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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소식을 들은 것은 꽤 오래 전이었다. 소설가 김훈의 에세이집이 출간되었다고 했다. 제목은 『바다의 기별』이라고 했다. 기별이라 '다른 곳에 있는 사람에게 소식을 전함 또는 소식을 전하는 종이'라는 의미를 가진 낱말이다. 기별이라는 단어는 옛스럽고 단아하다고 생각했다. 기별에는 축척된 외로움과 그리움이 담겨있다고 혼자 생각했다 김훈은 바다의 어떤 기별을 접했을까?
김훈의 문장은 언제나 숨막힌다. 문장을 읽고 다음 문장을 읽어갈 때마다 죽어간다.숨 쉴 수 없다. 김훈의 문장은 단순하기 그지 없다. 수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주어와 조사와 동사로 이루어진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늘씬하다. 전쟁터의 무인이 한 칼에 상황을 정리하는 것과 같다.
무인의 칼은 인정이 없다. 김훈의 문장은 메마르고 거칠다. 수 많은 전쟁을 겪으면서 살아남은 백전노장 늙은 병사의 군더더기 없는 칼이다.- 나는 지금 명백하 동어 반복을 하고 있다. - 실전에 익숙한 사람은 허초가 없이 오로지 살초로 한 순간 사람의 목숨을 거둔다. 김훈의 문장도 크게 휘둘러진다. 단 칼에 머리가 부서지든지 두 번에 무너지든지 내 알바 아니나 , 한 번에 부서지길 바란다. 두 번에 부서지려면 한 번과 두 번 사이의 휴지를 견딜 재간이 내겐 없기 때문이다.
나는 『바다의 기별』을 읽으면서 포스트 잇을 여러군데 붙였다. 개인의 문장이 또 다른 개인에게 전이되어 소박한 보편성을 획득한다. 숨이 차다. 김훈의 문장은 어떤 사람에겐 지리한 솜방망이이고 어떤 사람에겐 치명적인 흉기다. 나는 당연히 후자 쪽이다. 나의 염통은 난도질 당해 이미 세상의 염통이 아니다.
' 이 풍화의 슬픔은본래 그러한 것이어서 울 수 있는 슬픔은 슬픔이 아니다'라는 문장에 포스트 잇을 붙여두었다. 사람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 , 죽음의 슬픔은 표현되어지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결국 슬픔은 내재되고 곰삭아서 눈물도 나지 않는 슬픔이 올발ㄴ 슬픔의 한 유형이된다. '이제는 눈물도 나지 않는다'는 할미의 말은 슬퍼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슬픔의 극에 이르렀단 말과 동의어임을 어린 시절에는 몰랐따.
'죽을 생각 하면 아직은 두렵다. 죽으면 우리들의 사랑이나 열정도 모두 소멸하는 것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삶은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일 뿐이다. 죽어서 소멸하는 사랑과 열정이 어째서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을 들볶아 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사랑과 열정으로 더불어 하루하루가 무사할 수 있는 것은 복받은 일이다'라는 문장에 포스트 잇을 붙였다. 김훈에게도 아직은 죽음이 두려운 것이다. 나 또한 아직도 죽음이 두렵다. 하지만 김훈도 나도 삶은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무사히 하루를 보내는 것에 김훈은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라고 하지만 나는 아직 감사할 여유도 행복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소멸의 순간을 위해 하루 하루 살아지느대로 살아내고 있다. 죽음은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면서 동겯의 대상은 언제나 경외와 두려움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생각은 언어를 기반으로 타인에게 전달되기 마련이다. 이것을 소통이라고 한다 소통은 말과 언어를 기반으로 한다. 글을 읽고 글로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은 무너질 두꺼비집을 만드는 것과 같다.애둘러 전달하는 것이고 문장이 전달하는 문장의 행간은 어쩌면 그 문장을 대면하는 독자들의 몫이다. 거쳐서 들리는 말과 글은 헛되기 마련이고 과장되고 주관성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보라 읽어라.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라 글과 사람의 조우에는 무한한 행간의 변주가 있음을 알고 있지 않은가?
나는 김훈의 문장을 읽으면서 다시 내 문장이 거추장스럽고 교만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사가 범람하고 의미는 사상되어 어디론가 편린처럼 흩어져 버렸으며 그저 말뿐인 말들의 잔치스러운 문장들이라는 자괴감마저 드는 것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그러나 이 자괴감은 김훈을 읽기로 작정한 이상 치루어야 할 댓가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갈갈이 찢어진 내 육신은 빨간약을 바른 것처럼 견딜만 하다.
김훈은 묶은 글들을 털어내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겠다고 서문에 섰다. 『남한산성』에서 몰아친 전쟁과 살육의 장면에서 이번에는 어떤 것으로 죽음과 살육을 이야기할지 궁금해진다. 곧 에세이꾼이 아닌 소설꾼 김훈의 작품을 만날 수 있겠다. 언젠가 풍문에 들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소설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한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김훈의 문장들, 어깨와 손목과 손가락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