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빈 방에 달빛 들면 - 조선 선비, 아내 잃고 애통한 심사를 적다
송시열.이인상 외 지음, 유미림.강여진.하승현 옮김 / 학고재 / 2005년 4월
평점 :
제문에 남길 수 밖에 없었던 아내에 대한 마음, 그 흔적들
<빈 방에 달빛들면>이라는 책은 옛 문집에서 제문들만 추려내어 묶은 일종의 선집이다. (제문은 죽은 사람에 대하여 애도의 뜻을 나타낸 글인데 흔히 제물을 올리고 축문처럼 읽는 글을 말한다.). 남편이 죽어버린 아내에게 하고싶은 말을 적은 글이다. 제사 때 낭독하면서 죽은이를 그리워 하는 글이다.
선비들이라고 하면 외형적으로는 대의와 명분을 그리고 꼬장꼬장한 기품을 드러내고 고아하고 단아한 기품을 드러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말은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해보자면 고리타분하고 모든 감정을 절제하여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과도 의미는 같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조선 선비 , 아내 읽고 애통한 심사를 ...'이라는 단순한 카피 때문이었다.. 선비라는 글자에서 느껴지는 고리타분함이 어떻게 부서지고 뒤틀어질지 , 아내의 죽음에 있어서는 조금은 진정성을 가지고 슬퍼하는 마음을 나타내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마음속에서 일어났다.
책에는 많은 죽음들이 있다. 전쟁의 참화에서 죽어간 부인에 대한 기억도 있고 , 너무 이른 나이에 정도 느끼기 전에 죽어버린 부인의 이야기도 있고 , 남편이 유배와 있을 때 쓸쓸히 죽어간 부인의 이야기도 있고 다 늙어가는 노년에 남편을 남겨두고 죽어간 노부인의 이야기도 있고 ,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의 이야기도 있다. 총 49편의 제문이 선별되어 묶여있다.
처음 기대했던 선비들의 내면을 보고 싶다던 개인적인 바램은 처음 몇 편의 글을 읽으면서 산산히 부서져버린다. 제문이라는 것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떠한 격식이 있는 문장인듯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 대충을 보면 이렇다. 누가 죽어서 누가 이 글을 쓴다는 것을 알리고 시집와서부터 시부모 잘 공경하고 , 집안 잘 다스리고 , 아이들 건사 잘 하던 부인이 죽어서 슬프다. 아 이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의 걱정은 부모님 건사와 아이들 키우긴데 이를 어찌 할꼬 슬프다. 이러한 심사를 제를 지내면서 읊는다. 정도의 구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럴 때 한 마디 선비들이었다던 그 남정네들에게 한 마디 해줘야 한다. 글 속에 자신의 마음을 감추어 짐짓 감추지 말고 글 속에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어 잠시라도 울어야 하지 않니?
제문을 읽다가보면 부인을 칭찬하는 것은 몇 유형이다. 첫째 부모님 공양 잘 했고 , 둘째 집안 살림을 일으켰으며 ,, 셋째 아이들도 잘 길렀으며 넷째 남편에게 외조를 잘했다 정도로 축약된다. 그런데 이런 말은 이상하게도 사랑하는 내자의 위치가 아니라 며느리이며 부인이며 어머니의 위치만을 강조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중매 결혼이 많았으니 연애 결혼의 알콩달콩함을 기대한다는 것이 무리일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동고동락을 했던 사람에게 ' 내 니 사랑한데이 근데 니 없으니까 허전하고 외롭데이'정도의 표현은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가장 슬픔을 드러낸 말이 제문의 곳곳에 배열된 '오호애재라 오호통재라'정도다 최고로 감정을 표현한 말이지만 이미 너무 격식화 되어 개인이 느끼는 슬픔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제문을 읽다보면 부인을 원망하는 소리도 들린다. 두가지 유형인데 첫째 부모님 공양은 어찌하라고 죽어버렸냐는 것이고 둘째 아이들을 어찌 혼자 키우라고 죽어버린 것이냐고 원망하는 소리다. 이런 두 가지 유형의 이야기들은 제문 곳곳에서 나타난다. 죽어서 슬프다가 아니라 남아서 할 일이 많은데 죽어버리니 어쩌란 말이냐라는 툰데 이것은 일종의 투정이다. 당신이 할 일이 많은데 죽어버리면 안된다. 다시 돌아오라 . 당신의 빈자리로 다시 돌아오라라는 투정으로 들린다. 자 이쯤 되면 우리는 선비에게 노래 한자락 선물해야한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
아 이건 여담인데 페미니스트를 자처하시는 여성분들이시라면 이 책을 읽지 않으시길 감히 권해드린다. 아마도 읽다가 복장터져 죽을지도 모르고 읽다가 성질나서 애꿎은 책만 발기발기 찢어버릴지도 모른다. 읽다가 선비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귀싸대기를 왕복으로 날리고 싶어서 미칠지도 모른다. 그러니 제발 읽지 말고 그냥 지나가라 아차 강력한 부정은 강한 긍정으로 받아들이고 읽으려고 노력하시는 분들 계시겠다. 그런 사람까지 내가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참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것이 두가지 생겼다. 허난설헌이 죽었을 때 그녀의 부군이 제문이라도 썼을까? 두번 째 부인을 맞은 것은 알고 있는데 갑자기 궁금해지고 , 왕들은 왕비들이 먼저 죽으면 제문을 썼을까 문득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