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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완벽한 가족
최이정 지음 / 담다 / 2025년 7월
평점 :

너 미쳤어? 아주 돌았구나. 제정신 아니지? 머리가 있으면 생각이라는 걸 해야지. 애를 낳는다고?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얼른 일어나, 빨리! (p.83)
이 페이지를 읽다가 문득 내가 임신했던 날을 가만히 떠올려봤다. 온 가족이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던 그날. 하긴. 결혼 3년차, 그렇게도 기다리던 아이 소식이니 그랬을 수 밖에 없다. 정말 우리집에 찾아온 생명자체가 빛이고 소금이었다. 또 생각해본다. 지원의 아이는 그런 귀한 존재가 아닌가, 하고. 물론 봄이는 우리 아이처럼 당연히 빛나는 존재지만 시기가 적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하긴. 어느 부모가 고3 아이의 임신소식을 반가워할 수 있단 말인가.
우연히도 근래 읽은 두 권의 책이 모두 고등학생 엄마를 배경으로 한다. 이번에 읽은 『거의 완벽한 가족』은 앞서 읽은 『고딩엄마 파란만장 분투기』와 달리 소설이라 조금 마음이 편하지만(?), 더 짠하고, 더 속상하고, 아무튼 그런 복합적인 마음이 드는 책이다. 읽은 후 이렇게 많은 생각을 마음에 남기는 것을 보니, 참 진한 책이다.
『거의 완벽한 가족』은, 아이러니하게도 제목을 통해 상상할 수 있듯, 진짜 완벽한 가족이 아니다. 아니, 심지어 진짜 가족도 아니다. 오히려 지원의 진짜 가족은, 고3에 임신을 한 지원을 부끄러워했고, 아이를 지우라했고, 아이를 뺏으려했고, 창피해했다. 그런 집에서 도망치듯 나와서 혼자 겨우겨우 살아가며, 다행히도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 마음을 다해 지원과 봄이를 챙기는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의지하며 살아가게 된다. 어느날 문득 그들의 고마움을 깨달은 지원이 “나를 아껴주는 분들이 옆에 다 계셨네, 나를 다시 살아게 해준, 이렇게 좋은 분들이 많았는데 미처 몰랐다(p.185)”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분명 세상에는 아직 좋은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하게 되더라. 그렇게 눈물 좀 흘리며 책을 읽고 나니 책이 말을 한다. “인생이 소설이고, 소설이 인생이다. (p.210)”라고.
사실 사는 게 바빠질 때마다 손에서 가장 먼저 놓아버리는 책이 소설이다. 가장 재미있지만 읽지 않아도 큰일이 나지 않으니까, 우선 순위에서 밀어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문득 생각해본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온 순간들도 지나고 보니, 소설의 한 장면처럼 슬프기도 했고 반짝이기도 했고 행복하기도 했다는 것을. 또 그 순간순간들 사이에는 늘 네잎클로버같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거의 완벽한 가족』을 읽으며 나도 누군가에게 은주, 혹은 정례가 되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깨달은 또 하나. 거의 대부분의 것들에 “거의”라는 단어를 붙이면 세상이 조금 쉬워지고, 조금 더 행복해진다. 완벽은 어렵지만 거의 완벽한 것은 가능하고, 백점은 어렵지만 거의 백점은 가능하다. 마무리는 어렵지만 거의 마무리하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나의 깐깐한 잣대들에 “거의”를 붙여보려고 한다. 『거의 완벽한 가족』덕분에, 너그럽지 못한 성정에 조금은 쉼표를 달 수 있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