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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역은 요절복통 지하세계입니다 - 현직 부산지하철 기관사의 뒤집어지는 인간관찰기
이도훈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6월
평점 :
일시품절

한때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지하철이라는 공간에 주인공이 있다면 그건 기관사가 아닐까. 그때 나는 기관사만이 주인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열차가 고장나거나 민원이 있을 때면 관제사나 역무원, 청소 여사님, 검수 직원들이 득달같이 달려나와 힘이 되어 주었다. 문제가 터지고 도움을 받고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우리 모두의 필요에 대해서. (p.114)
『이번 역은 요절복통 지하세계입니다』는 제 11회 브런치북대상수상작이다. 부산지하철 기관사로 근무하는 작가님의 지하철 관찰기를 담은 에세이로, 엄청난 입담과 놀라운 일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고루 만날 수 있는 책이다. 그야말로 희노애락이 한 권에 담긴, 대단한 책이랄까.
기왕 희노애락으로 말을 시작했으니 각각의 이야기를 한가지씩 풀어볼까 한다.
희. 기쁨.
“적어도 당신만은 알지 않는가. 그것이 당신의 하루, 당신 생애 최초의 순간이었다는 것을 (p.217)
『이번 역은 요절복통 지하세계입니다』에서 가장 자주 느낀 감정은 기쁨이었다. 가벼운 기쁨은 아니고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건강한 기쁨. 이 책에는 수많은 성실한 이들의 삶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나 역시 더 성실히, 제대로 살아가야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에세이라는 문학에서 만나는 가장 큰 수확이 바로 그것 아닐까. 타인의 건강한 성실함에서 나도 그러리라고 다짐하게 되는 것.
노. 화
“열차 코앞에서 선로로 머리를 내밀었던 할아버지가 침을 뱉고는 홱 뒤돌아서 승강장 안쪽으로 가버렸다. 본인때문에 비상제동이 체결됐고, 열차가 기적을 울리는데도 할아버지는 신경쓰지 않았다.(207)”
『이번 역은 요절복통 지하세계입니다』에는 내가 싫어하는 여러(?)사람이 등장한다. 자신밖에 몰라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 공공의 편의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온갖 사람이 오가는 곳이기에 더욱 그렇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문장에 깊이 공감하고, 같이 희노애락하며 나는 그의 문장에 풍덩 빠져 이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애. 슬픔
“순간이었다. 사람을 치는 게. 속으로는 제발 멈춰라 멈춰라 간절했지만 열차는 멈추지 않았다. 까마귀나 새들이 부딪혀도 큰 소리가 나는데 그 충격음이 들리지 않길 바랐다. 쿵! (p.47)”
지하철에서의 자살. 사실 대부분의 경우 운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입장에서 언론에 공개되기에 기관사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일이 크게 없었다. 하지만 『이번 역은 요절복통 지하세계입니다』를 읽으며 뜻하지 않게 그 반대편에 서버린 입장을 읽으며 안타까움과 짠함이 동시에 들었다. 다른 이야기에 비해 지극히 감정이 절제된 이야기였지만, 덤덤한 문장 사이사이에서 묻어나는 슬픔이 가슴아팠다. 더불어 사상사고를 겪은 기관사가 스스로 생을 마무리한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좀 울었다. 어쩌면 세상에는 수많은 '타인의 아픔을 온 몸으로 버텨내고 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타인에게 가해를 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뜻하지 않은 사고에도 자신의 슬픔인듯 아파하고 슬퍼한다. 이 일상적이면서도 일상적이지 않은 슬픔을 전해읽으며, 평범한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나라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러번.
락. 즐거움
“덥다는 민원과 춥다는 민원이 두더지게임의 두더지처럼 미친듯이 솟아오른다. 얼울한 게 나는 동전을 넣은 적도 없는데 솟아오르니 환장할 노릇이다. (p.134)
이 페이지를 읽으며 나는 깔깔 웃었다. 일단 책에 포함된 일러스트도 너무 웃겼고, 우리집에서도 매일 일어나는 전쟁(?)이라 깊은 공감을 했다. 하다못해 3명이 사는 집에서도 춥다와 덥다의 의견이 갈리는 수백명이 타는 지하철은 오죽할까. 우리는 이렇게 모두 다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두더지게임을 하고 있을 모든 기관사들에게 경의를!
『이번 역은 요절복통 지하세계입니다』를 읽는 내내 사람냄새에 웃고 울고, 공감하기도 했다. 빌런과 슈퍼히어로가 동시에 살고 있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하게 느낄 수 있던 이 책. 누구라도 이 책을 만나면 분명, 그래서 다음 이야기는? 하면서 작가의 브런치북을 검색해보게 될테니 반드시, 꼭! 이 책을 만나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