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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4월
평점 :

성실하게 사는 건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에요. 특별히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죠. (p.386)
사실 나름 오랜만에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소설을 읽은 듯하다. 한때는 나도 한 권도 빼놓지 않고 읽는 열혈독자였는데, 집필 속도가 빠르기도 하고, 다른 책들도 읽다 보니 밀린 책이 꽤 되는 듯하다. 하긴. 워낙 빠른 속도로 글을 쓰시기에 분명 7명일 거라고, 7명이 한 글자씩 따서 히가시노 게이고일 거라고, 7명의 이름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히코리. 가무라. 시타. 노부. 게로. 이노우에. 고바야시. 이런 식으로 ㅋㅋㅋ)
오랜만에 읽은 소감? 말해 무얼 해. 삽시간에 몰입하여 단숨에 읽어냈지. 역시 나처럼 단순히 읽고 끝난 것이 아니라 씁쓸히 남은 여운으로 이런저런 제도에 대해, 사회에 대해 생각하게 했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언제나 그랬듯, 진행이 빠르고 긴박하면서도 툭,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분이시니 이번에도 재미있게 읽고 나서 뒷맛이 씁쓸하다. 사실 몇 년 전 읽은 것을 다시 읽은 것인데도 몰입하여 읽고, 이토록 씁쓸한 것을 보면 그의 글이 매우 치밀한 것도 맞고, 세상이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도 맞는 것이겠지.
그때의 나는 아이가 없었고, 지금의 나는 아이가 있어 더 깊은 생각을 가지고 읽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형제도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물론 사형제도 자체가 가지는 사회적 의의(?)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바가 없지 않으나, 그 자체가 가진 맹점에 대해 생각한다면 정말 이 방법뿐인가- 하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작가 역시 이런 방향에서 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 듯하다. 사형을 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의 사람과 살인을 타당성으로 엮고 싶은 사람. 그 둘의 심리를 너무나 분명하게, 작가 특유의 호흡과 문장으로 끌어내니 오히려 더 슬프고 먹먹한 이야기가 되어 읽는 내내 마음을 둥둥 울렸다.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나 역시 피해라 가족이라면, 사형에 대해 간절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내내 나를 괴롭혔다.
사실 그의 책이 마음을 편하게 읽게 하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나미야 잡화점 빼고) 미성년자 범죄, 성 소수자 문제, 그리고 사형제도. 그래서 어떨 땐 그의 책을 읽는 것이 버겁다. 또 한편으로는 이 방법이야말로 가장 쉽게 사상에 문을 두드리는 일이 아닌가 생각도 해보고. 이번 책을 읽는 내내 언젠가 보았던, 죽은 딸의 복수를 하는 엄마를 그린 영화가 떠올랐다. 여전히 피해자의 마음은 극단적인 방법 말고는 풀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스포일러 하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너무나 어려운 리뷰가 되어버렸다. 하루를 꼬빡 잡고 있었으나 분노와 씁쓸함만을 이야기한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