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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해주세요
제페토 지음 / 다정한마음 / 2023년 3월
평점 :

누구는 그저 끄적이고, 누구는 취미로 비방을 하는 '댓글'에 진심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담아내 '댓글 시인'이라 불리던 제페토 작가님의 첫 번째 그림책이 세상에 나왔다. 할머니와 고양이가 끌어안고 있는 표지의 『호 해주세요』. 우리 집은 늘 그림을 먼저 보고 난 후 텍스트를 읽으며 감상하는 편인데 사실 이 그림책은, 텍스트를 읽기도 전에 눈물이 핑 돌았다.
『호 해주세요』의 주인공은 외로운 할머니다. 첫 페이지에서 멍하니 텔레비전을 바라보는 모습에서부터 괜히 마음이 쓸쓸했다. 받지 않는 전화기를 들고 가만히 있는 표정이나 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모습은 눈물이 울컥 났다. 후에 나의 엄마가 나이를 먹으면, 저렇게 누워있게 두지 않아야지, 여러 번 생각했다. 어느 날 그 외로운 할머니에게 기적처럼 고양이가 나타나는데, 정말 신통한 것인지 의지했기 때문인지 고양이가 호~를 해주면 아픈 곳이 낫는다. 고양이와 쌓아가는 시간은 절대 가볍지 않다. 서로가 의지가 되고, 가족이 되어 함께 살아간다.
길을 잃었던 고양이와 반가운 딸, 손자가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 『호 해주세요』의 가장 멋진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할머니의 표정이 가장 환해지는 순간이기도 하고. 아마 우리의 어머니들도 우리를 마주할 때 가장 환한 표정이 아닐까, 다 커버린 자식들은 살기 바빠서, 또 나의 생활도 해야 해서 부모님의 표정을 자주 환하게 만들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렸다.
『호 해주세요』의 감상 포인트 1. 생생한 일러스트를 하나하나 감상하는 것. 빨래부터 살림살이, 아이의 책장이나 장난감까지, 집을 통째로 옮겨놓은 것처럼 생생하다. 할머니와 고양이의 표정을 관찰하는 것도 묘미. 우리 아이는 천둥·번개에 깜짝 놀라는 고양이의 표정이 “베스트 표정”이라며 여러 번 감상하더라.
『호 해주세요』의 감상 포인트 2. 그림과 문체의 톤을 감상하는 것. 같은 어두운 배경이지만 할머니의 마음이 슬플 때와 기쁠 때의 톤이 다르다. 우울함이 감도는 보랏빛의 첫 장면과 얼굴만 환한 마지막 장면을 비교하며 감상해보면 사람의 감정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아이와 마음에서 오는 행복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기뻤다.
『호 해주세요』의 감상 포인트 3. 숨겨진 이야기들을 상상하는 것. 상세한 일러스트 덕분에 독자가 상상할 여지가 무척 많다. 우리 집에서는 달력에 동그라미가 처진 8월 11일은 무슨 날인지, 고양이가 집을 나갔던 이유는 무엇인지, 고양이의 호~를 받은 정민이는 손가락이 나았는지, 딸이 사 온 것은 무엇인지를 이야기해봤다.
오늘 지인들과의 단톡방에서 젊은 나이에 암을 만나신 분 이야기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이 고양이를 보내드리고 싶다는 말이 나왔다. 내가 이 책을 얼마나 심취해서 읽었는지, 얼마나 풍덩 빠졌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아프고 외로운 사람에게 이 신통한 고양이가 나타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