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눈썹, 혹은 잃어버린 잠을 찾는 방법 - 도서부 친구들 이야기 꿈꾸는돌 37
최상희 지음 / 돌베개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두운 밤길을 걸을 때면 종종 어디선가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를, 저만치 빠르게 사라지는 작은 그림자를 감지하며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어디론가 연결된 문을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해본다. 어두운 눈으로 그 문을 더듬다 보면 밤하늘은 완전히 캄캄하지 않은 채 푸르스름하게 빛나고 있어(...) 느낄 수 있었고 손 내밀면 만질 수 있을 듯했다. 그것은 부드러운 밤의 공기를 만질 때의 느낌 같을 것이다. (p.121)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아이와 마주 보고 앉아 책을 읽는 시간이다. 매일 한 두 시간 가량 누리는 그 시간은 몹시 따뜻하고, 몽글몽글하다. 아무래도 나는 책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책장을 넘기는 소리, 책장이 손가락에 닿는 느낌, 그리고 책과 함께 하는 그런 순간순간들을 다 사랑하는 듯하다. 아니, 어쩌면 책 자체가 그렇게 시간과 추억을 저장하는 마법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분명 그럴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최상희 작가의 신간 『속눈썹, 혹은 잊어버린 잠을 찾는 방법』을 읽고, “마음을 나누지만, 각자의 비밀 하나쯤을 간직하며 서로의 비밀을 존중하던(p.205)” 시절로 훌쩍 데리고 간 것을 무어라 설명한단 말인가. 

 

『속눈썹, 혹은 잊어버린 잠을 찾는 방법』은 어떤 면에서는 평범하고, 어떤 면에서는 평범하지 않은 도서부 아이들의 이야기로, 서로의 다른 점을 보듬어주고 서로의 비밀을 품어주는 따뜻하고 다정한 소설이다. 청소년 소설이다 보니 엄청난 갈등이나 사건은 없지만, 무해하고 청량한 소녀들의 이야기에 온 마음이 푸근해진다. 어느 드라마에 나온 말처럼, “봄날의 햇살” 같다는 것은 녹주와 차미, 오란의 우정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녀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교복을 입었던 그 시절로, 친구와 나누는 이야기들이 세상의 전부 같았던 시절로 훌쩍 되돌아갔다. 

 

『속눈썹, 혹은 잊어버린 잠을 찾는 방법』을 읽는 내내 그 시절의 나는 무엇을 찾고자 했을까 많이 생각했다. 녹주는 잃어버린 속눈썹을, 차미는 잊어버린 잠을, 오란은 어긋나버린 기억을 찾는다. 짐짓 무거운 느낌의 '목적'처럼 느껴질지 모르나 우리의 유쾌한 여고생들은 서로에게 어깨와 마음을 내주며 다정한 하루를 만들어간다. 여기에 피식, 웃음이 터지는 귀여운 말장난까지. (두루미야 뭐야~ 굼벵이야 뭐야~) 

 

어른에게도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는 『속눈썹, 혹은 잊어버린 잠을 찾는 방법』은 청소년에게는 더욱 특별히 다가오리라는 생각이 든다. 담담히 나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확장해가는 모습에서, 여러 아이가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에서, 서로 주고받는 따뜻함에서, 저마다 느끼는 것이 있을 테니 말이다. 부디 이 따뜻한 마음이 많은 아이에게 퍼져서, 더 사랑하고 더 행복한 학교가 많아지길 바라본다. 

 

나도 떡볶이라도 사주면서 녹주와 차미, 오란의 사이에 슬쩍 껴들고 싶다. 평범하고도 빛나던 그 시절이 너무 그리워지는, 눈부시게 아름답고 반짝이는 소설, 『속눈썹, 혹은 잊어버린 잠을 찾는 방법』이었다. (혹시 제목 때문에 무슨 이야기일지 감이 오지 않아 이 책을 만나길 망설이신다면, 부디 속는 셈 치고 이 책을 일단 펼쳐 보셔라.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매력적인 친구들이 생길 테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