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유성처럼 스러지는 모습을 지켜볼 운명이었다
미나토 쇼 지음, 황누리 옮김 / 필름(Feelm)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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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병은 마음에서 온다는 말도 잖니. 그런 일이 있긴 해. 긍정적인 환자들은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을 종종 일으키거든. 많지 않지만 나도 경험한 적 있고 말이야. (p.263) 

 

솔직히 말하면 제목이 전혀 마음에 닿지 않았다. 『네가 유성처럼 스러지는 모습을 지켜볼 운명이었다』라니. 길긴 왜 이렇게 길고, 유성처럼 스러진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나는 극 f의 사람이지만 도무지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소설의 배경 또한 몰입되지 않더라. 신종 희귀병에 걸린 것으로 설정된 우리의 주인공. 그런 게 그 병이란 것이 밥을 먹을 때마다 남은 목숨이 줄어들고, 수치가 0이 되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니. 치료법도 없고, 처음 발견되었을 때부터 한 100끼 정도를 먹으면 죽음에 이르게 되어 “여명백식”이란 이름을 지녔단다. 한두 달에 남짓한 이 시간을 “잘” 먹기 위해, “행복하게” 먹기 위해 마지막 100끼를 같이 먹을 사람을 구한다니. 뭐 이런 설정이 다 있어? (죄송하다. 원래 일본식 소설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종종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것 같다.) 

 

사실 이렇게 공감 0%의 마음으로 시작한 『네가 유성처럼 스러지는 모습을 지켜볼 운명이었다』였기에 내가 이 소설을 잘 읽어낼 수 있을까 걱정부터 들었다. 하지만! 이 이상한 관계의 주인공들이 무엇인가를 먹는 것을, 어찌나 맛있게 표현해내던지, 나도 모르게 책에 풍덩 빠져들게 되더라. 또한, 죽음을 향해 담담히 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어제를 돌아보거나 내일을 욕심내다가 오늘을 망쳐버리는 태도보다는, 그저 오늘만을 성실히 살아내는 건강한 모습이라고 느껴지기도 해서 뭔지 모를 포인트에 자꾸 마음이 갔다. 

 

죽다 살아난 경험에서 삶을 회피하는 사람과 죽어야 할 순간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사람. 이 둘은 서로에게서도 묘한 감정들을 느끼고, 이로 인해 독자 역시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가진다. 사실 『네가 유성처럼 스러지는 모습을 지켜볼 운명이었다』 그 자체보다 책을 읽고 난 후 내가 나의 삶을, 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볼 때 더 짙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네가 유성처럼 스러지는 모습을 지켜볼 운명이었다』가 더 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의 마지막 날을 예상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한계치가 정해져 있지 않아서일까. 우리는 우리의 하루를 더 소중히 사용하지 못한다.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 내년에 죽는다면- 우리는 이 하루가 얼마나 귀하고 아까울까. 『네가 유성처럼 스러지는 모습을 지켜볼 운명이었다』를 읽는 내내 나의 하루가, 나의 한 끼가 얼마나 귀한지를 생각해봤다. 

 

『네가 유성처럼 스러지는 모습을 지켜볼 운명이었다』는 일본소설을 좋아하는 이라면 얼마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고, 나처럼 일본소설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읽고 난 후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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