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왕
박규동 지음 / 새움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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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나는 시키면 하는 사람들이잖아.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우리가 운전하는 게 아니잖아. 우리는 핸들을 잡고 있지 않아. 다른 길로 가고 싶어도 운전을 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어. 매 순간 선택하고 선택당하는 거야. 작은 선택들, 시간의 흐름이 있지. 우리는 같이 흘러는 것뿐이야. (p.118) 

 

어떤 사람들이 그러잖아. 자기의 삶은 넘어져도 꽃밭이었다는 사람들. 정말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야. 복 받은 사람들이지.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고. 이번에는 네가 넘어졌는데 꽃밭에 떨어졌다고 생각하면 어때? (p.179)

 

 

박규동의 장편소설 『대마왕』의 뒤표지를 덮으면서 생각했다. '미친 거 아니야?'. 

이 생각은 사실 놀라움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이런 온도로, 이 정도의 감정변화로 표현해낼 수 있지, 하고 말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야기 속 화자 '나'는 무척이나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그것을 읽는 독자의 심리는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거다. 상대방은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데 나만 놀라고, 열 받고, 긴장하는 등의 미칠 것 같은 관계. 약오르는 마음. 그게 이 책을 만나는 나의 마음이었다. 

 

『대마왕』은 요즘 뉴스에 빈번히 등장하는 마약을 주제로 한다. 처음에 이 책을 읽을 때만 해도 느끼지 못했지만, 이 책의 표지가 어쩌면 대마를 온전히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모양의 풀, 얼굴을 가린 쾌락, 그리고 점차 자신의 진짜 얼굴을 잃게 되는 중독성. 『대마왕』은 그렇게 마약에 중독된 이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엮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이 논픽션인지 픽션인지 헷갈렸다. 더욱이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이어지기 때문에, 누군가의 회상을 바탕으로 한다는 느낌이 들어 그 헷갈림은 더욱 짙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스토리를 더욱 생생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화자의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죽음을 목도에 두고 자신의 과거를 하나하나 풀어놓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나는 이 책 속의 '나'가 죽었든 죽지 않았든, 정말 자신의 경험을 풀어내고 박규동 작가가 약간의 살을 붙여 허구로 포장해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현실 도피차 떠난 여행, 그곳에서 만나게 된 '예술가', 그에게서부터 접하게 된 대마초. “이것이 나에게 어떤 느낌을 주기도 전에 이것과 사랑에 빠졌어. (...) 나에게는 어떤 향수보다 향기로웠어. (p.21)”라는 문장에서 화자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해보기도 했지만, 그 예상의 정확도와 관계없이,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더라. 

 

책을 읽는 내내 이야기가 너무 담담히 흘러 오히려 힘든 마음이 들었다. 이 이야기를 이렇게 담담하게 한다고? 이게 이렇게 감정의 변화가 없을 일이야? 하는 마음에 분노하고, 버겁고, 놀라는 등 여러 가지 감정을 경험해야 했다. 순식간에 책 한 권을 뚝딱 읽고 나서도 이 책을 무엇이라 설명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더라. 이 이야기가 소설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몰입감이 너무 커, 괴물이 되어버린 '나'가 우리 주변에 너무 많을까 봐 무서웠고, 수많은 '중독'에 노출되어 사는 현대사회가 걱정스러워졌다. 

 

우리나라에서 마약은 불법이다. 하다못해 양귀비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경찰이 출동하는 나라다. 그래서 더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인지 맛있는 음식에도 '마약'이라는 단어가 붙곤 한다. 박규동의 소설 『대마왕』을 읽으며 문득 그 단어에 대한 무게를 우리가 너무 모르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무지'와 '무식'은 다른 것인데, 우리는 무지함으로 인해 무식할 만큼 쉽게 그 단어를 가벼이 입에 올리고 산 것은 아닌지. 아무튼, 이 책이 반드시 픽션이면 좋겠다. 현실이 더 잔인하고 무섭다는 사람들의 말에, 그래도 끝까지 반기를 들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대마왕』이 완전한 픽션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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