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창 시집 - 개정증보판 한국의 한시 14
허경진 옮김 / 평민사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도서관에 갔다 지인이 알려준 <백호 임제 시선>을 찾으러 들른 서가에서 눈에 들어온 시선이 있었다. 겨우 한자 까막눈만 면한 눈에 '매창'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련한 이름이었다.기생이었고, 송도 '명월'을 논할 때 항상 언급되었던 이가 부안 '매창'이었다. 이름만 들었을 뿐 시선을 만나지는 못했는데 인연은 이렇게 불현듯 오는 모양이다.

 

매창은 부안에서 계유년에 태어났다고 해서 계생으로 불렸다고 한다.기생이 된 후 애칭으로 쓰인 것은 계랑이다. 스스로 '매화 핀 창가'라는 의미로 '매창'이라는 호를 지어 불렀다는 기록이 『매창집』발문에 전한다.

 

시는 글을 쓰는 사람의 굽이 굽이 휘돌아 치는 내면을 사려둔 똬리를 풀어내는 것이어서 시를 읽을 때에는 자연히 그 사람의 내면을 문장으로 더듬는데 헌주름 위에 새주름이 잡히더라도 그 헌주름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매창의 시에서는 그리움이 묻어난다. 그리움은 내일 돌아올 그린이에 다한 옅은 그리움은 아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어쩌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그린이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그리움을 먹고 자라서 서글픔과 시름이 되고 한탄이 된다. 기생이라는 신분에서 받아들였어야 할 천형이었을 받아들임과 떠나보냄은 흔한 일이이다.  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어쩌면 기생의 최고의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매창은 지금도 매화 핀 창가에서 '동짓달 기나긴 밤 허리를 잘라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그리운 님오시면 굽이굽이 필'(황진이 시조)요량을 하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매창의 그리움은 어떤 그리움이었을까? '어젯밤 찬 서리 내려 / 가을 날시어 기러기는 울어예고 / 남의 옷 다듬질 하던 아낙네는 / 걱정되어 다락에 올랐어라 / 하늘 끝까지 가신 님은 / 편지 한 장도 보내지 않으니 / 높다란 난간에 홀로 기대인 채 / 남모를 시름만 그지없(어라)<가을날에 님 그리워하며>'는 그리움이었을까? 소나무처럼 늘 푸르자 맹세했던 날 / 우리의 사랑은 바닷속처럼 깊기만 했어라 / 강 건너 멀리 떠난 님께선 소기도 끊어졌으니 / 밤마다 아픈 마음을 나 홀로 어이할(까나)<옛님을 그리워하며>'지 모르는 그리움이었을까?

 

매창은 정자에 올라 떠나간 이를 그리워 한다. '사면 들판에 가을빛이 좋기로 / 혼자서 강언덕 정자에 올랐어라 / 어디서 온 풍류객인지 / 술병을 들고 날 찾아오(네)<강가 정자에 올라>' 는 풍류객이 그리움의 달래주지는 못한다. 그리운 이를 기다리는 사람은 차츰 차츰 말라간다. 시름시름 앓아간다.

 

'긴 뚝 위의 봄풀 빛이 너무나 쓸쓸해서 / 옛님이 오시다가 '길 잃었나' 하시겠네 / 예전에 꽃 만발해 같이 즐기던 곳도/ 산에 가득 달만 비추고 두견새 우는구나 / 지난해 오늘 저녁은 즐겁기만 해서 / 술잔 앞에 이 몸은 춤까지 추었지 / 선선의 옛님은 지금 어디 계시고 / 꽃잎만 그 봄인 양 섬돌 위에 깔렸네<봄날의 시름>'라고 말하는 매창은 같이 노닐었던 공간에서 기억으로 살며 혹시나 길 잃어 오지 못하실지도 모르다면 시름시름 앓기도 하고  '비 뒤에 찬바람이 댓잎자리에 들고 / 한바퀴 밝은 달은 다락 머리에 걸렸어라 / 외로운 방에선 밤새도록 귀또리가 울어 / 이 내 마음 부서지고 시름만 가득 쌓이네 / (중략) / 고요히 사려는 나의 뜻 / 세상 사람들은 아지 못하고 / 제멋대로 손가락질하면 / 잘못 알고 있(어라)<시름에 겨워>'다고 항변해 보지만 세상 사람들에겐 들리지 않는 울림이어서 말하는 사람의 속내만 타들어 간다.  속이 타 들어가는 고통은 겪지 않은 사람은 말 못한 괴로움 매창의 견딤은 애처롭기가지 한데 떠난 님은 ' 봄날이 차서 엷은 옷을 꿰매는데 / 사창에는 햇빛이 비치고 있네 / 머리 숙여 손길 가는 대로 맡긴 채 / 구슬 같은 눈물이 실과 바늘을 적시(누나)<내 신세를 한탄하며> '는 매창의 마음을 알기는 하는지 모르는지 애석하게 편지 한장도 없다. 

 

자기를 키운 것의 팔 할이 바람이라고 고백했던 시인이 있었는데 매창 생의 팔 할을 차지한 것은 떠나간 임에 대한 그리움과 눈물'이다. 평생을 살면서 그녀의 생 속으로 틈입한 그리움과 눈물을 '독수공방 외로워 병든 이 몸에게 / 굶고 떨며 사십 년 길기도 해라 / 인생을 살아야 얼마나 산다고 / 가슴속에 시름 맺혀 옷 적시지 않은 날 없(네)<병들고 시름에 겨워>라고 고백한다.

 

몸을 섞어 나눈 사랑도 징그럽게 징하지만 , 마음을 나누어 나눈 사랑은 지독하다. 매창이 그렇게 사랑했던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촌은 유희경이다. 유희경은 매창과의 조우에서  소문으로만 듣던 매창을 만나고 보니 선녀가 하강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하고 다 때가 있는 법이니 만난 것도 인연이고 운우의 정을 나눠보자고 속삭이기도 했다. 만남이 있으면 대칭되는 곳에는 이별이 있는 법이다. 매창과 촌은은 헤어진다. 헤어져 지내면서 길을 걸으며 길 가면서도 매창이 생각난다고 말하기도 하고 서울과 부안이라는 물리적 거리 때문에 보지 못하지만 보고싶은 마음이 애가 끊어질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마음을 나눈다는 것은 애가 끊어질 정도로 지독하다.애가 끊어질 정도의 그리움의 고통은 눈물이 되고 눈물은 시가 되었다. 눈물 한 방울은 점점 퍼져나간다. 지금의 젊은 남녀들은 이 눈물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을까? 

 

남녀 간의 사랑이 헐값에 팔리는 요즘 - 애벌레님의 표현에 대한 오마쥬 -  시대의 남녀가 하룻밤 살내음으로 채워진 사랑을 천형처럼 감내해야 했던 기생이 한 사람을 평생 그리워 하며 살아갔던 마음을 알 수 있으려나?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금구 2012-02-22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생의 맛 문학의 힘

눈물에 젖은빵을 먹어보지아니한 사람은 인생을 논할자격없고 [빵맛이짜고]
오입 맛을 보지 아니한 사람은 인생을 말할 자격없고 [오입맛도짜고]
깨달음을 얻은 맛을 보지아니한 사람은 인생을 이야기할 자격없다 [깨달음맛도 짜다]

황진이 ㅇ김부용 ㅇ매창 ㅇ이세사람은 세가지맛을 다본 여걸이며 견문지식으로 애정에 목말라얻고 달고시고쓴맛 귀 천을 맛보고 고독으로 남긴 문학 이기에 그누구도 흉내를 낼수 없고 후세에도 영원히 기역 할것이다
 
일미리 일본어 첫걸음 - 일본에 미리 가는 일본어 첫걸음
커뮤니케이션 일본어 연구회 지음 / 사람in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언어에 대한 대책없는 호기심이 있기는 하다. 나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할 때면 저이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지낼까 궁금해지기도 하는데 저이들도 나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을 만나면 당황해서 굳은 표정이 되기보다는 간단한 인사라도 한 마디 할 수 있으면 타민족 간의 소통의 머뭇거림은 먼지만큼이라도 옅어지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천상 침묵을 못견뎌하는 성격도 한 몫한다.

 

저번에 재미삼아 중국어를 기웃거려봤는데 중국어는 중국어 나름대로 리듬이 참 마음에 들었다. 문장이 리듬을 타며 일렁거린다. 아마 문장이 춤추는 언어는 중국어 밖에 없지 않을까?

 

이번에는 일본어를 한 번 살펴봤다. 일본어는 사실 그 문자들의 이름을 외우기가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자국어 표기와 외국어 표기에 다른 문자를 쓴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혼동스러웠겠는가 이런 이유로 해서 한 참을 외우다가도 털어버렸던 기억이 있다.

 

『일미리 일본어 첫걸음』은 1권 2책 합본으로 출간되었는데 첫 권은 회화 위주였고 2권은 회화에서 발생하는 문법적인 요소를 설명하는 형식으로 되어있었다. 보통 한 권 안에 이것저것 다 설명하려다 보면 내용이 난삽해지기 마련인데 제대로 분리되어 있고 cd도 구비 되어있어서 한국 발음과 일본의 원어민 발음의 격차를 줄여주기 위한 것이다.

 

여행을 모티브로 일본의 부분을 설명하는 컨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나나'라는 캐릭터가 등장해서 상황에 맞는 것들을 이것저것 보여준다. 배우고 나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히는 상황들이 재미있는데 차근차근 시작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철도원>의 작가  '아사다 지로'의 책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을 만난 것은 검은 표지에 아련히 피어오른 한줄기 연기에서 아련함이 베어나왔기 때문이었다. 글을 다 읽으면서어쩌면 처음 생각했던 연기의 정체가 담배 연기가 아니라 망자들이 흠향하는 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기이한 세상의 인연과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는 책이다.

 

일곱 편의 이야기들이 한 책으로 묶여 나왔다. 아사다 지로의 이야기가 제목처럼 ' 슬프고 , 무섭고 , 아련한'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보인다. - 개인적인 견해에 불과하겠지만 -  '아련한' 느낌이 일곱 단편들의 정서를 이끌고 있다.  

 

어떤 인연의 끈도 가지지 못한채 생을 마감해야 했던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인연의 붉은 끈>에서 시작해서 비루해져버린 남자가 자가와 같은 존재이지만 반대 상황에 쳐해있는 존재를 알고 진정한 자기 존재를 숨기려 하는 <벌레잡이 화톳불> 집안의 반대로 혼인할 수 없었던 연인들이 외딴 별장에서 사람과 영혼으로도 결혼생활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뼈의 내력> 번화가에서 몰락해가는 병원을 지킬 것인지 떠날 것인지를 두고 고뇌하는 간호사의 이야기를 그린 <옛날남자> 자신의 잘못으로 죽어버린 여인일지도 모르는 손님에 대한 이야기인 <손님> , 죽음도 자각하지 못하고 자신이 살던 마을 앞을 지키는 군인과 연관된 이야기인 <원별리> 여우의 영혼에 몸을 점거당한 한 아이에 대한 이야기인 < 여우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아사다 지로의 글에는 극한의 슬픔이라던지 극한의 공포는 없어 보인다. 그저 담담하게 혹은 약간의 농현을 드리우듯 이야기를 펼쳐낸다. 그렇게 슬프지도 않고 그렇게 무섭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문체는 사람들로 하여금 조용히 몰입하는 효과를 발휘할지도 모르겠다.  '세븐 룸'의 오츠이치 같은 공포라거나 몽환적이라거나 무서움을 생각하고 아사다 지로의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을 읽을 사람들은 거의 90펀센트는 실망을 할 것이다.

 

무더웠던 여름도 이제 옛 기억이 되어가고 있으니 여름의 무더운 열기가 아니라 갈바람의 서늘함이라도 느껴볼 요량이라면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을 읽어보아도 좋을 것 같다. 혹시 모르니까 손수건 하나 준비해두어도 좋겠다. 눈물이 나거든 갈바람에 눈에 먼지가 들어갔다고 하면 그만일 따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 법의곤충학자가 들려주는 과학수사 이야기
마크 베네케 지음, 김희상 옮김 / 알마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호레이쇼가 권총을 들 때의 간지남을 기억하고 있기도 하고 길반장님이 곤충과 이야기를 나눌 때를 기억하고 있는 나는 <CSI> 시리즈의 광팬은 아니고 평범한 시청자인데 <CSI>의 영향인지 <KSPI>나 <별순검>도 즐겨봤다. 그러고 보니 모두 범죄물이다. 명확하게 말하면 수사에 과학을 접목해서 수사하는 수사물이다.

 

개인적으로 호레이쇼씨의 간지남을 좋아하긴 하지만 길반장님의 모습이 더 과학수사대같아 보인다. 길반장님이 주로 하는 이야기가  '곤충'과 주변 생물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러한 사소한 것들이 사건의 실마릴를 제공해준다. 드라마에서 보여지던 것을 실제 현장에서 뛴 경험을 가지고 있는 마르크 베네케가 실제 사건들을 예로 들어가면서 책으로 묶어냈다.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인데 초판은 1999년에 나왔고 증보판이다.

 

이 책은 크게 3장으로 나눠져 있다. 첫 장은 실례를 들어서 범의생물학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사체의 부패정도에 따라 기생하는 곤충들이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사망시간이나 사망장소들을 추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해낸다. 파리냐 딱정벌레냐로 얼마나 오래된 시신인지 그 종에 따라 사체가 이동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법의 생물학자가 하는 일은 유죄냐 무죄냐를 따지는 일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한다. 실험 결과는 사실을 말할 뿐이지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리라

 

두번째 장에는 유전자 감식의 변천사를 설명한다. 초기 유전자 검사에서 점점 발전하고 일반인들이 유전자 검사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 차근차근 설명한다. 또한 유전자 감식이 범죄자의 확인하는 것 외에 , 친자 확인에도 쓰이고 있다고 설명하고 실례들을 들어서  증명한다.

 

세번 째 장은 낡은 범죄생물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다. 범죄 생물학 혹은 유전학이 어떻게 오도되기 시작했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떤식으로 논리적 허구를 감추고 인종학으로 번져가게 되었는지 인종학에서 변질되었는지를 대표적인 학자들의 저서를 비판해가면서 논박하는데 결국 인종학이라는 것은 폐기되어야 하는 것이 옳고 인간은 모두 같다라는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세계국민'에게 히틀러에 대한 원죄감을 마르크 베네케는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전반적으로 후반부로 가면서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전문적인 용어들이 문장 속에서 유영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뒤에 용어설명하는 공간이 따로 마련이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녀의 눈물 사용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인들 사이에서 천운영의『그녀의 눈물 사용법』이 저벱 읽을만 하다는 풍문을 들은지는 한참이나 되었다. 세간에 쇼윈도우를 채우고 있는 밤의 매춘부처럼 희번덕거리는 베스트 셀러 코너에 활자화된 문구들이 만들어낸 소문은 아니었으므로 읽어볼 마음이 생겼지만 , 마음만 생길 뿐이었다. 책이 서가에 꽂히고 다른 책들의 무게에 밀려 뒤쪽으로 자꾸 밀려가고 있었다.

 

딱히 외국 작품을 즐기지도 않지만 한국 소설도 즐기지 않는 편이라서 한국이든 외국이든 소설작가들에 대해 무지하고 그 혹은 그녀들의 연대기에 무지하다. 그저 풍문으로 어떤 작가들의 글은 읽어볼만 하고 숨이 넘어갈 지경이던 한국 문단에 근래에 들어서 숨길을 미미하게 트고 있다는 풍문만을 들어볼 뿐이었다. 한국 문학을 읽어야한다는 개인적 호기심이 일기 시작한 것은 이맘 때 쯤이었다. 새로운 작가를 알게되고 글을 읽게 되는 것은 반은 두려움이고 반은 설레임이다. 천운영도 내게 그렇게 시작되었따.

 

『그녀의 눈물 사용법』에는 8편의 이야기들이 있다.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를 필두로 해서 <후에>가 마지막이다.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에서는 누드 사진 작가의 이야기이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고전적이면서 철학적인(?) 물음을 물어온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물적 화현을 넘어선 저 편에 존재한다 화현되면 좋지만 화현하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한다. 사람들잉 제시하는 아름다움은 저마다 다르다.

 

 <그녀의 눈물 사용법>에서는 사람들마다 눈물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보여준다. 자기 위안이나 자기연민의 기능을 보여주기도 한다. 눈물의 진정성이 희석되고 눈물도 사용을 목적으로 하는 도구로 전락되었다.- 게이 점쟁이년의 눈물 사용법은 떠나버린 사랑을 돌려 세우는 도구다. 여자의 눈물은 무기다라는 속언이 섬뜩해지기도 한다. -  눈물은 더이상 감정이 뭉쳐진 액체가 아니게 되었다.

 

<알리의 줄넘기>에서는 시류에 반기를 들었던 알리처럼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것들에 대해서 어린 알리의 시선으로 그 세상에 대처하는 법을 보여준다 아버지가 알리에게 처음으로 줄넘기를 가르쳤다.  줄넘기는 편견과 차별을 넘어서는 견딤이다. 줄넘기를 넘을 때마다 그 줄은 착시현상을 일으키듯 타원형을 만든다. 스스로가 멈추지 않으면 누구도 틈입할 수 없는 자기만의 공간이 생긴다.고모의 아이에게 줄넘기를 가르치려고 하는 알리의 모습에서 유전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단단하게 세상을 살아가라는 이모가 된 알리가 조카에게 선물하는 멋진 줄넘기는 언젠가 조카에게 요기낳게 쓰일 것이다 알리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데려다줄게>는 다소 서늘한 분위기가 베어 나온다 늪지대에 빠져 죽으려고 했던 중년의 남자 죽음과 삶의 그 사이에 처해진 - 일명 바르도라고도 하고 , 영화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중천의 그 중천이다. - 한 남자가 묘한 분위기의 여인과 할머니 여자애의 집에서 구조되고 그곳에서 잠시 생활하면서  자신이 밝히려고 했던 진실에 대한 허무함을 인식하는 이야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실과 진실은 합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실은 행동의 의도가 완전히 포함된 것이고 사실은 그 결과 나타난 현상적 상황이다. 사실은 진실의 외투다. 사실 너머에 감춰진 진실을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노래하는 꽂마차>는 개인적으로 조금 읽기 불편했던 작품인데 분절이 많이 되어있는데다가 시점도 오락가락하는 것 같았고 그 종교에 가려진 추악한 혹은 광신적인 이미지와 종교의 허울을 뒤집어 쓴 추악함이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글은 한 소녀의 연대기라고 할수도 있다. 어렸을 때 광신적인 찬양단을 할 수 밖에 없고 종교의 이름으로 오라비에게 근친상간을 당하고도 침묵을 강요당하고 노래를 할 수 있다면 기꺼이 몸을 내어주었던 한 여인에 대한 기록이다.

 

<내가 쓴 것>은 이번 소설집 중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글이다. 소설을 가르치는 여교수와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짧은 소설이 되었고 <작품후기>를 통해서 앞에 글들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술회하고 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와 타인이 보는 자기의 차이를 인식할 수 있는 글이다. 비춰지는 개인은 타의에 의해서 굴절되고 파괴된다. 글로 환생하는 개인은 존재하는 개인이 아니라 글쓴이 혹은 말하는 이에게 재단된다. 형식적인 면에서 보면 큰 소설집 안에 작은 소설집이 들어있는 형태이다.  

 

<백조의 호수>에는 상류층으로의 진입을 위한 집념으로 가득했던 여인에 대한 기록이다. 자기보다 위를 선망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라면 가질 수 밖에 없는 허욕이라면 그 전형성을 보여주는 인물이 <백조의 호수>에 나타나는 여인이다. 상층 지향적인 행동은 상층과 어울려 파티와 모임을 하게 되고 우아함과 세련됨으로 자신을 포장한다. 우아한 모습은 백조같이 아름답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백조는 우아하게 호수를 유영하지만 백조의 발은 언제나 허우적거린다. 빠지지 않기 위해서 살기 위해 허우적거니다. 백조의 호수는 언제나 허우적거린다.  흔하지 않은 견종을 섭외하고 키움으로써 상층의 심벌로 삼고 자신이 속한 그룹을 인위적으로 나뉜다. 스스로를 대오에서 분리시키는데 결국은 자신이 속하고 싶지 않았던 그룹에서 상류지향적인 인식은 견종의 이종교배를 통한 잡종이 태어나는 것으로 극에 치닿는다. 의도하지 않은 살해를 통해 모든 것이 일거에 무너진다. 

 

 <후에>는 두 자매의 진술이다. 밖에 있는 언니와 장농안에 있는 동생이 있다. 지켜보는 사람들에 의해 안정적인 타의에 의한 과겪한 절단 플루테스크의 침대와도 같은 시선을 견디며 어느정도 살아내는 언니와 플루테스크의 침대가 아니라 자기의 침대에서 잠을 자고 싶을 뿐이다. 서로의 입장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다분히 개인적이다. 우리는 어떤 침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대답하지 않아도 이미 답을 알 것 같다. 신화의 시대를 지나서 역사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신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천운영의 문장은 개인적인 은유로 말하자면 수은처럼 흐르는 납의 무게를 가졌다. 그녀의 문장은 부드럽게 물 흐르듯 하지만 그 문장의 무게는 납처럼 무겁다.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점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과 문장이 만들어내는 아우라 혹은 행간이 그러하다. 결국 『그녀의 눈물 사용법』을 읽으면 몸안에 돌을 채워두는 것처럼 혹은 심장에 대못을 몇개 밖는 심정으로 읽게 될지도 모른다 걱정하지마라 몸속의 돌로 아파봐야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고 심장에서 피가 흘러봐야 살아있음을 알 것이다. 어디 아프지 않고 아픔을 이야기하며 어찌 죽어보지 않고 죽음을 이야기하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