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오후 4시쯤, 건우가 학교에서 전화를 했다.
마침 전직원이 가을체력단련을 하는 날인데 허리를 다쳐 한의원을 다녀와야해서 행사에 빠졌더니 의외로 오후가 널널해져 연우를 평소보다 일찍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녀석의 목소리가 좀 자신없는게 뭔가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왜그러냐고 물으니 병원에 다녀와야겠단다.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축구를 했는데 그중 하나가 반칙을 하면서 뒤에서 밀어 넘어질때 손을 짚은것이 잘못되어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심하게 다쳤다며 보건선생님이 응급치료를 해주셨는데 빨리 병원에 다녀오랬다는 것이다.
일단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하고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건우의 엄지손가락 윗부분이 검게 피멍이 들고 팔목밑까지 부어올라 있었다.
나: 건우야 점심시간에 다쳤다며, 왜 이렇게 늦게 연락을 했어? 담임선생님은 네가 다친거 모르셨니?
건우: 알고 계셨어요. 점심시간에 보건실에 갈때 다른 친구한테 대신 말씀드려 달라고 하기도 했구요, 오늘 체육수업이 있어서 줄넘기를 할때도 아파서 못하겠다고 말씀드렸는걸요.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아이치료가 급한지라 인근의 정형외과에 가니3주는 깁스를 해야 한단다.
속모르는 녀석은 당장 오른팔을 못쓰니 숙제며 공부를 미룰수 있다는것과 토요일에 축구를 못한다는것에 대한 손익계산에만 열중해 있었다.
급한 치료를 대충 마치고 집으로 오려니 생각할수록 괘씸한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아이가 다친것을 모른것도 아니요, 한눈에 척 보아도 다친 정도가 심한데 연락한마디 없는것은 아무리 선생님들이 잡무에 치인다해도 심하다 싶었다.
다음날 아침 일부러 건우를 기브스한팔을 눈에 띄게 해 학교에 보내놓고 혹시나 연락이 올까 기다려봐도 종무소식이었다.
아무리 아이들끼리 장난을 치다 다쳤어도 학교내사고면 상황에 대한 간단한 설명은 해주는 것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보호하는 기관으로서의 의무가 아닌가.
치료비야 크게 문제될것 아니나 다친아이나 다치게 한 아이도 쌍방부모가 내용을 정확히 알아야하고, 그과정에서 아이들은 일처리방식이라든가 놀때도 지나치게 과격한 행동은 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것이 아닌가 말이다.
상대편아이는 건우의 깁스를 보고 토요일에 사과를 했다하니 되었다했지만 선생님에 대한 서운한 마음은 쉬 가라앉지 않았다.
꽁한 마음을 삭히지 못 하고 급기야 어제는 일기장검사가 있다며 밀린 일기를 쓰겠노라는 건우에게 쓸필요없다고 하였더니 녀석의 표정이 의아해졌다.
건우: 다친손으로라도 숙제랑 공부는 밀리지 않게 하라고 하셨잖아요?
나: 엄마가 일기장에 간략하게 메모를 해줄께...
건우: 뭐라고 쓰실건데요?
나: 건우가 지난주 금요일 점심시간에 학교에서 오른손을 심하게 다친것은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글씨를 쓴다든지 운동을하는등의 오른손을 사용하는 일은 많이 불편합니다. 의사선생님 말씀으로는 3주 이상 깁스를 해야한다네요. 오른손이라 생활이 많이 불편하여 왠만하면 다음주중에는 상담을 해봐서 깁스를 풀수 있으면 풀어달라고 할 생각이지만 이후로도 당분간 오른손을 쓰는것은 주의해야 할 듯 합니다. 선생님께서 지켜봐주셔서 손사용에 무리가 없을때까지는 신경을 써주셨으면 합니다. 여러가지 업무로 바쁘실텐데 번잡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이렇게 썼어.
건우: 엄마 말투가 다른 때랑은 좀 틀리네요.
나:어떻게 다른데?
건우: 좀 짜증이 나신것 같아요.
나: 건우가 눈치가 빠르네. 그래도 이정도는 괜찮을것 같은데, 신경쓰이니?
건우: 괜찮아요. 선생님도 엄마처럼 학교가 직장이고 직장에서의 일처리의 댓가로 월급을 받는거다라고 하셨잖아요.
나: 응? 너 언제 그소리를 들었니?
건우: 저번에 엄마들끼리 얘기할때 엄마가 다른 엄마한테 그랬잖아요. 학부모는 죄인이 아니다, 그러면서...
생각해보니 얼핏 그런 얘기를 했던것 같다. 훌륭한 선생님이라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요즘 세상에 그런 요구는 좀 무리라고 본다, 그러나 교사도 노동자니 정당한 권리를 누려야하고 또한 의무도 깔끔하게 해줬으면 한다, 그러니 학부모도 당연히 당당해야 한다,등등의 얘기를 했던것 같다.
하지만 녀석이 어느틈에 그런 얘기를 듣고 있었던것인지, 한편으로 가슴이 뜨악했다. 엄마의 말을 들으며 건우는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나: 건우야, 선생님이 많이 바쁘셨나보다, 그치?
건우: 그래도 엄마, 좀 서운하지요?
나: 아이들이 워낙 많으니까...
건우: 그래도 밀린 일기 안써도 된건 천만 다행이예요....
애는 애인지라 이내 밀린 일기에 생각이 돌아갔나보다.
딱히 다시 설명해줄 마음도 들지 않아 책가방이나 잘 챙기라 이르고 아이들을 서둘러 재웠다.
소심한 에이형의 꽁한 마음이 두고두고 쉬 풀릴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