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파는 상점 (100쇄 기념 특별 한정판)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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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것도 없이 너무 유명한 책 아닌가. 나 역시 『시간을 파는 상점』의 1쇄를 읽었던 사람으로서, 어느새 100쇄라니! 놀랍기도 하고 당연하다 느껴지기도 한다. 무려 7년 만에 다시 이 책을 만나고, 다시 읽으며 뭉클함도 그때의 다짐들도 다시 떠올려본다. 또 그때의 내가 남긴 감상문을 읽으며, 또 조금 더 젊었던 내 생각들을 느껴보기도 하고.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7년이 지나 읽어도 너무 좋은 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이들이 이 책을 만나고, 읽으며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기를 바라본다. 

 

 

아래는 7년 전 내가 남긴 감상문의 전문. 

 

누구에게나 한번쯤, 되돌리고 싶거 다시 선택하고 싶은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 후회가 세상을 살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후회에는 미련만 남는 것은 아니니까.

 

삶은 지금의 시간을 살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고 아쉬운 건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ㅡ본문 중에서

 

 

나는 소방공무원의 딸이다. 배 속에 아이가 있던 무렵, 정년퇴직하셨으나 나는 평생 소방공무원의 딸이었고 앞으로도 나는 소방공무원의 딸일 것이다. 우 가족들은 아빠가 집에 있는 날에도 창밖에 사이렌 소리가 나면 화들짝 놀랐다. 잠잠해진 어두움에도 쉬이 잠을 청하지 못했다. 불이 자주 나는 동네가 아니었어도 가족에게는 그 소리는 비명 같았다. 언제인가 수해로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던 아빠는 주황색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현관에서 옷을 대충 벗고 들어오셨고 아빠 자동차는 어디론가 떠내려가 아직 못 찾았다는 말을 들었다. 당연히 사람이 먼저였기에 당연한 선택이었으나 우린 그 후 한 달이 넘도록 차가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잔상이 한 달보다 더 길었다.

그 이듬해, 나는 아빠에게서는 탄내가 난다는, 어깨에 앉은 재가 불 끄는 가장의 무게라는 내용의 시로 큰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엄만 신문에 난 내 시를 읽곤 울어버렸고 아빠는 소방서 전체에 아이스크림을 냈다고 했다. 내게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저 아이들이라면 다 괜찮은 사람.

 

이 책의 서두에는 소방관의 유서가 나온다. 사실 이 책이 처음 나올 당시, 난 그 유서를 읽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 그 무렵 아빠는 큰 화재에서 약간의 청력과 30년을 함께 한 동료를 잃었다. 아빠는 왼쪽 귀가 약간 멍멍하게 물속에 있는 듯하다고 했고. 오랫동안을 눈물로 지내야 했다. 그 후 아빠는 바쁘고 복잡한 곳에서의 승진 대신 작은 안전센터를 택했다. 아빠는 퇴직 식도 거절했다. 원래라면 그 동료와 함께했을 퇴직 식을 혼자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다. 아빠의 35년은 작은 종이상자, 그 위에 살짝 튀어나온 쓰던 칫솔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이 책을 읽고 있다.

 

 

서론이 길어도 너무 길었다. 이제 진짜 책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간단히 배경을 이야기하자면 소방관이었던 아버지를 잃고 엄마는 생활전선에 뛰어든다. 온조는 그러지 않아도 되었으나,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몇 가지의 아르바이트를 실패한 후 세상을 확실히 배운다. 돈과 세상의 속도를 배워버린 것이다. 물론 그녀의 엄마는 시간이 그렇게 각지지는 않았다는 말로 자신의 아이를 위로하지만, 온조는 이미 돈과 세상의 상관관계를 이해한다.

 

그렇게 이야기의 시작인, 시간을 파는 상점을 연다. 아빠의 따뜻함을 꼭 닮은.

 

온조는 누군가 훔친 물건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기도 하고 남의 할아버지와 밥도 먹는다.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의 미련과 간절함도 배달한다. 그리고 세상과 등지고 싶은 소년의 마음도 붙잡아주고, 친구의 풋사랑도 엄마의 안타까운 사랑도 잡아준다. 분명 시간인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 다르다. 함께 있고 싶은 사람과의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흐르고 싫은 사람과의 시간은 더디다. 하지만 안타깝고도 당연한 것은 그럼에도 시간은 똑같이 째깍째깍 흐른다.

 

누구에게나 한번쯤, 되돌리고 싶거나 다시 선택하고 싶은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 후회가 세상을 살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후회에는 미련만 남는 것은 아니니까. 후회 속에는 분명 교훈도 남는다. 시간이 똑같이 째깍째깍 흐르기에, 다음 시간에는 절대 실수하지 말자고, 이 흐르는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고 다짐할 수 있는 교훈.

 

모두 알겠지만, 시간이 쉬지 않고 흐르기에 귀한 것이다. 내 마음대로 멈추거나 잘라둘 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시간이 금이라는 말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책에서처럼, 시간은 지금을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는 것. 스스로가 그 시간을 놓지 않는다면 또 다른 어딘가로 안내할 테다.

 

황진이의 마음처럼 동지의 긴 밤을 잘라두고 님 계신 어느 밤에 붙여두진 못하더라도 마음먹기에 따라 1분은 1초도 되고 1시간도 되는 것. 그게 우리가 아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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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대를 위한 역사 인문학 라임 틴틴 스쿨 23
손민정 외 지음 / 라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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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이와 천주교 박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의 말에 깜짝 놀랐다. “엄마, 만약에 천주교가 박해당하지 않았더라면 정약용 선생님은 조금 덜 유명한 분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그치?” 물론 아이에게 정약용의 저서나 업적을 이야기해주기도 했고, 그가 가톨릭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친 집안의 사람인지를 이야기해주기도 했지만, 종교와 역사의 배경을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니! 문득 아이가 또 얼마나 자랐는지를 깨닫게 되기도 하고, 좋은 책을 부지런히 읽혀준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최근 아이와 읽은 『십 대를 위한 역사 인문학』은 역사를 이해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교과서와의 연결,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등을 연걸지어 풀어낸다. 그래서 어른이 읽기에도, 아이들이 읽기에도 생각을 확장하기에 무척이나 좋은 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잠시 언급했던 정약용을 예로 들자면, 그가 백성들과 소통을 하는 성정을 지닌 관료였다는 것을 시작으로 책에서 배운 것을 실제로 써먹는 '실학'을 연구했던 것 등을 재미있게 풀어낸다. 한강에 배다리를 놓고, 거중기를 설계하고 목민심서를 집필하는 등 백성들의 삶을 얼마나 돌보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또 천주교 서적이 문제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그가 여유당을 짓고, 신유박해를 통해 형제들을 잃고 유배당하는 배경에서부터 그가 유배 중 편찬한 책 등을 바탕으로 그가 생각했던 학문의 의미까지를 풀어내기에 몇 장의 책을 읽은 것만으로도 정약용에 대한 개념이 서고,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십 대를 위한 역사 인문학』에서 만날 수 있는 인물들은 스무명 남짓으로, '리더십의 길'에서는 김유신, 장보고, 왕건, 광종을, '통찰의 빛'에서는 정도전, 최명길, 정조, 정약용을 만날 수 있다. 이어지는 '신념의 불꽃'에서는 안중근, 권기옥, 신채호, 이극로를 통해 독립투사들이 “왜”그래야만 했는지를 선명하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그 외에도 '저항의 목소리'에서는 윤동주, 김학순, 전태일, 이한열 등을 통해 민족의 아픔, 식민지의 고통, 노동운동의 가치, 민주주의의 의미까지를 깊이 생각해보도록 돕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위인들 모두를 각각의 책으로 만나본 엄마지만, 아이와 『십 대를 위한 역사 인문학』을 읽는 내내 집중하여 읽을만큼 재미있고 흥미로운 구성을 갖춘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 역시 초등학생에게 꽤 글밥이 많은 편이었는데도 긴 시간을 집중하여 읽고, 의견을 정리하는 등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처음 『십 대를 위한 역사 인문학』을 만나기 전부터 예스 펀딩 100%를 달성한 책이라 무척이나 기대가 컸고, 십 대를 위한 역사 인문학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아이들이 한국사를 보다 깊이, 다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기대를 완벽히 채워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우리 아이 역시 무척 흥미로워 하며 다시 첫 페이지를 펼쳐드는 것을 보며 잘 만든 책은 독자가 스스로 찾는다는 말을 실감했다. “역사가 입체처럼 느껴지는 책”이라는 아이의 말이 완벽한 비유라는 생각을 해보며, 많은 분들께 『십 대를 위한 역사 인문학』을 강력 추천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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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완벽한 가족
최이정 지음 / 담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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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미쳤어? 아주 돌았구나. 제정신 아니지? 머리가 있으면 생각이라는 걸 해야지. 애를 낳는다고?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얼른 일어나, 빨리! (p.83)

 

이 페이지를 읽다가 문득 내가 임신했던 날을 가만히 떠올려봤다. 온 가족이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던 그날. 하긴. 결혼 3년차, 그렇게도 기다리던 아이 소식이니 그랬을 수 밖에 없다. 정말 우리집에 찾아온 생명자체가 빛이고 소금이었다. 또 생각해본다. 지원의 아이는 그런 귀한 존재가 아닌가, 하고. 물론 봄이는 우리 아이처럼 당연히 빛나는 존재지만 시기가 적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하긴. 어느 부모가 고3 아이의 임신소식을 반가워할 수 있단 말인가. 

 

우연히도 근래 읽은 두 권의 책이 모두 고등학생 엄마를 배경으로 한다. 이번에 읽은 『거의 완벽한 가족』은 앞서 읽은 『고딩엄마 파란만장 분투기』와 달리 소설이라 조금 마음이 편하지만(?), 더 짠하고, 더 속상하고, 아무튼 그런 복합적인 마음이 드는 책이다. 읽은 후 이렇게 많은 생각을 마음에 남기는 것을 보니, 참 진한 책이다. 

 

『거의 완벽한 가족』은, 아이러니하게도 제목을 통해 상상할 수 있듯, 진짜 완벽한 가족이 아니다. 아니, 심지어 진짜 가족도 아니다. 오히려 지원의 진짜 가족은, 고3에 임신을 한 지원을 부끄러워했고, 아이를 지우라했고, 아이를 뺏으려했고, 창피해했다. 그런 집에서 도망치듯 나와서 혼자 겨우겨우 살아가며, 다행히도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 마음을 다해 지원과 봄이를 챙기는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의지하며 살아가게 된다. 어느날 문득 그들의 고마움을 깨달은 지원이 “나를 아껴주는 분들이 옆에 다 계셨네, 나를 다시 살아게 해준, 이렇게 좋은 분들이 많았는데 미처 몰랐다(p.185)”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분명 세상에는 아직 좋은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하게 되더라. 그렇게 눈물 좀 흘리며 책을 읽고 나니 책이 말을 한다. “인생이 소설이고, 소설이 인생이다. (p.210)”라고.

 

사실 사는 게 바빠질 때마다 손에서 가장 먼저 놓아버리는 책이 소설이다. 가장 재미있지만 읽지 않아도 큰일이 나지 않으니까, 우선 순위에서 밀어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문득 생각해본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온 순간들도 지나고 보니, 소설의 한 장면처럼 슬프기도 했고 반짝이기도 했고 행복하기도 했다는 것을. 또 그 순간순간들 사이에는 늘 네잎클로버같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거의 완벽한 가족』을 읽으며 나도 누군가에게 은주, 혹은 정례가 되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깨달은 또 하나. 거의 대부분의 것들에 “거의”라는 단어를 붙이면 세상이 조금 쉬워지고, 조금 더 행복해진다. 완벽은 어렵지만 거의 완벽한 것은 가능하고, 백점은 어렵지만 거의 백점은 가능하다. 마무리는 어렵지만 거의 마무리하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나의 깐깐한 잣대들에 “거의”를 붙여보려고 한다. 『거의 완벽한 가족』덕분에, 너그럽지 못한 성정에 조금은 쉼표를 달 수 있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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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엄마 파란만장 인생 분투기 - 반드시 지켜주겠다는 약속
차이경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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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도 미련이 없었다. 포기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아팠다. 온 몸으로 아팠다. 아프다고 표현하기엔 부족한 고통이었다. 내가 울고 있는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엄마라는 이름. (p.218) 

 

제발, 누구든 이 책의 장르가 “소설”이라고 말해줘요. 제바알. 그러나 이 책의 표지에는 그 세월을 고스란히 겪어낸 작가의 웃는 얼굴 밑에 “원조 고딩엄마”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그러나 텔레비전만 돌리면 그저 쾌락의 결과로 아이만 낳아 제멋대로 길러버리는 그런 고딩엄마, 아빠가 아니다. 딴에는 최선을 다해 살아낸, 진짜 전쟁같은 이야기, 『고딩엄마, 파란만장 인생 분투기』를 소개한다. 

 

『고딩엄마, 파란만장 인생 분투기』는 제 12회 브런치북 종합 부문 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주)문학동네의 동생(?) 이야기장수에서 출간된 책이다. 사실 지금까지 이야기장수에서 출간된 책들을 무척 재미있게 읽고 있었던 터라, 이 책은 만나기도 전부터 기대중이었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제발 이 책은 문학동네라고 말해달라는 마음이 마구마구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비빌언덕 하나 없는 딱한 아이가 아이를 낳아, 책임을 지고 사랑을 한단 말인가. 누군가 이 책을 두고 “현대판 애순이”라고 적었지만, 정작 애순이는 목숨걸고 사랑하는 엄마라도 있었고, '도희적 장학금'을 주는 새아빠네 새엄마(?)도 있었고, 알뜰살뜰 챙기는 이모들이라도 있었고, 애순이를 위해서라면 세상을 등질 수 있는 관식이라도 있었지! 우리의 차이경 작가는 가끔 책임감을 가지는 엄마와, 모진 구박에 병간호까지 얹어주는 시어머니, 얌채같은 동서들, 철없는 남편친구들, '은명이'에 살짝 '관식이'를 묻힌 듯한(중반까지 조마조마하기만 했던) 남편까지 누구하나 기댈 언덕이 없다. 진짜 비빌 언덕하나 없이 혼자다. 

 

그러나 주민등록증도 없이 덜컥 엄마가 되었지만 기가 막히게 아이를 사랑하는 뜨거움과, 착하고 유순한 아이들 덕분인지 그녀는 어찌저찌 살아낸다. 남편의 군입대를 막기 위해 청와대에 편지도 쓰고, 딱 죽기 직전에 사고보상금을 받기도 하고, 죽음의 목전에 서서 절망할 때 처음으로 꿈을 꾸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야말로 잡초처럼 밟혀도 다시 피어나고, 다시 꽃을 맺으며 점점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그녀에게 물을 주는 어른은 없었지만, 그녀는 혼자서 물길을 트고,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누구보다 환하게 빛났다. 누구보다 크고 아름다운 꽃으로 존재들 드러낸다. 그래서 그녀의 글을 읽는 내내 화가 치밀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하고, 불안에 떨기도 하며 같이 흔들렸다. 그래서 나는 “이젠 그 정도에 내 기분이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p.335)”는 문장을 읽으며 그녀를 안아주고 싶어졌다. 고생했다고, 잘 자랐다고 토닥여주며 말이다. 

 

아직 이 책을 만나지 않은 분들이 여기까지의 감상을 읽는다면, 혹자는 “일부러 눈물 빼려고 쓴 글 아니야?”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딩엄마, 파란만장 인생 분투기』는 절대 그런 책이 아니라고 미리 적어두고 싶다. 만약 청승맞은 시간들을 기록하지만 했다면, 이 책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에는 긴 터널을 지나온 사람만이 배울 수 있는 깨달음이 가득했다. 

 

“내 삶의 끝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내 삶의 힘을 믿기로 했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삶은 나보다 훨씬 지혜로우며 견고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 힘에 몸을 싣고 나는 또 치열하게 살아갈 것이다.(p.351)”는 그녀의 깨달음은 마치 발레리나의 굳은 살 가득한 발처럼 시큰하다. 

 

“장대비도 결국엔 그친다”. 알면서도 인정하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그녀를 통해 결국 비가 그치고 무지개도 뜬다는 것을 또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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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라틴어 원전 완역본) - 시간과 운명, 인생의 본질에 관한 세네카의 가르침 현대지성 클래식 68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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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기 좋은 것이 아니라 건실하고 변함없으며 숨겨진 부분이 더욱 아름다운 것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파헤쳐 찾아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서 멀리있지 않습니다ㅣ. 손을 어디로 뻗어야 할지만 알면 당싡은 그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p.61) 

 

아! 나는 이 책을 왜 이제야 제대로 읽은 것인가. 진짜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인생책이라 부르는지를 이제야 알다니. 부디, 나처럼 아직도 세네카의 지혜를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이 있다면 부디 만나보기를 강력추천 드린다. 우리가 흔히 세네카 전집이라 부르는 『화에 대하여』와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를 한꺼번에 만났는데, 정말 살며 마음에 담아두면 좋겠다 싶은 내용이 가득했다. 특히 이번에 현대지성에서 출간된 『화에 대하여』와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는 라틴어 완전 완역본이라 보다 정확하고 명료하게 세네카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니, 꼭 한번 만나보시길 추천해 드린다. 

 

세네카 전집 두 권 중에서 나는 『화에 대하여』를 먼저 읽었다. 사실 과거에 철학책을 부지런히 볼 때, 세네카의 이론을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터라, 『화에 대하여』를 100페이지 가량 읽을 때까지도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생각했었지만, 이내 한 문장을 만나고 나서는 (혼나는 것같은 기분을 살짝) 배움에 얹어 진도가 쑥쑥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는 정말 왜 진작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나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것 같다.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는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행복한 삶에 대하여, 은둔에 대하여, 섭리에 대하여와 마르키아, 어머니 헬비아, 폴리비우스에게 보내는 위로를 엮은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행복한 삶과 섭리를 이해하는 부분을 읽으며 무척이나 많은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세네카가 말하는 이 짧은 인생을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올바른 판단력을 지닌 사람, 현재의 처지가 어떠하든 만족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사랑하는 사람, 모든 일을 이성의 지시에 따라 행하는 사람(p.66)”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한다. 동양의 철학에 빗대자면 안분지족의 삶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본다. 우리는 만족하지 못하면 결코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 쉬이 만족하지 못할 뿐. 그러나 세네카의 이론을 읽으며 나는 또 다짐을 해본다. 오늘에 만족하고 살자고, 지나가버린 어제도, 오지 않을지도 모를 내일도 아닌 오늘. 그렇게 사는 삶이야말로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으리라고.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를 읽으며 한 문장에서 울컥, 마음이 내려앉았다. “당신도 잃을 수 있습니다(p.174).”였다. 그의 말처럼 결코 나에게는 불행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착각이야 말로 우리를 가장 심하게 무너뜨린다는 것을 또 확인하며, 나이를 먹으며 점점 익숙해져야 할 이별과 상실 등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토록 훌륭한 00과 함께 할 수 있어 즐겁고 유익했음을 기뻐하고, 비록 함께한 시간이 짧았더라도 그것을 복으로 여기십시오.(p.286)” 그가 폴리비우스에게 보내는 위로 중 한 문장에서 주어를 지워보았다. 저 안에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넣어보면, 세상이 무너지는 아픔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오늘, 가만히 나의 이름을 넣어본다. 내가 세상에 없는 어느날, 누군가에게 나와 함께 한 시간이 복이 되려면, 나 역시 나의 마지막에 복된 삶이었다 느끼려면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40대의 초입, 어쩌면 지금까지는 정신없이 바쁘게 달려온 삶이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겉이 아닌 내면을 조금 더 가꾸고, 조금 더 성숙한 인간으로 살아가도록 해야할 전환점이 아닐까. 이런 시기에 세네카의 철학을 읽을 수 있어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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