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들 메이커
마젠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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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시지요? 유랑인입니다. 바람이 점점 차가워져서 볼 살이 이제 제 것이 아닌 시절이 계속되고 있습니다만 , 연인들은 그 볼을 부비부비하면 해결될 터이고 말입니다. 뭐 연인도 없는 저 같은 사람은 책을 볼에 부벼서라도 언 볼을 녹여야 하지만 말입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또 화사한 꽃잎들이 피어날 시간이 다가오니 말입니다.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시간을 살아내는 겁니다. 여러분

 

이번에는 중국 작가가 쓴 소설을 한 번 읽어봤습니다. 유랑인을 아시는 분은 아시겠습니다만 어지간하면 외국 소설을 꺼립니다. 한국에서 암약(?)하시는 뛰어난 번역가들이 잘 번역을 해 놓으셨을 겁니다만 원어와 번역어 사이에는 미묘한 간극이 존재한다고 믿어 온 유랑인이니까 말입니다. 안 읽으려고 했습니다만 , 읽게 만들어 버린 것은 한 문장이었습니다. '중국의 밀란 쿤데라'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 저와는 인연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일게 되더란 말입니다. 사실 제가 밀란 쿤데라 아저씨에게 일종의 부채감과 패배의식이 좀 있거든요. - 농담을 읽다가 식겁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 패배의식을 조금이라도 만회해보자라는 심산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좀 후련하네요 역시 사람은 고백하면서 살아야 하는 모양입니다.

 

제목은 '누들 메이커'인데요 잠에서 덜 깬 눈으로 보면 '누드 메이커'로 보입니다. 표지그림도 누들하고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누드와는 밀접해 보이는 그림이 중앙에 장식되어 있단 말입니다. 누들을 누드로 읽기 딱 적당한 상황 아닙니까? 그런데 아마도 누들 메이커라는 말이 중국과 조금은 연관되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군요 . 마젠 아저씨를 만나면 물어봐야겠지만 멀리 계시니까 물어 볼 수 도 없습니다.

 

마젠 아저씨는 중국 작가지만 중국에서 작가 활동을 금지당해서 지금은 외국에 계신다고 합니다. 이름하여 망명작가라고 하는데 중국의 밀란쿤데라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홍보 문구니까 확인해보지 않고는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만 , 아유 그냥 내용이 장난이 아닙니다. 웃깁니다.

 

그로테스크라는 말을 처음 배운 것은 기형도의 시를 평가하는 누군가 - 아마도 김현이었을 겁니다만 - 의 표현 때문이었을 겁니다. 마젠누들메이커에도 그로테스크란 수식어를 달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몇 자 더 적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로테스한 웃음 혹은 블랙코메디 정도 일겁니다. 상황은 전체적으로 기괴합니다. 그런데 그 기괴함을 희석시키는 것은 웃음입니다. 굳이 설명해보라고 한다면 상황이 만들어 내는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기억나십니까 류승환 감독의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라는 제명의 영화말입니다. 누들메이커의 소제목 들을 읽을 때마더 저는 영화를 생각했습니다. 둘 중에 하나 혹은 모 아니면 도라는 이야기입니다. 누들메이커의 제목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도취되거나 마비되거나' '자살하거나 표현하거나'

 

총 9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업작가와 전업 헌열자와의 만남에서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말입니다. 중국의 개방개혁 이후의 상황을 잘 나타내주는 듯 합니다. 과도기라는 말이 딱 어울릴 것 같은 상황들이 제시되고 그 상황에 처해진 인간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잘 나타내었습니다. 한참을 웃을 수 있지만 말입니다. 여러분 웃음 중에 가장 기분 나쁜 웃음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데 말입니다. 실컷 같이 웃고 즐겼는데 곰곰히  시간이 지나면서 치명적인 아픔이 되어 돌아오는 것 말입니다. 타국인이 제가 읽어도 아차싶은데 중국 사람들이 읽으면 무릎을 치면서 탄식할겝니다. 그래서 판매금지 되고 삭제되는 운명에 처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만 말입니다.

 

누들메이커를 읽으면서 말입니다. 근대화의 기치 아래서 서양문물을 허벌나게 받아들이던 한국의 어느 한 시기가 생각났습니다. 한구과 중국은 다를 바 없었던 모양입니다. 국가의 통제아래 개인의 삶이란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단 말입니다. 비슷한 상황을 겪은 사람에겐 끄덕이면서 볼 수 있는 글인듯 합니다.

 

소설을 읽게 되면 말입니다. 저도 모르게 어떤 문장이 눈에 밟히면 포스트 잇을 붙여두는 습관이 있는데 말입니다. 뭐 이런 식입니다.

 

'모든 고통은 인간이 만든거야 '

맞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고통의 유발자는 인간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고통을 스스로 감내하기 보다는 타인에게 고통을 부여하면서 반대급부로 안도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도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 우리는 바깥세상과 격리된 채 정신적인 진공 속에서 자랐지. 허무한 세대 이 나라가 개방되었을 때 제일 먼저 쓰러진 세대. 지금은 외국 문물이 유일한 종교인데 , 우리는 그걸 이해하거나 그 가치를 인식할 방법이 없어 반세기가 지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느닷없이 현대라는 숲 속인데 지도도 나침반도 없는 꼴이지 독재 정부 때문에 마비된 사회인데 , 이 현대적인 세상 속에서 무슨 수로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혼자서는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고 기준점도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곳에서 길을 잃은 심정이지 낮은 자존감을 감추려고 피상적인 오만함의 가면을 쏙 있지'라고 전업 작가가 말하기도 합니다.

 

'법은 권력층만 보호하게 마련이지. 나머지 사람들은 피해자 역할을 해야 하는 운명'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모든 이야기가 죽음과 연관되어야 한다고 여긴다면 그건 자네가 잘못 생각하는 걸세 요는 죽음이 아니라 삶이고 ,삶은 인내 그 자체 아닌가. 나처럼 이를 악물고 견뎌야 하는 거란 말일세  나는 삶의 모든 것을 감당하고 있다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전업작가든 전업 헌열자는 조재현이 김기덕의 페르소나이고 배종옥이 노희경의 페르소나이듯 마젠의 페르소나 같아 보여요 마젠은 <누들 메이커>를 통해서 이런 말을 하는게 아닐까 합니다만 .......  인간이 만들어낸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삶이고 인간의 숙명이라면 지금 처해진 중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삶을 이를악물고 견뎌야 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실 견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감다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행동을 촉구하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최소한 진실만은 외면하지 않고 현실을 이를 악물고 살아내라고 선동하고 있는게지요 웃음이라는 포장지와 웃음을 유발하는 그로테스크한 현실이라는 내용물을 가지고 말입니다.

 

아아 발이 시리고 손가락이 굳어갑니다. 너무 오래 쓰거나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이제 저는 다른 책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어요 갑자기 <아름다움과 숭고함에 대한 고찰>인가 하는 책을 다 읽지 못했다는 생각이들지만 처음부터 다시 읽을 생각을 하니 다시 도망가야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몸을 보중하고 고뿔 조심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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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무림고수를 찾아서 - 궁극의 무예로써 몸과 마음을 평정한 한국 최고 고수 16인 이야기
박수균 지음, 박상문 사진, 최복규 해설 / 판미동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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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비상전』이라는 책을 보면 <낭아비류현>이라는 창작된 한국 고유 무술이 나온다. 민유진이라는 100대 전승자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내용이다.물론 '낭아'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지만 책을 읽다가보면 꿈틀거린다. 무술이란 것과 고수라는 것에 끌린다.
 

이렇게 『창룡비상전』을 읽을 때 쯤 『한국의 무림고수를 찾아서』라는 책을 읽었다. 한국에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무술의 고수를 찾아서 박수근이 인터뷰한 것을 책으로 묶어 낸 것이다.판타지 속의 무술의 허풍과 과장을 걷어낸 시선으로 인간 무림 고수들의 이면을 짚어 본 것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자신을 다스리는 것과 자시능ㄹ 이기는 것으로 보면 된다. 흔히 하는 말로 내공과 외공의 무술이다. 내공을 기반으로 한 무술들은 일견보기에는 연약해보이지만 그렇지 않고 외공은 외공 나름의 도를 향해 나아가며 정진하다.

 

고수란 것은 절정의 극을 달리고 있는 사람이다. 흔히 하는 말로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고 했다는데 고수들은 무술의 내공이 높아지면 질수록 속으로 갈무리한다. 도를 탐구하고 순리를 탐구한다.부드러움 속으로 강함이 갈무리되어 살인이 아니라 활인을 위해서 기운들을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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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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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을 들은 것은 꽤 오래 전이었다. 소설가 김훈의 에세이집이 출간되었다고 했다. 제목은 『바다의 기별』이라고 했다. 기별이라 '다른 곳에 있는 사람에게 소식을 전함 또는 소식을 전하는 종이'라는 의미를 가진 낱말이다. 기별이라는 단어는 옛스럽고 단아하다고 생각했다. 기별에는 축척된 외로움과 그리움이 담겨있다고 혼자 생각했다 김훈은 바다의 어떤 기별을 접했을까?

 

김훈의 문장은 언제나 숨막힌다. 문장을 읽고 다음 문장을 읽어갈 때마다 죽어간다.숨 쉴 수 없다. 김훈의 문장은 단순하기 그지 없다. 수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주어와 조사와 동사로 이루어진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늘씬하다. 전쟁터의 무인이 한 칼에 상황을 정리하는 것과 같다.

 

무인의 칼은 인정이 없다. 김훈의 문장은 메마르고 거칠다. 수 많은 전쟁을 겪으면서 살아남은 백전노장 늙은 병사의 군더더기 없는 칼이다.-  나는 지금 명백하 동어 반복을 하고 있다. -  실전에 익숙한 사람은 허초가 없이 오로지 살초로 한 순간 사람의 목숨을 거둔다. 김훈의 문장도 크게 휘둘러진다. 단 칼에 머리가 부서지든지 두 번에 무너지든지 내 알바 아니나 , 한 번에 부서지길 바란다. 두 번에 부서지려면 한 번과 두 번 사이의 휴지를 견딜 재간이 내겐 없기 때문이다.

 

나는 『바다의 기별』을 읽으면서 포스트 잇을 여러군데 붙였다. 개인의 문장이 또 다른 개인에게 전이되어 소박한 보편성을 획득한다. 숨이 차다. 김훈의 문장은 어떤 사람에겐 지리한 솜방망이이고 어떤 사람에겐 치명적인 흉기다. 나는 당연히 후자 쪽이다. 나의 염통은 난도질 당해 이미 세상의 염통이 아니다.

 

' 이 풍화의 슬픔은본래 그러한 것이어서 울 수 있는 슬픔은 슬픔이 아니다'라는 문장에 포스트 잇을 붙여두었다. 사람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 , 죽음의 슬픔은 표현되어지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결국 슬픔은 내재되고 곰삭아서 눈물도 나지 않는 슬픔이 올발ㄴ 슬픔의 한 유형이된다. '이제는 눈물도 나지 않는다'는 할미의 말은 슬퍼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슬픔의 극에 이르렀단 말과 동의어임을 어린 시절에는 몰랐따.

 

'죽을 생각 하면 아직은 두렵다. 죽으면 우리들의 사랑이나 열정도 모두 소멸하는 것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삶은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일 뿐이다. 죽어서 소멸하는 사랑과 열정이 어째서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을 들볶아 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사랑과 열정으로 더불어 하루하루가 무사할 수 있는 것은 복받은 일이다'라는 문장에 포스트 잇을 붙였다. 김훈에게도 아직은 죽음이 두려운 것이다. 나 또한 아직도 죽음이 두렵다. 하지만 김훈도 나도 삶은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무사히 하루를 보내는 것에 김훈은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라고 하지만 나는 아직 감사할 여유도 행복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소멸의 순간을 위해 하루 하루 살아지느대로 살아내고 있다. 죽음은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면서 동겯의 대상은 언제나 경외와 두려움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생각은 언어를 기반으로 타인에게 전달되기 마련이다.  이것을 소통이라고 한다 소통은 말과 언어를 기반으로 한다. 글을 읽고 글로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은 무너질 두꺼비집을 만드는 것과 같다.애둘러 전달하는 것이고 문장이 전달하는 문장의 행간은 어쩌면 그 문장을 대면하는 독자들의 몫이다. 거쳐서 들리는 말과 글은 헛되기 마련이고 과장되고 주관성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보라 읽어라.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라 글과 사람의 조우에는 무한한 행간의 변주가 있음을 알고 있지 않은가?

 

나는 김훈의 문장을 읽으면서 다시 내 문장이 거추장스럽고 교만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사가 범람하고 의미는 사상되어 어디론가 편린처럼 흩어져 버렸으며 그저 말뿐인 말들의 잔치스러운 문장들이라는 자괴감마저 드는 것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그러나 이 자괴감은 김훈을 읽기로 작정한 이상 치루어야 할 댓가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갈갈이 찢어진 내 육신은 빨간약을 바른 것처럼 견딜만 하다.

 

김훈은 묶은 글들을 털어내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겠다고 서문에 섰다. 『남한산성』에서 몰아친 전쟁과 살육의 장면에서 이번에는 어떤 것으로 죽음과 살육을 이야기할지 궁금해진다. 곧 에세이꾼이 아닌 소설꾼 김훈의 작품을 만날 수 있겠다. 언젠가 풍문에 들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소설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한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김훈의 문장들, 어깨와 손목과 손가락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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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탄생 - 퇴계 이황부터 추사 김정희까지
김권섭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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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칼칼 안녕들 하신가요? 칼칼칼 유랑인 사전에 말이지는 있어도 공손하게 말입니다는 없는데 말이지 하신가요라는 말을 쓰니 손가락이 부끄럽기는 하기는 한데 뭐 어쩌겠느냔 말이지. 이야기는 이렇게 고개 까닥거리는 정도는 추임새로 넣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유랑인 생각하기에 이르렀단 말이지

 

길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길도 있게 마련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의 길도 있는데 말이지 시간을 살아가는 것도 어찌 보면 시간의 길 위해 처해진 인간 유정들이 시간이라는 끝도 없는 길을 걸어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이야 칼칼칼 시간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영원성 혹은 영속성을 입은 것이거든 저 시간에게 물어보면 말이지 죽고 싶어 안달났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말이지 칼칼칼

 

왠 시간 타령이냐고 심드렁하게 코나 파면서 유랑인의 주디(주둥아리 곱게 쓰면 입>에서 어떤 잡스러운 언사가 나올 것인가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지 말하기 혹은 글쓰기를 천형으로 알아온 유랑인- 이것은 또 유랑인 혼자만의 착각이기도 하다 - 은 또 한 자리 멍석을 깔고 앉아서 씨부려 볼려고 하는데 말이지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절대 갈 수 없는 시대의 인간들 중에 말이야 인간들의 입에서 입으로 혹은 문자에 가두어져 전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  볼 모양이이거든 칼칼칼 아시는 분들은 아시지만 예전에 문자로 가두어져 전해지는 것은 가혹한 형벌이라기 보다는 나름 가문의 영광이었다는 것인데 이렇게 박제된 인간들을 우리는 성현이라고 부르거나 위인이라고 부리기에 이른다는 것 쯤은 두 번 말하면 잔소리일게란 말이지

 

유랑인이 이번에 씨부려 보는 것은 『선비의 탄생』이라는 책에 대해서 잡소리를 해볼 요량인데 , 선비라는 족속은 양반과는 좀 다른 족속들이라고 생각되어지긴 하는데 양반이라는 것은 졸렬한  계급사회에서 땡잡은 그러니까 말이지 노블래스 오블리제는 없어 보이는 지배계급이라고 보여지는데 선비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양반인 계급에서 나오겠지만 말이지 계급의 산물은 아닌 것 같아 보인다는 것을 한 번 이야기를 해 둘 요량인데 말이야 왜 인고 하니 선비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 같아서이기 때문입지

 

칼칼칼 그랬던 것인데 말이지 생각해 보면 우리는 시간의 앞 부분을 살았던 과거라고 명명되어진 시간을 살았던 사람들 중에 선비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을 몇몇 가지고 있기는 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마이야 그 선비들의 이름을 알기는 알아 책 속에는 퇴계 이황 남명 조식 율곡 이이 송강 정절 난설헌 허초희 - 책에는 말이야 허난설헌으로 되엉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되는데 말이야 교산 허균이라고 하면 교산은 호이고 허는 성씨이고 균이 이름이지 않은가 말이야 그러므로 난설헌이 호이고 허가 성이고 하니 초희라는 아명정도야 밝혀두어야 하지 않는가 말이야 - 교산 허균 고산 윤선도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까지 아홉 인물을 다루고 있더란 말이지

 

칼칼칼 이건 사람들의 호와 이름을 쓰면서 알게 된 것인데 난설헌 허초희라는 인물이 아주 특색이 있어 보이는데 말이야 남정네들의 판에 유일한 홍일점이라 그럼 허난설헌도 선비인가? 모를이야 마초적인 성품을 그다지 가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유랑인의 짧은생각엔 선비라 칭함을 받는 사람들은 말이야 칼칼칼 보통 남정네이거든입지 칼칼칼 여성으로서는 유일한 사람이로세 황진이도 매창도 아닌 허초희가 그 이름을 올렸더란 말이지

 

선비들은 탄생한다고 말하는데 말이야 인간이란 종자는 대갓집 어미의 배를 빌어 세상에 나거나 천한 노비 종년이라고 말하는 것들의 배를 빌어나오는 것것이나 매양 일반이란 생각을 해보면 말이지 선비라는 것이 메시아 예수나 석가나 기타등등의 메시아들이 아닌데 말이지 칼칼칼 탄생이라는 말을 붙여 놓으니 처음부터 저 9명의 사람들이 큰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란 말이지 그것은 후세의 사람이나 아는 것이지 않는가 말이야 칼칼칼 선비라는 것이 태어나면서 나 선비요라고 나는 선비라고 선언하지는 않을 것이란 말이지

 

책을 읽어보면서 알게되겠지만 말이야 선비라는 것은 절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주위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는데 말이야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말도 기억해볼 필요가 있어보이기도 한단 말이지  선비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은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그리고 환경적 요인이 중요하단 말을 하고 싶은게거든 , 어때 보란 말이야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이 나기도 했지만 이젠 개천에선 용이 나지 않아. 요이 나던 곳에서 세습적으로 나지 않느냔 말이야. 선비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데 말이야 환경적 요인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개인의 노력이 더 좌우한다는 것을 한 번 상기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느냔 말이지

 

사실 『선비의 탄생』은 말이야 어찌 보면 약전이란 말이지 위인의 전기를 서사하지 않고 말이야 중요한 포인트만 나열하는 약전이거든 칼칼칼 다른 것이 있다면 사실에 의해서 표면적인 것에만 천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을 들여다 보려고 노력했다는 것에 있거든입지 이면을 혹은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만 말이지 내면을 아주 볼 수 없는 것도 아니어서 말이야 . 그렇지 시와 문과 편지가 있어 한 인간의 내면을 볼 수가 있더란 말이지 편지는 그 사람의 평소 생각을 알 수 있을 것이며 글이란 것을 통해서 어떠한 것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을 것이지 않냔 말야 생각들 해보시란 마링지 시를 쓸 때 자신의 감정을 담아 쓰고 말이야 편지를 쓸 때 또한 자신의 마음 한 자락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말이야 칼칼칼 이허한 시도는 말이야 허울뿐이고 이름만으로 시간 속에서 박제되어 살아가는 선인들에게 새로운 숨살이꽃 즙액을 뿌려 육신은 살리지 못하더라도 반추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좋은 시도이기도 했더란 말이지 칼칼칼

 

어찌하여 지금을 살고 있는 이들이 말이야 어찌 하여 이미 지나간 박제된 시간 속에서 한 점에 지나지 않을 사람들을 반추하는 것인가 마리야 유랑인은 역사는 돌고 돈다는 풍월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데 말이야. 그리운게지 그리운게야 자금의 시대에는 그러한 사람들의 씨가 말라가고 있다는 시대적 위기 의식이랄까 말이야 뭐 그런거라고 유랑인은 생각하는데 말이야 모를 일이지 역사물이 범람하는 지금의 시대에 말이야 한 편린일지도 말이야 칼칼칼

 

칼칼칼 아무 생각없이 수다를 떨었더니 말이야 목도 칼칼하니 사이다나 일잔 해야쓰겠는데 말이야 칼칼칼 어떤가 길거리 공연을 보더라도 그 값을 내기 마련이거든 어떤가 사이다 일잔을 내 그 값으로 받으려는데 말이야 어떤 가 여러분 사이다 한 잔 주면 안 잡아 먹을테니까 말이야 한 잔 주면 말이야  그저 흥흥거리면서 멍석에서 일어나 가버릴텐데 말이야 칼칼칼 잘들 지내시게 유랑인은 시간의 길을 떠난 참이니까 말이야 칼칼칼 입으로 세상 살기 힘들군입지 ...칼칼칼 성불하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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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소년이 서 있다 민음의 시 149
허연 지음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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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의 노래』라는 책은 원래 제게 올 책이 이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 결과적으로 제게 온 책이니 언젠가는 만나야 할 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차가운 겨울 내리는 눈 같이 여백이 많은 책을 만난 것은 겨울이 그리 추운 계절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임이 있었어요.그곳에서 퀴즈 대결이 있었는데 제가 속한 조가 글쎄 3등을 해서 책을 한 권 자율적으로 가질 기회가 생긴 겁니다. 전 다른 사람들이 다 가져가고 선택받지 못한 책들 중에서 한 권을 갈무리했습니다. 제목도 잘 몰랐어요 띠지에 가려져 있었거든요. 집으로 돌아온 후에야 제가 가져온 책이 『광대의 노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광대의 노래』는 백성민이라는 만화가의 책입니다. 매번 정묘한 그림으로 사실감 가득한 필체로 풍미하셨던 분이라고 합니다. 저는 만화계에 입문한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고 , 만화를 읽었어도 학원물이나 일본 만화 정도만 읽었기 때문에 알리가 없는 우리네 만화가였습니다. 요즘들어 만화를 볼 환경이 조성 되어서인지 한참 만화를 읽기 시작하면서 만화와 관련된 사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기연이라고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적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말입니다. 선이 세세해서 말입니다. 어디 신문에선가 본 기억이 있습니다. 선이 정묘하고 말입니다. 그 인상까지도 그 선이 품어내는 기운을 품어내고 있었습니다. 사실화를 그려왔던 분이 이번에는 붓의 강약만으로 그림을 그려내셨어요. 그리고 우리 곁의 이야기를 하시고 있다고 하는데요. 제가 읽어보니까 말이에요. 잔잔하게 읽을 수 있는 글들과 우리의 생활이 곁에 있으니까 말입니다.

 

사실 여기선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 그림이 아닐까 하는데 말입니다. 그림은 먹선의 강약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여백이 펼쳐내는 맛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글을 읽다가 보면 말이에요. 행간을 끼라는 말이 있어요. 행간이라는 것은 글자와 글자의 사이라는 뜻이겠지만 숨겨진 의미를 찾으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럼 그림에서는 그림의 여백을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백이라는 것은 말입니다. 선이 만들어 놓은 분할이지만 말입니다. 종국에는 그림이 그 여백에 지배를 당하게 되지요. 그렇습니다. 여백 여백의 미를 느껴야 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저는 아직 여백의 미까지는 이해하기가 좀 힘든 경지가 아닐까 합니다만 여러분들은 그림을 보면서 편안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말입니다. 한 번 생각해봤습니다. 백성민 화백이 그려왔다는 이전의 그림들을 보고 싶어졌다는 겁니다. 왠지 궁금해지는 겁니다. 여백과 선으로 만들어 냈던 백성민의 그림을 보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궁금하지 않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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