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 드 경성 - 한국 근대사를 수놓은 천재 화가들
김인혜 지음 / 해냄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모든 이야기는 『천일야화』처럼 끝이 없다. 1930~1940년대 경성을 누볐던, '곡마단' 같다는 비아냥거림을 듣던 천재 예술가들의 이야기, 이들의 얽히고설킨 관계와 그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생산물들. 그것은 지금의 우리 유전자에 어떻게든 기억되고 있는, 우리가 꼭 알아야만 할 문화유산이다. 슬프고도 찬란한 유산. (p.24, 까치집 머리, 털북숭이 수염의 '이상'과 작은 키에 질질 끌리는 외투를 입는 '구본웅'의 기묘한 조화가 곡마단 행차에 비유됐다.) 

 

 

이 책은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기다렸던 책이다. 비록 나는 그림이나 음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무지렁이지만, 그럼에도 '글'만큼 '예술'을(어쩌면 '예술사'를) '탐미'하는 나에게 한국의 천재들, 더욱이 '근대사'의 천재들 이야기, 「조선일보」 화제의 칼럼이었던 『김인혜의 살롱 드 경성』을 묶어놓은 이 책을 어떻게 지나칠 수 있겠는가. 

 

『살롱 드 경성』은 빼앗긴 나라의 설움, 전쟁의 비극 속에서 더 아프고 불안했기에 더욱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을 예술가들의 무성영화 같은 삶을 담은 책이다. '화가와 시인의 우정' 편에서는 이상과 구본웅, 백석과 정현웅, 김기림과 이여성, 박수근과 박완서 등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고, '화가와 그의 아내' 편에서는 이중섭과 이남덕, 김환기와 김향안, 김기창과 박래현 등의 열렬한 응원을 만나볼 수 있다. 그 외에도 나혜석, 이쾌대, 이인성 등이 화가의 삶, 김병기, 변시지, 문신 등 예술가들의 고뇌를 엿보기도 한다. 이미 접해본 내용도 있었고 처음 만나는 내용도 있었으나, 그것과 관계없이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새로이 배우고, 새로이 느끼고, 새로이 깨달았다.

 

저자는 타고난 이야기꾼임이 분명하다. 원래도 극적이었을 예술가들의 삶에 어찌나 멋진 제목을 붙여두었는지. 제목만으로도 가슴이 설레고, 그 안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내 마음을 가장 설레게 한 제목은 “그럼에도 삶은 총체적으로 환희다”였다. 국가등록문화제인 '남향집'을 그린 오지호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전혀 몰랐던 그의 삶에서 느끼는 바가 무척 많았다. “어둠 속에 직면해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 고통에 매몰되지 않는 굳건한 정신세계를 지녔기에 빛나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던 것(p.263)”이라는 말이 마음에 짙게 남는다. 어쩌면 우리는 훨씬 나은 환경에 살면서도 '못하는 이유'를 만들어대지 않나. 고난이 와도 삶은 총체적으로 환희라는 말을 읽는 내내 그동안의 나는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 할 이유만을 찾아왔던 것은 아닌지, 반성의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내 삶이 어쨌든 총체적으로 환희가 될 수 있도록 더 부지런히 행복하리라 결심했다. 

 

자주 하는 생각이지만, 이 책의 주인공들이 다른 시대나 환경에 살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백 년을 앞선 생각을 살았던 이상이 지금 시대의 작가였더라면, 이중섭이 넉넉한 환경에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것은 그저 상상일 뿐이니 이미 멈춰진 그들의 시계 앞에 안타까움이 들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넘어선 고통은 결국 후손들에게 눈부신 아름다움을 남겼다. 그래서 그들이 남긴 작품의 수, 성공의 여부를 떠나 그들이 시대에 남긴 것,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찬란하고 슬프고, 빛나고 아프다.

 

『살롱 드 경성』은 저자의 말처럼, “많은 작품을 남기지도 못했고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후세가 그들을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p.46)”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살롱 드 경성』을 읽는 내내 무척이나 좋아하는 노래, 「우리의 얘기를 쓰겠소」가 내내 머리에서 맴돌았다. 이 책을 통해 흑백으로 묻힐 뻔한 이야기의 먼지를 털어, 10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새로운 이야기를 피워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시절에는 여전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인 먼지 안에 숨어있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김인혜의 살롱 드 경성』으로 다시 만나고 싶다. 독자가 없이는 이야기가 완성되지 못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부디- 시대에 가려진 많은 예술가의 더 많은 이야기가 완성되기를. 그 어떤 전시보다- 그 어떤 작품보다 감동 가득한 '삶'이 담겨있는 『살롱 드 경성』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