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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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 하~~~~~~악

 

    일단 시작하기 전에 이외수 씨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 자락 하고 시작해야한다. 혼났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번 혼 났다.그 혼난 부분이 어떤 부분들인지 하나 하나 조목을 따져가며 이야기해보고 싶지만 인용을 잠시 보류해야한다. 왜냐하면 이외수 씨께서 책에서 인용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하셨거든 (168번 참고하시면 된다)뭐 다 이해하신다지만 하락받고 쓰려면 시간이 좀 걸리고 지금 내가 가진 느낌을 잊어버릴테니까 그냥 한 번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아 또 죄송한 것 한가지 껍데기만 보고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에 불과하니 쓸데 없는 소리라고 생각하시고 만약 이 글을 보신다면 눈을 씻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책의 언저리에서 책을 뜯어먹고 사는 하이에나 같은 놈이니 대자대비하시고 달통하신 분이 용서하시길 빈다.

 

    <하악하악>은 그 장르를 규정하기 힘들다.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짧고 잠언이라거나 경구라고 하기엔 좀 길어보인다. 그냥 책의 카피처럼 이외수의 생존법이라고해야할까? 개인적으로는 이외수의 생각 덩어리라고 부르면 좋지 않을까 했다. 물론 이전에도 생각의 덩어리들을 뱉어낸 책들은 몇몇이 있었다. 감성사전류라고 불릴 몇몇의 책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하악하악>은 그것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전의 생각의 덩어리들은 하나의 사물이나 현상에 천착하여 곰삭은 글들이어서 무릎을 탁 치며 '아하'하고 깨닮음을 주는 사유의 육즙이 뚝뚝 흘러넘치는 생사유를 유발하는 침묵의 시간이 긴 언어였다면 <하악 하악>은 인터넷으로 많은 네티즌과 소통을 시도하셔서 그런지 문장들이 행간을 걸어서 일으키는 침묵보다는 읽는이로 하여금 대답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술회했다. 한 문장 문장을 읽어보고 내 생각은 이러하다고 말해보려고 생각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왠지 꼭 대답을 요구하는 것 같은 소통을 요구하는 것 같은 문장들이 가득하다. 툭까놓고 들이대는 물음에 대답하다보면 이미 책의 끝 장을 보게 된다.

 

    인터넷에서 구사되는 어휘가 자유자재로 구사되는 이외수 씨의 문체를 보면서 나보다도 인터넷 언어에 능숙하고 능란하다는 생각을 했다. 문장을 읽어가면서 몇몇 단어들은 도저히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을 쓰신다. 글을 쓰는 사람의 당연한 직업의식일까? 나는 읽으면서 털썩했고 세상살이 하악하악해야하면서 대략난감했다. 이외수 씨의 표피인 문장을 겨우 읽고 있는 나는 어쩌면 닥치고 즐쳐드삼하셔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나는 닥치고 즐쳐드실 준비가 되어있다. 애효 오나전 캐안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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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가족 세이타로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소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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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알콜 중독자 아버지 , 고등학교 때 출산을 한 누나 , 중학교 이후 학교를 다니지 않는 형 . 어머니 그리고 정신 지체아인 나가 모여서 가족을 형태를 이루었지만 가족이라는 것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이었다. 그 불안전한 가족이 완벽하게 소통하고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를 드러내는 때는 역설적이게도 다른 사람들의 가족 역할을 대행해주는 그 시간 3시간뿐이다. 그래서 나는 가족을 대신해주고 돈을 받는 대행가족의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란다. 가족은 붕괴되었다. 단절되어 소통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져서 진행된다. 천반부는 대행가족을 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들이고 후반부는 유랑극단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전반부에서는 대행가족의 역할을 하지만 자신들의 성격을 이기지 못하고 일을 저질러 버리는 에피소드들이 나열된다. 전반부는 웃으면서 사람을 끌어들이는 광대의 모습과 같아 보인다. 후반부는 이제 연극에서 클라이막스를 향채 치닺는 것과 같이 정점을 향해 달려간다.

 

    후반부에는 유랑극단이 연극을 하는 과정을 재미있게 서사하는데 , 흩어졌던 가족들이 하나 둘 모여서 연극 중의 인물을 연기하게된다. 설정되어진 연기를 하면서 깨어진 부분들을 연결해나간다. 연기라는 것이 틀이 정해져 있지만 대사를 반복하고 행위를 반복하는 것보다 임현식 선생처럼 대부분이 에드리브인 연기자들도 있듯이 사이사이에 끼어들어오는 에드리브로 깨어진 가족이 서서히 붙기를 시작한다. 이것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을 성취하려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지만 결국에는 연극판이라는 곳에 모여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을 충실해 해낼때 관객의 박수를 받기도 하고 팁도 받고 두루두루 좋아진다. 가족에게도 각자가 맡은 역할이라는 것이 있다. 부모는 부모의 역할이 있고 자식은 자식의 역할이 있다.. 잠시의 일탈을 뒤로 하고 연극으로 돌아온다 가족의 해체는 다시 가족의 형성으로 막을 내리면 좋겠지만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미완의 모습으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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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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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 농장>으로 너무 잘 알려진 조지 오웰의 글 <1984>는 조지 오웰이 쓴 가까운 미래에 대한 이야기다. 조지 오웰이 그리는 미래의 이미지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처럼 지극히 부정적이고 음울하다. 자유로운 미래가 아닌 고도로 통제되는 미래상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기계화되고 , 문명화된 시대를 다시 한 번 되돌아 보게 만든다.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표어는 현대에도 통용된다. 곳곳에 노출되거나 숨겨진 감시 카메라가 사람들의 모습을 알게 모르게 감시하고 있고 우리가 쓰는 휴대폰은 이미 위치 추적이 가능하고 주행중 목적지를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은 역으로 생각하면 우리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꼴이다. 텔레비전을 보는 것은 좋은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되지만 국가 권력이나 이해관계와 밀월관계를 가지면 어떤 이미지나 가치를 세뇌시키는 도구로 쓰인다. 대중의 통제가 가능해지지는 것과 같다. 이러한 문명의 혜택이 정말 자유스러운 것일까 자유는 예속이라는 글 속의 문장이 딱 들어맞는다.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교한 테두리 안에서 제단되고 감시된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은 그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트루먼 쇼>를 본 기억이 있는가 한 사람의 삶이 카메라 안에서 보여지고 통제된다. 한 사람의 삶 자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1984>는 영화 <메트릭스>를 생각하게도 만들었는데 네오와 윈스턴이 겹쳐지는 것 같은데 결정적인 부분에서 윈스턴은 비참했다. 모피어스를 만나지 못한 것이 문제다. 줄리아와 만나서 일타을 꿈꾸지만 완벽한 일탈이 될 수 없었다. 네오는 빨간약과 파란약 중에 파란약을 먹었지만 윈스턴은 빨간 약을 먹었다. 자의에 의해서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삼켜진 약은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1984>는 윈스턴이라는 개인이 거대한 권력 앞에서 어떻게 무참하게 부서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 편의 서사이다. 가차없이 부서진다. 갈기갈기 부서지고 존재가 없어지고 껍질만 남는다. 그 껍질이 본질을 대신해 그 사회와 문명에 맞게 재단된 형태로 살아 숨쉰다. 살아 있어도 살아있지 않은 좀비들의 세상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미래의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미래가 아닌 현재의 문제이다. 현대는 개성이 획일화를 앞서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개성조차도 만들어지고 계산된 수 많은 경우의 수 중에 하나일 뿐이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좀비다. 나도 너도 우리도 모두 다를 바 없다.  <1984>는 과거에 쓰여졌지만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보다 현대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글이다. 이 현대는 진화하는 현재여서 다시 다가올 미래에도 항상 현재를 보여줄 것이다.

 

    깨어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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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가족
공선옥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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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공선옥의 소설을 읽는 것은 불편하다. 굳이 불편한 이유를 말해보라고하면 너무나도 사실적이어서 불편하다. 글을 읽는 사람들에겐 어쩌면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도피심리가 천형처럼 뿌리내려있는데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다른 세계로 도망쳤던 독자들은 더욱더 핍진한 세계를 만나게 되어 불편하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가공되어 극악스럽다거나 다소 과장된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담담히 서술해내는 공선옥의 시선이다.

 

    <유랑가족>에 나타난 공선생의 문장은 담담하다. 이러한 담담함은 그저 담담하고 무던한 문장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다듬고 다듬어서 뭉툭하고 별것 아닌 것 같은 문장이라고 할까? 이러한 문장들은 독자들의 눈시울을 자극하기보다는 저 밑 어딘가에 있는 심장을 관통한다. 정맥을 관통당해 과도한 출혈로 죽음에 이르는 것처럼 공선옥의 문장들은 독자의 심장을 뚫은 후에는 멈출 수 없어 보인다.  

 

  <유랑가족>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 아내들이 도망가고 아낼르 찾으러 다니는 일용직 노동자들 , 시골에서 도망와서 노래방 도무미로 전전하는 아줌마 ,  동네를 버리고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야 하는 사람들 , 동네가 수몰되어 동네를 떠나야 하는 사람 보호자가 없어진 아이들이 등장한다. -  들리는 풍문에 공선생은 가난에 대한 이야기에 천착했다고 한다. 가난이라 산업화 이후에는 작가들에게도 금기의 영역이 되어가고 있는 가난이라는 주제에 천착하는 공선생의 시선은 과장되지도 않고 ,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작가의 치기어린 , 혹은 섣부른 희망의 메세지를 심어두는 것을 쉬이 용납하지 않는다. 싸구려 센티멘털리즘을 , 로멘티즘을 경계한다. 현실은 로망이 아니므로 현실은 그저 현실일 따름이므로 .......팍팍한 세상을 팍팍하게 기록하기는 어쩌면 공선생이 쓰는 소설의 의무 혹은 임무처럼 보인다.

 

  <유랑가족>은 연작 소설이다. <겨울의 정취> <가리봉 연가> <그들의 웃음소리> <남쪽 바다 푸른 나라> <먼 바다> 총 5편의 단편들이 방민호 선생의 표현을 빌자면 모자이크처럼 병치되었다고 하는데 , 내가 생각하기에는 병치라기 보다는 퍼즐에 더 가까워 보인다. 조각 조각들이 흩어져 있으면 독립된 하나의 이야기지만 서로 연관되어 나타난다. 굳이 연관성을 따지자면 <겨울의 정취>와 <가리봉 연가> 정도가 확연히 연관성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다른 작품도 사진작가 한이라는 인물을 매개로 연관성을 가진다. 여럿의 에피소드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퍼즐을 완성하면 번듯한 모양의 그림이 완성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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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륭 소설의 창작 원류
임금복 지음 / 푸른사상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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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수많은 소설가 중에 박상륭이라는 소설가가 있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는 하지만 저 멀리 있는 그의 이름과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많은 전설과 같은 이야기들 - 소설에 주석이 달려있다더라.주석의 종류가 장난이 아니라더라. 소설이라고 썼다는데 소설같지 않고 철학책 같다더라 기타등등- 이 풍문에 들리기만하는 작가다. 이러한 작가의 소설을 분석한 책이 등장했다는 풍문을 듣고 읽어 보기 시작했다.

 

    박상륭의 소설은 <아겔다마>에서 시작해서 <소설법>에 이르고 있는데 이 책이 출간될 당시 <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가 나온 상태였고 <소설법>은 출간되지 않은 상태여서 <소설법>은 기본 텍스트에서 빠져있다.

 

   박상륭이라는 작가는 소설가라고 말하기보다는 잡설꾼이라든지 패관꾼이라고 - 어느 강연회에서 스스로를 소설가보다는 잡설꾼에 가깝다고 스스로 고백한 적이 있따. - 불러야한다. 그의 소설은 하나의 거대한 사유이며 그 사유 혹은 생각의 바다를 유영하기 위해서는 잡스럽게도 많은 비유와 상징을 끌어다 대고 암리타를 만들기 위해 젖의 바다를  휘젓듯이 잘 섞어서 혼합시켜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 속에서 원래 전해지던 이야기는 화현 - 눈에 보여짐 - 혹은 비화현 - 형이상학적 의미 - 의 전신을 치르게 된다. 잡설꾼이 자기 이야기를 해보기 위해 끌어들이고 변질시킨 원전을 찾아 보고 원전이 어떤 형태였는지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 책의 임무인 것 같아 보인다.

 

   책은 원류를 밝히고 그 원류가 어떤 식으로 책에 차용되었는지 언급한다. 그러니까 시지프스 신화는 박상륭 작품 중에서 어디 어디에 언급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저자의 의견이 제시되고 원류들이 어떤 식으로 책에서 차용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박상륭이라는 거대한 텍스트를 처음 들어서는 사람들이 읽기에 좋은 구성이고 안내서이고 통계자료이다. 처음 박상륭을 읽었을  때 어디서 본 듯한 수 많은 이야기들의 출현에 놀라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주석에 따라서 그 이야기들이 어디서 발췌되고 어떻게 변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아게 된다면 조금더 부드럽게 박상륭이라는 텍스트를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거친 바케트 빵에 진한 커피를 찍어 먹을 때 느껴지는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책이 출간되었다는 건 참으로 고마운 일이기는 하다. 이러한 텍스트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등장하는 신과 많은 참고서적들을 후벼파면서 읽어야 박상륭의 잡설이 뭔 소리를 지껄이는 알아들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칭찬은 여기까지 ......

 

    이 책은 재판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나라 춮출판계의 여건상 재판될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눈에 거슬리는 것은 손과 발을 다 써야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의 잘못된 글자와 잘못된 문장 - 어떤 부분에서는 한 문단 전체가 두번 반복되기도 했다 -  이 있다는 것이다.  표지 디자인이 여인네의 화장발이라면 깨끗한 문장과 이야기는 여인네의 생얼이다. 아무리 포장지가 그럴듯하다고 한들 문장이 험하면 멀리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 저자가 잘못된 원고를 넘겨주더라도 교열자 혹은 교열팀이 꼼꼼히 챙겨 봐야하는 것이 아닐까? 누구를 위해서라고 말한다면 혹시라도 모를 나 같은 무지한 독자들을 위해서라고 말해주겠다.

 

( 나같이 소심한 독자는 실망한다. 포스트  잇 딱딱 붙여가며 이 문장은 여기가 잘못되었고 이 단어는 문맥상 오기가 틀림없다라고 쓸지도 모른다. 이렇게 쓰다보면 책장 사이에 포스트잇으로 넘쳐날 때가 있는데 꼭 성형수술 견적서 같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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