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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어른
이옥선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8월
평점 :
뭐지? 이 핫하면서도 냉철하고 까칠한데 따뜻하고, 꼰대같지만 털털한 글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즐거운 어른』을 읽으며 열댓번은 작가소개를 다시 읽었다. 1978년생이라고 해도 놀라울 판단력과 솔직함, 기상천외한 말들과 웃음이 빌빌 나올 것 같은 소재들이 무려 “1948년생”, 만 76세 쥐띠 할머니의 글이라니!! 어떤 수식어를 써도 부족한 에세이. 차가운데 안 차갑고(?), 까칠한데 안 까칠하며(?), 꼰대인데 안 꼰대인(?) 에세이, 『즐거운 어른』를 소개해본다.
1. 분명 차가운데 핫해
나는 남편의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추석에도 각자 집에서 알아서 지내기로하고, 사촌들끼리 얼굴이라도 볼 작정이라면 설날은 참석하겠다고 그야말로 선언을 한 것이다. (...) 부산항대교를 지나면서 “나는 자유다”라고 크게 소리지르고 싶었지만 마음만 그렇게 했다. (p.23)
유방암 검사하는 사진을 찍을 때 엄청 아프게 꽉 눌러서 찍는 바람에 비명이라고 지르고 싶었는데, 보형물을 넣은 사람은 어째야 하나 걱정이 다 되네. (p.57)
『즐거운 어른』의 작가님은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문장력을 가졌다. 얼마나 많이 읽고 쓰면 이런 노련함이 묻어나게 될까. 작가님은 매일 목욕탕에서, 목욕은 안하시고 필살기라도 연마하신 것처럼 문장 한 줄 한 줄 강력한 한방이 들어있다. 그래서 독자의 마음도 화가 식기도 하고, 따뜻한 온기를 느끼기도 한다. “70살 되도 그림책 읽는 할머니”가 내 장래희망이었는데, 거기에 한 줄을 더하기로 했다. “70살 되도 글도 쓰는 그림책 읽는 할머니”말이다.
2. 까칠하고 따뜻해.
그들이 아무리 대단한 것을 인류에게 남겼다 하더라도 잘못한 일에 대해서 욕 정도는 해줄 수 잇는 나이란 말이지. 에라이 이노무 자슥들아! (p.44)
그런 날들이 있었다. 노래 가사처럼 지나간 좋았던 날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날들이지만, 그런 날들이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다. (p.174)
사실 몇몇 문장들은 괜히 조금 울컥했다. 얼마전 아이에게 “행복한 날들을 많이 모아두어야, 힘들 때 야금야금 꺼내먹을 수 있다”고 말해주었는데, 마치 “그래, 잘 해내고 있어”하고 등을 토닥여주시는 것 같달까. 태어나 처음으로 사람들이 욕쟁이할머니의 국밥집에 왜 가는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했다. (아 작가님이 욕쟁이란 말은 아니다. 겉이 까칠해도 속이 따뜻하다는 소리다)
3. 쿨과 꼰대, 그 사이의 “할언니”
친구들 사이에서 요즘 유행하는 말은 “너 아무도 안 쳐다봐!”이다. 내가 다 퍼트렸다. (p.203)
일반인들도 그렇게 되고 싶어서 돈을 쓰고 시간을 투자하고 야단법석이다. 성형을 하고 피부관리를 하고 식스팩을 만든다. 우리는 지금 나로서 사는 일보다 남들에게 보여지기 위한 나에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은 아닐까? (p.65)
사실 나는 읽는 내내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살짝 “젊은이들보면 꼰대라고 하겠구나”하는 포인트도 만날 수 있었고, 나보다 더 쿨하시다는 생각이 든 문장도 많았다. 진짜 『즐거운 어른』를 읽는 내내 웃고 울고, 공감하고 속시원해하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이 나오더라. 아무 생각하지않고 풍덩 빠져 읽을 수 있는 책, “진짜 어른”이 빼곡하고 부지런히 살아온 삶의 통찰을 만날 수 있는 책, 『즐거운 어른』였다.
정말 이 책은 만나봐야 매력을 아니, 『즐거운 어른』를 제발, 부디, 꼭 만나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