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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色을 입다 - 10가지 색, 100가지 패션, 1000가지 세계사
캐롤라인 영 지음, 명선혜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5월
평점 :

올 블랙 의상으로 유명한 그레코는 전쟁 후 파리에서 10대로 지내는 삶을 “한 벌의 드레스와 한 켤레의 신발이 전부라, 우리 집안 남자들은 그들의 낡은 검은색 코트와 바지를 내게 입히기 시작했다. 불행이 낳은 패션이다”라고 묘사했다. (p.47)
나에게 가장 사랑받는 사물은 책이지만, 나는 옷과 신발, 가방 등에도 깊은 애정을 가졌다. 물론 유행을 뒤쫓는 것도 아니고, 명품을 좇지도 않는다. 가격이나 유행과 관계없이 내가 좋아하는 명확한 스타일과 색이 있고, 그래서 그것들이 나를 표현하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패션, 色(색)을 입다』라는 제목의 책을 만났을 때, 나는 당연하듯 매료되었다. 패션과 색, 그리고 역사라니! 내가 빠지지 않을 방도가 있는가.
『패션, 色(색)을 입다』는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 10가지 컬러가 인간의 삶을 물 들이고, 장식하고, 주도해온 이야기들이 가득 들어있다. 때로는 현대에서, 때로는 아주 먼 과거에서 색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내용도 무척 매력적일 뿐 아니라 사진 자료도 다채로워서 책을 읽는 내내 눈이 호강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컬러인 흰색과 검은색부터 보라색,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 분홍색, 주황색, 갈색 등 우리가 거의 매일 보고 살아가는 색들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무척 다양하게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색에 대해 가지는 선입견이나 연상단어들이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그 색깔들은 어디서오며 역사적으로는 어떤 상징성을 가졌는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패션, 色(색)을 입다』를 읽으며 색깔이 한 시대와 사상을 대표할 수도 있고, 수많은 상징을 내포할 수 있음을 깨닫기도 했다. 또 세상의 그 어떤 색도 '우연히' 사용된 것은 없음을 느끼기도 했고.
『패션, 色(색)을 입다』 덕분에 '이미지 탈바꿈'을 한 색을 고르라면 오렌지가 아닐까 싶다. 오렌지색은 내가 싫어하는 색의 상위권에 손꼽혀왔는데 (립스틱 말고는 오렌지색 아이템이 하나도 없다) 이 책을 읽으며 왜 에르메스가 오렌지색 상자를 고수하는지, 오렌지가 세상의 안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알게 되었다. 아마 이후로는 오렌지색을 보는 나의 마음도 한결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색들이 품어온 스토리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지만, 『패션, 色(색)을 입다』는 방대한 사진 자료와 각 컬러의 완벽한 활용으로 더욱 빛나는 책이 되었다. 각 컬러별로 갈무리된 유명인들의 패션을 보는 것도 무척이나 재미있었고, 주제에 따라 폰트컬러, 배경 등을 적절히 바꾸어 마치 완성도 높은 패션잡지를 보는 느낌이 가득했기 때문.
다양한 색들이 우리의 문화와 역사, 또 패션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떤 상징성을 품은 채 함께 해왔는지를 새삼 느끼며, 세상의 모든 것에서 배운다는 말은 역시나 진리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세상의 색은 우리의 언어로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방대하고 다양하기에, 내가 만난 이야기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겠지. 문득 작가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