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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우울 - 우울한 마음에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다
이묵돌 지음 / 일요일오후 / 2023년 9월
평점 :

한강이 속삭였다. 네가 조금 전 입에 담았던 건 아주, 아주 비겁한 변명에 불과한 것이라고.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아, 사람이 조금쯤 비겁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가겠느냐고. 비겁한 말이지만 너는 강이라서 잘 모르겠지. 나와 달리 아주, 아주 깊은 강이라서. (p.173)
우울증을 예방하고 우울한 인간이 되지 않는 최선의 방법은, 바로 우울하다고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한다. (p.213)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여러 번 책의 표지를 다시 뒤적였다. 내가 읽고 있는, 이 날카롭고도 선명한 문장이 소설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보통'가정에서 태어나 보통의 부모님과 보통의 형제들과 보통 같은 유년을 보내고, 보통의 직장, 보통의 남편과 보통의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는 내게는 그가 겪은 일들이 낯설고 힘겨운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작가는 『최선의 우울』에 미리 “우울함에 획기적인 해결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입장이고 완벽한 방법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양 떠들어대는 사람은 혐오하기까지 한다(p.8)”라고 말할 만큼 '우울'에 대해 현실적인 입장이다. 사실 나는 약간 모자란 아이처럼 '맑은' 사람이라 조금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만약 『최선의 우울』이 마냥 우울하기만 했다면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방식으로 우울을 대하는 방향을 정해간다. 힘겹게 우울을 이기며 무엇인가 하려 하기보다는 나의 어느 한 부분이라고 받아들이고 그것과 잘 공존하는 법을 익힌 것 같다. “많은 사람은 우울하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생각해주지 않는다. 모종의 신호로 받아들인다. 당장 날 위로해달라거나, 내게 도움이 돼달라거나, 의지할 사람이 필요하다거나, 우리 관계에 아주 심각한 문제가 불거졌다거나, 너와는 그다지 즐거운 이야기를 할 기분이 아니라거나, 지금 내 기분을 낫게 하지 못하면 네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겠다거나…. (p.184)”라는 문장을 읽으며 나의 기준과 나의 잣대로 타인의 기분과 감정을 판단하지 말자는 생각도 했고.
그의 '우울하다는 선언'을 읽으며 나는 그가 자신의 우울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잘 대하는 방법을 알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의 우울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공감할 수도 없지만(물론 그가 그것을 바라지도 않을 것 같지만), 안심되더라. 그러며 문득, 요즘 사회에 만연한 우울하다는 감정이, 어둡고 가라앉는 무엇이 아닌, 기쁘거나 즐겁거나 하는 감정처럼 그냥 그런 감정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오히려 심각하지 않게, 담백하게 지날 수 있는 일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사실 나도 평생을, '우울'이나 '불행'은 이겨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글을 읽으며 우리가 즐거운 감정을 '이겨낸다.'라고 표현하지 않듯, 우울도 이겨내기보다는 '지나간다'라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훨씬 가볍게 아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나에게 『최선의 우울』은 그렇게 우울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감정이 정답이 아님을 깨닫게 되기도 했고. 최선을 다해 우울해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허용하기로 했다는 그가, 그 와중에도 행복하고, 즐겁고, 신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