미야 간지의 책 《뿔을 가지고 살 권리》에 있는 구절이다. "‘보통’이라는 말에는 모두와 같은 게 좋다거나 평범하게 사는 것이 틀림없이 행복할 것이라는 편중된 가치관이 들러붙어 있다. 사람들은 ‘보통’이 되면 ‘보통’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것에 ‘보통’은 없다. 왜냐하면 ‘보통’이 아닌 것이 행복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정한 보통이 되기 위해 쉴 새 없이 달리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나 행복은 보통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릴 게 아니라, 중간 중간 멈춰 서서 확인해보자.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가 가고 싶은 곳이 맞는지. 아예 트랙을 벗어나도 좋다. 어쩌면 거기서 행복의 지름길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모든 일이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힘들다는 것이다. 혼자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게 과연 정상인가? 우리는 계속 함께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동력 중에 하나는 ‘스스로 삶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자존감이 확립되기 때문이다. 그런 것 없이 일만 하다 보면 ‘왜 사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미처 생각할 겨를 없이 하루하루를 돈이랑 바꾸는 경주마가 된 기분으로 살다가 어느 날 한꺼번에 찾아온 허탈감에 쓰러져 버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시발비용’이라는 신조어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시.발.비.용.
비속어인 ‘시발’과 ‘비용’을 합친 이 신조어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을 뜻한다.
자, 아래에 있는 문항에 해당이 되는지 안 되는지 솔직하게 답해보자.
1 사람을 만나면 나이부터 확인하고 나보다 어리면 반말한다.
2 요즘 젊은이들은 노력은 하지 않고 세상 탓만 하는 것 같다.
3 "내가 너만 했을 때"라는 말을 자주 한다.
4 고위 공직자나 유명 연예인과의 개인적인 인연을 자주 이야기한다.
5 후배가 커피를 알아서 대령하지 않으면 불쾌하다.
6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라고 했는데 나중에 보면 내가 먼저 답을 제시했다.
7 후배나 부하직원의 옷차림과 인사예절도 지적할 수 있다.
8 내가 한때 잘나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9 연애나 자녀 계획 등의 사생활도 인생 선배로 답을 제시해 줄 수 있다.
10 회식이나 야유회에 개인 약속을 이유로 빠지는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
11 내 의견에 반대한 후배는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
12 나보다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13 나보다 늦게 출근하는 후배가 거슬린다.
14 후배의 장점이나 성과를 보면 반사적으로 단점을 찾게 된다.
15 "○○란 ○○인거야"와 같은 진리명제를 자주 사용한다.
가구나 그릇, 지갑, 신발 같은 생활용품들은 아무리 조심스레 다루어도 흠집이 날 수밖에 없듯이, 우리도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흠집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감추거나 외면해서 병을 키우지 말자. 정확하게 아는 것만으로 견디는 게 훨씬 수월해지니까.
모두에게 조금씩은 그런 모습이나 증상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우리는 서로 조금씩 조금씩 비슷한 사람들. 다들 그렇게 견디고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특별히 잘났다는 생각은 말리지 않겠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특별히 못나거나 불행하다는 생각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게 입을 다물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 차별을 없애고 소수자 배제를 없애려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그때까지 재밌어 보이고 많이들 쓴다는 이유로 아무 말이나 함부로 주워서 쓰지 않는 것이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 아닐까?
"인간은 오락이나 휴식과 마찬가지로 일에도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을 좋아한다. 상이나 벌 때문이 아니어도 인간은 스스로의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하지만 ‘무민세대’는 이 무민과 관련이 없다. 없을 무 ‘無’에 의미를 뜻하는 영어 단어 ‘mean’을 더해, ‘의미 없음’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를 가리킨다고 한다. "아이고, 의미 없다"는 유행어와도 연결된다.
요즘 청년들을 ‘살코기 세대’라고 불린다는 사실에 멈칫하게 된다. 귀찮고 영양가 없는 관계는 피하고 꼭 필요한 관계만 맺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지독한 현실을 생각하면 합리적인 것 같으면서, 여전히 팍팍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는 내가 지킨다
"무례한 상황을 그냥 넘기지 말아야 한다", "무례한 사람에게 분명하게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라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막상 그런 일이 생겼을 때, 마음먹은 대로 대처하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착하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을 제 입맛에 맞게 조종할 수 있는 간편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착하다’는 말을 계속 듣다보면, ‘난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할 말을 참는다든지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의 요구는 더 많아지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더욱 힘들어진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나는 너무 괴롭고 힘든데도 다른 사람들이 바라는 모습을 연기한다는 것. 속으로는 울면서 겉으로는 웃게 된다. 내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너무 끔찍한 일이다.
지금도 자신의 경기장에서 외롭지만 당당하게 페어플레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박수받는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슬럼프에 빠졌다면 책을 읽어라. 책을 읽는 것은 무조건 남는 장사다."
하루 5분 공부 각오 : 365일 절대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 힘 | 한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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