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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 하 - 고려의 영웅들
길승수 지음 / 들녘 / 2023년 11월
평점 :
품절
(상) 권을 중반 정도 읽을 때 긴장감이 상당하여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손에서 책을 내려놓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역사 소설에 항상 등장하는 남녀 간의 로맨스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기대를 하고 (하) 권을 읽었는데 석 달 정도 이어진 전투에 대해 상세하기 기술하여 지명이랑 장수 이름이 조금씩 헷갈렸다. 게다가 지명도 우리에 익숙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북한 땅이라 더더욱 그랬다. 물론 결론은 알고 있다. 결국 고려가 거란을 물리쳤다는 것을. 하지만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울 때는 우리 땅을 침입한 적을 무찌르고 거란군은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전쟁에 패하였다. 통쾌하게 받아들였지만 전쟁을 수행한 거란군에는 발해의 후손들도 있었고 포로로 잡힌 한족이나 여진족들도 있었다. 책에서 양규 장군이 말한 대로 그들도 누군가의 가족이다. 어쩔 수 없이 전쟁에 임해야 했기에 내가 살기 위해서 누군가를 죽여야 했을 것이다. 추위에 덜덜 떨면서 행군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내가 겪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도대체 왜 여기서 이 고생을 해야 하는지 누구의 위신을 세우기 위함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거란 전쟁의 영웅은 외교로서 물리친 서희와 강감찬이다. 두 장수의 역량으로 엄청난 수의 거란군을 물리친 것은 사실이지만 숨은 영웅들은 더없이 많을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임무를 완수하였기에 원하는 작전을 펼칠 수가 있었다. 때로는 비겁하게 항복을 하고 그것이 부끄러워 다시 우리 군을 돕는 입장이 되어 업적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전쟁에서는 속고 속이는 것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데 항복하는 것처럼 사신을 보내고 다시 기회를 봐서 공격을 하는 전략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전쟁을 시작한 입장에서도 명분 없이 물러가는 것이 정치를 하는 입장에서는 보기 좋지 않을 것이고 방어를 하는 입장에서도 그토록 엄청난 희생을 치렀는데 항복을 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판단일 것이다. 역사에서 배운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우도 정치인들의 명분 쌓기가 상당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상) 권에서는 역사 소설임에도 남녀 간의 로맨스가 없었는데 (하) 권에서는 조금씩 운을 떼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눈치를 못 챘겠지만 이미 (상) 권에서 의도하였는지 모르겠다. 각자 맡은 임무가 있고 또 나의 핏줄로 이어진 가족이 있지만 내가 지켜야 하는 나라도 있고 맡은 임무도 있다. 항상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은 식상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서로 말은 하지 못한 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며 그저 멀리서 바라보면서 마음만 애태울 뿐이다. 드라마나 영화는 배우의 연기나 OST를 통해서만 알 수 있지만 등장인물의 심리상태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기에 정확하게 내용을 파악할 수가 있다. 소설은 장편으로 쓸 수 있는데 영화나 드라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 중요한 장면 위주로 요약할 수밖에 없어 원작을 정확하게 살릴 수는 없다. 전투 장면을 상상하면서 책을 읽었는데 내가 그 현장에 있었더라면 얼마나 떨렸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결론은 조금 어중간하게 끝나서 아쉬웠다. 귀주대첩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다소 열린 결말을 남기고 끝이 났다.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어 결말은 알고 있지만 주인공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몰랐다. 거란군의 공격을 잘 막아내어 귀주대첩에서 승리를 하는데 이른 거란의 3차 침략이다. 소설이 배경은 거란의 2차 침입인데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역사에 대해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연사를 통해 지혜를 얻는다고 하는데 틀린 말이 아닌 듯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쟁을 수행하고 물러남에 있어 명분이 중요하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인 것이다. 나라를 이끄는 정치인들에게 있어서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어중간한 결말을 내린 것 같지만 요즘 유행하는 열린 결말이고 다음 편을 기약하는 초석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