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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딸이 되려고 몇 생을 넘어 여기에 왔어
이순하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4월
평점 :

어찌 살아야 버터지는지를 모르니 내 나름대로 해답을 만들어야 했다. 그중 하나가 몸이 아픈 날엔 뜨끈한 해장국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그랬듯 밥주발 뚜껑의 온기에 데워진 술로 반주하며 동시에 해장국을 넘기면 아픈 몸이 씻은듯이 나았다. 뜨거운 국밥을 깔깔한 목구멍에 밀어넣으면 순간 뚝배기 안에 담긴 그리움에 울컥 목이 메었지만, 점차 몸이 풀리면서 마음도 개운해졌다. 그렇게 젊은 날을 날선 송곳처럼 앙칼지게 버텼고, 때로는 푹 퍼진 시래기처럼 늘어지기도 했다. (p.5)
『엄마의 딸이 되려고 몇 생을 넘어 여기에 왔어』는 읽은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 내가 이 책을 어떻게하면 맛있게 기록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꽤 늦어졌다. 큰 곡절없이 살아온 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잊고 살았던 생채기들을 떠올려보기도 했고, 나의 추억이 얹어진 음식들은 무엇이었나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래서 어쩌면 『엄마의 딸이 되려고 몇 생을 넘어 여기에 왔어』는 읽는 그 순간보다 서서히 소화되며 주는 포만감이 더 컸던 것 같다.
책이야기에 왠 포만감이냐 묻겠지만, 정말 『엄마의 딸이 되려고 몇 생을 넘어 여기에 왔어』는 든든히 말아먹은 국밥처럼 속이 든든해지는 책이다. 『엄마의 딸이 되려고 몇 생을 넘어 여기에 왔어』의 작가가 참 이야기꾼임을 알 수 있는 게, 음식에 맛있는 이야기를 엮어낸다. 어떻게 보면 그리 특별할 것도, 진귀한 것도 아닌 음식들인데 그래서 더 투박하고 더 맛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것은 마치, 책가방을 매고 집으로 돌아올 때 집에서 나던 찌개향기처럼- 추운겨울 친구와 호호 입김을 뿜어대며 먹던 길거리 어묵처럼- 그 맛자체에 더해진 추억이라는 조미료의 효과일지도 모르겠다.
비를 맞고 기다린 조카에게도 내줄 수 없던 단팥빵이 주는 쓸쓸함이, 호떡 몇장으로나 갚을 수 있던 친구네 가족의 훈훈함이, 상처 위로 켜켜히 쌓아올린 '동병상련'의 위로같은 미역국이, 엄마의 손끝에서 나던 아린 마늘과 고춧가룻물이- 그녀를 슬프게도 하고 웃게도 했다. 참 신기한 게, 『엄마의 딸이 되려고 몇 생을 넘어 여기에 왔어』를 읽는 내내 “이게 뭐라고 이렇게 슬퍼”하는 말이 몇번이나 입밖으로 터져나왔다. 나도 어느새 울면서도 입에 국밥을 밀어넣는 드라마 주인공의 마음을 아는 나이가 된 탓인지, 이 책을 읽는 내내 탕수육이, 선지해장국이, 냉면이, 아귀찜이 슬펐다. 돌아보니 나에게도 그런 음식들이 있었고,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우리는 유독 '밥'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다. 잘 지내냐는 안부대신 “밥은 먹고 다니냐”고, 또 만나자는 말은 “언제 밥 한 번 먹자”로 한다. 가족이 죽어 장례식을 치르면서도 찾아온 손님들에게 국밥을 건넨다. 『엄마의 딸이 되려고 몇 생을 넘어 여기에 왔어』를 읽고서야 어쩌면 밥은 정이고, 사람을 죽고 살리는 것이며, 삶 그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의 딸이 되려고 몇 생을 넘어 여기에 왔어』는 삶의 기록이다. 그녀가 살아온 굴곡진 삶 어딘가의 쉼표고,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