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1 ㅣ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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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세계사 기간에 중세유럽에 대해 배울때 십자군 전쟁 - 십자군 원정이라고도 배웠다 - 은 교과서의 몇 페이지를 장식하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에 지나지 않았다.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기전 신성로마 제국 황제가 눈밭에서 3일 밤낮으로 교황에게 빌어 파문을 면제 받는 이른바 카노사의 굴욕에 대해서만 간략히 배웠다. 그토록 강성했던 교황의 권위가 십자군 전쟁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추락하게 되고 다시 황제의 권위가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슬람교의 선진 문물을 받아 들이게 되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또한 십자군 전쟁에 대해 황제,교황, 성직자,귀족들은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런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달달 외워야 했다. 객관식 시험 문제로 출제한다면 정답이 명확히 나눠지므로 채점자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까지 무려 200년간 7차례에 걸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4시 선다형 객관식 문제 맞추기 위해 암기를 해야만 했던 나에게 십자군 이야기와 같은 작품을 접한다는 것은 사치였을지 아니면 내신에서 비중이 낮음에도 먼 미래를 바라보고 세계사에 빠져들게 하는 촉진제 역할을 했을지 그 시절로 [십자군 이야기]를 들고 돌아갈 수 없기에 상상에 맡겨야 할 것이다.

 

  사실 나는 무신론자이기에 죽어서 천당에 간다거나 혹은 환생이니 하는 말은 곧이 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신의 가호를 바란다거나 기도를 한다는 것 조차 이해가 되지않는다. 그럼에도 꼬박꼬박 기일에 맞춰 제사를 지내는 것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물어본다면 반박할 말도 없지만 말이다. 이런 나에게 종교는 믿음이라기 보다 하나의 학문에 불과하다. 특정 종교를 믿기 때문이 아니라 왜 사람들이 종교에 열광하는지 궁금하고 종교 전쟁이 발발하게된 역사적 배경에 대해 알고 싶고 인물들에 대해 연구를 하고 이미 고인이 되었더라도 현재의 나의 멘토로 삼고 싶은 것이다. 실제로 십자군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도 내가 닮고 싶고 또는 나의 성향과 비슷한 멘토들을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나마 만나게 되었다. 이런 역사서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마치 내가 전장에서 함께 피를 흘리고 병사들을 지휘하는 장수나 제후가 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그 시절에 태어났더라면 지금의 내 모습에 빗대어 상상해 보건데 평범한 병사나 농사꾼에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왜 그랬을까?'라는 아쉬움을 금치 못할때도 있다. 필자의 사실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과 살아 숨쉬는 듯한 문장이 나를 역사의 현장으로 데려다 놓는지도 모르겠다.

 

  역사란 항상 승리한 자의 것이라고 하지만 패자라고 해서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승자의 입장에서는 좀 더 과장되고 통쾌하게 표현하고 싶어하고 패자는 피해에 대해서는 축소를 하고 상대방의 잔혹함에 대해서는 과장하고 싶어할 것이다. 1차 십자군 전쟁에서는 예루살렘 해방을 기치로 내걸었던 Away에서 우승한 십자군들이 승자이고 Home이라는 유리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단결하지 못해 패전을 거듭했던 이슬람 세계가 패자이다. 그래서 철저하게 십자군의 승리 위주로 이슬람 세계의 집안 싸움에 대해 강조를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역사에 있어 만약이란 절대 존재할 수 없지만 그래도 만약 하나의 지휘체계를 유지하지 못한 십자군에 맞서 이슬람 세계가 하나로 똘똘 뭉쳤더라면 성지 예루살렘을 내어주고 많은 주민들이 이교도라는 이유로 살육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나보다. 재물에 대한 욕심이든 정복에 대한 욕심이든 그 종류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욕심없는 인간은 없는 것이다. 신의 이름을 빌어 전쟁을 일의켰다고는 하지만 지배와 소유에 대한 욕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중세의 기사들은 목숨을 부지하는 것보다 명예로는 죽음을 택하고 주교들은 순례자들을 신에게로 가는 길을 인도한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가문을 위하고 종교를 위해 한몸 바치는 것이니 욕심이 개입되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탐욕들이 바탕으로 200년에 걸쳐 십자가와 초생달의 대결이 이루어졌는데 유일신을 믿는 종교이므로 자신이 속한 종교가 아니고서는 모두 이교도들이니 개종을 강요하지 못할 바에는 후한을 없애기 위해 모두 살육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쩌면 장거리 원정길에 오르고 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고통을 견디며 전쟁을 해야하였기에 인간의 내면에 숨겨져있던 광기가 밖으로 분출되었을 수도 있겠다.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남들과의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신의를 져버리거나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동료들을 버리고 나몰라라 제후들, 자신의 주군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이름없는 기사들과 병사들, 출신성분은 좋으나 우유부단한 성격에 교활함을 앞세워 스스로의 복을 차버리는 실수를 거듭하여 후세들로 죽어서까지혹평을 받는 황제들.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산출물일 것이다. 종교니 사상이니 하는 것들은 태고적에는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인간들이 사회를 구성하고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눠지면서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종교나 신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래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는 십자군 전쟁을 신의 이름을 빌린 인간들이 만들어낸 전쟁이라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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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럭저럭 살지 않기로 했다 - 내가 억대 연봉을 포기하고 마이크로소프트를 그만둔 진짜 이유
리처드 브로디 지음, 노지양 옮김 / 흐름출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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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에서 나는 책 벌레로 통한다. 항상 책을 끼고 다니며 읽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책, 저 책 가리지 않고 읽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갑을 비롯하여 잡동사니를 넣어다니는 손가방과 더불어 나의 한손에는 책이 하나씩 들려있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든 시간이 날때마다 책을 펼쳐드는 나를 잘 알기에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생각하나보다. '이번에는 무슨 책을 읽어요?'하며 누군가가 다가와 나의 손을 들춰본다. [나는 그럭저럭 살지 않기로 했다]라는 말에 나는 그럭저럭 살고 싶은데 라고 말을 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럭저럭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항상 남들보다 고민도 많이 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 것일까? 그래서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잔병치레를 많이 하는지도 모를일이다. 그런데 그럭저럭 산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지 않고 그냥 평범하게 조연으로 살다간다는 말일까? 그런데 한번 살다가는 인생 그것은 너무 쓸쓸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이런 질문을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던지며 살아왔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실 지금까지도 그 해답을 찾지 못했는데 어쩌면 평생 그 해답을 찾지 못하고 눈을 감을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때로는 우울증에 빠져보기도 하고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위안으로 삼기도 했다. 인간이란 너무 편안함만을 추구하다보면 스스로 자멸 상태로 빠지는 존재이지 않는가? 그럼에도 주위에는 그럭저럭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냥 시간이 흘러가는대로 물 흐르듯이 살아가는 것이다. 먼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 따위는 바랄 수도 없으며 단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삶에 만족하는 것이다. 물론 그 나름대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면 할말은 없다. 평범하게 학교 12년~16년 다니고 남들처럼 군대가고 별다는 낙이 없고 저녁 술자리나 기다리는 직장생활하다가 결혼하고 뼈빠지게 돈벌어서 자식들 학교 보내고 결혼 시키는 그런 뻔한 결론을 생각하는 것일까? 줄거리를 다 알고 책을 읽어나 영화를 보면 재미가 없듯이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그래서 저자는 바람직한 일 말고 바라는 일을, 좋은 일 말고 좋아하는 일을, 그리고 해야하는 일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지극히 안정된 삶을 포기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언뜻 보기에는 정신나간 짓으로 취부해버릴지도 모르지만 얼마전 타계한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대학교 축사에서 한 말이 있지 않은가? 만약 내 인생이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하겠느냐고. 지금 하는 일이 그런 일이 아니라면 당장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물론 그것은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이니 우리들의 현실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따를 필요는 없지만. 그럼 책의 제목대로 그럭저럭 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은 요즘 한창 뜨는 유행어처럼 '생각!생각!생각! 좀 하고 살아야겠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니 생각하기에 존재한다는 둥 명언들도 많지 않은가? 두번째로는 행복해야 한다. 사실 인생을 살아가는 최종 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하게 살기는 누구나 바라는 희망사항이 아니겠는가? 그렇기 위해서는 저자가 말하는 23가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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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다이어트 - 배불리 먹고도 살이 빠지는 다이어트 건강법
로렌 코데인 지음, 강대은 옮김 / 황금물고기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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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석기 다이어트 라고 하니 조금 놀랍니다. 과연 구석기 시대에도 다이어트를 하였을까? 만약 구석기인들을 만나 그렇게 말한다면 놀라 자빠질지도 모른다. 맹수를 피해 도망다녀야 하고 먹을 거리를 찾기 위해 하루종일 이 산 저 산 뛰어다니고 사냥하기 위해 몇 시간씩 잠복 해야 하는데 다이어트란 정말 복에 겨운 이야기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땀을 뻘뻘흘리며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운동을 하는 모습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지 모른다. 유기농을 찾는다고 하면 더더욱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사실 구석기인들은 이런 외부로부터의 위협은 있었을지 모르나 현 인류보다 훨씬 건강하였고 잔병치레 따위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보약이라 생각하고 비싼 돈 내고 사먹는 약초나 한약재들이 산과 들에 널려있고 오염되지 않은 음식들만을 먹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없었을 것이며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유지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고기가 몸에 해롭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음식을 조절해야 한다는 말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잘 먹고 잘 살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제 제대로 먹고 적당히 먹어야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과거에는 농법이나 비료, 농약등이 발달하지 않아 곡물이 풍부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산과 들의 야채나 나무 열매를 먹었는데 지금은 우리나라도 쌀이 남아 돈다고 하니 옛 어른들의 '밥은 아무리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다'라는 말이 틀린 말이 되어 버렸다. 오히려 지나친 곡물과 탄수화물의 섭취는 혈당을 높히고 비만으로 이끄는 주범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으니 곡물들은 억울하다 하겠다.

 

  물론 이런 문제들의 뒤에는 항상 인간들의 욕심이 있었으니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높은 옥수수를 마구 생산하여 이를 가축의 사료와 비료로 활용하고 각종 조미료의 원료로 사용하게 되면서 생긴 문제들이다. 그래서 오메가-3 지방산과 오메가-6 지방산의 비율이 깨지고 단백질이 풍부해야할 쇠고기가 지방을 다량 함유한 돼지고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구석기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법이며 구석기 인들이 먹던 음식을 먹는다고 해도 우리가 소화시키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다. 요즘 태평농법이니 하는 것이 유행하는데 하루 세끼를 그런 유기농으로 먹을 수는 없고 다만 가능하다면 유기농을 섭취하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책에서 알려주는 대로 장보는 방법에서 부터 식재료의 선택까지 신경을 써야한다. 저렴한 재료를 택할 것인지 맛과 영양을 함께 생각할 것인지는 소비자의 어디까지나 우리의 판단이다.

 

 

  언제부터인가 바른 먹거리에 대한 걱정이 많아지고 자연 그대로의 재료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그런 면을 강조하기 보다는 우리의 선택에 대해 조언을 해준다. 가령 포도씨유나 옥수수 기름보다는 올리브유를 땅콩보다는 호두를 선택하도록 말이다. 하지만 책에서 계란이나 우유의 경우 사실 그 자체가 지방이 많고 몸에 맞지 않다기 보다 옥수수 사료를 먹이고 항생제 주사를 맞은 소나 닭에서 생산된 것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지 않은 점은 의외다. 물론 전혀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미국에서 부는 이런 웰빙바람에 외국 서적을 번역하면서 생긴 오류일 수도 있다. 번역의 오류인지 미국 방식대로 해석이서인지 몰라도 오메가-3와 오메가-6 비율이 왔다갔다 하는 등 이런 저런 매끄럽지 못한 번역 덕분에 조금 혼란스러웠다. 독자에 따라서는 당연한 얘기를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도 한편으로는 우리가 쉽게 지나쳤던 사실에 대해 다시금 일깨워준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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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목요일, 속마음을 꺼내 읽다 - 책쟁이가 풀어놓는 소소한 일상 독서기
이유정 지음 / 팜파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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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어릴적에 일기 쓰는 것을 무지하게 싫어했던 수많은 이땅의 젊은이들 중 한명이다. 사실 일기라는게 그냥 붓가는 대로 줄줄 적어내려가면 되는데 그놈의 일기 검사니 뭐니 때문에 마음대로 적을 수도 없었다. 그토록 통제된 생활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갖기란 힘들었고 그냥 시키는 대로 공부하는 것에 익숙했다. 그러니 책이라는 것도 교과서, 참고서, 문제제집 외에는 모두 사치에 불과했으니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에는 읽은 책이라고는 열손가락안에 꼽을 정도였다. 이러한 실정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OECD 국가들 중에서 책을 안 읽기로는 수위권에 들 수밖에...졸업을 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시간과 금전적으로 어느정도 여유가 생기면서 다시 독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작정 책을 읽다가 언제부터인가 책을 읽고 나서는 나름대로 후기를 적어보기 시작했다. 사실 책이야 한번 사서 읽으면 책장을 차지할 뿐 두번이상 손이가는 일이 드물었다. 하지만 두번 손이 가지 않는다고 책을 처분하고 나면 찾고 싶을때 없어서 아쉬운 적도 많았다. 그런데 일기를 쓰듯이 책에 대한 후기를 적으면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읽다보면 책의 내용이 어떤 것이었는지 떠오르기도 하고 당시에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하고 추억에 잠겨보기도 한다.

 

  사실 뭐든지 하다보면 실력이 늘게 마련인데 책읽기와 글쓰기도 마찬가지인것 같다. 요즘은 운동에 맛을 들여 1주일에 한두번씩 직장동료들과 어울려 축구 시합을 하기도 하고 주말에는 아이들이랑 인라인 스케이트를 탈때도 있다. 그럴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나의 실력이 늘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몸으로 느껴지니까 말이다. 그런데 글쓰기라는 것은 도통 알수가 없다. 남들이 평가해주지 않고서는 내가 글을 읽어보면 그 말이 그 말 같다는 생각외에는 들지 않는다. 책 읽기 역시 속독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남들보다 글을 빨리 읽을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하고 책을 읽으며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달라진 느낌이라면 책의 1/10만 읽어도 대충의 느낌을 파악할 수 있으며 얼마나 히트를 할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있는 내공이 생겼다고나 할까?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도 우울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항상 바쁜 일과에 쫓겨 살아가다보니 나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적응이 되고 안정을 찾게 되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의 존재에 대해 그리고 할일이 없다는 아니 뭔가 목표가 없다는 생각에 왜 살아가야하는 것일까라는 원초적인 질문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런 나에게 힘이 되고 나를 우울증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준 것은 한권의 책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책을 쓰겠다는 막연한 생각보다 계획을 가지고 책을 쓰겠다는 생각. 저자도 사흘이 멀다하고 책 한권씩 읽는다고 하는데 이런 생각과 글들이 모여서 한권의 책으로 탄생하지 않았나 싶다.

 

 

  나도 기억력에서는 남들 못지 않게 좋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머리속이 점점 복잡해지고 생각할게 많아지면서 기억력이 감퇴하고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자니 사는게 고달파지기도 하다. 기억을 더듬어 찾아내는 것도 힘이 드는데 이런 기억들이 사라져도 존재하는 것들이 있으니...나는 기록과 추억이라 생각한다. 전자는 아주 이성적인 것이며 후자는 감성적인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둘다 나의 일기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을 읽고 후기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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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여행을 - 칼럼니스트 박사의 '여자들의 여행법'
박사 지음 / 북하우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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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가 여행이 즐거워지기 시작했고 설레이게 만들었다. 학교 다닐적에야 기껏해봐야 시골에 계신 할머니 댁에 방문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수시간 가는게 전부였다. 나이가 조금 들어서는 혼자서 혹은 또레 사촌들끼리 가까이에 있는 할머니댁에 흔들거리는 완행버스를 타고 주말마다 농사를 돕기 위해 가곤했다. 지금처럼 스마트 폰이나 휴대용 게임기가 있어 버스안에서 시간을 떼울 수 있던 것도 아니었다. 혼자일때는 그저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하였고 여럿이 갈때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수다를 떨기도 하였다. 가끔씩 돼지나 닭과 같은 동물을 자루에 담아서 버스를 타는 사람도 있었고 술에 잔뜩 취한 아저씨들도 있었다. 한번은 말 그대로 배낭여행을 온 대학생들이 갑자기 내린 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온몸이 흠뻑 젖어 버스에 타는 것을 보기도 했다. 나도 대학생이 되면 저렇게 여행을 다니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본의 아니게 어릴적부터 한적한 시골마을로 여행아닌 여행을 다녀본 탓에 공기좋고 물맑은 곳으로 여행을 가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도시에서 자란 아내가 황토 흙으로 만든 집에서 자고 싶다고 하기에 결혼하고 나면 실컷 잘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는데 수년이 지난 지금은 여름에는 벌레나오고 겨울에는 추워서 싫다고 할때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여행에 이토록 열광할까? 여행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행복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여행을 동경하고 해외여행이라고 간다고 하면 몇 달 전부터 설레이는 것일까? 얼마전 우리 가족들이 일본을 다녀온 적이 있다. 가기 전부터 그리고 여행을 다녀온지 몇달이 지났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흐뭇하고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해외를 다녀왔다는 느낌 그 이상의 무엇이 있는 것이다. 사실 여행은 가기 전이 가장 기쁘고 여행 갔을때는 별로라고 한다. 생각보다 빡빡한 일정에 몸이 지치기도 하고 TV나 인터넷으로 볼때는 근사해보이던 장면이 막상 여행지에서 직접 눈으로 보면 실망스럽거나 별 볼품 없는 장소로 느끼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왜 굳이 비싼 돈을 들여가며 해외 여행을 다녀오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왜 명품 가방에 집착하고 유명 브랜드 정장과 구두를 선호하냐고 말이다. 남들에게 으스대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사적인 자리에서 해외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는데 다녀온 사람과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단지 며칠간의 경험 차이지만 뭔가 하나라도 거들수 있고 없고의 차이는 엄청나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이유로 여행에 집착하는지도 모른다.

 

 

  여행의 가장 큰 재미는 무엇일까? 낯선 곳을 여행하는 것? 혹은 낯선 사람들을 만단다는것?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외국을 가거나 도시에 살다가 농촌으로 여행을 가면 우리와는 다른 모습을 한 사람들을 보고 다른 풍경에 우리는 신기해 하거나 흠뻑 빠져들어보기도 한다. 이상한 것은 일을 할때는 낯선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이 참 힘들기도 하고 때로는 두렵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다는 것. 어쩌면 아이러니 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런 것을 즐긴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자체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항상 낯선 것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해야하고 그렇기 위해서는 익숙한 곳을 떠나 이방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여행이고 여행이 곧 우리의 삶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두려워하지 않듯이 도전하는 것도 이제 두렵지 않다고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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