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 이야기 - 마트와 편의점에는 없는, 우리의 추억과 마을의 이야기가 모여 있는 곳
박혜진.심우장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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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구멍가게는 제 살길을 찾아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이제는 가게에 나와 앉을 수도 없는 분도 생겼을 것이다. 마지막 보루처럼 가게를 지키던 그 분들이 안 계시면 십중팔구 가게도 문을 닫을 것이다. (p.21 프롤로그 중에서)


이 한 구절은 이 책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전체라고 말하고 싶다. 처음 이 책을 받아 들었을 때, 나는 이 책에 무슨 이야기가 들어있을지 상상해보았다. 구멍가게들이 가진 추억, 과거의 이야기들. 물론 이 책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 이야기만 있었더라면 이 책은 그다지 매력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에는 그것에서 좀 더 나아간다. 그 시절이야기와, 현대사에 적어도 한두줄은 기록될 물건들, 다양한 단어의 어원들, 변해가는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타인의 삶에 귀를 기울이며 듣게 되는 오롯한 나의 삶.



작가가 의도한 바가 이것이 맞는지는 모르나, 적어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오로지 나로서 하루를 찬찬히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그것 만으로 충분한 읽기였을지도 모른다.

구멍가게의 시대는 저물었고 이제 다가올 겨울만 남겨두고 있는데 아주머니의 가게는 봄이었다. 막 피어난 홀가분한 마음들이 인생의 2막을 열어주었을 때 가게가 그 시작을 함께 해주었기 때문이다. (p.225)


어쩔 것이여, 냅 둬. (p.407)




인상깊었던 문장에 저 한 줄이라니. 저게 뭔가 싶겠지만, 저게 그 이야기를 대표하는 문장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삶에서 인내하는 과정을 한 줄로 말해도 저 말일 테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아등바등 해봐야 달라질 게 없고, 될 일은 내버려둬도 된다는 것. 사실 이것만 받아들이면 인생도 힘들 게 없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한다. 내가 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문장도 사실은 이거다. 최근 내가 직장에서 가지고 있던 고민의 해답이 딱 저 문장이었다.




구멍가게. 사실 나는 구멍가게에 대한 별다른 추억은 없다. 소도시지만 아파트에 살다보니 수퍼마켓이나 편의점이 익숙했고, 구멍가게가 있었을지도 모를 시절에는 난 코묻은 돈조차 없는 코흘리개였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구멍가게에 대해 상상해보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 세상에 사는 나에 대해서도.


구멍가게에 대한 추억이 있는 이들은 더욱 그럴 테고, 없어도 뭔가 느끼는 게 많은 글이다. 두 작가 모두 덤덤한 문장이라서 더욱 고스란히 감정들이 묻어난다. 아마 더 달필의 문장가가 이 책을 썼더라면, 구멍가게를 하는 이들의 감정이 베어 나는 게 아니라 작가의 감정이 베어 났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책을 꽤 오래 읽었다. 몸이 안 좋기도 했고, 후룩 읽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 덕분에 우리 미라클독서 방장님은 의아해하기도 했지만, 없는 추억도 하나쯤 있었으면 싶은 그런 구운 고구마 같은, 삶은 옥수수 같은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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