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제3판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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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최고 형태 - 형수님께, 1984.11.29
P379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지혜와 용기 – 계수님께, 1984.12.28
P382 세모에 지난 한 해동안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용기입니다. 나는 이 겨울의 한복판에서 무엇을 자르고, 무엇을 잊으며, 무엇을 간직해야 할지 생각해봅니다.

세들어 사는 인생 – 형수님께
P385 남의 집 방 한칸을 얻어 세들어 사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세상에는 이처럼 아내를 또는 남편을 세들어 사는 그런 삶도 없지 않습니다.

여름 징역살이 – 계수님께, 1985.8.28
P396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옳게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감각에 의하여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 혐오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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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제3판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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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41 자기 짐이 많은 사람은 남의 일손을 도울 겨를이 없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은 도리어 적게 가진 사람의 도움을 받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빈손이 일손입니다.

닫힌 공간, 열린 정신 - 형수님께
P346 소혹성에 온 어린 왕자는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합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엿새간의 귀휴 - 계수님께, 1984.6.19
P358 남에게 자기를 설명하려고 하는 충동은 한마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를 반증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어차피 나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로 귀착되는 것입니다.

창녀촌의 노랑머리 - 계수님께, 1984.8.8
P359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그가 몸소 겪은 자기 인생의 결론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사상을 책에다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서 이끌어내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아무리 조잡하고 단편적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사상은 그 사람의 삶에 상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삶의 조건에 대하여는 무지하면서 그 사람의 사상에 관여하는 것은 무용하고 무리하고 무모한 것입니다. 더욱이 그 사람의 삶의 조건은 그대로 둔체 그 사람의 생각만을 다른 것으로 대치하려고 하는 여하한 시도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폭력입니다. 그러한 모든 시도는 삶과 사상의 일체성을 끊어버림으로써 그의 정신세계를 이질화하고 결국 그 사람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기 망태기 - 형수님께, 1984.10.5
P370 기쁨보다는 슬픔이, 즐거움보다는 아픔이 우리들로 하여금 형식을 깨뜨리고 본질에 도달하게 하며 환상을 제거하고 진실을 바라보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관계의 최고 형태 - 형수님께, 1984.11.29
P377 대상과 자기가 애정의 젖줄로 연결되거나 운명의 핏줄로 맺어짐이 없이 즉 대상과 필자의 혼연한 육화없이 대상을 인식, 서술할 수 있다는 환상, 이 환상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범람하는 저널리즘이 양산해낸 특별한 형태의 오류이며 기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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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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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추체험 – 계수님께, 1984.1.6

P332 인체의 해부는 원숭이의 신체구조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한발 걸음 – 형수님께, 1984.3.1

P337 그런데 징역살이에서 느끼는 불행 중의 하나가 바로 이 한 발걸음이라는 외로운 보행입니다. 실천과 인식이라는 두 개의 다리 중에서 ‘실천의 다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실천활동을 통하여 외계의 사물과 접촉함으로써 인식을 가지게 되며 이를 다시 실천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그 진실성이 검증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실천 -> 인식 -> 재실천 -> 재인식의 과정이 반복되어 실천이 발전과 더불어 인식도 감성적 인식에서 이성적 인식으로 발전해 갑니다. 그러므로 이 실천이 없다는 사실은 거의 결정적인 의미를 띱니다. 그것은 곧 인식의 좌절, 사고의 정지를 의미합니다. 흐르지 않는 물이 썩고, 발전하지 못하는 생각이 녹슬 수 밖에 없는 이치입니다.

P339 "이랑 많이 일굴수록 쟁깃날은 빛나고", 유수봉하행, 흐르는 물은 바다를 만나다는 너무나 평범한 일상의 재확인이었습니다. 이것이 게게 갖는 뜻은 결코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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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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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8 함께 맞는 비 - 형수님께, 1983.3.29

사람은 스스로를 도울 수 있을 뿐이며, 남을 돕는다는 것은 그 ‘스스로 도우는 일’을 도울 수 있음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 라는 아라공의 시구를 좋아합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 생각됩니다.

P299 죄명과 형기 - 계수님께, 1983.3.31

관계는 관점을 결정합니다.
사람은 그림처럼 벽에 걸어놓고 바라볼 수 있는 정적 평면이 아니라 ‘관계’를 통하여 비로소 발휘되는 가능성의 총체이기에 그렇습니다.
한 편이 되어 백지 한장이라도 맞들어보고 반대편이 되어 헐고 뜯고 싸워보지 않고서 그 사람을 알려고 하느 것은 흡사 냄새를 만지려 하고 바람을 동이려는 헛된 노력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사람을 보면 죄명과 형기를 궁금해하는 부끄러운 습관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과 진실, 본질과 진리에 대한 어설픈 자세가 아직도 이처럼 부끄러운 옷을 입혀놓고 있는가 봅니다.

P302 과거에 투영된 현재 - 부모님께, 1983.5.18

과거란 완성되고 끝마쳐진 어떤 불변의 것이 아니며, 반대로 역사인식은 언제나 현재의 갈등과 관심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과거에 투영된 현재’이며 그런 의미에서 계속 새롭게 쓰이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종류의 매스컴이나 미니컴이라도, 그것은 어떤 층을 대표하는 기관지인 법이며, 문제는 그것이 기관지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대표하는가에 있다는 그의 간절하고 적확한 사회인식이라든가, 어느 사회의 진상을 직시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 사회의 밑바닥 인생을 직접 방문하는 것이라는 소박한 민중의식은 뛰어난 것이 아닐 수 없다 하겠습니다.
(혼다 가츠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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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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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속의 이성과 감정 – 형수님께, 1983.3.5>
P291 갇혀있는 새가 성말라 야위듯이 두루미 속의 술이 삭아서 식초가 되듯이 교도소의 벽은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날카롭게 벼리어 놓습니다. 징역을 오래 산 사람치고 감정이 날카롭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P292 감정과 이성은 수레의 두 바퀴입니다. 크기가 같아야 하는 두 개의 바퀴입니다. 낮은 이성에는 낮은 감정이, 높은 이성에는 높은 감정이 관계되는 것입니다. 일견 이성에 의하여 감정이 극복되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경우도 실은 이성으로써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높이에 상응하는 높은 단계의 감정에 의하여 낮은 단계의 감정이 극복되고 있을 따름이라 합니다. 감정을 극복하는 것은 최종적으로는 역시 감정이라는 이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특별한 뜻을 갖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해야할 일은 감정의 억압이 아니라 이성의 계발입니다. 그리고 이성은 감정에 기초하고, 감정에 의존하여 발전하는 것이기 대문에 이러한 노력은 속박과 한정과 단절로부터 감정을 해방하는 과제와 직결됩니다.

이성과 감정은 크기가 같아야 하는 수레의 두 바퀴라고 하고, 높은 단계의 이성에 높은 단계의 감정이 관계된다고 한다. 높은 단계의 감정에 높은 단계의 이성이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낮은 단계의 감정에 쌓여 있지 않기 위해서는 높은 단계의 감정이 필요하고, 감정이 높아지기 (?) 위해서는 이성의 계발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학이불사 즉망, 사이불학 즉태의 개념을 새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감정이 상한 아이에게 이성적으로 잘못을 지적하고, 해결방안을 얘기하는 것보다 그 감정에 공감이 되어서 그 공감이 아이에게 온전히 전해진 후에야 아이가 마음을 추스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P293 우리는 각자의 사건에 매몰되거나 각자의 감정에 칩거해 들어가는 대신 우리들의 풍부한 이웃에 충실해갈때 비로소 벽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바다가 하늘을 비추어 그 푸름을 얻고 세류를 마다하지 않아 그 넓음을 이룬 이치가 이와 다름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감옥이라는 벽속에 갇혀있지만 생각과 감정은 그 벽속에 갇혀있지 않고, 또한 감옥밖에서 몸이 자유로운 이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세상을 꿰뚫고 있는 것 같다. 풍부한 이웃은 감옥 속의 죄수복도 포함되어 있고, 감옥벽을 바라보지만 벽을 허물고 있습니다. 바다가 하늘에 비추어 푸름을 얻는 것은 곧 다른 사람을 비추어 나를 보고, 가까이 하는 사람을 통해 내가 보여지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 같습니다. 또, 가장 낮은 곳에 있음으로 바다의 넓음을 이룰 수 있는 것이라 이해가 됩니다.

<꿈에 뵈는 어머님 – 어머님께, 1983.3.16>
P295 기다림은 더 많은 것을 견디게 하고, 더 먼 것을 보게 하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눈을 갖게 합니다. 어머님께도 기다림이 집념이 되어 어머님의 정신과 건강을 강하게 지탱해주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어떤 기다림이 있는가? 기다림이 없는 삶이 아니었나 싶다. 신영복 선생의 기다림, 그리고 선생의 어머님의 기다림과 같은 간절함을 갖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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