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일하던 임시직원이 그만두고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바뀐 직원도 3년전에 같이 일해본 경험이 있어 특별히 일을 가르치거나 일러 줄것도 없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몇달을 같이 일하다 군대를 간 그는 치기어리고 조금은 불량스런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지만, 내 기억으로 불우한 가정환경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놓지 않는 마음 여린 청년이었다.

군대를 간 그는 별로 살갑지 못한 내게조차 안부메일을 보낼만큼 마음둘곳에 갈증나 하곤 했다.

 

엊그제는 일이 급하여 계약서도 제대로 쓰지 않은채 불려온 그에게 작업을 지시하곤 못내 미안한 마음에 구내식당을 뒤로하고 그와 함께 우리팀 사람들을 죄 끌고가 점심을 사먹였다.

저녁무렵 집안일이 바쁜 몇몇을 제외하고 사람들은 환영회를 핑계로 술자리로 몰려가는 기미였다.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으련만, 거한 술자리 뒷날 정식으로 첫출근인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

9시가 정시출근시간이건만 10시까지 그의 업무를 표시나지 않게 정리해가며 기다렸건만 전화연락조차 없이 휴대폰은 전원이 나가있고...

그의 가정사를 감안해보건대 그의 집으로 연락해보는것은 외려 혹떼려다 혹붙이는일...

 

오전이 끝날무렵엔 그의 부재에 대해 여기저기 보고를 마쳤다.

연락이 닿지 않으니 다음날도 그가 올지 안올지 알수 없으니 일의 계획을 짤수가 없었다.

퇴근무렵까지 1시간 간격으로 알아보다가 연락을 접으며, 이거 혹 경찰서로 알아봐야하는건 아닌지하는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사고나 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오늘 아침 출근을 하자마자 여기저기서 나에게 그의 출근여부를 확인하는 전화가 빗발쳤다.

그가 안오는 것으로 확인되면 하루라도 빨리 사람을 구해야 하고, 그사이 공백이난 업무를 메꿔야할 상황이었다.

당연히 이런상황에서 출근을 했다면 내게 제일 먼저 나타나야할 일인데, 소식이 없으니 나는 그의 결근을 최종 통보할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전화로 보고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누군가 저쪽에서 큰소리로 내게 그가 출근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순간 밤새 찜찜했던 마음이 사라지며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한참후 여기저기서 싫은소리를 들은 그가 고개를 사무실바닥까지 박을듯한 모습으로 걸어왔다

나: 아무개씨 걱정했잖아!  왜 그렇게 사람들을 걱정시켜.  일도 일이지만 못올일이 있으면 연락을 해야지, 일이야 나눠하고 미루면 된다지만 한둘이 걱정한게 아니잖아. 다음부터 한번만 더 연락두절이면 나한테 죽는다!!

고개를 들어 한번 씩 웃는 그의 얼굴에 잠깐 눈물이 스쳤다.

혼나는 와중에도 그가 행복해보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어쨌든 그 소란을 거치고 오늘부터 그는 우리 팀이 되었다.

 

1. 고약한 생각하나

그의 가정환경을 구구절절이 설명할수는 없지만 어쨌든 복잡한 가정사의 종합판이다.

불행한 자식으로 자란 그의 그늘을 보면, 고약하게도 나는 열심히 살아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부모노릇을 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의 불행앞에서 위로나 교훈을 얻는 것은 기실 얼마나 치졸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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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1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6-07-22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의 불행 앞에서 위로나 교훈을 얻는...
그렇게 생각하시는 님의 마음이 따스하게 느껴져요. 터프하게 말하지만 정이 느껴져서 그사람도 혼나면서 행복해했을거에요^^

야클 2006-07-22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배려가 느껴지네요. ^^

또또유스또 2006-07-22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님.. 저도 며칠전에 지인의 이혼에 대해 페파를 쓰며 내 자신이 그에 비해 많이 행복하다고 쓰곤 흠칫 놀라 얼른 비공개로 돌렸습니다..
그러나 타산지석이라고 그로인해 내가 반성하고 올바르게 될 수 있다면
그것은 결코 치졸하지는 않을것 같아요..
아줌마의 변명입니다..^^
알라딘엔 따끈따끈한 마음을 가진 아줌마들이 많아 햄볶아요~ ^^ 추천~

달콤한책 2006-07-22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세대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고, 또 멘토가 되고...나 혼자 살 때와 달리 자녀를 생각할 때 나는 좀더 바르게, 좀더 인간답게 살려고 하잖아요. 고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2006-07-22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우와 연우 2006-07-22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예전에야 사용자와 노동자쯤으로 나뉘었다면 요즘은 임시직의 문제까지 한층 심각해졌죠...님의 서재에서 살짝살짝 들여다보곤하는 다양한 관심은 저같이 이렇게 게으르게 늙어가는 사람에게더 많은 자극을 준답니다...^^
또또님/ 아줌마들의 장점이야 여기저기 뒤치다꺼리하며 살다보니 늘어나는 넉넉한 인품아니겠습니까마는 저는 인품보다 허리둘레만 늘어나 고민이에요^^ 햇빛났어요
행복한 하루되세요~
야클님/ 배려라니요...부끄럽게시리^^ 날이 확 개였는데 즐거운 주말보내세요^^
달콤한책님/아이들 생각하면 자꾸 조심스러워져요. 내자식이든 남의 자식이든 상처받는일이 적었으면 좋겠어요...예쁜 아이와 주말엔 뭘 하시나요?

건우와 연우 2006-07-22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속삭이며 위로를 주시는 님/ 오랫만에 화창한 주말인데 님의 기발하고 예쁜 아이와 어디로 놀러 안가시나요?
그새 몸이 좀 좋아진 건우는 축구하러, 연우는 역시 좀 좋아진 제아빠와 산에 갔답니다.
님도 좋은 주말 보내세요~

전호인 2006-07-22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따뜻함으로 인하여 더운 여름이 더운 후끈 달아오르는 구려~~~~
작은배려로 상대방은 큰 감동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한샘 2006-07-22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님 멋진 분이세요^^가끔 슬퍼보이시지만 그것도 공감해요~

건우와 연우 2006-07-22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호인님/ 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니, 쑥스럽네요...
하루종일 좀 더웠는데 따님과 잘 보내셨나요?
아빠들은 딸들과 사이가 참 좋아요^^.

건우와 연우 2006-07-22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샘님/ 아유, 부끄럽게시리...
전 한샘님의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이 참 좋아요^^

치유 2006-07-24 0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아줌마 정말 잘 만났어..하며 열심히 달려가실 것만 같아요..^^&
저도 열심히 살아야겠어요..특히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건우와 연우 2006-07-24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 나이든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자주 느껴요.
더우기 아이들을 보면 더럭 겁이 나기도 하구요...정말 잘 살아야되겠다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