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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 선택적 함구증을 가졌던 쌍둥이 자매의 작은 기록들
윤여진.윤여주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6월
평점 :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작고 소중한 놀이의 기억들. 가족에게 사랑받고 사랑하던 빛나는 순간들. 어른이 된다고 해서 살아가는 일이 마냥 쉽지는 않지만, 때론 이 기억들이 나를 살게 한다. (p.53)
언제인가 한 지인이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티가 난다고. 그 사랑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사랑하고, 타인에게도 그 마음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랑에도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고. 그게 어떤 것인지 정작 나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말이 너무 행복해서 온 마음이 따뜻했고, 내 사랑을 그 지인에게도 마구 나눠주고 싶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된 게 지인이 말하는 나의 상태가 '정서적 안정'이었구나 싶어졌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 담고 사는 아픔이 많아서, 무얼 먼저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다던 지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지인에게 비록 당신이 그렇게 사랑받지는 못했지만, 당신은 그 힘든 시기를 다 지나와 사랑을 만들어서 나누기 시작했으니, 당신이 사랑 1세대가 되었다고 말해주고 싶어졌다. 이제 이들처럼, 당신의 어린 시절에 쌓인 아픔을 하나씩 꺼내놓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 책에는 선택적 함구증을 앓는 쌍둥이 자매가 나온다. 아무리 쌍둥이라도 그런 마음의 병까지 닮을 것이 뭔가. 바쁜 부모님 대신 그녀들을 지켜준 할머니. 책 대부분에 가득한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읽으며 정서적으로 안정된다는 것이, 양육자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깊게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는 나의 정신건강을 더 잘 관리하자는 생각도 많이 했고.
아마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며 정서의 안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게 된다. 더욱이 그녀들이 어린 시절 함구증을 겪은 시기의 심리와 그것을 깨고 나오던 이야기를 소상히 적어두어 실제 심리적 문제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는 위로의 글도 될 듯하다. 나 역시 그녀의 엄마가, 또 그녀들이 직접 했던 응원의 말들을 읽으며 마음을 다해 위로를 얻었으니 말이다. 더불어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에게 어떤 말들이 참 응원이 되는지도 많이 생각해볼 수 있었고.
목소리를 내고 싶은데 안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목소리를 내고 싶은 마음조차 없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불편했다. 나를 쳐다보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싫었고, 말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겁났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펼쳐지는 것이 두려웠다. (p.20)
이 책은 심리적인 면에서도 훌륭했지만, 지식적인 면에서도 좋았다. 사실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말이 최근에서 와서 언론에 알려졌지, 지금껏 이해받아온 병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대부분은 말수가 유독 없다거나, 소심해서 말을 못 한다거나, 사교성이 굉장히 없다거나, 심하면 언어장애가 있다는 오해를 받거나 하는 중의 하나지 않았을까. 나 역시 그런 가해자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나의 무지가 부끄러웠다. 이 책을 통해 타인에 대해 조금 더 넓은 폭의 이해를 하고 필요한 만큼의 감정적 거리를 유지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보기도 했다.
잔잔하지만 강단 있는 그녀들의 성장기를 통해, 내가 받아온 정서의 안정에 감사하는 마음과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안정까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나에게도 성장기가 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