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 내 인생의 전환점
강상구 지음 / 흐름출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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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전국시대니 제자백가 등은 이미 학창시절 세계사 시간에 귀에 못이 밖이도록 들었다. 그러나, 동시대의 작품인 손자병법에 대해서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흘려들었다. 시험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사대주으나 유교의 영향으로 공자와 맹자, 장자 혹은 무위자연이니 논어등에 집착하였다. 그러다가 IMF를 겪으면서 실리위주로 바뀌어 유비대신 간웅으로 손가락질 받던 조조를 칭찬하였고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손자병법도 따지고 보면 거창한 학문이나 사상이 아니라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병법서이다. 당시만 해도 전쟁이라 함은 제후들이 병사들을 이끌고 넓은 평원에서 정정당당하게 회전을 하며 전쟁하기전 상대에 대한 예를 갖추고 전투를 벌이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손자병법은 놀랄만큼 혁신적이었을 것이다. 전쟁에서는 체통이나 의리 등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 것을 중시했다면 애당초 전쟁은 벌이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우선 전쟁이 벌어졌으면 이겨야 한다. 그것이 실리주의에 근간을 둔 제대로된 논리가 아니겠는가?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가장 힘이 센 사람? 가장 지혜로운 사람? 모두 틀렸다. 싸움을 하지 않고 이기는 사람이다. 수천년전에 손무는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나보다. 세계 1,2차 대전을 겪으면서 경제 패권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가지 않았던가? 전쟁은 과학의 발전도 가져오지만 동시에 천문학적인 비용으로 말미암아 국가가 망하는 것은 수없이 보아왔다. 폭군으로 알려진 의자왕. 실상은 60년간 지속된 나제동맹을 깨고 한강유역을 신라가 빼앗았기에 되찾기 위해 무리하게 전쟁을 벌인 것이 결국은 백제의 멸망으로 이어지지 않았던가. 그래서 전쟁은 무조건 피해야하지만 전쟁을 해야만 한다면 그 피해를 최소화하여 단기간내에 끝내야한다. 무엇보다 적이 함부로 덤비지 못하도록 방비를 철저히 해야하고 공격을 받았더라도 외교를 잘해서 다른 나라가 적국을 공격하여 본국으로 철수하도록 유도를 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고구려 역사책을 읽다보면 666년 연개소문이 죽기전까지 고구려의 국력은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평양성이 포위된 적도 있었지만 민관이 합심하여 물리쳤다. 그러나, 연개소문이 죽고 남생이 당나라에 투항하면서 고구려도 멸망하고 만다. 김춘추를 외교에 능통한 전략가로 칭송하는 이들도 있지만 복수에 불타 백제를 멸망시키기 위해 무작정 고구려를 찾아갔다가 오히려 갇히고 만다. 저자는 고구려의 전쟁 능력이나 간첩을 활용한 첩보파악 능력이 상당히 뛰어나다고 극찬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똑같은 전략으로 당나라에 맞선기에 결국은 망하고 말았다고 주장한다. 여태까지 내가 알고 있던 생각과는 상당히 달랐다. 성웅 이순신이라고 불리는 뛰어난 리더쉽을 바탕으로 연전연승으로 승승장구하였지만 모함을 받아 관직을 박탈당하고 모진 고문을 받다가 백의종군하다가 노량해전을 마지막으로 운명을 달리한다. 항상 의문이었던 것이 수많은 전쟁에서는 무사하다가 왜 하필 마지막 전쟁에서 적군의 총탄에 어이없이(?) 쓰러지고 마는 것일까? 역시 저자는 명쾌하게 답을 알려준다. 충주에 가면 신립장군이 마지막 결전을 하였던 탄금대가 있다. 지형이 험난한 죽령을 버리고 기병들을 데리고 배수의 진을 친 곳이다. 백제의 계백장군을 흉내라도 낸 것일까? 5천 결사대를 이끌고 13만의 신라군을 막아낸 것을 보고 힌트를 얻은 것인지 조총의 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인지? 용감하게 적장 수명의 목을 베고 탄금대에서 자결한 장수로 알고 있었는데 분위기 파악 제대로 못하고 왜군의 북진이라도 저지시켰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실패한 패장으로 격하되고 말았다.

 

  손자병법에 나온 전략에 대해 춘추전국시대의 이야기가 아닌 삼국유사에 바탕을 두어 다소 의아했지만 흥미롭게 나름의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다소 아쉬운 점이라면 손자병법을 탄생했던 배경에 대해서는 소개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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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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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을 읽고 가슴에서 애국심이 이끓어 오르고 억압받은 민족에 대한 설움을 느끼고 태백산맥을 읽으며 잘못된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사상에 대해 옳바른 통찰을 하였다. 소설이라기 보다 오히려 역사 책에 가깝다고 하겠다. 저자마다 나름대로의 개성이 있고 색깔이 있게 마련인데 조정래 작가는 종족 번식을 위한 남성의 본능과 자신의 자식과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모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등장하는 남성들은 억척스럽게 일만하지만 자기 부인에게는 더없이 자상하며 만족시킬줄 알며 권력을 가진 자들은 대게 자신의 자손을 널리 퍼뜨리고자 하는 본능에 충실하다. 때대로 내가 남자라는 사실이 부끄러울 정도로 본능을 감추지 못하는 남정네들을 보며 울분을 토하기도 하지만 친일파나 순사들의 나쁜 행실을 극화시켰다고 생각한다.  [황토]역시 조정래 작가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이 역시나 자주 등장하며 태백산맥이나 아리랑에 나왔던 조연급 배우들이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한다. 태백산맥에서 다소 좌파주의 적인 내용으로 군대에서는 읽을 수 없었지만 제대 후에 읽으면서 '아~'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우리가 총칼을 겨누며 무찔러야 한다고 수십년간 배웠던 원수들은 빨갱이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았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 생각 해보지 않았는가? 징병 끌려가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독립투쟁을 하는 편이 낳지 않나고? 아니면 정말 일본 사람 한명씩만 죽이고 나도 죽으면 이런 치욕은 없을 것인데 말이다. 그런데 독립투쟁은 고사하고 앞장서서 나라 팔아먹는 놈들이 있으니 식민지배를 한 일본놈들보다 더 나쁜놈들이다. 그런데 궁금하지 않는가? 빨갱이 사상에 대해 찬양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질타와 검열을 거쳐가면서까지 공산주의내지는 사회주의 사상에 대해 서슴없이 적어내려가면서도 친일파의 나쁜 행적에 대해서는 굳이 자제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다른 소설에서도 다루기는 하지만 통령하게 다루지 못하는 것같다. 우리 사회의 지도층에 아직도 친일파의 잔재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허수아비 춤]에서 대기업에 대해 맹공을 펼친 것을 봐서 그런 것은 아닌것 같다.

 

  일제시대 억압받던 이 시대의 대표적인 민중으로서 사회적 약자라 불리는 여성으로 태어나 한 평생을 살면서 정말 인간대접 받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한 삶을 아니 차라리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자식들만을 바라보며 한 평생을 억척스레 살아온 어머니. 굳이 소설속의 주인공을 찾지 않아도 우리 주위에 많은 것 같다. 어쩌면 우리의 어머니나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외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때 기업인을 지내시다가 초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셨다가 6.25때 납북되셨으나 전후사정 모르는 사람들은 빨갱이라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할머니들은 사상이 뭔지도 모른채 강대국들이 마음대로 그어놓은 3.8선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벌인 전쟁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직선으로 그어놓은 3.8선에서 다시 사선으로 휴전선을 그어놓으면서 양측 모두 얻은것 하나 없이 수많은 건물들만 파괴되고 인명피해만 입었지만 정작 후혜자는 따로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군 덕분에 공산화되지 않았으며 중공군이 참전만 하지 않았어도 이땅에서 빨갱이들을 모두 무찌르고 통일이 되었을 것이라 배워왔다. 그러나, 모든 국민들이 정신을 차리고 상해 임시정부에서 일본군에게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할때까지 일본이 버텨주었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행복하지는 않았을까? 작가의 책이 출판되어 고위 간부들께서 피해를 입을까봐 검열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의 교과서 왜곡을 탓하기 전에 우리부터 올바른 역사관을 자식들에게 심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책을 덮으며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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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rowing 바로잉 - 세상을 바꾼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되었다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 지음, 이경식 옮김 / 흐름출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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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작 뉴우튼, 아인슈타인, 에디슨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가? 과학자, 천재, 발명가? 혹은 연구에 몰두하여 다른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 등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또한 어릴적에는 둔재소리를 들었지만 훗날에는 세계의 몇 안되는 창의적인 천재라는 찬사를 받은 사람들이다. 과학자 말고 병법의 천재라 불리는 카르타고의 천재 지략가 한니발, 로마시대의 율리우스 카이사르, 삼국지에서 가장 훌륭한 지략가인 제갈공명, 유럽을 정복한 프랑스의 나폴레옹, 우리나라의 성웅 이순신 장군...모두들 한 시대를 풍미한 병법에 있어서는 가히 천재라 불릴만하다. 그러나, 이런 훌륭한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머리에서만 수많은 과학적인 원리들을 밝혀내고 병법들을 만들어 내었을까?

 

  뉴튼은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류인력이 법칙을 발견(?)하였고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원리를 과학적으로 증명하였다. 그러나, 만약 아인슈타인이 뉴우튼이살았단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그 정도 업적을 이룰 수 있었을까? 어려운 물리시간에 상대성원리에 대해 공부를 하고 에테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뉴우튼 보다 머리가 좋지는 않아도 더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미 앞선 과학자들이 이루어놓은 업적과 논문 등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논리를 만들어 나갔으니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와 있었다는 말이 이해는 된다. 그렇다고 내가 뉴우튼이 살았던 시대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서 만류인력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천재라는 사실은 결코 부인할 수 없으니 말이다. 요지는 천재라고 해서 100% 자기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연구 결과를 보고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자신의 원리로 이해를 하여 만들어낸 산출물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어설프게 베끼게 되면 모방이 되는 것이고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어 낸다면 또 다른 창조가 되는 것이다.

 

  직장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IT서비스 업종에 근무하지만 예전처럼 프로그램 능력이 중요하 것 같지는 않다. 과거에는 속도 향상을 위해 버블소트니 하며 여러가지 정렬 방식에 대해 나름대로 개발을 하였으나 지금은 구글링을 통해 쉽게 접할 수가  있으니 말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일에 투자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다. 보고서를 만들때는 누구는 화려하게 혹은 깔끔하게 정리된 양식으로 보고를 한다고 부러워한다. 그러나, 실상은 남들이 자주 사용하는 양식들을 보관하고 있다가 필요할 때마다 적절히 찾아서 사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모방이라는 말은 사용할 수 있어도 표절은 어울리지 않는다. 프로그램 코딩 몇줄하는 것이나 문서를 아름답께 장식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다만 내용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해서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인 것이다. 누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본인이 손재주가 있어서 아이들 의상이나 장난감을 만드는 도안을 그리고 싶은데 포토샵과 같은 툴을 사용하고 싶은데 어떻게 사용하냐는 것이며 어떻게 배울 수 있냐는 것이다. 나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그림을 가지고 포토샵이든 캐드든 컴퓨터의 도면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그러한 도안을 생각하고 그리는 일이 진정 어려운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툴을 사용하는 기법은 바로잉을 하고 그림은 크레이티하라. 그것이 당신이 잘하는 분야의 천재로 만들어 줄 것이다. 어짜피 모든 분야에 천재가 될 수 없다면 90%는 모방하거나 빌리고 나머지 10%를 당신이 창조하라. 그러면 최고라는 찬사를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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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배 - 죽음을 초대하는 당신의 식습관
헬스클릭 지음, 박정화 옮김, 황수관 감수 / 북메이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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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는 똥배를 인격이라고도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중년남자라면 어느정도 배가 나와야 지위에 어울린다며 하나의 미덕처럼 여겼었다. 그러나, 이제는 똥배는 게으름의 상징이 아닐까싶다. 누구나 자가용을 소유하고 있으니 가까운 거리도 차로 이동하며 사소한 일은 비서한테 맞기고 전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함으로 생기는 똥배, 약간 미화시키면 아랫배가 되겠다. 이제 나이들어도 배 나오지 않는 사람이 꾸준한 몸관리를 했다고 칭찬받을 만한 때가 된 것이다. 배가 나온다는 것은 복부에 피하지방이 쌓여서 고혈압과 같은 병을 유발할 수도 있고 허리살이 늘어날때마다 척추에 가해지는 무리도 장난이 아니다. 한마디로 똥배는 우리 몸의 안팎을 해치는 나쁜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 똥배를 없애야 한다는 것은 동의하는데 어떻게 없애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할 때이다. 예전에느 그냥 윗몸일의키기와 같은 복근 운동만 열심히 하면 자연스레 똥배도 들어갈 것이라 생각했다. 예전에 우스게 소리가 있는데 뚱뚱한 사람이 살을 빼기 위해 수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자 중력으로 배가 더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배를 넣기 위해 배형을 하였는데 이번에는 엉덩이가 나오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이빙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물에 떨어지는 마찰로 배와 엉덩이를 동시에 넣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자, 그만 머리가 멋겨지고 말았다고 한다. 물론 우스게 소리니 새겨들을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뱃살이라는게 쉽사리 해결되는 문제는 아닌 것은 확실하다.

 

  운동도 중요하지만 땀 흘려 운동하고 갈증해소와 간식으로 고열량의 음료수와 과자나 빵을 섭취한다면 운동한 것이 모두 도루묵이 되어 버린다. 실지어는 운동직후에는 물도 많이 마시지 말라고 하지 않은가? 우리 식생활부터 조절하고 꾸준한 운동으로 몸 관리를 하며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 생활을 해야하는 것은 굳이 똥배를 넣기 위해서 뿐 아니라 건강을 위해서라도 필히 챙겨야할 필수 항목이다. 저자가 누구인가? 신바람으로 유명한 황수관 박사님 아닌가? 술을 마시더라도 자신의 주량에 맞게 적당히 조절할 줄 알아야 하며 식사 역시 폭식은 삼가하고 규칙적으로 먹어야 함은 물론이며 음식도 잘 선택해서 먹어야한다. '한번 살다갈 인생 짧다면 짧은데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지 않고 건강만을 생각하기에는 너무 억울하지 않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이왕이면 건강하게 살다가는게 좋지 않겠는가?

 

  건강을 위해서는 아니 똥배를 줄이기 위해서는 뭐든지 절제와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술이나 육식은 아무래도 절제를 해야할 것 같고 담배는 자제해야 하는 것 중 하나일 것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잘못한 것중 하나가 담배를 배웠던 것이고 가장 잘한 것 중 하나는 10년 넘게 피운 담배를 과감히 끊은 것이다. 남들은 독하다 혹은 능력이 없어 담배 끊었다라고 생각하지만 담배를 끊음으로서 얻을 수 있는 기회비용이 엄청나 것이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금연을 하고 수년이 지나다보니 체력도 훨씬 좋아진 것 같고 아침에 일어날때도 어깨가 아프다거나 하는 통증이 거의 없어졌으며 음식 맛에 대해서도 훨씬 민감해져서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담배를 피운다고 하는데 담배를 끊게되면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니 오히려 더 효과적인 것이다. 황수과 박사님의 말씀처럼 건강의 첫걸음은 신바람 나는 생활습관이라는데 많은 사람들이 억지로 스트레스 받을 일을 만들어서 담배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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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완성 - 하버드대학교 ‘인생성장 보고서’ 그 두 번째 이야기
조지 베일런트 지음, 김한영 옮김 / 흐름출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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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가? 내가 사는 목적이 무엇인가? 즉 왜 사는가 하는 아주 원초적이지만 누구도 쉽사리 답변할 수 없는 질문 말이다. 나는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한다.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라고. 그 행복의 비결을 찾기 위해 지금껏 노력해오고 있다고 말이다. 한편이런 말도 있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고 말이다'. 그런데 웃음과 행복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일까? 일차적인 연관은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웃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사랑, 희망, 기쁨, 용서, 연민,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빠진다면 행복할 수 없는가? 책을 덮으면서 드는 생각은 그렇다 이다. 만약 저자의 의도가 그것이 아니라면 나의 내공이 부족한 탓을 해야할 것이다. 하긴 나도 한 여자를 사랑하면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밀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고 만났을 때는 아무 조건없이 기뻣으며, 상대의 잘못에 대해 관대하고 용서할 줄 알며 아픈 상처가 있을 때 함께 아파할 줄 아는 연민을 느꼈으며 나의 아내가 되어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가정을 꾸려서 잘 살아가고 서로 믿고 의지하려는 감정을 느꼈을 때 '인간이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구나' 라고 태어나 처음으로 행복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감정들에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함정이라 말하기는 좀 뭣하지만 인간은 본디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전제가 되는것 같다. 너무나 이기적이기에 남들로 부터 사랑을 받고 싶어 먼저 사랑을 하는지도 모르고 내가 살아남기위해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다. 자기 집을 공격해오는 말벌과 싸우기 위해 독침을 한번 쏘면 자신도 죽는 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방어를 하는 꿀벌은 이기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해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인간처럼 내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희생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기쁨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기쁘기 위해 남을 짓밟는 사람들도 많이 보아왔던 것 같다. 옛말에도 맞은 놈은 다리 뻗고 자지만 때린 놈은 다리 못 펴고 잔다고 하지 않았던가? 맞은 놈은 차라리 용서를 한다는 느긋한 마음을 가질지 모르지만 때린자는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죄책감에 마음이 편치 못하는 것이다. 연민이라는 감정 역시 내가 남을 돕는 것이 편하고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좋기에 그런 행복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혼자서 살아가지 못하기에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야 한다. 어쩌면 스스로 먹이를 구하는 동물과 다른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감정들이 잘못되어 조국을 배신하고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이중 스파이가 되거나 오직 유일신만이 존재한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종교전쟁이 발발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사실 인류의 전쟁의 대부분은 종교 문제로 말미암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신을 믿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차라리 인간을 믿었다면 어떠했을까? 이런 복잡한 감정들 지녔기에 행복이 무엇인지 알며 아니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행복은 결코 한번에 완성이 되는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노력해야하는 진행형인 것이다. 단지 웃어서 긍정적인 사고를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한 순간인 것이다. 작심삼일을 천번, 이천번 반복하다보면 평생 마음먹은대로 살아갈 수 있듯이 저자가 강조하는 6가지 요소를 잘 조합한다면 평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기적인 존재이므로 내가 현재 행복하다는 생각을 가지지 못한채 한평생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 지나온 과거를 돌이켭며 그때가 행복했었지 라는 뒤늦게 후회를 하거나 추억에 젖어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는 내가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6가지 조건에 후회나 추억은 제외되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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