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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漢)의 몰락, 그 이후 숨기고 싶은 어리석은 시간 - 권력자와 지식인의 관계 ㅣ 100페이지 톡톡 인문학
최봉수 지음 / 가디언 / 202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쩌면 이 또한 이데올로기와 사람 사는 세상과의 거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왕망과 공용의 개인 문제기도 하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남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만큼 스스로 돌아보지 않았던 것이다. 한 번이라도 나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는지 돌아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어쩌면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p.72)
가디언에서 출간된 “100페이지 톡톡 인문학” 시리즈 중 두 번째로 만나본 책은 『한의 몰락, 그 이후 숨기고 싶은 어리석은 시간』이었다. 사실 『천년왕국 서로마 제국이 '시시껄렁하게' 사라지는 순간』과 두 권을 나란히 가방에 넣어 다니며 제목이 더 끌리는 쪽을 먼저 읽은 것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한의 몰락, 그 이후 숨기고 싶은 어리석은 시간』이 더 재미있었다. 『천년왕국 서로마 제국이 '시시껄렁하게' 사라지는 순간』은 쉽고 편하게 읽는 마음이었다면, 이 책은 신문의 칼럼을 읽는 기분이랄까? 책의 내용 면에서도 서로마 제국의 이야기보다는 한나라의 멸망이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익숙한 인물들의 이야기 많이 알려진 '한나라'이기에 편한 마음으로 펼쳐 들었던 『한의 몰락, 그 이후 숨기고 싶은 어리석은 시간』은, 조조나 동탁이 아닌 왕망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소위 '실패한 개혁가'인 그에게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한 번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왕망의 이중성, 개혁에 대한 욕망 등을 살펴볼 수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개혁'이라는 단어의 가치나 도덕, 욕망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시간을 가졌다. 삼국지에서 인물들에게 풍덩 빠져 제대로 알아두지 못했던 멸망과정도 새로운 느낌이었고. 지식인과 권력자가 결탁하고, 변질하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다소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떤 리뷰에서 “100페이지 톡톡 인문학” 내용이 가볍다고 표현하신 것을 읽었는데, 일부는 동의하는 바이나 변명을 조금 붙이고 싶다. 분량도 분량이니만큼 깊은 내용을 다룬 책은 분명 아니다. (앞의 리뷰에서도 그런 내용을 언급했다) 하지만 책의 기획 의도도 분량도 가볍게 만들어진 책이니 짬 나는 시간에 읽으며 작가의 생각에 내 생각을 얹어보는 책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역사의 흐름이나 인물의 일대기라기보다는,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어느 한 포인트, 어느 한 시점의 역사를 바탕으로 작가의 견해를 풀어가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