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수많은 소설가 중에 박상륭이라는 소설가가 있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는 하지만 저 멀리 있는 그의 이름과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많은 전설과 같은 이야기들 - 소설에 주석이 달려있다더라.주석의 종류가 장난이 아니라더라. 소설이라고 썼다는데 소설같지 않고 철학책 같다더라 기타등등- 이 풍문에 들리기만하는 작가다. 이러한 작가의 소설을 분석한 책이 등장했다는 풍문을 듣고 읽어 보기 시작했다. 박상륭의 소설은 <아겔다마>에서 시작해서 <소설법>에 이르고 있는데 이 책이 출간될 당시 <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가 나온 상태였고 <소설법>은 출간되지 않은 상태여서 <소설법>은 기본 텍스트에서 빠져있다. 박상륭이라는 작가는 소설가라고 말하기보다는 잡설꾼이라든지 패관꾼이라고 - 어느 강연회에서 스스로를 소설가보다는 잡설꾼에 가깝다고 스스로 고백한 적이 있따. - 불러야한다. 그의 소설은 하나의 거대한 사유이며 그 사유 혹은 생각의 바다를 유영하기 위해서는 잡스럽게도 많은 비유와 상징을 끌어다 대고 암리타를 만들기 위해 젖의 바다를 휘젓듯이 잘 섞어서 혼합시켜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 속에서 원래 전해지던 이야기는 화현 - 눈에 보여짐 - 혹은 비화현 - 형이상학적 의미 - 의 전신을 치르게 된다. 잡설꾼이 자기 이야기를 해보기 위해 끌어들이고 변질시킨 원전을 찾아 보고 원전이 어떤 형태였는지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 책의 임무인 것 같아 보인다. 책은 원류를 밝히고 그 원류가 어떤 식으로 책에 차용되었는지 언급한다. 그러니까 시지프스 신화는 박상륭 작품 중에서 어디 어디에 언급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저자의 의견이 제시되고 원류들이 어떤 식으로 책에서 차용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박상륭이라는 거대한 텍스트를 처음 들어서는 사람들이 읽기에 좋은 구성이고 안내서이고 통계자료이다. 처음 박상륭을 읽었을 때 어디서 본 듯한 수 많은 이야기들의 출현에 놀라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주석에 따라서 그 이야기들이 어디서 발췌되고 어떻게 변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아게 된다면 조금더 부드럽게 박상륭이라는 텍스트를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거친 바케트 빵에 진한 커피를 찍어 먹을 때 느껴지는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책이 출간되었다는 건 참으로 고마운 일이기는 하다. 이러한 텍스트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등장하는 신과 많은 참고서적들을 후벼파면서 읽어야 박상륭의 잡설이 뭔 소리를 지껄이는 알아들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칭찬은 여기까지 ...... 이 책은 재판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나라 춮출판계의 여건상 재판될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눈에 거슬리는 것은 손과 발을 다 써야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의 잘못된 글자와 잘못된 문장 - 어떤 부분에서는 한 문단 전체가 두번 반복되기도 했다 - 이 있다는 것이다. 표지 디자인이 여인네의 화장발이라면 깨끗한 문장과 이야기는 여인네의 생얼이다. 아무리 포장지가 그럴듯하다고 한들 문장이 험하면 멀리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 저자가 잘못된 원고를 넘겨주더라도 교열자 혹은 교열팀이 꼼꼼히 챙겨 봐야하는 것이 아닐까? 누구를 위해서라고 말한다면 혹시라도 모를 나 같은 무지한 독자들을 위해서라고 말해주겠다. ( 나같이 소심한 독자는 실망한다. 포스트 잇 딱딱 붙여가며 이 문장은 여기가 잘못되었고 이 단어는 문맥상 오기가 틀림없다라고 쓸지도 모른다. 이렇게 쓰다보면 책장 사이에 포스트잇으로 넘쳐날 때가 있는데 꼭 성형수술 견적서 같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