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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질감 - 슬픔이 증발한 자리, 건조하게 남겨진 사유의 흔적
고유동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2월
평점 :

멈추고 싶다. 몸마저 작동을 포기하려는 순간, 멈춤과 나아감의 미묘한 갈림길에서 어떤 이질적인 생각이 피어올랐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나아가는 걸까. 이상일까 아니면 걷는 행위 그 자체일까. 이상에 도달할 수 없다면, 행위 자체에 의미를 담을 수는 없을까. 미래를 생각할 수 없다면 현재, 바로 지금을 생각할 순 없을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하늘, 우주를 생각하기보다는 내 발밑의 흙을 생각할 순 없을까.
멈춤은 '마침', 그러니까 '끝'을 의미한다. 가능성의 종말, 변화의 무덤이다. 그것은 죽음과 다를 바 없다. 나는 지금 죽음을 바라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갈망 에의 도달. 이성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외치고 있으므로 조금 수정한다.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갈망에의 수렴. 끝없 이 0을 향해 달려가나 결코 0에 당을 수 없는 접근선처럼, 갈망에 한없이 가까워지길 간절히 바란다, (P.67)
깊은 사유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에세이, 『낱말의 질감』을 읽었다. 시간에 쫓길 때 에세이를 즐겨읽는 편인데 이번주는 내내 병원과 집을 여러번 오갔던 터라, 읽을 책장에서 가장 짤막하게 구성된 산문집을 선택했는데, 그것이 『낱말의 질감』이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번주 나에게 가장 필요한 문장이 아니었을까, 이번주의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위로가 아니었을까 싶어진다.
고유동 작가의 『낱말의 질감』을 한 줄로 표현하자면 “슬픔의 흔적이 남은 문장”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분명히 할 것은 “슬픔”그 자체가 아니라 “슬픔의 흔적”이다. 작가는 스스로에게 온 좌절과 고통을 천천히, 그리고 깊이 받아들이고 이겨내며 이 문장들을 남긴게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의 문장들은 때론 슬프지만, 음울함이 아닌 위로를 느낄 수 있었다. 『낱말의 질감』깊은 사유를 통해 만들어진 산문이란 이런 것이다는 생각이 드는 에세이였다. 마치 문장이 내게 “나도 힘든 시간을 겪어봤지. 그런데 또 살아지더라. 그러니 살아.”하고 말을 걸어주는 느낌이었다.
『낱말의 질감』을 다 읽은 뒤에야 비로소 제목을 곱씹어보았다. 낱말과 질감이라. 과연 이 두 단어가 같은 선상에 존재할 수 있는 단어일까. 하지만 이내 단어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은 없음을 깨닫는다. 설령 있다고 해도, 우리는 살아가며 그 많은 낱말들에 나의 감정을 붙이며 그것에게 생명을 준다. 그래서 어떤 낱말은 부드럽고, 매끈하며, 혹은 까끌하다. 『낱말의 질감』이라는 제목조차 결국 그가 가진 삶의 태도를, 그가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시각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덕분에 나 역시 내가 사용하는 단어들의 질감을, 향을 생각해보게 되더라. 참 신기하게도 그렇게 하나하나 곱씹는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깊이 생각하는 순간이 되고, 깨닫는 학습이 되었다.
운문은 삶의 순간순간을 위로하고 축하하는 음악처럼 느껴진다. 그 매력에 나 역시 학창시절 내내 운문을 쓰는 학생이었겠지.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어쩌면 우리 삶은 산문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어진다. 특히 『낱말의 질감』같은 에세이를 만날 때면, 한문장으로 정리할 수는 없지만 저마다의 회노애락, 저마다의 기승전결을 담으며 살아가는 인생은 그야말로 산문이다 싶어진다. 몸도 마음도 지친 한 주, 『낱말의 질감』은 내게 큰 위로를 주었고, 말없는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혹 오늘의 당신이 버거운 하루를 보냈다면, 『낱말의 질감』을 만나보길 바란다. 누군가의 깊은 사유에서 공감을 느끼고, 그의 낱말들이 나의 것이 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