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나의 사계절 요리학교 - 할머니의 손맛과 손녀의 손길로 완성되는 소박한 채식 밥상
예하.임홍순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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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평범한 걸 뭐 그리 열심히 적어? 예전엔 노다지 이것만 해 먹었어!”

그래서 적어요. 평범해서 지나쳤던 수난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발견하고, 어루만지고, 전하고, 묻혀있던 보석을 캐는 마음으로 요리하고 싶어서요. 

“이거 다 멋진 당신 보면서 배운 거야. 내가 살아가는 모든 방식은 다 그 손에서 시작된 거야.”

할머니만 모르더라고요. (P.127) 

 

 

몇몇 리뷰에서 기록한 것 같은데, 나는 조부모의 정을 모른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이미 세상에 없는 분이셨고, 친조부모님은 '사랑'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분들이 아니었다. (아, 그렇다고 불행한 유년을 상상하지는 말 것. 나는 듬뿍 사랑해주는 부모님과 정 많은 언니와 남동생을 가진 행복한 사람이다) 그런 내가 『할머니와 나의 사계절 요리학교』에 입학해야겠다 생각한 것은 순전히 딸 때문이었다. 여전히 내 밥이 아닌 할머니밥(=울 엄마 밥)을 “집밥”이라 부르는 녀석의 시골 입맛에 부합해주고자! 

 

내가 열심히 『할머니와 나의 사계절 요리학교』를 공부하는데 우리 아이가 와서 말한다. “뭘 그걸 책으로 배워. 전부 우리가 먹는 음식인데, 그냥 할머니 집 가면 되지.” 맞다. 우리 엄마 레시피와 참 닮은 이 책, 『할머니와 나의 사계절 요리학교』를 꼭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혹시 나처럼 이 책이 엄마 혹은 할머니의 레시피와 닮았다고 생각한다면, 그 맛있는 레시피를 더 깊게 이해하고 즐기기 위해서- 훗날을 위해 “우리 집 표 레시피”를 남기기 위해서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 이 책은 요리만 담은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요리와 인생, 우리의 자연, 자연에서 얻은 귀한 식자재, 그리고 그것을 요리로 바꾸는 사랑까지 모두 담겨있다. 

 

원래대로라면 책의 첫 장부터 정좌를 하고 만나는 게 내 성격이지만, 더워도 너무 더운 여름이기에 제2장, “여름”부터 펼쳐 들었다. 처음부터 정말 애정 메뉴들이 어찌나 많던지! 콩죽, 수미감자, 콩물, 꽈리고추! 뭐 하나 거를 것이 없는 요리법들을 보며 여름이라 잃어버린 줄 알았던 입맛이 어느새 나를 부른다. “그래서 뭐 해먹을 건데?” 하며. 그렇게 책을 넘기다 발견한 “고추 간장”! 경상도에서는 “고추 장물”이라 부르는 그 음식에 손이 멈춰 결국 눈물 콧물 질질 흘리며 고추를 다져 고추 간장도 해 먹고, 호박꽃을 구하지 못해 그냥 감자전만 구워 아쉬워하기도 했다. 할머니의 요리도구를 구경하며 낄낄 웃기도 하고, 따라 만들 것들에 포스트잇을 붙이다 보니 어느새 여름 편이 훌쩍 끝나버렸다. 

 

이 책을 보며 살짝 심통이 났던 건 도무지 구하기 힘든 호박꽃이나 들깨꽃 등의 식자재가 사용되는 점. 우리 집은 비교적 시골인 편인데도 농사를 짓지 않으니 도무지 구할 길도, 맛도 모를 재료에 심통이 난다. 나도 호박꽃이 너무 먹어보고 싶다고 ㅠㅠ

 

비록 나는 작가님처럼 예쁘게 담아낸 폼나는 요리를 할 수는 없었지만, 책에 나오는 요리법들을 따라 해보며 재미있기도 하고 괜히 마음이 짠하기도 했다. 이렇게 기억해두지 않으면 사라질지도 모를 레시피들. 잊힐지도 모를 식자재들. 

 

문득, 나도 엄마의 레시피를 잘 기록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음식은 그저 맛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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