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한 오십
이은숙 지음 / 나무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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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50대들의 일상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집안의 반대로 미대에 가지 못했던 선배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유능한 마케터였던 지인은 뒤늦게 손재주를 발견해 핸드메이드 세계에 푹 빠졌다. 지역 학습관에서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는 친구도 잇다. 에너지가 강한 사람의 야심 찬 꿈과 노력도 응원하지만, 오늘 할 일을 즐겁고 성실하게 해나가는 삶으로도 충분하다. (p.23) 

 

 

사실 이 책에 대해 전혀 사전정보가 없었지만, 제목이 너무 끌렸다. 내가 50살이 되려면 열두 동물이 한 바퀴를 돌아와야 하지만, 하늘의 뜻을 깨닫는다는 50대가 불량하다니! 물론 불혹을 앞둔 나는 여전히 세상의 일에 정신을 빼앗기고 판단은 여전히 이불킥이지만, 그래도 50살에는 정말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고 믿었기에-솔직히는 40살에도 철들기는 이미 늦은 것 같아서 10년 뒤로 미뤄보기로 했을 뿐이다. 철들면 무겁다.- 『불량한 오십』이란 책의 제목에 당혹감을 느꼈던 것!

 

그래서, 『불량한 오십』을 읽은 내 감상이 어떠냐고? 지천명은 모르겠고 엄청, 진짜 재밌다. 그러면서도 군데군데 찡하다. 그리고 소소한 응원을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무슨 소린지 싶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 아주 정확한 감상평이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불량한 오십』은 한눈팔지 않고 성실히 살아온 작가가 이제부터라도 하고 싶은 데로, 마음 가는 데로 '불량'하게 살겠다는 다짐을 담았다. 그러나 우리 엄마들이 다 그렇듯 여전히 전혀 불량하지 않다. 일상을 살고, 가족을 아끼며 묵묵히 살아간다. 대신 자신을 위한 약간의 여유,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줄 여유를 가졌다. 그래서 이 책은 더욱 따뜻하고 소소하다. '멀리하기엔 너무 가까운 당신'이라는 제목으로 써 내려간 엄마 이야기는 엉엉 울면서 읽었다. 나는 세 명의 형제자매 중 유일하게 엄마 그늘에 사는 놈이기에 엄마의 덕을 보고 살 뿐 아니라. 엄마의 노후를 함께 하겠다 다짐하고 살기에 한 구절 한 구절이 마음을 울렸다. 실컷 울다가 엄마가 나쁜 딸이라 욕을 할까 무서워서 엄마가 글 쓸 기회를 만들지 않아야겠다는 마무리에 피식 웃음이 났는데, 여기서 작가님의 성격도 느껴졌다. 무던하면서 소소한 것을 사랑하는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서야 주부 1년 차를 시작한 이야기들은 너무 공감되어 혼자 낄낄 웃었다. 나 역시 결혼생활 10년 차지만, 이제야 겨우 주부 1년 차를 보내는 중이기에 김밥을 안 싸보고 죽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말에도, 연장 탓을 하는 모습에도 웃음부터 났다. 몇 달을 기다려 배송을 받았지만, 여전히 '식자재'를 잘라보지 못한 나의 칼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책 사이사이에 그려진 알록달록한 그림과 더불어 유쾌한 문장들로 이 책을 읽는 내내 시간이 뚝딱 흘렀다. 각잡고 읽지 않아도 되고, 편안히 라디오를 듣듯 술술 읽히기는 쉽고 재미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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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터 이코노미 - 유튜브부터 챗GPT까지 나만의 방식으로 경제적 자유를 획득하는 웹3.0시대 새로운 수익의 기술
안정기.박인영 지음 / 한빛비즈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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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유용한 가치를 전달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나 크리에이터가 될 기회가 있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는 메가 크리에이터부터, 수요는 작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구매할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어터까지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p.150)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영향력이 도처에 있는 시대.

미래는 모두 크리에이터가 되는 시대다. (p.11)

 

 

사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크리에이터에 관한 생각이나 개념이 크게 없었다. 하물며 나 역시도 '크리에이터'로서 뭔가(인기가 없더라도 그 나름의 '콘텐츠')를 생산한다고 말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그것에 대해 인식하는 순간, 어쩌면 꽤 많은 이들이 나처럼 변화하는 세상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이 들었다. 그와 더불어 인식하지 못한 이들은 '수익'도 남의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에서 정의하는 크리에이터는 “창의적인 콘텐츠 생산자이자 경영자, 자신이 열정을 가진 분야의 콘텐츠로 팬덤을 형성해 지속가능한 사업으로 만드는 창업가(p.38)”로, 넓은 의미에서는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자신만의 무엇인가를 만들어 올리는 사람들 모두가 크리에이터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드는 '디지털 경제'가 『크리에이터 이코노미』가 될 테고.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를 읽으며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와 플랫폼의 동시성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생각할 때 그저 제작자들이 플랫폼의 도움을 받는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상호적으로 공존하는 관계라는 생각으로 바뀌고 나니 콘텐츠들의 실체가 보이는 느낌이었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진화를 기록한 부분은 반복해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내용이 무척이나 많았다. 경제적 인센티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나, 개인이 브랜드가 되는 것 등 머릿속에서 막연히 가지고만 있던 생각들을 꽤 구체적으로 기록해주어, 나처럼 전혀 지식이 없는 사람도 이 책 한 권만으로도 크리에이터와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더불어 NFT나 메타버스 등 주목받고 있지만 멀게 느껴지는 것들도 매우 자세히 거론해주어 큰 도움을 받았다. '읽을거리'라는 꼭지에 묶인 이야기들도 꽤 도움이 되었는데, 미래세대, 즉 우리 아이들이 가지게 될 여러 일자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나의 부모님세대에서 나의 세대가 달라진 속도보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의 변화는 더욱 빠를 것이기에 이런 이야기들이 결코 남의 이야기 같지 않고 내 코앞에 바싹 다가온 미래 같았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속에서 가장 마음을 동하게 한 문장을 고르라라면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한다.”라는 문장이었다. 물론 그 사랑하는 일은 1개 일수도 있고, N개 일수도 있다. 아무튼, 이 책을 읽는 내내 '사랑하는 일'이 '경제'가 될 수 있는 요즘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이 흐름을 타고 새로운 부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세상의 흐름을 분명히 읽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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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문 - 단 한 번의 삶, 단 하나의 질문
최태성 지음 / 생각정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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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을 펼친 우당 이회영 선생은 평생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사셨는데 그분이 내놓은 답이 이거였어요. 

“내 일생으로 답했다.”

자신이 목표한 바를 평생에 걸쳐 실천했다는 의미인데, 저 역시 일생으로 답하고 싶습니다. 답은 준비돼 있는데, 그 답을 정말 이야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눈을 감는 순간 후회가 남지 않도록, 제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오늘도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p.27) 

 

 

두어 달 만에 또 이 책을 꺼내 든다. 내가 한참 아픈 시기에 출간되어, 지금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은 소위 나의 '인생 책'대열에 들어있는 책이다. 시간이 비거나 마음이 허할 때마다 꺼내 읽는 책이랄까. 역사를 좋아하기에 필연적으로 좋아하게 되었던 최태성 선생님이지만, 그의 책들을 읽으며, 그의 강의를 들으며 그의 '맑은 정신'은 내게 새로운 배움으로, 깨달음으로 다가오곤 하는데, 이 책은 특히나 그의 생각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게 했다. 

 

최태성 선생님의 『일생 일문』은 역사 속의 어느 순간과 작가님의 생각이 모여 만들어진 책이다. 어떤 면에서는 역사강의 같고, 어떤 면에서는 에세이같다. 출간된 그의 책을 모두 다 읽었지만, 이 책은 읽을 때마다 마음에 닿는 문장이 다르고,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 달랐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꾸만 다시 읽고, 마음이 복잡한 날에 이 책을 꺼내 들게 된다. 

 

『일생 일문』에서는 역사 속에서 불꽃으로 살아간 이들의 말과 문장 등을 만날 수 있다. 어떤 페이지에는 단 두어 줄의 문장만 굵게 적히고, 어떤 페이지는 최태성 선생님의 생각이 빽빽하게 담겨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책 전체를 읽었고, 그 후에는 그때그때 마음에 닿는 주제를 찾아 읽었다. 사는 것에 고민이 드는 날에는 나라를 독립시키려고 '제대로' 눈감지 못한 이들을 읽으며 삶의 가치를 찾아보려 노력했고, 사는 게 재미없다 느껴질 때는 누군가 평생의 가치로 삼았던 일들을 곱씹으며 나의 한심한 불평을 떨치려 노력했다. 나는 여전히 몽매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며 조금 더 가치 있는 삶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현재 부족한 사람이라도 괜찮다. 마음에 품은 질문의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만 될 수 있다고 해도 좋다. 비록 내가 『일생 일문』속에 담긴 이들처럼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노력한 시간만으로도 아니 질문을 들여다본 시간만으로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나 역시 늘 욕심부리고, 초조해하며 살아왔지만, 언제부터인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더 사랑하기로,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모습만으로도 나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책은 그런 나를 더 밝은 곳으로 이끈다. 현실에 치여 살지 말고, 더 큰 가치를 생각해보라고 이끌어준다. 그리고 오늘의 현실을 만들어준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기게 해준다. 그들의 희생과 일생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지금을 더 가치 있게 살고, 아이들에게도 그 가치를 물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한다. 

 

며칠 전 아이 친구 엄마와 대화를 나누다 “왜 어떤 아이는 행복한 가정에 태어나고, 어떤 아이는 그렇지 못할까 하는 고민으로 종교를 놓을 수가 없다”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서로의 의견에 격하게 동의하며 “이런 고민을 하는 엄마들이 더 많아야, 세상이 더 나빠지지 않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개그맨 이윤석 씨가 했다는 말, “그분의 종교는 '독립'일 수도 있겠네”. 현재의 우리는 어떤 간절함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지 생각해보게 하는 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삶, 우리는 스스로 어떤 질문을 하며 살아야 할까. 

 

최태성 선생님은 나에게 역사를 깨우칠 뿐 아니라, 살아감도 조금 더 진지할 수 있게 돕는다. 그의 말처럼 나의 질문을 품고 살며,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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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해주세요
제페토 지음 / 다정한마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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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그저 끄적이고, 누구는 취미로 비방을 하는 '댓글'에 진심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담아내 '댓글 시인'이라 불리던 제페토 작가님의 첫 번째 그림책이 세상에 나왔다. 할머니와 고양이가 끌어안고 있는 표지의 『호 해주세요』. 우리 집은 늘 그림을 먼저 보고 난 후 텍스트를 읽으며 감상하는 편인데 사실 이 그림책은, 텍스트를 읽기도 전에 눈물이 핑 돌았다. 

 

『호 해주세요』의 주인공은 외로운 할머니다. 첫 페이지에서 멍하니 텔레비전을 바라보는 모습에서부터 괜히 마음이 쓸쓸했다. 받지 않는 전화기를 들고 가만히 있는 표정이나 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모습은 눈물이 울컥 났다. 후에 나의 엄마가 나이를 먹으면, 저렇게 누워있게 두지 않아야지, 여러 번 생각했다. 어느 날 그 외로운 할머니에게 기적처럼 고양이가 나타나는데, 정말 신통한 것인지 의지했기 때문인지 고양이가 호~를 해주면 아픈 곳이 낫는다. 고양이와 쌓아가는 시간은 절대 가볍지 않다. 서로가 의지가 되고, 가족이 되어 함께 살아간다. 

 

길을 잃었던 고양이와 반가운 딸, 손자가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 『호 해주세요』의 가장 멋진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할머니의 표정이 가장 환해지는 순간이기도 하고. 아마 우리의 어머니들도 우리를 마주할 때 가장 환한 표정이 아닐까, 다 커버린 자식들은 살기 바빠서, 또 나의 생활도 해야 해서 부모님의 표정을 자주 환하게 만들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렸다. 

 

『호 해주세요』의 감상 포인트 1. 생생한 일러스트를 하나하나 감상하는 것. 빨래부터 살림살이, 아이의 책장이나 장난감까지, 집을 통째로 옮겨놓은 것처럼 생생하다. 할머니와 고양이의 표정을 관찰하는 것도 묘미. 우리 아이는 천둥·번개에 깜짝 놀라는 고양이의 표정이 “베스트 표정”이라며 여러 번 감상하더라. 

 

『호 해주세요』의 감상 포인트 2. 그림과 문체의 톤을 감상하는 것. 같은 어두운 배경이지만 할머니의 마음이 슬플 때와 기쁠 때의 톤이 다르다. 우울함이 감도는 보랏빛의 첫 장면과 얼굴만 환한 마지막 장면을 비교하며 감상해보면 사람의 감정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아이와 마음에서 오는 행복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기뻤다. 

 

『호 해주세요』의 감상 포인트 3. 숨겨진 이야기들을 상상하는 것. 상세한 일러스트 덕분에 독자가 상상할 여지가 무척 많다. 우리 집에서는 달력에 동그라미가 처진 8월 11일은 무슨 날인지, 고양이가 집을 나갔던 이유는 무엇인지, 고양이의 호~를 받은 정민이는 손가락이 나았는지, 딸이 사 온 것은 무엇인지를 이야기해봤다.

 

오늘 지인들과의 단톡방에서 젊은 나이에 암을 만나신 분 이야기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이 고양이를 보내드리고 싶다는 말이 나왔다. 내가 이 책을 얼마나 심취해서 읽었는지, 얼마나 풍덩 빠졌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아프고 외로운 사람에게 이 신통한 고양이가 나타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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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위로 - 답답한 인생의 방정식이 선명히 풀리는 시간
이강룡 지음 / 한빛비즈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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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는 위아래가 없다. 지구도 마찬가지다. 보통 북쪽을 위라고 여기기 쉬운 것은 그렇게 지도를 그려온 관습 때문이다. 근대 시대의 패권을 차지했던 나라들이 북반구에 대부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 달력으로 보면 마지막 날의 마지막 1초가 근대 과학의 역사인데, 마지막 14초로 확장하면 우리 인류의 역사가 된다. 그 14초 안에 우리 인류의 모든 희로애락, 그리고 전쟁과 평화가 담겨있다. 천문학 지식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우주에는 위아래가 없으니 우주의 일부인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p.199)

 

 

아니, 무슨 과학책이 감동적이고 그래? 학교 다닐 때 수학과 과학을 싫어하던 완전히 문과 머리의 내가 마흔을 목전에 두고 과학책을 읽으며 질질 울었다. 나이를 먹은 탓도 물론 있겠지만, 분명히 이 『과학의 위로』는 책 자체가 그렇게 울컥하게 만드는 것도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글쓰기를 가르치던 이상룡 작가가 과학을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과학이라고 감각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상룡 작가의 문장력 때문인지, 내가 성적을 벗어난 어른이 되어 읽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과학은 참으로 매력적인 학문이었다. 

 

『과학의 위로』는 '빛과 입자', '시간과 공간', '과학과 수학', '우주와 인간' 등 총 4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물론 각 주제 안에는 무한과 유한, 빛의 속성, 아날로그와 디지털, 상대성이론, 표준과 단위, 방정식, 기하학, 미분과 적분, 진화, 우주, 원소 등에 대한 진짜 '과학' 이야기를 풀어주시기도 하는데, 그보다 더 매력적인 부분은 그 학문을 삶으로 다시 느끼게 된 작가님만의 포인트를 이야기해주시는 점이다. 솔직히 말해서 과학을 덮어놓고 모르고, 덮어놓고 싫어하던 나는 놀랍고 신기한 발견이었다. 마치 한 가수의 음악을 내 추억으로 덧칠하여 기억하는 것처럼, 작가님은 과학을 생각과 추억으로 덧칠하는 기분이었달까. 그래서 흑백이었던 나의 과학을 컬러풀하게 보이게 만들어주신다. 『과학의 위로』를 통해 위로를 주신 것뿐 아니라, 과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는 묘한 마법도 부리셨다. 

 

물론 『과학의 위로』 이전에도 몇몇 과학책이나 수학책을 보며 놀라움을 느끼기도 했다. 성적을 떠나 만나는 수학과 과학은 생각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던 것. 그것들이 학문에 대한 깨달음에서 빚어진 놀라움이었다면, 『과학의 위로』는 과학이 너무나 일상적이라서 놀랐다. 어느 누가 미분과 적분을 두고 어머니의 사랑을 이야기하는가. 그리고 나는 그것을 읽으며 왜, 학창시절 이해하지 못한 미분을 이해하고 있는가! 

 

참 안타까운 것이, 시험이라는 제도를 벗어나 배우는 학문은 다 각각의 매력이 있다. 문학은 다정한 할아버지 같고, 역사는 모든 것을 품고 안아주는 엄마 같다. 그런가 하면 과학은 꼭 직진남같다. 헷갈리게 하지 않고, 밀당같은 거 하지 않고 딱 나만 좋아해 주는 그런 듬직한 사람 말이다. 『과학의 위로』를 만난 후 그 직진남은 더욱 매력적인 존재로 보이는 느낌이 든다. 

 

이강룡 작가의 『과학의 위로』는 누구나 아는(정확히는 안다기보다 배운 적은 있는) 과학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풀어주는데, “아무나 못 하는 이야기”로 만들어낸 책이다. 감동적인 책이 효율도 있기 어렵고, 지식서가 감동까지 주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과학의 위로』는 감동과 지식을 잘 담아냈다. 그러면서도 값싼 '뷔페처럼'이 아니라, 한식·중식 쉐프를 같이 모셔온 것 같은 느낌이다. 잘 차려놓은 과학 밥상, 독자는 그냥 떠먹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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