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 - 논픽션총서 1
안인희 지음 / 민음사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박상륭을 처음 접할 때 - 어부왕의 전설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 의 일이다. 그저 문학읽기에 젖어있던 나는 박상륭의 문학을 접하면서 문학이 문학 이외의 영역을 얼만나 흡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문두름처럼 아가리를 벌리고 들어오는 것은 모조리 다 먹이로 삼는다. 박상륭의 손아귀에서 바스라지고 재구성된 것은 신화였다. 신화의 겉이라도 핥지 않고서는 무의미한 읽기였다. 이 때까지만해도 나는 신화에 대해 무지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껍질만 알고 그 내용 조차도 알지 못한 상태였다.
신화는 상상의 투사이면서 역사의 소산이기도 했다. 상징과 비유의 옷을 입으면서 역사는 신화의 그늘 속으로 들어갔고 부풀려지거나 윤색된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후대에 채집되어 신화의 꿰미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신화에서 잊혀져버린 옛날의 영광과 영웅들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신화라고 하면 <신화의 바다>(박영혜 , 정경남, 숙명여자 대학교 출판국)를 이야기할 때도 언급한 일이 있지만 신화를대표하는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였다. 교양있는 사람인 척이라도 하려고 하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언급된 한 부분 정도는 알고 있거나 이야기해줄 수 있어야 했다. 모든 신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망토 아래에 감추어지거나 드러나기를 꺼려했다.
진실은 언제라도 어떤 방법으로라도 밝혀지기 마련이어서인지 신화를 읽다가 그리스 로마 신화뿐만 아니라 다른 신화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 감추어진 얼굴들을 찾아내어 읽었다. 북유럽 신화, 수메르 신화, 인도신화, 아랍신화와 많은 지역에서 자생하고 있는 신화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의 기질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화려함보다는 가리워진 것들에게 시선을 돌리게 했다. 책들을 구경하거나 읽을 때 어떠한 종류의 신화라는 활자에 먼저 시선을 주었다. 다양한 신화의 의미는 그 때마다 다른 옷을 입고 나의 곁으로 왔다.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는 그런 의미에서 내가 눈여겨 본 책이다. 바그너와 히틀러에 관심이 간 것이 아니라 '게르만 신화'라는 것에 주목했다. 북유럽신화의 또다른 이름 게르만 신화가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오딘과 로키 지크브리트 라그나뤼크 아스가르드 그리고 신이면서 죽음을 맞이해야했고 멸망을 맛봐야했으며 다시 세계가 재구축되는 것이 그리스 로마 신화들과는 차이가 있어서 눈여겨 보고 있는 신화였다.
첫 부분에서 몇 가지의 신화의 원형을 밝히는데 이 신화는 다음에 언급될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바그너에 의해 변형되고 수용된다. 변형되고 수용되기 이전의 원형을 짚어 볼 수 있는 기본 골격을 제시한다. 바그너의 경우 <니벨룽겐>에서 신화의 차용이 가장 돋보이는데 <반지의 제왕>에서도 나오는 절대반지에 얽힌 슬픈 혹은 잔혹함을 비극적으로 보여준다.
두번 째 부분에서는 바그너의 생애와 그의 작품들을 분석하고 있다. 오페라에서 반영된 바그너의 사상이라던지 개인적인 사생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래도 주목해야할 것은 그의 작품들이며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작품이 대중에게 어떻게 전달되게 장치했는가다. 이것은 저자가 히틀러와의 연관성의 고리를 만드는 논리적 장치로 이용된다. 바그너의 오페라의 경우 음악이 적재 적소에 사용되었고 전체는 불화하지만 부분은 아주 섬세한 오페라를 만들고 이야기보다는 무대 효과 즉 부분에 치중함으로서 대중적인 인기를 획득한다는 점을 설명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중대한 문제는 예술이 도구가 되면 그 순간 잠재적인 폭발력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 폭발력은 순기능을 할 수도 역기능을 할 수도 있다.
바그너의 이러한 연출은 니체에 의해 공격을 받는데 니체는 초기 바그너를 숭배하였으나 후기로 갈수록 바그너의 그릇된 오페라의 한계를 "젊은이들이나 예술에만 빠진 멍청이들 , 여자들 , 그리고 민중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복잡하고 섬세한 예술적 취향은 잊어버리고 작은 아름다움을 감각성과 함게 버무리고 도덕적인 겉모습을 취하고 거대 양식을 동원해 그들의 생각을 지워버리고 , 볼거리가 풍성한 대평 무대를 제공하라 그리고 실제 의도는멋진 표현 형식으로 감사 잘 보이지 않게 살그머니 내놓아라"(269)라고 지적한다. 대중예술이 예술의 한 부분이 아니라 가리고 선동할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러한 바그너에 대한 니체의 지적은 앞으로 다가올 데카당스적 미래에 대한 예언 " 바그너의 음악이 단순히 음악과 예술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임을 알아보았다. 그것은 대규모 무대 효과를 통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최면을 걸어 특정한 방향과 주제를 향해 이끌어간다. 그의 무대는 사람들의 이성이나 예술적 취향이 아니라 오로지 감각성에 말을 걸기 때문에 강력한 세뇌 효과를 가진다"(267)고 말한다. 이러한 니체의 예언을 그대로 이용한 사람이 히틀러다.
세번 째 부분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히틀러이다. 히틀러의 생애와 세계관이 소개된다. 바그너가 히틀러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논지를 정리하고 있는데 이 것은 조금 문제가 있다. 히틀러가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히틀러가 바그너의 무대 연출론을 차용하여 정치 선전에 이용한 것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하는데 영향을 받았다고 하면 히틀러 뒤에서 조종한 사람이 바그너여야 하지만 히틀러가 정계에 등장할 때 쯤 바그너는 죽고 없다. 즉 히틀러와 브람스의 유사점을 이야기할 수는 있어도 영향 관계를 설명한다는 것은 논리적인 한계가 있어보인다.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의 논리적 취약점은 장정일의 공부 중 <바그너의 경우>에 언급되어있다.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를 읽고 궁금하다면 읽어봐도 좋다. 장정일의 글에서 읽으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나 미약했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제시한다.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에서 게르만 신화에 관심이 생겼다면 안인희가 쓴 <북유럽신화1,2>를 더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고 바그너의 한계 혹은 니체와의 대립에 관심이 있다면 <니체 전집 15>(책세상)의 '바그너의 경우'를 읽어 보면 될 것이고 히틀러에 관심이 생겼으면 시중에 나와있는 히틀러의 자서전이나 관련 서적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