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초록색 병
아르투르 게브카 지음, 아가타 두덱 그림, 엄혜숙 옮김 / 천개의바람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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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은 술을 좋아하고, 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부디, “초록색 병”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줄어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술. 나 역시 한두 잔의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술이 약하다 보니 소주를 먹는 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한가지 다짐한 것이 있다. “너무 슬픈 날은 술을 먹지 말 것.” 물론 20대에는 기쁜 날도 슬픈 날도 술을 먹기도 했지만, 대부분 “사고”는 슬픈 날에 마신 술에서 일어나더라. 그런데 이번에 읽은 그림책, 『아빠와 초록색 병』을 읽으며 더욱 술에 대한 경각심을 잃어서는 안 되겠다 생각했다. 만약 나처럼 가볍게 술을 즐겨온 사람들도 술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얻어보시면 좋겠다. 서서히 우리를 중독시키는 악마에 대한 말이다. 더불어 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신 분들은, 부디 제발 이 그림책을 만나보시길 바란다. 『아빠와 초록색 병』속의 아이 표정에 집중해주시길 바란다. 그래서 초록색 병에 갇히기 전에 끊어낼 수 있기를, 당신의 아이가 그런 표정이지 않기를 말이다. 

 

『아빠와 초록색 병』의 표지에서부터 이 책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엿볼 수 있겠다. 술과 “가정폭력”을 다룬 그림책을 몇 번 감상했던 터라 그런 상상을 했지만, 『아빠와 초록색 병』의 폭력은 그것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스스로를 파괴하고, 그로 인해 가족들의 마음까지 서서히 죽여가는 폭력.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더라도 가족을 멍들게 만드는 알코올중독, 혹은 알코올 의존증을 다루고 있다. 그림책치고는 꽤 텍스트가 많은 편인데, 문장이 섬세하게 이어지기 때문에 호흡이 끊기지 않고 읽힌다. 총 26단계에 걸쳐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무척이나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한가지 특징적인 것은 스토리마다 초록색이 점점 짙어진다는 것. 2번째 이야기에서부터 생긴 초록 점은 점점 커지다가 23번째 이야기에서는 한 페이지 전체를 덮어버린다. 그 초록색이 무척 걱정스러웠던 까닭인지, 마지막 장에 새하얗게 돌아온 페이지를 보며 안도감을 느꼈다. 초록색에 지배당한 이들이, 부디 다시 하얀 페이지가 될 수 있기를 바라게 되기도 했고. 

 

또 하나 특징적이라 느낀 것은 아이의 블록. 처음에는 알록달록 페이지를 장식하던 아이의 블록은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점차 그 빛과 숫자를 잃어간다. 커다란 초록 병이 거실을 사용할 수 없을 만큼 차지한 즈음에서부터는 블록이 보이지 않는데, 그것이 마치 아이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무척이나 당연한 “집에서 편안히 놀 권리”를 빼앗긴 것 같아 슬프게 느껴졌다. 배경이 다시 하얗게 돌아온 후에야 아이 주변에 블록들이 다시 생겨있을 때,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면서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이 부모의 상태에 완전히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빠와 초록색 병』은 알코올 의존증의 심각성을 글로도 색으로도, 일러스트로도 심층적으로 느끼게 한다. 그 자체만으로도 완성도가 높은 책이지만,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묵직해 더욱 오래도록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분명 『아빠와 초록색 병』은 알코올 의존증을 가진 당사자에게도, 그 가족들에게 묵직한 응원을 전해줄 책이다. 부디 당신들의 삶이 아픔과 미움, 원망으로 물든 초록색이 아닌, 희망의 하얀 페이지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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